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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약 요한복음 15:1-9/ 풍성한 가을을 위하여 [주일낮]
  • 조회 수: 569, 2013.09.28 15:11:59
  • 작고하신 기독교 시인이신 김현승님의 시 가운데 보면 '가을의 기도'라는 시가 있죠?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국어시간은 아니지만 이 시의 의미를 살펴볼 것 같으면 가을과 낙엽은 생명이 지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운다는 것은 이렇게 허무한 인생의 끝을 바라보면서 저 세리와 같은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함을 뜻합니다. 어떻게 기도 하냐.... 가을에는 한 사람을 택하여 그 분에게 드릴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비옥한 시간으로 만들어가게 해 달라.... 이런 뜻이 있습니다. 그 한 사람은 바로 절대자 하나님을 뜻합니다. 이  시는 굉장히 절제된 표현으로 자신의 기독교적 신앙관을 아주 적절하게 표현한 시입니다. 


    가을은 열매의 계절입니다. 농부의 삶의 보람은 열매를 거두는데 있습니다.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에 그 폭염과 무더위를 견디면서 땀을 흘리고 애써 일하는 농부의 유일한 보람, 유일한 기대는 가을에 열매를 거두는데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저와 여러분이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열매를 구하기보다는 꽃을 구하는 시대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보면 꽃에 대해서 그렇게 긍정적이지만은 않습니다. 좋은 표현도 있긴 있습니다만 꽃은 부정적인 모습으로 더 많이 묘사됩니다. 순간적인 인생의 허무라든지, 오래가지 못하는 것들로 꽃이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열매는 항상 긍정적인 모습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예컨대 이런 말씀들이 있죠.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그것은 바람이 지나면 없어지나니 그 곳이 다시 알지 못하게 된다... 이 말씀은 시편의 말씀이고.... 부한 형제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야고보서 1장 10절의 말씀입니다. 모든 육체는 풀의 꽃과 같아서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진다, 베드로전서 1장의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의 시대는 순간적인 만족, 쾌락, 결국에는 허무로 끝날 이것들을 구하는 시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생의 보람과 의미, 그 진지함의 열매를 사모한다면 꽃이 아닌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열매를 구하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이 가을에 모든 자연들마다 풍성한 열매를 맺는데 우리는 어떤 열매를 맺어야 할까요? 오늘 본문에서 그 대답을 찾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예수님의 지상생애 마지막 날, 그 전날인데, 최후의 만찬을 다락방에서 갖고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냇가를 향해서 가고 있었습니다. 이 시내를 건너가면 겟세마네 동산입니다. 그 동산에서 주님은 최후의 씨름, 마지막 고뇌의 밤을 지나시게 됩니다. 이 겟세마네 동산을 향해서 내려가는 그 양쪽에는 포도원이 있습니다. 지금도 그 포도원이 있다고 합니다. 이 포도원을 지나가시면서 제자들을 돌아보며 말씀하십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그러면서 제자들을 보고는 가지라고 하셨죠. 열매가 있는 가지.... 이 가지에 제자들은 어떤 열매를 맺어야 할까요? 그리고 나무의 가지가지마다 풍성한 열매를 자랑하는데 우리는 나무의 한 가지로서 어떤 열매를 맺어야 할까요?


    물론 많은 열매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예수님을 믿고 우리에게 주어지는 가장 중요한 과제는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 바로 이 문제입니다. 바로 존재의 열매, 인격의 열매라고 할 수 있겠죠. 자, 우리가 예수님 믿었어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어요, 구원받았어요, 그리스인이 되었어요, 이제부터 우리에게 주어지는 가장 중요한 과제... 이제부터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 어떤 인간이 되느냐가 중요합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의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열매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다 살고 하나님 앞에 섰을 때 하나님이 먼저 물으실 것 같아요. “네가 어떤 일을 했느냐”가 아니라 “어떤 위대한 성취를 했느냐”가 아니라 “네가 어떤 직업을 가지고 영광을 받았느냐”가 아니라 “네가 믿음으로 살면서 어떤 사람이 되었느냐”는 사실입니다.


    요한복음 15장은 사실 13장부터 시작해서 다락방 교훈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다락방에서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이라고 해서 ‘다락방 강화’라고 부르죠. 요한복음 13장에 보시면 제자들의 발을 다 씻기신 후에 주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너희들에게 새로운 계명을 주노니 너희들은 서로 사랑하라 이로서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주님이 기대했던 제자 상, 주님은 제자들이 어떤 삶을 살 것을 기대 하셨느냐? 그것은 사랑의 삶, 사랑의 존재가 될 것을 기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14장에 보시면 계속되는 교훈 가운데 14장 27절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라” 라고 말씀하시는데 이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다른 평안인데 하나님이 주시는 이 평안으로 평화가 없는 세상, 불안한 세상, 날마다 소요하는 세상, 격동하는 세상에서 제자들이 이 움직일 수 없는 하늘의 견고한 평안을 가지고 살아갈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평안을 주는 그런 삶을 기대하시는 것입니다. 사랑의 존재, 평안의 존재, 그리고 그 평화를 만드는 삶..... 이게 바로 우리가 맺어야 할 존재의 열매, 인격의 열매인 것입니다.


    우리가 뭐 대단한 신분을 가진 분들을 다 존경하지는 않잖아요. 못 배워도, 가진 것이 없어도 사람들에게 존경 받는 분들이 많잖아요. 다음 주일 우리 교회에 오실 박권용 집사님... 이 분은 사실 글도 잘 몰라요. 초등학교 3학년이 그의 전 학력입니다. 그러나 그가 잘 하는 짜장면 하나로 온 국민에게 감동을 준 분입니다. KBS, MBC 초대석에 나와 그의 삶을 간증했고, 몇 번이나 청와대에 초청도 받고, 심지어는 대기업 연수원에 가서 그 유명대학과 유학을 다녀온 똑똑한 사람들에게 삶을 가르치기도 하죠. 배운 것은 없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를 존경하는지 몰라요. 사랑의 존재, 평안의 존재, 사랑의 존재, 그리고 평안을 만드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요한복음 15장에 또 하나 강조된 중요한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기쁨이라는 단어입니다. 기쁨! 11절에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 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니라" 14장에는 ‘나의 평안’이라고 했는데 여기서는 ‘나의 기쁨’이라고 표현했네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서.. 나의 기쁨이 너희 안에 충만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16장 23절에 보면 "그 날에는 너희가 아무 것도 내게 묻지 아니하리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라고 하시면서 24절에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아 놀랍지 않습니까? 이제 우리가 어떤 존재로 살아가야 하느냐... 답이 나온 것입니다. 사랑, 평안, 기쁨.... 충만한 사랑의 삶, 평안의 삶, 기쁨이 넘치는 삶을 살아가는 존재.... 그 존재가 바로 저와 여러분이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런 삶은 우리가 선택하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가 선택하고 하나님께 구하기만 하면 하나님이 주시는데 사랑이 충만하고, 평화가 충만하고, 기쁨이 충만한.... 그야말로 정서적으로 충만한 삶을 우리가 살아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가을에 자연이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감동을 줍니까? 나무들은 열매를 맺고, 잎은 형형색색으로 변해 얼마나 풍요롭고,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기만 해도 행복해요. 보기만 해도 감사가 넘쳐요. 이런 아름다운 가을에 우리 삶도 사랑으로, 평안으로, 기쁨으로 넘쳐흐른다면 얼마나 환상적인 가을이 되겠습니까? 이런 멋진 가을이 여러분들에게 앞으로 펼쳐지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이런 열매를 맺으려면 우리가 주님과 딱 붙어있어야 합니다. 여름의 그 거친 태풍에 휩쓸려 꺾여진 가지들은 가을에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 같이 우리가 주님을 떠나서는 아름다운 인격, 존재의 열매, 사랑과 평안과 기쁨이 충만한.... 더 나아가서 갈라디아 5장 22-23절에 나오는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겁니다. 주님과 딱 붙어있어야 하는 겁니다. 예배, 말씀, 기도.... 이런 신앙생활 가운데서 주님이 은혜를 주시면 우리가 어떤 고난, 어떤 스트레스가 와도 사랑, 평안, 기쁨으로 다 이길 수 있고, 멋진 그리스도인들이 다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지가 나무에 딱 붙어 있다는 것은 주님과의 지속적인 교제를 뜻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순간에 주님과 관계를 맺는 시작입니다. 그러나 주님과의 관계 속에 들어간 사람들에게 더 중요한 것은 주님과 지속적으로 교제를 해야 합니다. 그 교제 가운데서 열매가 맺어지게 되죠. 7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 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이 7절 말씀에 주님과의 교제의 두 가지 방편이 나오는데 “내 말이 너희 안에 거 하면...” 바로 말씀, 말씀을 우리가 들어야 합니다.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그리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랬죠. 구하라... 바로 기도입니다. 말씀과 기도.... 하나님과 교제하는 두 가지 방편...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주님과의 지속적인 교제 안에서 열매가 맺어진다는 것입니다. 정상 적인 부부, 좋은 부부에게 있어서 열매가 맺어지고 자식을 낳는 것처럼.. 그렇습니다. 주님과의 교제 안에서 인생의 열매가 나타나요.


    제가 목사이지만 저도 사람인지라 스트레스가 쌓이면 나도 모르게 짜증스럽고, 신경질스러울 때가 있어요. 그러면 제 아내한테 피해가 가죠. 제 아내가 저보고 그래요. 제가 웃고 있으면 더없이 목사 같은데 짜증을 부리면 그 생긴 얼굴이 얼마나 심술궂어보이는지 모른다고 해요. 그래서 제가 항상 방긋방긋 웃으려고 노력을 합니다만.... 그게 제 뜻대로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삶이라는 게 항상 스트레스가 있거든요. 이 스트레스를 잘 관리해야 하는데 운동도 하고 그러면서 풀지만 그것 가지고는 부족해요. 그런데 제가 막 짜증내고 할 때 저 자신을 살펴보면 기도가 없고, 말씀이 없을 때, 은혜가 없을 때 꼭 그렇더라고요. 말하자면 주님과 떨어진 제 자신을 볼 때마다 짜증스럽고, 감사가 없고, 원망, 불평이 넘치더라고요. 그러니 풍성한 삶은 돈이 많다고, 많이 배웠다고, 뭐 사회적인 지위가 높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이런 것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는데 거름 정도나 되지, 정말 중요한 것은 가지가 나무에 딱 붙어있어야 하는 것처럼 기도와 말씀 가운데 나와 주님이 함께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인도의 시성 타고르의 ‘키탄잘리’라는 시 가운데 보면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죽음이 나의 문을 두드릴 때, 나는 생명이 가득 찬 그릇을 당신 앞에 갖다 놓겠어요' 우리가 마지막 주 앞에 설 때 우리도 생명으로, 사랑으로, 평안으로, 기쁨으로 가득 찬 우리 존재를 주님 앞에 갖다드리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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