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칠십인의 행복(눅 10:1-7)
  • 조회 수: 51, 2013.08.26 07:47:35
  •     최근 우리 사회에는 끔찍한 살인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정모씨는 1년 사이에 13번의 범행을 저질러 9명을 죽이고, 8명에게 중상을 입혔습니다. 경기도 이천에서는 노름판의 개평 2,500원 때문에 4명을 죽이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보험금을 타기 위해 옛 애인과 그 남편을 죽이고, 자신의 아내까지 죽이려고 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겨우 4월 한 달 동안에 신문에 실린 살인 사건은 이것 외에도 여러 건이 있습니다. 돈과 명예와 욕망을 위해 남을 죽이는 세상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입니다. 
            비록 합법적인 경우에도 남을 죽이는 것은 할 일이 못됩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지금도 회교 율법에 따라 공개적으로 야만적 처형을 합니다. 전에 국민일보에 실린 글 중에 보니, 거기 사형집행인은 일평생 무려 2천 9백 명을 칼로 내리쳐 죽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는 거의 폐인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합법적인 것일지라도 남을 죽인 사람이 어찌 편할 수가 있겠습니까?  다른 사람을 죽이면 자신도 죽는 게 하나님의 법입니다. 남을 괴롭히면 자신도 고통을 받는 것이 원리입니다. 
            그런가 하면 다른 사람을 살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처럼 감동적인 것은 없습니다. 최근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는 허 준 신드롬도 그런 것입니다. 서자를 제대로 대접해 주지 않던 이조시대에 정일품의 자리까지 입신한 성공담도 사람들의 흥미를 자극할 뿐 아니라, 시기하고 미워하는 세력은 실패하고 성실한 사람이 성공하는 권선징악적 전개도 사람들의 시선을 끕니다. 게다가 이 드라마가 인기가 있는 이유는 그가 <사람을 살리는 의원>으로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그 드라마는 역사 왜곡도 있고, 내용 과장도 있습니다. 드라마를 만드는 사람들도 그 사실을 시인했고, 보는 시청자도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 과장을 기꺼이 용서할 뿐만 아니라, 박수를 보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허 준이란 의원이 사람을 살리려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감동적이기 때문에, 그 감동 앞에서 왜곡도, 과장도 다 용서를 받고 있습니다. 무엇을 나타내는 것일까요?  시청자들은 우리 사회에 실제로 허 준 같은 사람이 많아지길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시청자들은 드라마를 통해서 대리 만족하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여러분, 어찌 남을 죽이고 빼앗는 성취감과 남을 희생적으로 살린 후의 기쁨을 같은 평면 위에서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남을 살려낸 사람의 기쁨은 아무도 모를 것입니다. 헨리 나우엔은 <성공적인 삶과 열매가 풍성한 삶은 다르다>고 했습니다. 남을 죽이고, 누르고, 고통스럽게 하면서 억지로 쟁취하는 것을 세상에서는 성공이라고 부를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은 열매가 풍성한 삶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성공하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열매가 풍성한 삶을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런 삶을 살게 되길 원합니다.  
            열매 중의 최고는 생명을 살리는 것입니다. 주님은 살리기 위해 오셨습니다. 생명을 주기 위해 오셨습니다. 주님의 가르침은 살리는 일과 관계 있습니다.  그 유명한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보세요. 거기 세 종류의 사람이 등장합니다. 첫째는 길가는 사람을 덮쳐서 때리고 죽이고 남의 소유를 빼앗아 살아가는 강도입니다. 그런가하면 남에게 손해를 끼치지도 않고 그렇다고 도와주지도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강도에게 맞아 거의 죽게 된 사람을 그대로 못 본 체 하고 지나가는 제사장과 서기관은 죽이지도 않고, 살리지도 않는 사람들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 사람은 사마리아 사람입니다. 그는 강도 만난 사람을 응급치료하고, 나귀에 태워서 주막에까지 데려다 주었을 뿐만 아니라, 치료비까지 부담합니다. 
            주님께서 이 비유를 말씀하신 의도는 분명합니다. 살리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세상이 악하지만, 그래도 이만큼 세상이 유지되는 것은 생명의 동기로 살아가는 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들은 남을 살리기 위해 돈을 내놓습니다. 평생의 재산을 모아서 재단을 만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려운 이들에게 남몰래 도움을 주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 물질이 사람을 살립니다. 우리의 약간의 헌금이 기근에 허덕이는 지구상이 수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분들은 가르침을 줌으로써 사람을 살립니다. 두 길이 있는데, 왼쪽길이 넓고 큽니다. 사람들이 왼쪽 길로 가려고 합니다. 오른 쪽 길은 좁고 길이 험해 보입니다. 가려는 사람이 적습니다. 그 때 갈림길 어귀에 선생님이 서 계십니다. 선생님은 왼쪽으로 가려는 사람들에게 오른 쪽으로 가라고 합니다. 왼쪽 길은 지금은 넓고 좋아 보여도 조금 더 가면 절벽이 나타난다고 가르칩니다. 오른쪽 길은 지금은 험해 보여도 나중에는 넓고 편한 길이 나온다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절벽에 떨어질 사람들을 건집니다. 그게 스승입니다. 이화여대 총장을 오래 지낸 김활란 박사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을 때, 이화여대와 관련된 여성들이 오열하면서 <스승님, 우리는 당신의 딸들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가르침을 주는 이가 남을 살리고 존경을 받습니다. 
            어떤 분은 남을 살리려고 장기를 기증하기도 합니다. 어떤 분은 심지어 자기 생명을 희생하면서까지 남을 살립니다. 멕시코 소노라의 나코자리라는 도시에 <예수 가르시아>라는 사람이 살았습니다. 그는 본래 몬테주마 동회사의 철도 소방수로 있다가 후에 동광에서 광석과 장비, 일군들을 실어 나르는 기관사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그가 나코자리 역에서 잠시 쉬고 있을 때 한 철도 소방수가 헐레벌떡 달려와서는 지금 다이나마이트를 실은 화차에 불이 붙었다고 했습니다. 가르시아는 벌떡 일어나 달려갔습니다. 그리고는 급히 기관차에 시동을 걸어 전속력으로 도시 밖으로 달려나갔습니다. 그가 도시를 간신히 빠져 나와 인적이 없는 들판에 이르렀을 때 다이나마이트를 실은 화차는 대폭발을 일으켰습니다. 화차도 열차도 산산조각이 나고, 주변이 온통 폐허가 되었습니다. 물론 예수 가르시아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한 몸을 희생해서 나코자리 시민들의 목숨을 구한 것입니다. 나코자리에는 그의 이름을 딴 거리가 생겼고, 그는 멕시코인들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이게 남을 살린 삶입니다. 
            주님은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먼저 우리를 위하여 그 목숨을 십자가에서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온갖 죄인을 살리는 위대한 역사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살리는 일, 이게 바로 오늘 날 우리가 할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말 한 마디라도 조심해야 합니다. 죽이는 것은 총칼로만 하는 게 아니라, 말로도 죽이고, 눈빛으로도 죽입니다. 그래서 눈총이란 말이 나왔습니다. 눈으로 증오와 시기의 총을 쏩니다. 그러나 한 마디 말이 사람을 살리 수도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 다른 사람을 살리는 일에 최선을 다하게 되길 기원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입니다.

            그리고 이런 방법 보다 더 결정적으로 사람을 살리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복음으로 사람을 살리는 것입니다. 복음을 줌으로써 살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복음이야말로 사람 살리는 데 최고입니다. 복음은 사람을 살리는 천국의 묘약입니다. 복음은 하나님이 친히 조제하신 약입니다. 그 약을 받아먹으면 그 어떤 환자도 살아 일어납니다. 
            보세요. 세상의 의원은 사람의 육신을 살리지만, 복음은 영혼까지 살립니다. 의원은 사람의 육신도 몇 년 동안 더 살릴 뿐이지만, 복음은 그의 영원히 살립니다. 또 그 육신까지 부활하는 길로 인도합니다. 기증된 장기도 나중에 기증받은 사람의 죽음과 함께 죽고 말지만, 복음은 그 복음을 믿은 사람의 영혼과 함께 영원히 살아 있습니다. 돈은 한 사람에게 주면 다른 사람에게는 줄 수 없지만, 복음은 주고 또 줘도 계속 솟아나는 샘과 같습니다. 얼마든지 많은 사람에게 줄 수 있습니다. 허 준은 임시로 살리지만, 복음은 영원히 살리는 것입니다. 복음으로 남을 살리는 기쁨, 이것이야말로 성도에게 최고의 기쁨이요, 행복인 것입니다. 
            여러분, 본문의 칠십 인 제자들은 남을 살리는 기쁨에 충만하였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보내심을 받아 복음을 주었습니다. 죽어가는 영혼들을 살렸습니다. 칠십 인의 행복은 자신들의 이익 때문에 누리는 행복이 아니라, 남을 살리는 데서 비롯된 행복이었습니다. 이 기쁨이 우리에게도 충만하길 기원합니다. 
            게다가 복음을 주는 현장에는 주의 영이 함께 하십니다. 1절의 <앞서 보내신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주님께서 칠십 인을 보내실 때 장차 주님이 가실 곳으로 미리 보내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 속에는 더 중요한 뜻이 들어 있습니다. 칠 십 인이 가서 복음을 전할 때 귀신이 쫓겨 나가고 복음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주님은 칠 십 인을 보내시고, 영으로 그들과 함께 가신 것입니다. 그들의 뒤를 따라 주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함께 가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로 승리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어서 가라! 복음을 들고 가라! 내가 영으로 너희 뒤를 따른다. 너희와 함께 간다!> 그래서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사도들이 복음을 증거하는 그 현장에 성령 역사가 있었습니다. 여러분, 복음을 증거하십시오. 여러분이 복음을 증거하는 그 자리에 사람이 변하고, 죽은 자가 살아나는 역사가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성령이 함께 하시는 놀라운 체험을 하는 사람의 행복이 얼마나 큽니까?

            어느 회사 사보에 60년을 살다가 간 사람의 활동을 분석한 자료가 실렸습니다. 하루에 8시간씩 잤다면 20년은 잠을 잔 시간입니다. 하루에 8시간을 일했다면 20년은 일한 시간입니다. 그 외의 20년은 다양한 일에 사용한 시간입니다. 그런데 20년의 노동 중에서도 1년에 52번의 주일, 52번의 토요일, 공휴일 15일, 연차 휴가 20일을 빼면 1년 중 113일을 쉬고 일년에 252일만 일한 것이 됩니다. 이것에 20년을 곱하면 13.8년을 일한 게 됩니다. 그런데 13.8년 중에서도 어린 시절 7년과 대학원까지 공부한 18년, 도합 25년만큼의 비율을 제하면 겨우 8년만이 세상을 위하여 일한 시간입니다. 60년의 8년, 겨우 13퍼센트만을 일하고 떠나는 게 우리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이 얼마나 어처구니없습니까?  게다가 그 8년 동안만이라도 남을 돕고 살리는 일을 했다면 모르지만, 남을 깔아 내리고, 죽이는 일을 했다면 그 인생은 얼마나 초라합니까?
            지난 주일 오후예배 시간에 부활절 찬양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날 저는 맨 뒷자리에 앉아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맨 뒷자리에 앉아 보니 앞에서 볼 때보다 우리 예배당이 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앞에서 볼 때 보다 빈자리가 더 많이 보였습니다. 우리 모두 열심히 복음을 전해서 빈자리를 채우게 되길 원합니다. 
            그리고 뒷 자리에 앉아서 교우님들의 뒷모습을 보았습니다. 뒷 머리가 허옇게 희어지신 연세드신 어른들도 계셨습니다. 젊은 분들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수십 년을 영도중앙교회와 함께 늙어오신 분들도 보였고, 근래에 새 가족이 되신 분도 계셨습니다. 저는 맨 뒷 자리에 앉아있으면서 한 가지 충동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여기 앉은 이 분들의 등을 떠밀어 드리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 천국을 향해서 가다가 힘들 때 떠밀어서 천국으로 계속 발걸음을 옮기도록 하는 일이다. 뒤로 넘어지지 않도록 등을 떠미는 것이다>라는 생각이었습니다. 여러분, 목사가 무엇으로 여러분의 뒤를 밀어 드리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드리는 것 뿐입니다. 그것 뿐입니다. 
    목사도 평범한 사람에 불과합니다. 먹고 마시고 사는 모습이 다 같습니다. 그래서 보통 때의 모습을 보면 저 자신이 목사라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가 목사라는 자의식을 가장 강하게 가지는 순간은 바로 이 자리에 서 있을 때입니다. 이 자리, 말씀의 자리에서 설교할 때입니다. 말씀을 전하는 이 일을 빼면 저는 저 자신을 목사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전하는 이 자리는 목사에게 가장 행복한 자리입니다. 설교할 강단이 없는 목회자처럼 슬픈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설교가 쉽습니까?  그런 것은 아닙니다. 많은 영적 부담이 있습니다. 설교하지 않고 늘 앉아서 듣는 분들은 참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할 때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만약 힘들다고 설교하지 않으면 저는 목사가 아닐 것입니다. 부족하지만, 설교할 때 제가 행복하고, 또 한 분이라도 은혜를 받으면 그것이 목사의 가장 큰 행복이 됩니다. 
            여러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의 행복이 무엇입니까?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은 주님과 그 주님의 말씀에 대하여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행복입니다. 평소에 직장에 가고, 살림할 때에야 불신자들과 다른 점이 어디 있습니까?  내가 성도인가, 잘 모를 정도로 같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전할 때는 다릅니다. 그 순간은 우리 자신이 분명한 성도의 자의식을 가지게 됩니다. 날마다 복음을 전하면 날마다 성도로 살게 됩니다. 어디서나 복음 전하면 어디서나 성도가 됩니다. 그러나 전도하지 않으면 성도의식이 약해집니다. 우리 자신이 예수를 믿는 사람같이 보이기도 하고, 안믿는 사람처럼 힘이 빠지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잘 믿고 싶은 사람, 언제나 성도답게 살기를 원하는 이들은 전도해야 합니다.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인생의 수지계산은 그가 죽을 때 얼마나 재산을 남겨 놓았는가, 혹은 그가 몇 개의 학위를 남겨 놓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정말 가치 있는 것은 그의 일생을 통하여 그 사람 때문에 살게 된 영혼이 과연 얼마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을 살리고 떠나면 그가 죽어도 그 덕에 살아난 사람들의 가슴속에 영원히 살게 됩니다. 지금까지 여러분의 생애 전체를 통해서 여러분 때문에 살게 되었다고 말하게 될 사람이 몇 명쯤 되십니까?  장차 천국에서 저 집사님 덕분에, 저 권사님, 장로님 덕분에 내가 복음을 듣고 살게 되었노라고 말할 사람이 몇 명쯤 되십니까?
            복음으로 사람을 살리는 행복은 이 세상에서만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장차 천국에서 그 일로 놀라운 상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 진정한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행복하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합니다. 행복을 위해서 얼마나 최선을 다합니까? 애써서 돈을 벌고, 아이를 낳아 키우고, 집을 아름답게 꾸미고, 꽃을 심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아름다운 옷을 입으려고 애쓰지 않습니까?  그리고 품위 있는 사람들과 교제하고 자기 삶을 끌어올리려고 노력하지 않습니까?  다 행복하기 위한 노력입니다. 
            일찍이 로마의 세네카는 <행복 이야기>에서 말하기를 <우리 인간들은 돈벌이를 위해서는 상당히 위험한 곳에도 뛰어들고, 또 명예를 위해서는 분골쇄신한다. 그런데 자유를 누리거나 유유자적한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 것은 어찌된 영문인가? 진정한 행복을 위해서는 왜 꼭 할 일을 하지 않는가?  이것이야말로 철학자의 연구 대상이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사람을 살리십시오. 물질을 나눔으로 살리십시오. 나중에 장기 기증이라도 할 수 있다면 하십시오. 부드럽고 좋은 말로 살리십시오. 좋은 말 중 가장 좋은 말은 복음 전도입니다. 복음을 전해 사람을 살리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주님과 같은 일을 하게 됩니다. 살리기 위해 오신 주님, 살리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주님 곁에 여러분도 앉아 남을 살리는 사람만이 누리는 행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사랑의 복음 잔치를 비롯한 모든 기회를 통하여 열심히 사람 살리는 일을 힘쓰시기 바랍니다. 5월 17일에는 이 일을 위해 자신의 삶을 바쳐 헌신하는 한 권사님을 초대하여 간증을 듣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 남녀선교회와 교회학교, 온 교회 기관과 성도들이 사람을 살리는 일을 위해 매진하시고, 기도하시고, 최선을 다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우리 교회가 사람 살리는 일을 통해 가장 행복하게 하고, 행복을 누리는 교회가 되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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