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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장에는 일곱 천사들이 일곱 재앙을 가지고 나타나는 광경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일곱 재앙은 하나님께서 세상에 내리실 마지막 재앙이며 하나님의 진노가 이 일곱 재앙으로 종지부를 찍게 될 것으로 16장에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재앙은 앞에서 나온 일곱 인과 일곱 나팔의 재앙들보다 더욱 강경해진 재앙입니다. 15장과 16장을 구별하자면 15장은 하늘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이 나와 있고, 16장에는 그에 대응하여 대 환란 기간에 세상에서 일어날 사건들이 묘사되어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이 본 환상은 본격적으로 이 일곱 재앙을 나타내기 전에 잠시 다른 풍경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불이 섞인 유리바다 같은 것을 보았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타며 노래하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이것은 대환난의 시대를 통과하고 승리한 성도들의 노래하는 모습이며 마지막 재앙에 대한 예언으로 인해 성도들이 두려움을 가지지 않도록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려는 뜻이 있습니다. 지금 영적 싸움 가운데 있는 성도들은 미래의 승리를 앞당겨 봄으로써 위로를 받고 더욱 담대함을 얻게 될 것입니다.
1절에 ‘이긴 자들’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계시록 뿐 아니라 여러 곳에서 이긴 자란 말이 나오는데 이는 신앙으로 세속주의를 승리한 자란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세상에 물들지 않고 말씀대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순교자들처럼 사상에 승리하는 것을 말합니다. 가끔씩 이단이 일어나서 자기가 특별히 '이긴 자'라 자칭 할 때가 있으나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 이긴 자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이긴 자라 하는 말은 사용할 수 있습니다. 요일 5:4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이긴 자란 말이 결코 세상으로 권세를 부리면서 세속을 이긴다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적으로는 실패한 사람 같아도 승리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환난을 받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들을 소망 가운데 인내하면서 이기는 것입니다. 행 14:22 '제자들의 마음을 굳게 하여 이 믿음에 거하라 권하고 또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하고'...............
2절에, '불이 섞인 유리 바다'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요한계시록 4장에서는 '수정과 같은' 유리바다가 있었다고 표현했는데 여기에서는 '불이 섞인 유리바다'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같은 대상을 두고 표현한 것은 아니고 본문에 나타난 표현은 임박해 있는 불같은 재앙인 일곱 대접재앙을 예언하는 것입니다. 예언적으로 불은 대체로 심판과 환난이요 바다는 세상을 상징합니다. 그러니 대환난의 세상을 지나온 자들만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지금 그 마지막 시대에 살지는 않지만 마치 그런 시대처럼 너무 위험하고 시험이 많은 말세를 살아가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어려움 속에서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빌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고후 6:9-10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는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오늘 낮에도 고난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는데 그리스도인은 앞으로 오게 될 영광을 바라보며 고난 가운데서 싸워 이기는 자들입니다. 싸워 이긴 자만이 부활의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란 오늘 본문의 표현대로 하면 ‘불이 섞인 유리바다를 통과한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벗어난 자들’이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벗어난다는 헬라어 에크의 뜻은 '밖으로' 입니다. 싸워 이긴 결과 벗어난다는 뜻이죠. 무엇으로부터? 유대인들은 적그리스도와 그가 통치하는 환경으로부터 벗어난다는 뜻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싸워 이겨서 벗어나야 합니다. 고통과 절망으로부터 벗어나고, 온갖 유혹과 시험으로부터 벗어나고, 다툼과 시기, 온갖 혈기부림으로부터 벗어나서 유리 바다에 서서 하나님을 노래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럭비 경기를 보면 서로 상대방이 공을 가지고 목표지점에 도달하지 못하도록 싸웁니다. 그리고 공을 잡은 선수는 그 공격에 대항하며 그 자리를 벗어나 목표하는 지점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투쟁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단지 싸움을 위한 싸움이 아닙니다. 벗어나기 위한 싸움.... 절망과 고통, 온갖 유혹과 시험, 혈기와 다툼, 시기심.... 이런 죄들로부터 벗어나서 유리 바다에 이르러 하나님의 구원을 노래하는 것..... 이것을 위해 우리는 싸우는 것입니다. 오직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싸워야 할 싸움은 이런 싸움 밖에 없습니다.
3절에는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 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이는 모세의 노래가 곧 어린양의 노래와 같다... 이것을 이해한 유대인들의 노래죠. 왜 굳이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로 표현을 했느냐.... 신약교회만을 생각하면 그냥 ‘어린양의 노래’ 라고 표현하면 그만입니다. 그런데 노래 부르는 이들이 유대인 성도들임을 나타내기 위해 ‘모세의 노래’라는 말로 설명한 것입니다. 바로의 핍박을 이기고 홍해 바다를 가르고 이스라엘을 구원해주셨듯이 적그리스도의 혹독한 핍박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해주신 어린양을 찬양하는 노래인 것입니다. 그런데요, 성경에 보면 15장이 참 묘해요. 홍해를 건넌 후 출애굽기 15장에 보면 구원의 노래가 나옵니다. 이걸 모세의 노래로 표현할 수 있는데요.... 고린도전서 15장은 부활의 장으로서 죽음을 이기고 승리하신 어린양의 노래라 할 만 하죠. 그리고 오늘 계시록 15장에 보면 모세의 노래와 어린양의 노래.... 이렇게 종합되고 있는 겁니다.
5절에 보면 '증거 장막의 성전'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신천지의 정식 이름이 ‘신천지 예수교 증거장막성전’ 이렇게 됩니다. 계시록 15장에 나오는 증거장막성전이 자기들의 신천지라는 뜻입니다. 여기에는 분명히 문맥적인 오류가 있습니다. 이 증거장막성전은 하나님의 보좌로서 사도 요한이 본 환상 속의 성전이요, 하늘에 있는 성전입니다. 자기들은 이 땅에.... 그것도 한국에 있잖아요. 사실 구약성경에 나타나는 성전도 하늘에 있는 성소의 그림자에 불과한 것입니다. 스스로가 증거장막성전이라고 하고, 그 증거장막성전에 이만희씨가 앉아있으니 이만희가 결국은 심판주 하나님이라는 뜻 아닙니까? 성경에서 증거장막성전이라고 표현한 것은 성전을 대표하는 지성소에 법궤, 만나 항아리, 아론의 싹 난 지팡이가 모셔져 있었던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는 것을 증거하는 증거품들이죠. 그래서 이들을 궤에 넣어 증거궤, 언약궤... 이렇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늘에서는 굳이 뭘 증거할 이유가 없죠. 하나님이 친히 계시는데 따로 증거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이 증거장막성전이 열린다는 것은 하나님의 증거를 믿지 않는 자들에 대한 마지막 심판이 곧 시작될 것임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그렇게도 보여주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에 대한 최후의 심판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의심 많은 도마에게 말씀합니다.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가 복되도다....”
오늘 본문에 대하여 결론을 내리면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대로 싸워 이겨야 할 고난들이 있고, 유대인들은 유대인들대로 적그리스도와 그를 둘러싼 환경과 싸워 이겨야 할 고난의 과정들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 땅에서 평탄한 삶을 누린다는 말은 다 사탄의 말입니다. 아무쪼록 싸워야 합니다. 초대교회는 초대교회대로 싸워 이겨야 할 고난이 있고, 우리는 우리시대에 맞서 반 신앙적인 환경과 문화... 이런 것들과 맞서 싸워 이긴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아무쪼록 우리는 우리의 신앙을 넘어뜨리려는 마귀와 그의 도구인 악한 문화에 당당히 맞서 잘 싸울 수 있는 믿음의 용사가 되셔서 사탄의 영을 따라 이미 과학 문화주의로 인생을 이해시키려는 세속 문화를 반드시 이기고 주의 도우심도 받아 죄에서 벗어나고 환난에서 벗어나는 축복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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