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근이 올 때(창세기 12장 10-13장 4절)
  • 조회 수: 167, 2013.01.08 07:21:52
  • 1.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12:10-13)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도착한 후 세겜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그 땅을 그의 자손에게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그곳에 제단을 쌓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살던 당시에는 땅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섬기는 신이 소유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그곳에 제단을 쌓은 것은 '하나님, 지금은 바알신이 소유하고 있는 땅이라고 하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언젠가는 이곳이 하나님 백성들의 땅, 하나님의 땅이 될 줄로 믿습니다'하는 믿음의 고백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지난 주일에 말씀 드렸던 것처럼 세겜에 단을 쌓은 후 그곳에 머물러 살지 않았습니다. 특별한 일이 없었는데도 벧엘 동편으로 옮겨 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도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도 살지 않았습니다. 가나안 땅의 남쪽으로 계속 내려 갔습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그렇게 계속 옮겨가 약속의 땅 남쪽 끝까지 내려갔던 것은 그냥 막연하게 내려 간 것이 아니라 그 땅을 믿음으로 계속 정복해갔던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이 열열한 믿음을 가지고 남쪽 끝까지 다 내려갔을 때 아브라함에게 시련이 닥쳤습니다. 그 땅에 심한 기근이 닥쳤습니다. 영적으로 오늘날도 똑같습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이 그렇게 간단하고 단순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란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후에는 계속 믿음의 행진을 잘 해왔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100m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평생을 달려야 하는 마라톤과 같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땅까지 왔고, 그 땅을 두루거쳐 오면서 곳곳마다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남쪽 끝까지 열심히 달려오는 믿음의 경주를 마쳤다고 생각했을 때 오히려 시험이 닥쳤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할 때도 그랬습니다. 홍해도 갈라 주셨습니다. 그러나 홍해를 건넜다고 해서 다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광야를 지나야 했습니다. 우리 생각에는 홍해까지 건너게 해 주셨으니까 바로 약속의 땅까지 데려다 주셨으면 좋을 것 같은데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광야를 지나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훈련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세례를 받으신 다음 광야로 끌려가셔서 시험을 받으셨습니다(마4:1).


    그러니까 약속의 땅에 기근이 닥친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벧전4:12). 하나님께서는 늘 그렇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에 기근을 주신 것은 아브라함에게 '네가 처음 단을 쌓을 때처럼 계속해서 나를 전적으로 의지하겠느냐?'하는 시험을 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뜻을 물어 보지도 않고 물이 풍부하다고 하는 애굽으로 내려 갔습니다. 성경에서 애굽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떠난 세속 세상을 의미합니다. 10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애굽으로 내려갔다고 했는데 이 '내렸갔다'는 말은 아주 적절한 표현입니다.


    지도를 놓고 봐도 애굽은 내려가는 곳입니다. 그리고 지형적으로 봐도 애굽은 가나안 땅보다 낮은 지대였으므로 내려간다는 표현이 맞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이 내려갔다는 말이 영적으로는 아주 더 적당한 표현입니다. 아브라함의 애굽행은 무엇보다도 영적으로 내려가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께서 도와주셨습니다(12:14-20)


    아마 아브라함은 약속의 땅에 도착하면 굉장한 은혜와 축복이 기다릴 것이라고 생각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전혀 예상 밖으로 어려움이 닥쳤습니다. 아브라함은 커다란 충격을 받았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이 환각(幻覺)이 아니었는가? 내가 뭘 오해했던 것은 아니었던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어쨌든 눈 앞에 닥친 위기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적어도 수십명 이상의 권속을 거느린 사람으로서 마땅히 취해야 할 일이라고도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물론 아브라함은 아주 살려고 내려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10절 말씀을 보면 '아브람이 애굽에 우거하려 하여 그리고 내려갔다'고 했는데 여기 우거라는 말 구르(???)는 잠시 머물러 사는 것은 말하는 것입니다(히11:9 참고: 창11:31 야사브, ???). 그러니까 아브라함이 애굽에 내려간 것은 하나님을 아주 떠나겠다고 간 것이 아니고 잠시 기근을 피하기 위해서 간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싫어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는 것이 어렵고 힘들다고 당분간 하나님을 떠나 세상을 의지하며 살려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사람이 바로 애굽으로 내려간 아브라함과 같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막상 애굽에 내려가 보니까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더 큰 문제가 또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애굽 사람들은 예쁜 여자가 있으면 남편이 있어도 남편을 죽이고 그 아내를 빼앗아 가는 일을 다반사(茶飯事)로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다급해진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속였습니다.


    이때 사라의 나이가 적어도 65-6세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라가 어떻게 그렇게 예뻣을까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 당시의 사람들은 오늘날의 사람들 보다도 거의 배 이상을 살았습니다. 물론 사라는 127세까지 밖에 못 살았습니다만 아브라함은 175세까지 살았고 그 아들 이삭은 180세까지 살았습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여자가 남자보다 더 오래 삽니다. 그러니까 요즈음으로 말하면 중년부인 정도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애굽 사람들은 함 족속이기 때문에 피부가 까무잡잡했습니다. 그런데 사라는 셈 족속이라 피부가 하듖습니다. 우리도 서양 사람들을 보면 나이를 종잡기가 어렵습니다. 어린애 같은 나이인데도 들어보이기도 하고, 나이가 들었는데도 젊게 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사라가 대단한 미녀였었던 것 같습니다. 거기다가 아직 아이도 하나 안 낳았으니 더 젊어보였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소문을 들은 바로가 사라를 자기 아내로 삼겠다고 했습니다. 물론 우리 성경에는 아내라고 되어 있습니다만 정확히 말하자면 아내가 아니라 여러명의 후궁 중 한명 즉 빈(嬪)으로 삼겠다고 한 것입니다(4000년 사건, 한글 1446년, 명태, 생태, 동태, 황태, 코다리-15일말린 것, 북어-60일 말린 것). 아브라함은 혹시나 하긴 했지만 일이 이렇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큰 낭패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기근이 닥쳤을 때 아브라함은 그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만 했었습니다. 창세기 46에 보면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 때에도 가나안 땅에 아주 큰 기근이 닥쳤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야곱은 하나님께 단을 쌓으며 하나님께 하나님의 뜻을 물었습니다. 그랬을 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두려워하지 말고 애굽으로 내려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의논하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만 결정했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이 제일 큰 잘못이었습니다.


    또 그냥 가나안에 머물면서 사람을 시켜 양식을 사오게 하는 등 다른 방법으로, 믿음으로 흉년에 대처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시련이 닥칠 때 그것을 믿음으로 정면으로 돌파하려고 하지 않고 적당히 타협하려고 하면 인생은 계속 내리막길을 내닫게 된다는 것을 꼭 명심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애굽은 하나님을 바로 섬길 수 없는 직업이라고 할 수도 있고, 죄를 짓게 하는 직업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을 선택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 혹시 그런 직업을 갖고 있다면 떠나야 합니다. 아무리 손해가 된다고 하더라도, 먹고 살 수 없다고 하더라도 떠나야 합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데도 안 떠나면 아브라함과 아브라함의 가정에 큰 위기가 왔던 것처럼 위기를 당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이제 자기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떻게 해 볼 수가 없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아브라함을 그냥 버려두지 않으시고 간섭해 주셨습니다.


    바로가 사라를 궁으로 취해 들였다고 해서 동침을 했다고는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당시 왕궁에는 어느나라나 여러명의 후궁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후궁이 되더라도 왕에게 나가기 위해서는 오랫동안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였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에스더서를 보면 에스더가 아하수에로왕의 왕비가 되기 위해 준비한 기간은 무려 일년이나 되었습니다(에2:12). 사라도 이렇게 기다리고 있을 때였을 것입니다.


    바로와 그 궁에 자꾸 재앙이 닥쳤습니다. 아마도 하루 이틀이나 또 한두번이 아니라 그런 일이 얼마동안 계속되었던 것 같습니다. 마침내 사람들은 그것이 신의 분노이며 그 분노는 왕궁에 새로 들어온 여인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불러서 꾸짖은 다음 사라를 돌려 보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만 이런 은혜를 베풀어 주어 주셨습니까? 아닙니다. 우리에게도 똑같이 이런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불러주셨듯이 우리를 택하시고 불러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기근을 피해 애굽에 내려 갔습니다. 그러나 저는 수도 없이 애굽으로 내려 갔었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지금 이렇게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만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 모두에게 이렇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3. 가나안으로 올라갔습니다(13:1-4)


    아브라함은 바로의 손에서 벗어나자 바로 약속의 땅으로 올라갔습니다. 아까 '내려갔다'는 말씀처럼 여기 '올라갔다'는 말도 그렇습니다. 지도를 놓고 봐도 올라갔고, 지형적으로 봐도 낮은 애굽에서 산악지대인 가나안으로 올라간 것이지만 무엇보다도 영적으로 올라갔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아무리 힘이 들어도 가나안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여기 가나안은 영적으로 교회라고도 할 수 있고, 믿음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성도는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이 쌓이고 쌓여도 교회로 돌아와야하고, 믿음의 자리로 돌아와야 합니다.


    돌아오는 것이 중요합니다. 돌아오기만 하면 지금의 상태가 어떠하든지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시련을 주는 것은 하나님을 떠나라고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훈련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처럼 잘 감당하지 못해도 반드시 다시 기회를 주십니다. 그러니까 성도는 실패를 했다고 하더라도 기회를 주실 때 하나님께 돌아오면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시는데도 애굽은 떠나지 않고 애굽에 그냥 있으면서 '문제를 해결해 주세요. 축복해 주세요' 해서는 안됩니다. 혹시 여러분들 중에 아브라함이 바로에게 많은 재산을 얻지 않았으냐, 그러니 덕을 본 것이 아니냐 하는 사람은 없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브라함은 재산은 조금 더 늘었을지 모르지만 아내에게 너무나도 못나고 부끄러운 짓을 했고 하나님의 이름에 먹칠을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교훈을 발견합니다. 아브라함이 애굽으로 내려갔던 것처럼 누구든지 믿음의 경주에서 내려갈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애굽으로 내려간 것이 분명히 잘못한 것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은 그 잘못까지도 선으로 바꾸어 성도를 훈련시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는 무사했지만 아내를 혼자 바로의 궁으로 들여보냈던 아브라함의 마음이 어땠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이런 과정을 통해 다짐을 하고 다짐을 했을 것입니다. '이제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떠나는 일은 하지 않겠다' 아브라함에게는 아주 귀중한 훈련의 기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애굽을 떠날 때만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만에 하나 아브라함이 재산 모은 재미 때문에 애굽을 떠나지 않았다면 그는 하나님께 큰 징계를 받았을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13:3,4말씀을 조금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애굽에서 올라온 아브라함은 벧엘에 이르러 그곳에 단을 쌓았습니다


    그런데 4절 말씀을 보면 그곳은 '그가 처음으로 단을 쌓은 곳이라'고 했습니다.


    창세기 12:7 말씀을 보면 아브라함이 처음으로 단을 쌓았던 곳은 벧엘이 아니라 세겜이었습니다. 그런데 벧엘을 가리켜서 처음으로 단을 쌓은 곳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처음으로'하는 말 리손(?????)은 처음(first)이란 말이지만 이 말은 '이전' 혹은 '옛날'이라는 말로도 쓰이는 말입니다(왕하17:34 전1:11, 7:12).


    그런데 아브라함이 '처음으로' 단을 쌓았던 세겜으로 가지 않고 벧엘로 간 것에는 귀한 교훈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세겜에 단을 쌓았던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벧엘에서는 하나님께서 나타나신 일이 없었는데도 단을 쌓았습니다. 그러니까 벧엘의 단은 특별한 일이 없는데도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쌓았던 '첫번째' 단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애굽에서 올라온 아브라함이 세겜으로 가지 않고 벧엘에 가서 단을 쌓은 것은, 전에 벧엘에서 그랬던 것처럼 특별한 일이 없다고 하더라도 늘 하나님을 섬기며 살겠다는 자신의 결단을 하나님께 드린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앞으로 또 기근이 닥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감사하며 하나님을 섬기겠습니다 하는 결단을 하나님께 드린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1999년 추수감사주일을 지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일년 농사를 다 끝내면 일년 동안 지켜 주신 것을 감사하면서 다 예루살렘에 모여 수장절을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처럼 오늘 우리도 지난 일년 동안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감사하며 추수감사주일을 지킵니다.


    오늘 무엇을 감사하시겠습니까? 건강하셨다면 건강하게 하신 것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사업이 잘 되셨다면 사업이 잘 되게 해 주신 것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시험을 잘 보셨다면 그것도 감사하시고,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되셨다면 그것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아브라함이 그랬던 것처럼 또 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그랬던 것처럼 '범사에 감사' '하나님으로 인하여 감사'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늘 특별한 일이 나에게 없다고 하더라도 평생 아브라함처럼 하나님께 단을 쌓으며 살겠노라고 다짐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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