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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담 왕(역대하 27:1-9) [새벽]
  • 조회 수: 532, 2013.09.28 12:20:53
  • 요담은 25세 때 왕위에 올랐으나 부왕 웃시아가 나병으로 인해 별궁에서 10년 정도 섭정한 것으로 보아 35세가 되어서야 독립된 왕이 되었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웃시아는 이웃 이방국가의 제왕들처럼 신정일치를 추구하여 제사장을 제끼고 직접 제사를 집행하려다가 제사장의 책망을 받고도 뉘우치지 않아 나병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10년 동안이나 별궁에 갇혀지내다 싶이 했습니다. 이런 경험이 노년에 상당히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쪽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요담은 그 부왕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고 신실하게 하나님을 잘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 부왕이 성전에서 나병이 든 것을 보면서 요담은 성전에 들어가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 2절에서 성전에 들어가지는 아니하였다는 말의 의미는 조금 생각해 보아야 할 표현입니다. 첫째의 해석으로는 웃시야 왕처럼 제사를 집행하는 그런 일을 하지는 아니했다... 이런 뜻으로 해석해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왕으로서 성전에 들어가는 예식적인 부분이 있는데 이것을 아예 하지 않았다...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두 가지 다 해석이 가능하겠으나 후자의 해석을 택하는 학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부왕 웃시야가 함부로 제사를 드리려다 나병이 들었으니까 한 편으로는 두려움이 있고, 다른 한 편으로는 성전 예배 자체를 싫어하게 되었다... 이렇게 표현해 볼 수 있겠지요.

     

    우리 사람이라는 것은 참 이상합니다. 한 번 관계가 삐뚤어지고 나면 회복되기가 참 어렵습니다. 물론 이론적으로는 요담이 잘 압니다. 부왕이 함부로 제사를 드리다가 벌을 받았다.... 그래서 이런 영향으로 요담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고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삽니다.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산다면 성전에 들어가는 것도 열심히 해야 하겠지요. 그런데 성전은 정남미가 떨어집니다. 부왕이 벌 받았던 성전.... 이 성전이 왠지 싫어집니다. 이것은 요담의 신앙을 표현하는 말입니다. 요담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고, 두려워하게 되었지만 전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랑하는 모습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를 나병으로 만든 하나님..... 이런 인식이 있으니까 하나님을 믿되 좋은 관계로 하나님을 믿지는 않았다.... 저는 그렇게 봅니다. 그리고 이것은 어떤 면에서는 참 신앙이라고 할 수 없지요. 정말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의 성전을 사랑하지 않겠습니까? 이 요담의 신앙에는 즐거움이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억지 신앙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십자가가 없는 신앙, 은혜가 없는 신앙.... 조심하지 않으면 하나님께 벌 받는다.... 이런 가부장적, 엄한 아버지 상을 그리면서 하나님을 믿는 것은 유쾌하지도 못하고, 신앙이 자랄 수도 없습니다. 십자가가 있는 신앙, 감동이 있는 신앙.... 하나님과 교류하고 사귐이 있는 신앙.... 이런 신앙으로 살아야 즐겁고, 행복하고, 복을 받는 신앙일줄로 믿습니다. 이런 신앙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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