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희와 우리사이에(눅16:19-31)
  • 조회 수: 50, 2013.08.28 21:52:24
  • 앞으로 약 한달만 지나면 우리 민족의 명절인 추석을 맞이하게 됩니다.
    추석이 되면 성도들 가정들 중에 제사문제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는 모습들을 보면서
    저는 오늘 교회를 영적으로 이끌어가는 목회자로서
    교우 여러분들에게 신앙적 도움을 주기 위해 설교를 준비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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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한국의 재래사상이라고 하면 무교(巫敎) 
    즉 샤마니즘(Shamanism)이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 샤마니즘은 자연숭배 사상에 그 근원을 두고 있습니다.

    자연숭배 사상이라는 말은 자연을 숭배하는 사상을 말하는 것으로서
    곧 모든 자연의 물체 속에는 정령이 있다고 믿고 있는 사상입니다.

    이렇게 자연의 모든 물체 속에 정령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큰 산이나 큰 강, 큰 나무나 큰 짐승, 혹은 오래된 물체 등에는 
    반드시 영이 붙어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또 이렇게 자연숭배사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이 우주는 신령과 악귀로 가득차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들이 믿고 있는 우주 안에 가득찬 신령과 악귀들은 크게 4가지로 나누는데
    천신(天神), 지신(地神), 인신(人神), 잡귀(雜鬼)로 나누고 있습니다.

    어디가나 신이 없는 곳이 없고
    신이 붙어있지 않는 곳이 없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길을 갈 때에는 길신에게
    산에 갈 때에는 산신에게
    부엌에서는 부엌신에게, 
    배를 탈 때에는 바다신에게 제사를 올려야만 모든 일이 순조롭게 된다고 믿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모든 것을 다 귀신과 연결지어 생각을 하고 살아가고 있다 보니까
    무슨 일을 시행했을 때 잘되어도 귀신탓이요 못되어도 귀신탓이라 생각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한국 무속신앙, 샤마니즘의 현주소입니다.

    이런 민간신앙이 있는 곳에
    기독교 복음이 들어와서 뿌리를 내린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선교학에서는 기독교 복음이 들어가 있지 않는 어느 민족을 선교하는데 있어서 
    복음을 가로막는 장벽 2가지를 꼽는다면 
    첫째는 그 민족 특유의 민족주의이고
    둘째는 민족 특유의 민속신앙 혹은 민간신앙이라고 지적하고 있는데

    이러한 민간신앙 가운데 가장 기독교 복음 전파에 어려움을 끼쳤던 것은
    조상제사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초기 선교사들은 이 조상제사에 대한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이냐
    기독교 신앙으로 굳세게 밀고 나갈 것이냐
    아니면 적당히 타협하며 선교할 것이냐 하는 것이 큰 어려움이었습니다.

    지금부터 300년전인 1700년대의 일입니다.

    때는 조선시대였는데 
    당시 서학을 연구하는 실학자 중에 이승훈이란 분이 있었습니다.

    이 이승훈 선생이 서학을 연구하다가 어느날 제사문제에 봉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제사문제에 봉착하자마자 바로 알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순례의 길을 떠나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는 당시 기독교를 한국에 먼저 전해 준 중국, 북경에 도착하였습니다.
    그리고는 거기서 기독교가 무엇인가를 깊이 연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결국 거기서 세례를 받게 되었고
    1784년 우리나라 최초의 천주교 신자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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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후 약 7년이 지난 뒤인 1791년 어느 여름날이었습니다.

    전라도 해남에 양반출신의 윤지충이란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24세에 진사 시험에 합격한 영재였으며
    유명한 실학자 정약용의 외삼촌이었습니다.

    그는 그당시 약 4년 전에 세례를 받은 신앙인으로서
    북경을 왕래하며 선교사들과 말씀을 나누며 교제하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의 어머니 권씨가 돌아가시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슬픔을 억누르며 상주로서의 예의범절을 다 갖추고 장례를 치렀으나
    오직 어머니의 위패만은 만들지 않았고 제사도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랬더니 장례에 참석하였던 많은 사람들은 말하기를
    이는 불효자식이요
    나라의 미풍양속을 해치고 국가의 법도를 반역하는 사람이라도 매도하고
    이를 고발함으로 말미암아 
    당국에 잡혀서 고문을 받다가 
    1791년 정조 15년 11월 8일 극형에 처해지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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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그후 약 100년후인 1880년 경의 일입니다.

    당시 노춘경이란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어느날 한문서적을 읽다가
    기독교가 조상도 모르고 임금도 섬기지 않는 불효의 종교라는 느낌이 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종교가 서양에서 건너온 종교란 사실을 알고는 
    이것을 따지기 위해
    당시 서양인 선교사인 죤 해론(John W. Heron) 의사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는 가서 따졌습니다.
    그랬더니 죤 해론 의사는 말하기를

    '나는 잘 모른다' 하면서 신중히 대답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또 당시 선교사로 입국해 있던 알렌(H.N. Allen) 의사를 찾아갔습니다.

    그때 이 알렌 의사는 죤 해론과는 달리 모른다고 하지 않고 
    자신의 책상 위에 있는 마가복음과 누가복음 쪽복음 성경을 눈으로 가리켰습니다.

    이에 노춘경은 그 쪽복음 2권을 가지고 집에 가서 
    열심히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그렇게 열심히 읽은 이유는 기독교를 따지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 말씀 앞에 무릎을 꿇게 되었습니다.

    겁아, 정말 아니로구나
     기독교가 잡풍을 유발하는 나쁜 종교가 아니로구나
     오히려 유교보다 낫구나
    하고 감탄하였습니다.

    깊이 깨달은 그는 곧장 언더우드(H.G. Underwood) 선교사 집으로 찾아갔습니다.

    이때 언더우드 목사님은 심히 놀라면서 
    이 나라의 국법이 기독교 신앙을 금하고 있는 것을 당신은 아느냐고 
    오히려 되물었습니다.

    그러나 노춘경은 결연한 표정으로

    '목사님, 이제 저는 예수님을 믿되 목숨을 걸고 예수님을 믿겠습니다.
     그러니 나에게도 세례를 주십시오'
    하고 간청하였습니다.

    언더우드 목사는 심히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하였습니다.

    '오, 하나님, 참으로 감사합니다'

    언더우드 목사님은 누가 볼까봐 
    또 누가 와서 듣거나 엿볼까봐
    세례를 베풀기 전에 문 밖에다 보초를 세웠습니다.

    그리고는 방 안으로 들어가 방문을 안쪽으로도 잠궜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감격적인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이날은 1886년 7월 11일이었는데
    바로 이것이 국내에서 베풀어진 최초의 세례식이었습니다.

    이처럼 불교와 유교로 다져진 이 나라에서 기독교 진리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대단한 결단이었으며 
    때로는 죽음도 각오하고서야 예수를 믿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문제가 비단 그때 만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날에도 문제가 여전히 남아있다는데 그 심각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본래 공자는 영혼 불멸이나 사후 세계에 대하여는 
    가르친 일이 없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어느 날 공자에게 그의 제자 3천명 중 수제자로 인정받던 계로(季路)가 물었습니다.
    '선생님, 사람이 죽으면 죽은 후에는 어떻게 됩니까?'

    그때 공자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겁나는 모른다. 산 일도 다 모르는데, 죽은 사후(死後) 일을 내가 어찌 알겠느냐?겂

    그러나 유교는 전통을 이어가면서 
    무속적 민간신앙의 영향을 받으면서 점점 종교적 성격을 띠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가 유교는 사후(死後)세계에 대하여 이렇게 가르치기 시작하였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혼(魂)과 백(魄)으로 나누어지는 법이다.
     죽은 혼은 하늘로 올라가고 백은 땅으로 내려간다.
     그후 혼은 거처할 곳이 없이 떠돌아 다닌다.
     그러나 후손들이 잘 모시면 죽은 조상의 나뉘었던 혼(魂)과 백(魄)이 합하고
     사후(死後)라고 할찌라도 안정된 삶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후손에게도 복이 임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아주 중요한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질문은 '복은 과연 누구가 주느냐'하는 
    복의 시행 주체에 대한 질문입니다.

    여러분, 복은 누가 주는 것입니까?...........

    사람이 사람에게 복을 줄 수 있습니까?

    물론 사람은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지만
    복을 줄 수는 없는 존재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누구에게 복을 비는 존재일 뿐입니다.

    그렇다면 혼백(魂魄)이 사람에게 복을 줄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절대로 없습니다!!

    복은 하나님 만이 줄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이 점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너희와 우리 사이에 도저히 건널 수 없는 강!!
    바로 이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너희와 우리 사이에 도저히 서로 건널 수 없는 강이라는 것은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도저히 서로 건널 수 없는 강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죽은 자는 산자를 위하여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며
    또 산 자도 죽은 자를 위하여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한마디로 
    조상제사를 통한 조상의 복이라는 개념은
    아주 잘못된 개념이라는 것이 분명해 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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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면 우리는 조상제사에 대하여 어떠한 태도를 가지고 살아야 옳은 것입니까?

    올바른 기독교 신앙에 따라 살려고 한다면 
    누구든지 죽은 시체를 향하여 절하면 안될 것입니다.
    또 위패를 걸어 놓지 않아야 하고, 위패에 절하지도 않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절이라고 하는 것은
    살아있는 인격체에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이교적 바탕에서 나온 3우제(三虞祭), 49제, 77제도 하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이 말씀은 그때에 제사를 지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대신
    그날에 모여 가족끼리 추모예배를 드리면 좋을 것입니다.
    (기독공보 1989년 5월 27일, 손영호 목사의 글에서 인용)

    또 올바른 기독교 신앙에 따라 살려면, 향도 피우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왜 기독교인이 향을 피워서는 안되는가 하는 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불교에서의 분향은 부처의 사자(使者)라고 합니다.
    이 말의 의미는 향기가 올라가면 그 향기를 타고 부처가 강림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절에서 분향을 하는 이유는
    그 향 연기를 따라 부처가 강림한다고 그들이 믿고있기 때문입니다.

    또 전통제례에 있어서 분향의 의미는 
    향 냄새를 따라 죽은 귀신을 불러들인다는 신내림 즉 강신(降神)의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설령 그런 의미가 아니고 악취를 제거하기 위하여 향을 피웠다고 할찌라도
    불신자 조문객 중에서 혹 그 의미를 잘못 오해할 소지가 많기 때문에
    기독교에서는 향 피우는 것을 금하고
    향기있는 꽃이나 향수를 뿌리도록 권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기독교가 효사상을 마다하고 
    일단 돌아가시고 나면 돌아가신 조상에 대한 생각을 완전히 지워버리라고 주장하는 
    그러한 불효의 종교는 결코 아닙니다.

    기독교에서도 어느 종교 못지않게 효를 강조하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기독교에서 말하는 효란 
    '살아계실 때 효를 다하여야만 한다고' 강조하고 있으며

    그러나 만일 돌아가시게 되면 
    장례가 있은 후 해마다 돌아가신 그날이 돌아오게되면 제사를 드릴 것이 아니라 
    추도예배를 드리라고 권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족과 돌아가신 고인을 잘 아는 분들이 함께 
    먼저 하나님 아버지 앞에 예배를 드리고 나서 
    그분을 생각하며, 그분의 좋은 점들을 기억하며, 
    그분의 아름다운 신앙과 삶 그 정신을 이어 받아 살려고 다짐하면서 
    가족과 친지간의 유대를 더욱 돈독히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생각하면서
    이제부터는 바르게 신앙생활 하며
    샤마니즘에 빠지 않고
    적당히 혼합주의로도 살지않고 살기로 다짐하는 성도 여러분 위에
    주님의 은총과 축복이 함께 하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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