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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약 요한계시록 14:14-20/ 마지막 추수의 장면 [계시록]
  • 조회 수: 498, 2013.08.24 18:12:24
  • 14:14 또 내가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사람의 아들과 같은 이가 앉았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이 한 낫을 가졌더라 14:15 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앉은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네 낫을 휘둘러 거두라 거둘 때가 이르러 땅에 곡식이 다 익었음이로다. 하니 14:16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땅에 휘두르매 곡식이 거두어지니라


    14~20절은 마지막 추수의 장면입니다. 본문에는 2가지 추수의 종류를 나타내고 있는데 하나는 곡식추수, 또 다른 하나는 포도송이 추수입니다. 15절부터 17절까지는 곡식추수이고 18-20절까지는 포도송이 추수이죠. 영적인 추수는 엄밀히 다진다면 2가지 추수인데 하나는 의인의 추수이고 또 다른 하나는 악인의 추수입니다. 추수 때가 되면 잘 됐든, 못됐든 다 낫으로 베어내야 합니다. 그래서 알곡은 창고로, 지푸라기, 쭉정이는 불에 태우는 것입니다. 소나 양의 먹이로 주기도 하죠.


    그런데 추수의 주체가 누구인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구름 위에 인자 같은 이가 앉아 있다고 표현합니다. 성경에서 인자라는 말씀은 559회나 등장하는데 한결같이 인성의 모습을 가지신 우리 주님을 말합니다.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다고 했는데 금 면류관을 쓰고 있는 자는 왕으로서 통치와 승리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손에는 이한 낫.... 이빨이 날카로운 낫을 소유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 남자들은 군에서 풀을 벤다고 낫을 많이 썼는데 저는 이 낫 때문에 놀림을 많이 받았습니다. 요즘 낫은 오른 손, 왼손 가려서 쓸 수 있도록 만들어져 나오기도 하지만 군에서는 그런 게 없었습니다. 다 오른 손을 사용하는데 저는 왼손을 사용했거든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이 볼 때에는 좀 엉성하게 낫을 쓰니까 한번 씩 고참들이 뭐라 그래요. 사실은 지들이 베나 제가 베나 양에서는 별 차이가 없는데 그래요. 그래서 저는 숫돌에다가 낫을 아주 예리하게 갈아 풀을 많이 베려고 노력했어요. 그러다가 손가락을 얼마나 많이 벴는지.... 그래서 낫이라면 지긋지긋해요, 아직도.... 그런데 우리 주님 손에 아주 날카로운 낫이 쥐어져 있어요. 한 번 만에 싹뚝 싹뚝....


    “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다.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니라.”(막4:28~29)


     곡식이 익었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데 하나는 추수하는 시기가 적합하다는 때를 말하는 것이요. 또 다른 의미로는 의인의 수가 가득 찼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오는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7년 환난이 시작되면 땅에 거하는 자들은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주님을 훼방한다고 했습니다. 계시록 16장 9절에 보니까 “사람들이 크게 태움에 태워진지라 이 재앙들을 행하는 권세를 가지신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하며 또 회개하여 영광을 주께 돌리지 아니하더라.” 지금 이 시대에 영적인 분위기를 보시기 바랍니다. 롯의 시대, 노아의 시대와 같지 않습니까? 롯의 사위들은 소돔과 고모라가 망한다고 하니까 장인어른께서 농담하신다.... 소돔과 고모라의 불심판을 농담으로 받아드렸다고 했습니다. 지금으로 표현하면 우리 장인어른께서 헛소리를 하신다.... 이렇게 빈정거리지 않았겠습니까? 이런 사람들의 마음상태를 에스겔 선지자는 에스겔 47장 11절에서 진펄, 갯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우리가 잠도 오고 집중력도 떨어지니까 한 번 찾아서 읽어봅시다. 기왕 찾는 김에 9절부터 찾아서 함께 읽어봅시다.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또 이 강 가에 어부가 설 것이니 엔게디에서부터 에네글라임까지 그물 치는 곳이 될 것이라 그 고기가 각기 종류를 따라 큰 바다의 고기 같이 심히 많으려니와  그 진펄과 개펄은 되살아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될 것이며.....”


    이 말씀이 무슨 말씀이냐 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넘치면 그 은혜가 마치 생명의 강수 같아서 이 강물이 흘러가는 곳마다 생물이 넘치고 고기가 넘치고 바다가 살아난다.... 그러니까 거기에는 활기가 넘친단 말입니다. 그런데 진펄, 개펄은 말라 비틀어져 소금땅이 된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황폐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진펄 개펄은 은혜가 없는 마음을 상징합니다. 마지막 때가 되면 사람들의 마음이 진펄, 개펄처럼 되어간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서 서서히 은혜의 복음의 문이 닫히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에게 은혜의 문이 닫히면서 이스라엘에는 구원의 문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제가 자주 표현한대로 제1의 교회.... 초대교회에서부터 지금까지 있어 온 이방인의 교회는 문이 닫히고, 제2의 교회 이스라엘의 교회가 문을 여는 겁니다. 제가 아는 이일기 선교사님이 이스라엘에서 선교를 합니다. 이 선교사님의 말에 따르면 이스라엘에서 지금 메시야주의가 서서히 회복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스라엘이 회복된다는 것은 이방인의 시대가 거의 마무리 단계에 왔다는 징조입니다.


    이제 17절로 20절까지로 가겠습니다.


    14:17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오는데 또한 이 한 낫을 가졌더라  14;18 또 불을 다스리는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와 이 한 낫 가진 자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불러 가로되 네 이 한 낫을 휘둘러 당의 포도송이를 거두라 그 포도가 익었느니라. 하더라  14:19) 천사가 낫을 당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14:20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굴레가지 닿았고 일천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더라


    포도송이 추수는 악인들의 추수입니다. 포도는 좋은 의미인데 여기서는 악인의 심판에 비유로 사용되었습니다. 왜 포도송이를 악인의 심판에 사용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포도를 추수하여 그 포도송이를 포도즙 틀에 쏟아 붙고 그걸 마구 밟아 즙으로 만들어 음용을 합니다. 팔레스타인은 기후가 더워서 포도를 추수하여 그대로 장기간 보관할 방도가 없습니다. 그래서 포도즙으로 만들어 발효시켜 보관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니 포도송이를 추수해서는 즙틀에 붙고 발로 사정없이 밟아 붉은 즙으로 만드는데..... 이 모양이 마치 악인을 무자비하게 심판하는 장면으로 묘사하기에 딱이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라.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17절에서 20절까지는 요엘 선지자가 하나님께 받은 예언의 말씀을 연상하게 합니다. “너희는 낫을 쓰라 곡식이 익었도다. 와서 밟을지어다. 포도주틀이 가득히 차고 포도주 독이 넘치니 그들의 악이 큼이로다.”(욜3:13)

     

    그 외에도 포도송이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포도즙과 포도송이가 있는데 포도즙은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날마다 십자가에 못 밖은 것이죠.  깨어지면 즙이 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반대로 포도송이는 그냥 살아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천연적인 욕망이 그대로 살아있는 것이죠. 죄와 사망의 법이 지배하고 있는 거듭나지 못한 인간의 원초적인 모습을 상징합니다. 뭐 이렇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찌 되었건 포도송이는 하나님을 대적하고 짐승표를 받고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세상 온갖 죄악에 탐닉 하면서 땅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고 있는 악인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포도가 익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더 이상 죄악을 그냥 두고 보실 수 없는 정도가 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신판의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심판의 때가 차기까지 기다리시는 분으로 종종 묘사됩니다. 원수가 밭에 가라지를 뿌릴 때에도 가만 두어라고 주의를 줍니다. 이 경우는 가라지를 베다가 참 곡식까지 상할 염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후서에서는 하나님의 때가 더디 온다는 불만에 대해서 한 사람이라도 더 회개시켜 구원시키려는 자비하심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예레미야는 유다왕국의 멸망이 가까워오는 것을 마치 남으로 기울어진 큰 냄비가 끓어서 흘러넘치기 일보직전임을 표현했습니다. 어쨌든 하나님의 심판은 찰 때까지 차도록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를 자주 짓고도 심판이 주어지지 않는다고 하나님을 멸시해서는 안 됩니다.   


    마침내 때가 차서 천사가 포도를 거두고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는데 이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 우상숭배자들, 행악자들을 심판하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탄이 세상을 주관하였을 때에는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고 박해하였으나 드디어 때가 되자 최후의 날에 하나님께서 사탄과 그들의 추종자들을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포도주 틀은 원래 농부가 수확한 포도를 틀에 넣고 발로 짓밟습니다. 사정없이, 가차 없이 짓밟아 즙을 짜는 틀로 압축하여 즙이 나오게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악인을 심판 하실 때에 긍휼과 자비가 없는 심판을 하십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유념해야 할 것을 포도주 틀이 크다는 것은 그 만큼 악인이 많다는 것을 나타내 줍니다. 성경에는 넓은 길로 걸어가는 사람은 많고 좁은 길로 가는 사람은 적다고 했습니다. 의인의 반열에 들어가는 사람은 적고 심판의 대상이 되어 진노의 포도주 틀에 심판을 받을  대상자는 악인은 상대적으로 많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틀은 성 밖에 있는데 이는 악인의 심판은 성 밖에서 이루어짐을 의미합니다. 반면에 구원받은 백성은 성안이며 이 성은 새 예루살렘입니다. 성 밖은 형벌의 장소요, 지옥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도성인 새 예루살렘에서는 악인이 들어 갈 수 없다는 것을 나타내줍니다. 요엘 3장에서는 여호사밧 골짜기가 마지막 심판의 장소로 나오는데 지금의 기드론 골짜기를 뜻합니다. 이는 예루살렘 동쪽과 감란산 사이의 성 밖에 있고 지금은 골짜기의 삼면이 공동묘지로 쓰이고 있습니다. 이 골짜기는 여호사밧 왕 때 유다를 침공해온 열국들이 이곳에서 패하여 무수히 죽은 곳이어서 여호사밧의 골짜기로 불리어지는데 대체로 성경학자들은 여기서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이 이루어지는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포도주 틀에서 피가 나서 말굴레가지 닿았고 일천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더라고 했는데 이는 피가 강물처럼 넘치고 세상은 온통 피바다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피의 높이가 말굴레까지 닿았으니 높이를 짐작하면 지상에서 평균 1m 50cm까지 피가 온 세상에 가득 찼다는 것이며 그 피가 퍼진 반경은 1600스다디온인데 1 스다디온은 약185m이니까 계산하면 약 300km입니다. 반경 300km, 높이는 1m 59cm.... 이렇게 심판의 피가 흘러넘치니까 상상만 해도 끔찍합니다. 그런데 이는 그 당시의 수치로서는 최고의 표현입니다. 왜냐하면 팔레스타인의 남북의 길이가 300km였기 때문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이는 온 세상이 악인들이 심판 때 흘린 피로 넘친다는 그런 뜻입니다. 온 세상에 진노의 포도 틀에 나온 피가 상상을 초월할 만큼 끔직하고 하나님의 완전한 형벌은 조금도 긍휼과 자비가 없이 무자비하게 진행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자 이제 그 누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피하고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마지막 추수의 시기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발자국 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리지 않습니까? 마지막으로 강조 드리고 싶은 것은 심판과 형벌이 있고 성 밖에서 이루어지는 형벌은 오늘 본문을 통해 볼 때 끔찍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동안 강조하던 주님의 사랑, 자비, 긍휼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우리의 이성을 초월하는 너무너무 무섭고 영원한 형벌이니까 오늘 우리는 오늘 본문을 꼭 기억하여 알곡 추수로 천국 곡간에 다 들어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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