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 나은 본향(히브리서 11:13~16)
  • 조회 수: 81, 2013.09.14 12:51:20
  • 오늘 본문에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아브라함입니다. 그는 이 땅에 살면서 하나님이 예비하신 본향을 사모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저는 이 말씀을 통해서 도데체 고향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으며, 우리 신앙인의 고향은 어떠해야 되겠는가를 생각하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번 주는 추석연휴가 있는지라 다들 고향 찾기에 분주할 것입니다. 몸은 아직도 여기 있지만 마음은 이미 고향으로 달려가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 실향민들은 정부가 북한과 잘 해서 추석 이전에 이산가족상봉을 하게 해 주면 좋겠다는 바램이 있는데 아직까지도 뭐가 잘 안 되는가 봅니다. 명절이 되면 제일 가슴 아픈 사람들이 실향민들이라고 합니다. 그만큼 고향이 생각이 나고, 고향이 그리운 날이 명절입니다.


    고향... 이것은 단순한 지명이 아니죠. 서울이나 부산이나 광주라고 하는 지명이 아니라 고향은 한 가족과 개인의 역사이고 삶의 숨결이 살아있는 곳이며 꿈이 있던 곳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렇게 고향을 찾는 것입니다. 어떤 실향민이 인터뷰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죽기 전에 고향산천 제발 한 번만이라도 내 발로 밟아보면 좋겠다....’ 사실 이 한 마디 속에 고향에 대한 모든 생각이 다 녹아있다고 봅니다. 올해 추석에도 1,400만 명이 고향을 찾아 간다고 예상을 하는데 여기다가 고향을 가고 싶어도 못가는 실향민들도 있고, 개발로 인해서 고향이 없어진 분들도 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시인 박용철씨가 고향을 이렇게 회한하고 있습니다.


    고향은 찾어 무얼 하리, 일가 흩어지고 집 흐너진 데
    저녁 까마귀 가을 풀에 울고 마을 앞 시내로 옛 자리 바뀌었을라.
    어린 때 꿈을 엄마 무덤 위에 남겨두고 떠도는 구름 따라
    멈추는 듯 불려온 지 여남은 해... 고향은 이제 찾어 무얼 하리.
    험한 발에 짓밟힌 고향생각 -아득한 꿈엔 달려가는 길이언만-
    서로의 굳은 뜻을 남께 빼앗긴 옛 사랑의 생각 같은 쓰린 심사여라.


    이 분은 1930년 말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실향민의 아픔 보다는 항일운동의 쫓기는 삶을 살면서 고향땅을 밟아보지 못하는 어떤 아픔, 그리움 같은 것을 노래했다고 보지만 지금의 실향민들의 마음도 잘 표현하는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왜 고향을 그렇게도 찾아갈까요?


    저는 그것을 귀소본능이라는 말로 설명을 드리고 싶습니다.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욕망이 우리들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이 귀소본능은 연어나 진돗개, 비둘기 같은 짐승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도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나이가 들면서 예전에 같이 학교를 다니던 동창들이 그리워지고 어릴 때 어머니가 해 주시던 음식들이 먹고 싶어지는 것이 다 귀소본능의 증거입니다.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 이것도 영적 귀소본능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앞에서 말씀드렸다시피 고향, 이것은 단순히 지명이 아닙니다. 한 가족과 개인의 생명이 시작된 곳이고, 그 사람의 존재의 근거지이기도하며, 더 나아가 역사의 숨결이 살아있는 곳이며, 꿈이 시작된 곳입니다. 아무리 성공하고, 타지에서 잘 살고, 편히 쉰다고 하더라도 마음의 안식은 고향을 품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고향에 대해 이런 말씀을 드린다고 해도 나는 아니다... 나는 고향을 버렸다... 이렇게 생각하실 분들도 있습니다. 그것은 그만큼 고향이 나에게 불편했기 때문입니다. 좋은 부모를 만나지 못해 고향... 하면 끔찍한 일 밖에 생각나는 게 없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고, 고향 하면 나는 버림받았다... 이런 생각 때문에 가기 싫은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또 고향을 가고 싶지만 내 처지가 이런데 고향 가서 뭣하랴... 이런 불편한 심사를 가진 분들도 계십니다. 고향을 생각하기는 하지만 고향이 자기를 품어줄 것 같지 않기에 사람들은 고향을 보리기도 합니다. 이렇듯 우리 자란 고향은 나의 본능을 온전히 충족시키지 못합니다. 예수님도 구원사역을 시작하면서 고향을 찾아 갔습니다. 고향에 대한 본능도 있으셨겠지만 내 고향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도 전하고 병도 고쳐 주려고 가셨다가 그만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우리의 진정한 고향이 어디에 있는지를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 모르는 곳에는 진정한 의미의 고향도 없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조상 아담과 하와에게 에덴동산을 지어주시고, 거기서 살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죄로 말미암아 거기서 쫓겨났어요. 그 다음부터서는 이리 저리 옮겨 다니는 거주민, 나그네의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언제 하나님이 다시 에덴동산으로 들어오라고 하실까... 늘 생각하며 돌아가는 삶을 꿈꾸며 살지 않았을까요? 저는 이러한 아담과 하와의 마음이 결국은 모든 귀소본능의 시작이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이 귀소본능의 종착점은 고향에 묻히고, 결국은 천국에 안식하는 것..... 이게 바로 진정한 귀소본능의 종착점이라... 이렇게 믿습니다.


    그러므로 내 육체가 고향에만 묻히는 것은 죽음의 완결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 육체는 고향에 묻혀 한 줌의 흙이 되지만 나의 영혼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에 나에게 오라, 천국에 오라.... 이렇게 우리를 부르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에 답하여 탕자와 같이 아버지의 품에 안기어 영원한 안식의 시작에 들어가는 것이야 말로 죽음의 완결편이라고 믿습니다.


    선교원에 있는 아이가 목사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하늘나라가 있어요?” “그럼. 있지”  “그럼 하늘나라가 좋은 곳이에요? 나쁜 곳이에요?” “좋은 곳이란다.”“그럼 목사님이 하늘나라에 가보셨어요?” “아니 안 가봤는데“ “그럼 어떻게 아세요?”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대답을 하시겠어요? 이 목사님은 이렇게 대답을 하셨다고 합니다. “하늘나라가 얼마나 좋은지 간 사람 중에 한 사람도 돌아오지 않았단다.”


    여러분 우리가 사모하는 고향, 이 세상에서 정처 없는 나그네 삶을 접고 가는 비로소 가는 고향 이 고향이 바로 하늘나라입니다. 오래전에 아프리카선교사로 평생을 헌신하던 미국인 선교사 부부가 은퇴를 하여 배를 타고 뉴욕 항구에 도착하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환영을 했습니다. 얼마나 반가웠겠습니까? 감격을 했습니다. 그러나 환영 인파는 미국의 유명한 비행사 린드버그가 단발 비행기로 대서양을 횡단하는 비행을 성공을 축하하는 돌아오는 것을 환영하는 것이었습니다. 과연 이것은 옳은 것입니까? 선교사는 하나님께 섭섭했습니다. “아프리카 오지에서 목숨을 걸고 한 평생을 복음을 전하는 일이 비행기로 대서양을 횡단한 일보다 못합니까? 이때 하나님은 이 선교사 부부에게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의 충성된 종아! 너무 속상해 하지 말아라. 너희들이 돌아 갈 고향에 돌아올 때는 린드버그가 환영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대 환영을 할 것이다. 그때는 너희를 환영하기 위하여 천군 천사가 나팔을 불고 먼 저 천국에 온 사람들이 마중을 나갈 것이며 내가 직접 너희들의 손을 잡고 환영할 것이니 그때까지만 참고 있으라.’


    주를 위해 사는 것이 이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인정받기가 힘듭니다. 대우를 받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주를 위해 충성한 성도들에게 상을 주시고 이 땅에서 누리지 못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에게 축복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실망하지 마십시오. 세상은 잊어도 하나님은 잊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늘 마음에 품고 주를 위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충성하는 주의 종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브라함은 결코 이 땅에서 성공하여 금의환양 하는 꿈을 꾸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의 꿈은 하나님의 약속..... 큰 민족을 이루고 이름을 창대케 하고 복의 근원이 되는 삶을 사는 ‘하나님 나라 건설’에 있었습니다. 사도바울도 빌립보서 3장 20절을 보게 되면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고 하면서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 건설을 위해 고난 가운데서 온 생애를 바쳤습니다. 우리도 하늘의 본향을 생각한다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명을 생각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하나님 나라, 내 가정이 하나님 나라, 그리고 우리 교회가, 이 세상이 하나님의 나라가 되도록 살아가는 것이 진짜 이 땅의 고향입니다.


    오늘 설교를 끝나고 부를 찬송은 ‘보아라 즐거운 우리 집’입니다. 이 즐거운 우리 집이 천국이 될 것을 믿으면 우리 가정도 즐겁고, 우리 고향도 더 가고 싶고, 그리워지고 이번 추석에도 즐거운 고향 경험을 하게 될 줄 믿습니다. 이번 명절에는 고향의 에너지, 고향의 꿈, 고향의 향기 가득 담아 힘을 얻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그런 축복을 누리시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댓글 0 ...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39 admin 79 2013.08.04
admin 81 2013.09.14
37 admin 86 2013.08.04
36 admin 86 2013.08.04
35 admin 87 2013.08.04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