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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왕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게 살 때는 35년 동안 태평성대를 누리고 살았습니다. 36년을 맞이하면서부터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아람왕 벤하닷을 의지하고 성전의 기물과 왕궁의 보물을 벤하닷에 주고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는 착한 성품이었는데 왜 그렇게 되었는지 알 수 없고 그는 신앙도 있고 통솔력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선지자의 말도 듣지 아니하고 나중에는 병들어 죽게 되어도 하나님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에게 구하여 결국은 죽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생각할 것은 그는 처음에는 매우 잘 했는데 말로에 아쉬움을 남기고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을 때가 좋아야 하는데"라는 제목으로 말합니다.
1.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습니다.
본문 10 "아사가 노하여 선견자를 옥에 가두었으니 이는 그 말에 크게 노하였음이며 그 때에 아사가 또 몇 백성을 학대하였더라"하였습니다. 15장에서는 아사왕이 선지자의 말을 듣고 감화를 받아 용감하게 하나님의 일을 위하여 최선을 다했는데 왜 죽음이 가까울수록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하여 우상숭배하는 그의 모친까지 폐위시키고 하나님만 섬기기로 맹세까지 하였는데 어찌하여 무엇 때문에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그들을 옥에다 가두게 되었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복이 있는 사람은 언제나 시종여일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즐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말을 듣기 싫어하는 것은 이미 믿음에 병이 들었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신앙은 처음보다 나중이 더 좋아야 합니다.
2.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본문 7 "때에 선견자 하나니가 유다 왕 아사에게 나아와서 이르되 왕이 아람 왕을 의지하고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지 아니한 고로 아람 왕의 군대가 왕의 손에서 벗어났나이다"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에게 도움을 간청해야 좋아 하십니다. 그런데 아사는 도울 힘이 전무한 인생을 의지하고 그의 도옴을 요청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좋아 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말하기를 도울 힘이 없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고 야곱의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은 인간들의 생사화복을 주장하는 분이십니다(삼상 2:6-10). 그런데도 도울 힘이 없는 인생을 의지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노여움을 살 일이요 불신앙적인 태도로서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도 마땅한 일입니다. 누구나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를 가까이 해야 합니다. 그래야 복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아사는 죽음을 앞에 두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사람을 의지하였으니 그 어찌 불행한 일이 아니며 아쉬운 일이 아니겠습니까.
3. 하나님께 구하지 아니하였습니다.
본문 12 "아사가 왕이 된 지 삼십 구 년에 그 발이 병들어 심히 중하나 병이 있을 때에 저가 여호와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들에게 구하였더라"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병들면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고 치료를 하는 것보다는 병원부터 찾아가는 것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럼 병원 가는 것이 불신앙적인 행동이며 나쁜 일인가 하는 것입니다. 병원 가는 것이 나쁜게 아니요 의사에게 치료를 부탁하는 것이 잘못도 아닙니다. 문제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의사를 찾지 아니한 것이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치료의 방법은 하나님께서 직접 고치는 일도 있고 의사의 손을 통하여 고치시는 일도 있으며 약으로도 고치시는 일이 있습니다. 예를 든다면 히스기야는 병들어 죽게 되었을 때에 그는 의사를 찾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무화과 반죽을 하여 상처에 붙이고 고침을 받았음을 기억하자는 것입니다(왕하 20:1-7). 그러므로 의원을 찾아가 살려달라고 애원하기 전에 하나님께 기도하고 치료를 요청하자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아사왕은 그렇게 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생명은 의사의 손에 있는 줄로 알았습니다. 그것이 문제요 아쉬운 점입니다.
결론
사람이 시작도 중요하지만 마무리도 깨끗하고 분명하게 잘해야 합니다. 그래서 유종의 미를 거두라는 말이 있습니다. 가룟 유다는 주님의 제자로 처음에는 제자로서 활약하였지만 나중에는 나중에는 예수를 배반하고 그를 팔아먹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강도는 처음에는 잘못되었지만 나중에는 회개하고 주님과 힘과 함께 천국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아사왕은 처음에는 훌릉한 신앙인으로 활약했지만 나중에는 불신앙인으로 행동하다가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으니 아쉬운 마음 금할 길 없습니다. 우리들은 이와 같은 일을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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