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만남(눅 19:1-10)
  • 조회 수: 129, 2013.09.01 21:09:36
  • 오늘 이웃 초청예배에 참석하신 우리의 소중한 이웃 여러분께 특별히 감사 
    를 드립니다. 우리가 만난 좋으신 하나님을 우리의 소중한 이웃 여러분과 
    함께 예배하는 특별한 자리입니다. 처음 오시면 여러 가지 예배 순서가 익 
    숙하지 않습니다. 어떤 때는 일어서기도 하고 앉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이 
    제는 여러 가지 신경을 쓰실 일이 없습니다. 마음 편하게 방금 읽은 하나님 
    의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성경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우리 사람들에게 나타내신 책입니다. 크게 두 부 
    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먼저 씌어진 책을 구약, 뒤에 쓴 책을 신약이라 
    고 부릅니다. 먼저 쓴 책의 핵심은 하나님께서 한 날 인간을 위한 구원자를 
    보내 주실것이라는 약속을 담고 있습니다. 뒤에 쓴 책 신약은 약속대로 하 
    나님의 구원자라는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신약의 첫 부분에는 복음서라 
    고 불리는 책들이 네 권 있습니다. 이 책들은 모두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에 관한 기록입니다. 그가 세상에 오셔서 무엇을 하셨고 어떤 
    분이신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 가운데 하나인 누가복음서 
    한 부분을 읽었습니다. 

    복음서에 따르면 예수님은 세상에서 33년간 사셨습니다. 처음 30년간은 평 
    범한 목수의 삶을 사셨고 마지막 3년간 하나님께서 맡기신 공적 임무를 수 
    행하셨습니다. 그 3년의 마지막 즈음에 있었던 일이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부분의 기록입니다. 여기 주님께서는 여리고라는 지역을 지나가시다가 삭개 
    오를 만납니다. 직책은 세무서장이요. 돈이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었으나 그 
    는 행복하지 못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좋은 이름이나 높은 지위와 많은 물질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아--------------------------------------------------------- 

    니기 때문입니다. 없으면 좀 불편하기는 하지만 많이 가졌다고 해서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지는 못합니다. 그러기에 삭개오는 주님을 만남으로 비로소 
    기쁨이 넘치는 새 삶을 살게된 이야기가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성경의 내 
    용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어떤 처지에 있는지 잘 알지 못합니다. 특별히 오 
    늘 환영 스티커를 가슴에 붙이고 계신 여러분들에 대해서는 가문과 지위와 
    재산의 여부를 제가 모릅니다. 다만 제가 아는 것은 여러분도 하나님의 형 
    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세상것만 가지고는 행복할 수 없는 사람이라 
    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역시 우리의 창조주 하나님 없이는 행복할 수 없다 
    는 사실에 대해서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 
    을 통해서 우리의 삶을 바꾸어 놓을 수 있는 한 만남 을 소개하고자 합니 
    다. 

    지금껏 교회를 다니면서 신앙생활하신 성도 여러분! 그 날 여리고에서 있었 
    던 일은 성도들에게 있어서는 잊을 수 없는 사건입니다. 삭개오와 함께 동 
    일한 구원을 받은 성도들에게 있어서는 항상 새로운 의미가 담겨져 있는 
    일이 그날 일어났습니다. 

    여러분은 이 이야기에 감동하고 있습니까? 이 이야기에 감동하는지 않는지 
    는 여러분이 어떤 처지에 있는지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신앙생활 
    하는 사람은 한 사람이 예수님을 만났다는 이야기만큼 더 감동적인 이야기 
    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삭개오가 주님을 만났다는 것은 남의 이야기 
    일 수 없습니다. 바로 내 형제가 나와 같이 영광의 주님을 만난 이야기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이야기를 흘려 들을 수 없습니다. 

    지난 주일 한 사람 삭개오를 통해서 어떤 것이 하나님이 주실 수 있는 
    새 삶인지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그럴듯한 이름 그것은 예수님을 만나 
    기 전에도 가질 수 있습니다. 엄청나게 많은 재산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 
    람도 얼마든지 소유할 수 있습니다. 그런것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 
    려고 하는 새로운 삶의 한 부분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이 구원을 
    입증하지 않습니다. 집사, 장로, 목사란 신분도 구원을 보증하지는 않습니 
    다. 축복이란 이름으로 늘어난 재산도 구원을 보증하지는 않습니다. 종교적 
    열성 그 자체가 구원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구원은 이런 외형적인데 있지 않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구원 
    은 내면적인데서 시작합니다. 이 구원은 예수께서 누구신가 하여 보고자 
    하는 그 내면의 욕구로부터 배태됩니다. 3절을 보십시오. 이 구원은 보기 
    위하여 앞으로 달려가는 자에게 실현됩니다. 이 구원은 보기 위해서라면 
    뽕나무 위에라도 올라가는 자에게 성취됩니다. 

    여러분은 예수께서 누구신가 하여 보고자 하는 소원이 있습니까? 여러분은 
    이 시간 나오셨을때 주님을 알고 싶어하는 그 마음이 있었습니까? 한 번 
    그 마음을 가졌던 분들은 그 생애의 나날이 이 하나의 소원으로 가득해 있 
    어야만 합니다. 그것이 구원받은 신자의 입장입니다. 

    본문 5절, 6절을 다시 한번 읽어 봅시다: 예수께서 그곳에 이르사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 
    겠다 고 하시니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오늘 우리 울산교회 예배당에 처음 나오신 이웃 여러분, 이 읽은 말씀 속에 
    구원의 핵심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 구원의 핵심은 바로 인격적인 만남입니 
    다. 잃어버린 자와 찾아오신 구주와의 만남이 구원의 핵심입니다. 오늘 아 
    침 여러분은 이 구원사건을 살펴 보면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하실 말씀 
    에 귀 기울여 보십시오. 

    여기 5절은 예수께서 그곳에 이르사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그곳이 어디입니까? 지금 바로 삭개오가 올라가 있는 그 나 
    무 아래에 도착했다는 것입니다. 좋은 이름으로 만족할 수 없는 인생이 있 
    는 자리에 예수께서 오셨습니다. 높은 지위로 행복할 수 없는 인생의 목마 
    름이 있는 곳에 예수께서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는 
    그 놀라운 사실 때문에, 그 놀라운 축복 때문에, 하나님 아닌 어떤 것으로 
    도 만족할 수 없는 인생이 있는 곳에 예수께서 오셨습니다. 

    사랑하는 이웃 여러분, 여러분의 마음 속에 동일한 갈망이 있었습니까? 그 
    영혼의 갈증을 느끼도록 하신 분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에 의해 이끌림을 
    받아 나아온 그 자리에 지금도 주 예수께서는 다가 오십니다. 잃어버린 자 
    를 찾아 세상에 오신 구주께서 여리고에 오셨고 지금 삭개오가 있는 바로 
    그 나무 아래 오셨습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이 어떤 심정으로 이 자리에 나 
    왔는지는 정말 중요합니다. 

    왜 여러분은 여기에 나왔습니까? 한 번만 와 달라고 부탁하는 친구를 위해 
    서 오셨습니까? 친구의 요청이 계기가 될 수 있지만 오셔서 하나님을 만나 
    보십시오. 또 어떤 분은 동네 이웃집에 초대 받아 갔다가 하나님에 관한 진 
    리를 우연찮게 듣고 받아 들여서 이제는 새로운 삶을 살기위해 오신 분도 
    있을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의 마음에 중요한 질문 하나를 가져 보십시오. 예수께서 어떠 
    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했던 삭개오처럼 주님께 나아오십시오. 오늘 예 
    배시간을 통해 그 분을 만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위해서 세 
    상에 오신 그 사랑을 경험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그런 심정을 가진 자가 있는 곳이면 지금도 지나쳐 가지 않습니다. 
    주님은 그런 자들을 만나 주시러 세상에 오신 분입니다. 그렇다면 그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그런 자들이 모인 곳을 지나쳐 가시지 아니 하실 것입 
    니다. 만나고 싶은 마음으로 나와있는 모든 영혼을 만족시켜 주실 것입니 
    다. 

    그러기에 그런 심정으로 나아와 함께 예배하는 곳에는 언제나 놀라운 사건 
    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 사건이 일어나기를 함께 마음 졸여 기다리는 곳 
    이 바로 예배하는 장소입니다. 여기는 결코 따분하거나 지루한 곳이 아닙니 
    다. 여기는 결코 자주 시계를 쳐다보는 곳이 아닙니다. 여기는 우리 가운데 
    서 역사 하실 하나님의 그 놀라운 구원을 체험하기 위해서, 그 하나님의 영 
    광의 옷자락을 보기 위해서 나아온 사람들이 모인 곳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은 기다리는 자를 만나주십니다. 우리 주님은 자기를 바라는 자를 
    결코 실망시키지 않고 만나주십니다. 성경에 거듭 거듭 약속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달리 말해 실망을) 당하지 아니하리 
    라 고 말씀합니다. 

    혹 여러분이 예배를 마치고 돌아갈 때에, 얻은 것이 없이 여러분의 마음이 
    우울해 지면 설교자들만의 탓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때로는 저와 같은 
    설교자를 통해서도 주님은 당신의 백성을 만나 주십니다. 사실 여러분 앞에 
    서는 설교자들은 여러분의 그 소원을 채워주기 부족한 자 입니다. 때로는 
    전혀 합당하지 못한 자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을 만족시켜 주실 수 있는 분이 오늘 이 예배하는 회중 가운 
    데 찾아와 주십니다. 그분을 우리는 예배합니다. 참된 기독교와 가짜 기독 
    교의 차이는 여기에 있습니다. 진정한 기독교는 사람대신 하나님을 예배합 
    니다. 여러분이 바라 보아야 할 분은 오직 예수님 한 분이십니다. 

    주님의 눈은 지금도 전심으로 자기를 향하는 자를 찾고 계십니다. 여호와 
    의 눈은 자기를 향해 전심으로 바라는 자를 아직도 찾고 계십니다. 여러분 
    이 삭개오와 같은 심정을 가지고 있다면, 나무 위든지, 군중 속이든지, 혹은 
    이 예배당 안이든지 어디서든지 여러분을 만나 주시고 싶어하는 분은 바로 
    우리 구주 예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 지금 여러분을 부르고 계십니다. 너희 
    목마른 자들아 다 물로 나아 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 
    을 위하여 은을 달아주며 배부르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 
    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 
    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와 들어라. 그리하면 너 
    희 영혼이 살리라. . .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만 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도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 돌아오라. 그리하 
    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 
    리라 (사55:1- 3, 6-7) 

    하나님은 자기 약속을 지키십니다. 여러분과 저는 불신실하지만 그 분은 신 
    실하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잘못된 생각을 버리고 자신을 신뢰하는 대신 하 
    나님 앞에 나아 올 때에 널리 용서하시리라고 성경에 약속합니다. 

    오늘 이 자리에 나오신 이웃 여러분, 하나님은 여러분을 기다리십니다. 하 
    나님은 여러분을 만나주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인생이 새롭게 살도록 
    도우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 앞으로 나아오십시오. 새로운 삶을 시작해 
    보십시오. 이미 하나님을 만난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얼마나 널리 용서하 
    시는지 여러분은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면 알 것입니다. 바로 저와 여러분 
    같은 자들을 용서하신 그 용서에서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용서의 넓은 
    폭을 헤아려 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곳에 이르사 자기에게 나아온 삭개오를 쳐다보셨다 고 5절은 
    말합니다. 예수님이 그 곳에 오셔서 눈을 들어 삭개오를 쳐다 보셨습니다. 

    구원의 핵심이 되는 인격적인 만남의 첫 요소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눈 
    과 눈이 서로 만나는 것입니다. 다가오는 무리 가운데서 예수님을 찾고있는 
    삭개오의 눈과 잃어버린 자를 찾아나선 구주의 눈이 서로 만나는 순간에 
    생명의 불꽃은 타오르기 시작합니다.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동공 속에 삭개 
    오의 모습이 떠 오를때, 잃어버린 바 된 삭개오의 열망하는 눈망울 속에 주 
    님이 나타날때, 사랑의 강한 전류는 흐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인격적인 만남은 눈과 눈의 만남으로 만족할 수 없습니다. 그래 
    서 주님은 삭개오야 하고 부르십니다. 새 삶은 주님이 먼저 불러주심으로 
    전개됩니다. 동산 나무 사이에 숨어있는 최초의 잃어버린 인생 아담을 향해 
    찾아오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시대마다 자기의 백성들을 찾으십니다. 
    2천년 전에 여리고에서는 뽕나무 아래에서 삭개오를 부르셨습니다. 오늘 5 
    월16일 이웃 초청하는 예배의 자리에서는 예수님은 여러분을 찾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 하나님은 오늘 여기에 나와있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 
    셨고 지금도 부르고 계십니다.『삭개오야』라고 부르십니다.『주님』하고 
    대답하십시다. 이 대답을 하는 사람을 가리켜 성경은 신앙인 이라고 합니 
    다. 교회에 10년을 나왔든지 20년을 나왔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바로 이 순 
    간에라도 내 이름을 부르시는 그 주님을 향해서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 
    다 고 대답하는 그 사람을 보고 성경은 예수 아는 사람 예수 믿는 사람 
    새 삶을 사는 사람 이라고 부릅니다. 

    사도 요한은 증언합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 
    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요일4:10). 우리가 하나님을 먼저 사랑한 것이 아 
    니란 말씀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초대된 이웃 여러분! 그리고 소중한 이웃을 예배의 자리에 
    초대한 성도 여러분, 삭개오의 마음속에 그 좋은 이름으로, 그 높은 지위로 
    그 많은 재물로 만족하지 못하도록 하신 분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우리 주 
    위의 많은 사람들은 지금 만족하고 있습니다. 삭개오란 이름이 아니라도, 
    세리장이란 직책이 아니라도 그만한 부자가 되지 못해도 스스로 만족하는 
    인생들을 우리는 봅니다. 

    그러면 왜 삭개오는 그것들을 다 가지고도 예수께서 누구신고 하여 알아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까? 그것은 그 안에 하나님께서 이미 역사 하셨 
    기 때문입니다. 혹시 여러분의 마음속에 예수를 알고 싶은 마음과 새로운 
    삶을 살고 싶은 욕구가 조금만이라도 생겨났다면 그것은 이미 하나님이 역 
    사하기 시작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하나님의 역사 없이는 아무도 이 자리에 나올 수 없습니다. 인간은 타락 
    한 이후부터 하나님을 등져 가기에 익숙해 있습니다. 선한 것에 대해서 갈 
    구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여러분 안에 예수를 만나고 싶은 소원이 생겨났다 
    면 이는 이미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의 마음에 역사하기 시작한 증표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이미 시작하신 그 하나님 
    의 역사에 대해서 대답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것은 인간이 가진 놀라운 특 
    권입니다. 하나님은 오직 인간을 그와 같이 책임적 존재로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구원의 길을 예비해 두시고 그 길로 우리를 강제로 밀어 
    붙이셔서 손뼉을 치게 하시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속에 믿어질때에 중심에서부터 영접하기를 바라십니다. 지금 주님은 여 
    러분을 응답을 기다리십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역사 하심에 예 라고 
    대답합시다. 

    때로는 여러분의 길에도 이런 저런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삭개오는 예수 
    님을 만나고 싶은 마음에 자기의 사무실을 박차고 나왔는데 길에 나와있는 
    많은 사람들 때문에 예수님을 보기 힘들 것 같아서 달려 나갔습니다. 달려 
    가서 나무위에 올라갔습니다. 많은 종교적인 사람들이 우리를 실망시킬 때 
    가 없지 않습니다. 지난 한 주간동안 이단 집단에 온갖 뉴스에도 불구하고 
    이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은 복 받은 자들입니다. 

    그 때나 오늘이나 참 생명의 구주를 만나 뵙고 싶어 교회당을 찾는 사람들 
    에게 때로는 거짓 종교인의 위선이 실망을 주기도 합니다. 잘못된 종교적 
    열심을 가진 사람들 때문에 실망될 때가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기 오신 
    여러분들은 다른 사람 때문에 실망하고 돌아가서는 안됩니다. 다른 사람이 
    아무리 많은 실망을 안겨 주더라도 여러분은 다른 사람을 인해 만족하려고 
    나오지 아니했습니다. 

    여러분이 여기에 나온 것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나왔습니다. 여러분의 영 
    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왔습니다. 동남풍이 불지라도 서북풍이 불지 
    라도 거기 개의치 마십시오. 다른 사람들이 어떤 실망을 주더라도 거기 마 
    음쓰지 마시고 우리를 만족시켜 줄 수 있는 그 분을 바라 보아야 합니다. 
    오직 앞으로 달려나갑시다. 주님을 만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가리 
    지 않고 우리는 시도해야 합니다. 

    본문에서 주님은 삭개오야 하고 부르고는 또 말씀하십니다. 속히 내려오 
    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왜 속히 내려오라고 하셨을까요? 
    우리가 이 이야기를 읽어보면 주님은 그날 저녁 삭개오의 집에 들어가서 
    유하시게 됩니다. 그런데 왜 속히 내려와야 할 이유가 있었을까요? 하나 주 
    님은 속히 내려오라고 하셨고 삭개오는 급히 내려옴으로써 응답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여러분, 혹시 탕자의 비유를 아십니까? 어떤 아들이 아버지에게 자기의 몫 
    의 재산을 챙겨서 먼 나라에서 허랑방탕하게 생활하면서 다 허비해 버리고 
    너무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지금 집에 돌아가서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요 
    청을 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집에가면 품꾼중에 하나로 아버지가 
    나를 영접하지 않겠는가하는 마음에 고향을 향해서 무거운 발길을 돌렸습 
    니다. 동네 어귀에 들어 설 때에 이 청년의 마음에는 여러 가지 생각이 지 
    나갔을 것입니다. 과연 아버지가 나를 바라보는 순간에 어떻게 나를 대하실 
    까? 내가 요청하면 거절하시지는 않으실까? 그런데 자기 집 쪽에서부터 달 
    려 나오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가까이 오는데 보니 아버지였습니다. 아 
    직도 상거가 먼데 아버지가 저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라고 거기 기록되어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부모가 잃은 아이 
    를 일 주일 만에, 한 달만에 길에서 찾게 되었을 때 자녀의 이름을 부르면 
    서 급히 달려가지 않겠습니까?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잃은 자를 보셨을 때 빨리 만 
    나고 싶어 하셨습니다. 빨리 내려오란 것입니다. 네가 있어야 할 자리가 거 
    기가 아니란 말씀입니다. 외로운 인생 길에, 고달픈 인생 길에 지친 여러분 
    을 보실 때 불붙는 연민의 정으로 가득한 주님의 심정이 속히 내려 오라 
    고 재촉합니다. 

    그러면서 말씀합니다.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 원문의 의미 
    를 살펴서 번역한다면 내가 오늘 네 집에 기필코 유하여야 하겠다 가 되 
    겠습니다. 이 말씀 속에는 강한 주님의 결단이 담겨져 있습니다. 나는 오 
    늘 반드시 네 집에 들어가야 하겠다 . 

    주님은 이렇게 우기십니다. 신앙인은 이 주권적인 사랑에 강권 받은 자들입 
    니다. 나 같은 사람을 찾아 오셔서 내가 네 인생을 책임지겠다 고 말씀하 
    시는 예수님과 함께 걷는 삶이 신앙의 삶입니다.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 
    여야 하겠다 는 이 황공스런 제의 앞에 몸둘 바를 몰라하는 자가 새 삶을 
    살기 시작한 사람들입니다. 저와 같은 죄인과 어떻게 당신은 교제하시길 원 
    하십니까? 놀라워하며 이해 할 수 없어하는 자들이 신앙인들입니다. 아니, 
    나는 죄인입니다. 나를 떠나 주십시오 하는 자들이 신앙인들입니다. 

    우리를 찾아 오셔서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는 말은 내가 
    너의 죄를 다 용서했다 는 것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죄인인 우리와 거처를 함께 하시겠다는 말은 우리를 교제의 대상으로 맞 
    이하시겠다 는 말씀입니다. 이 송구스런 말씀 앞에 감격해 하는 자가 새 삶 
    을 시작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주님의 은혜스런 제의를 받은 삭개오를 보십시요. 급히 내려와 즐거워 
    하며 영접하거늘 구원이 무엇이냐고 삭개오에게 묻는다면『즐거워 하며 
    영접하는 것』이라고 답할 것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① 영접하는자 곧 
    그 이름을 ②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예수님을 만나게되면 여러분은 새로운 인생을 출발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주님을 영접한 적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그가 주시는 기쁨을 소유하고 있어야만 합니다. 교회 다닌지 3년째가 되어 
    도 기쁨이 무엇인지 잘모르겠다는 사람들은 아직 주님을 만난 적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예수 믿는 것만큼 달리 기쁜 것이 없다고 고백하실 수 있어 
    야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자리한 기쁨은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는 새 
    삶의 증표입니다. 눈으로 볼 수 있는 신앙인의 증표는 그 마음이 기뻐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죄 용서함의 평안과 기쁨과 찬송과 감사가 있는가 
    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 가운데서 아직도 그 기쁨을 
    누리고 있지 못한다고 하면 신앙인이라고 속단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마음속에 모셔들이십시오. 그리고 주님께 고백합시다. 오 
    주님 내가 주님을 영접하오니 오셔서 거처를 함께 해 주십시오. 그러면 여 
    러분은 주님과 교제의 기쁨을 맛보는 삶이 시작될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은 하나님의 죄 용서하심의 기쁨을 체험하게 됩니다. 평안을 누리게 될 것 
    입니다. 그리고 많은 돈과 높은 지위와 좋은 이름이 줄 수 없는 하늘의 기 
    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 자리에 나오신 사랑하는 이웃 여러분! 여러분도 예수님을 영접해 보십시 
    오. 삭개오가 만났던 그 예수님을 만나 보십시오. 그러면 삭개오가 누렸던 
    기쁨을 여러분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나름대로 인생을 살아오면 
    서 지금의 삶에서 만족 할 수 없다고 하면 여러분은 삭개오처럼 예수님으 
    로 말미암는 새 삶을 시작하셔야 합니다. 그러면 사람답게 사는 즐거움이 
    여러분의 인생에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다같이 눈감고 기도 드릴 때에 하나님을 모시고 새 삶을 살기를 원하시는 
    분들, 기쁨으로 새로운 삶을 살고 싶은 분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셔서 
    제가 대신 기도할 때 마음으로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 
    분이 마음을 열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일어서서 결단 
    하기를 바라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라고 기도를 끝 
    낼 때 아멘 하시기를 바랍니다.) 

    주 예수님, 오늘 이 예배의 자리에 초대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이제부터 
    자신이 주인이 되어 살던 옛 삶을 청산하고 이제는 세상의 구주로 오신 하 
    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마음속에 영접하기 원합니다.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새로운 삶을 살게 하옵소서, 주님이 주시는 용서를 경험할 수 있게 해 주옵 
    소서. 평안과 기쁨이 지금 일어 선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에게 충만하게 해 
    주옵소서.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늘의 놀라운 평안과 기쁨을 사랑하는 이웃 
    들에게 허락해 주옵소서. 우리의 인생이 주님의 것이오니 이제는 주께서 뜻 
    대로 살아주시옵소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섬기는 기쁨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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