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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약 사도행전 1:21-26/ 내 마음을 아시는 주님 [주일낮]
  • 조회 수: 576, 2013.09.04 07:45:23
  • 챨리 채플린이 한참 유명세를 타고 있던 때의 일이었습니다. 휴식을 취하기 위해 아주 작은 마을에 여행을 갔을 때, 마침 그 마을에서 며칠 후에 ‘챨리 채플린 흉내내기대회’를 연다는 거였습니다. 한 순간 그에게는 재미있는 생각이 떠올랐는데, 만약 자기가 그 대회에 나가보면 어떨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대회에 참가신청을 하고 자기 차례가 되자 평소에 하던 대로 자기 연기를 보여 주었습니다. 드디어 참석자들의 경연이 다 끝나고 심사결과가 나왔는데, 어떻게 됐을까요? 챨리 채플린은 3등을 했습니다. 당연히 1등을 할 줄 알았는데, 1, 2등은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나중에 채플린이 이 사실을 떠올리면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쩌면 나보다 나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사람은 내가 아닐 수도 있다.” 무슨 얘길까요? 자기 자신보다 타인이 자기를 더 잘 볼 수도 있다는 말일 겁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은 마가 요한의 다락방인데 여기에는 열 한 명의 사도들을 포함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을 목격한 120명의 성도들이 모여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사람들은 뭘 하고 있지요? 제비뽑기를 하고 있습니다. 제 갈 길로 가버린 가룟 유다의 사도 자리를 놓고 그 자리를 채우기 위한 보선을 하는 중입니다. 먼저 누가 사도가 돼야할지 두 사람을 천거하고 그 두 사람을 놓고 제비뽑기를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때 120명의 성도들이 이 두 사람을 놓고 제비뽑기에 앞서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24절부터 25절까지의 말씀인데요, “그들이 기도하여 이르되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님께 택하신 바 되어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인지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를 버리고 제 갈 길로 갔나이다 하고...”   

    오늘 이 기도문에서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설명하고 있습니까? “뭇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그렇게 불렀습니다. 여기서 뭇 사람이란 ‘모든 사람’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고백한 그들의 믿음은 무엇이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어떤 특정인 뿐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분이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세상에는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믿는다고 고백하면서도, 그 하나님께서 자기의 마음까지도 아시는 분이시고, 자신이 자신을 아는 것보다 더 자신을 잘 아시는 분이라고 믿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습니다. 어떤 상황이 닥쳐도 나를 가장 잘 아시는 하나님이 주시는 상황이기에, 그것이 나에게 절대적으로 유익하고 필요한 과정임을 받아드리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지금 초대교회는 아주 귀중한 일을 맡아야 할 사람 한 분을 뽑아야 합니다. 여러 가지 권한이 주어지는 사도를 뽑는 그런 자리입니다. 여러 의논을 거쳐서 합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둘을 만장일치로 추천했습니다. 그리고 제비를 뽑았습니다. 한 사람은 뽑혔고, 또 한 사람은 탈락했습니다. 과연 이들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미리 기도드릴 때, “내 마음을 아시는 주여!” 그렇게 고백을 했는데, 그 고백대로 응답이 되었다고 믿을 수 있겠습니까? 분명한 사실은, 오늘 제비뽑기에서 탈락한 요셉은 제 갈 길로 가 버린 그런 가룟 유다가 아니었다는 겁니다. 그 역시 예수님의 공생애 3년 동안 처음부터 끝까지 주님을 따라 다녔고, 그래서 사도가 되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은 그의 신앙과 인격과 또 모든 조건이 다른 11명의 제자들과, 특히 자기와 함께 추천되었던 맛디아와도 별 차이가 없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쯤에서 심술궂게 질문을 하나 만들어본다면...... 왜 요셉과 맛디아 중에 맛디아가 선택이 된 걸까? 맛디아가 요셉보다 더 순전한 마음을 가졌던 걸까? 맛디아가 요셉보다 더 진실한 그리스도인이었을까? 뭐 이런 저런 대답을 추론해 볼 수 있겠지요. 그런데 이런 질문을 하면서 신학자 켐벨 몰간의 말이 생각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중요한 사역현장을 살펴보면 언제나 베드로, 야고보, 요한 세 제자를 대동하고 계셨음을 봅니다. 그래서 이 세 제자를 일컬어 ‘Big 3’ 또는 ‘진골’ 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신학자 켐벨 몰간은 전혀 다른 의견을 내 놓고 있습니다. 그가 쓴 책 중에 ‘이미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주님이 너에게 말씀하신다’ 라는 책이 있는데 그는 이 세 제자에 관해서 전혀 다른 견해를 내 놓습니다. 예수님께서 유독 베드로, 야고보, 요한 세 제자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이셨던 것은, 그들이 제자들 중 가장 뛰어나서가 아니라 오히려 다른 제자들보다 연약한 자들임을 아셨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그들을 그렇게 해 주시지 않으면 그들은 너무나 연약하기 때문에 제자로서 바로 설 수 조차도 없기 때문이라는 거지요. 

    바로 이런 관점에서 오늘의 본문을 들여다보면, 교인들이 추천했던 요셉과 맛디아는 둘 다 신실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하지만 두 사람 중, 오직 한 사람만이 사도란 칭함을 받게 되고 한 사람은 공개적으로 탈락하게 됩니다. 그 상황에서 교인들은 “모든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고 하나님께서는 그 응답으로 맛디아를 선택하셨던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선택된 맛디아 보다 탈락한 요셉이 더 굳건한 신앙의 소유자였을지도 모릅니다. 바꾸어 말하면 탈락한 요셉보다 선택된 맛디아가 신앙에 더 연약한 그릇이었을 수도 있었다는 겁니다. 요셉은 제비에서 탈락해서 사도라는 타이틀을 얻지 못해도 일평생 평신도로 살아가기에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맛디아는 제비에서 탈락되는 것을 받아들이기에는 그의 심성이 너무나 연약한 것을 아셨기에 사도로 선택하신 것입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 보시기에는 맛디아보다 요셉이 더 신뢰할만한 그릇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후로 두 사람 다 성경에서 그들의 이름은 다시 언급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 두 사람이 다 사도로서, 또는 평신도로서 그들의 삶을 훌륭하게 살아갔음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쩌면 이런 주장은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그런 구체적인 내용까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도 가끔 내가 목사가 아니라면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하고 한 번 생각해 봅니다. 아무래도 지금처럼 살 수 있을까요? 물론 지금도 많이 부족하기는 하지만 목사라고 하는 타이틀이 지금의 저를 좀 다르게 만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반대로 여러분은 어떤 위치에 있든지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오히려 저보다도 더 굳건한 믿음의 자녀로서 살아가실 수 있기에 평신도로서 세속상에서 직업을 가지면서도 오늘 이 예배의 자리에 나와서 믿음과 신앙을 고백하고 있지 않는가.... 이런 적용을 할 수 있겠지요. 아무튼 중요한 것은 우리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을 아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때로는 우리가 싫어하는 쪽으로 우리를 이끄실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초대교회 성도들과 사도들이 이러한 기도를 한 후에 맛디아가 12사도 중 하나로 선택이 되어졌는데 요셉은 제비 뽑은 결과에 대해서 서운하고 억울해 했을까요? 또 맛디아는 선택의 결과에 대해 교만해 했을까요?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제비뽑기에 의해 선택된 것도 하나님의 뜻이요, 떨어진 것도 하나님의 뜻이다..... 하나님이 가장 적합하게 잘 해 주셨다.... 이러면서 감사함으로 받아드렸을 것으로 믿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만나는 환경과 사건,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합니다. 화를 내기도 하고, 만족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이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기에 오늘 나에게, 그에게, 우리 모두에게 이런 결과를 주셨다.... 아멘, 할렐루야..... 이렇게 할 수는 없는 것인가요?  

    결론적으로 서두에 드렸던 말씀을 다시 드리며 말씀을 마치고자 합니다. 우리는 누구보다도 내가 나 자신을 더 잘 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의외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잘 못 볼 수 있습니다. 오히려 가족 중의 하나가 더 잘 볼 수 있고, 아니면 가장 가까운 친구가 더 잘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가장 잘 알고, 우리를 가장 잘 보고, 우리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이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떠오르는 찬양이 있습니다. “나를 지으신 주님, 내 안에 계셔..... ” 이렇게 부르는 노래입니다. 제가 잘 부르지 못해도 한 번 불러보겠습니다. 예레미야 1:5절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시편 139편 13절-16절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내가 은밀한 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은 때에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겨지지 못하였나이다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아멘 우리는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믿는다고 고백하면서도, 그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까지도 아시는 분이시고, 우리 자신이 우리를 아는 것보다 더 잘 아시는 분이라고 믿는 사람은 의외로 많지 않습니다. 어떤 상황이 닥쳐도 나를 가장 잘 아시는 하나님이 주시는 상황이기에, 그것이 나에게 절대적으로 유익하고 필요한 과정임을 받아드리는 사람들이 정말 믿음이 좋은 사람이고 이 믿음의 사람을 하나님이 크게 쓰시는 것입니다. 저는 그래서 맛디아와 요셉이 둘 다 출중하게 훌륭한 사람이지만 요셉에게 더 많은 점수를 주고 싶습니다. 받아드리기 힘든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나에게 꼭 합당한 결과를 주셨노라고 고백할 수 있는 요셉 같은 신앙... 우리 모두가 이 신앙의 사람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   도] 우리를 지으신 주님 우리 안에 계심을 믿습니다. 내 이름도 아시고, 내 생각도 아시며, 내 마음 속에 흐르는 눈물까지도 아시는 주님이시기에 오늘도 우리는 이 예배의 자리로 나아왔습니다. 우리가 처한 환경이 어떤 모습이든 간에 주님을 의지하며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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