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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약 고린도후서 4:7-10/ 보배로운 질그릇 [주일낮]
  • 조회 수: 565, 2013.10.05 18:27:19
  • 요즘 새벽에 고린도후서를 묵상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고린도후서 4장 7절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제가 받은 은혜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을 통해서 질그릇의 가치를 가진 우리가 그리스도라고 하는 최고의 보배를 소유함으로 성도라고 불리우게 되었다고 하며 고린도교인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기를 원합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라고 말씀합니다.  

     

    1. 여기서 우리라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성도들을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은 그리스도라는 최고의 보배를 가졌습니다. 보배라도 그냥 보배가 아니라 사도 바울은 최고의 보매, 생명의 가치와 동일하며 지금까지 투자해서 얻은 모든 것을 주고 맞바꾸어도 모자람이 없는 가치를 가진 그런 보배로 가치를 매기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일생의 최고의 보배로 알았기에 그가 가지고 있는 세상적인 가치들을 배설물로 여겼으며 그것을 다 버리고서 그리스도라는 보배를 얻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세상적인 모든 가치를 팔아서라도 이 보배로운 예수 그리스도를 누리기를 원해야 합니다. 어떤 분들은 이 말을 듣고 피- 하고 싱겁게 웃을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무슨 보배냐고.....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것은 아직까지 그리스도를 경험하지 못하고, 그리스도를 누리지 못했기에 그러는 것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이면서도 그리스도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는 우리 항도교회 모든 성도님들이 그리스도를 만나고, 경험하고, 마침내 누리게 됨으로 사울이 바울 되는 그런 역사가 일어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다고 말씀합니다. 오늘날은 질그릇이 최고의 대접을 받습니다. 접시 하나에 수천만원을 호가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옛날에는 질그릇이 제일 가치가 없었습니다. 그냥 화가 나서 집어 던져 깨뜨려도 별로 부담이 없는 그릇입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심판할 때 주님께서 마치 질그릇 깨뜨리듯 할 것이라고 표현된 구절들이 더러 보입니다. 예컨대 계 2:27에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이렇게 표현하기도 합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그리스도를 담지 않은 그릇들은 아무런 가치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종말에 질그릇 깨뜨리듯 부셔버리겠다는 말입니다. 깨뜨려도 아까움이 없는 그릇이고.... 그리고 깨어질 때 와장창 하는 소리가 스트레스를 확 날려버리는 그런 그릇이라는 것입니다. 아마도 부인들이 이런 맛에 신경질 나면 접시를 집어던지나 봅니다.

     

        이렇게 우리들도 아무 가치 없고, 깨어질 수밖에 없는 약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버림받고, 냉대 받습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이 보잘 것 없는 우리의 질그릇에 최고의 보배를 담게 되어 최고의 가치 있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질그릇이되 질그릇으로 불러지지 않습니다. 질그릇으로 불려 질 때는 아무것도 담겨지지 않을 때 부르는 소리이고, 예수를 담은 그릇이 되었기 때문에 ‘성도’라고 부릅니다. 믿으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기의 겉모습만 보고서 낙심할 때가 많습니다!!!!  왜 이리 못생겼노? 왜 이리 바보 같을까? 왜 이리 무능하나? 왜 이리 가진 것 없나? 이것은 자기 속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를 모르는 믿음 없는 사람이 하는 생각입니다. 우리들 속에는 최고의 보배인 예수가 담겨져 있습니다. 이 예수님으로 인하여 우리는 가치가 있는 인생이 되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예수 믿는 성도들이 질그릇이라 불리우되 예수 그리스도라는 보배를 담은 질그릇이니 질그릇이 자기 자신만 바라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함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인간이 아무리 권력과 명예가 있어도, 그것이 우리를 영원히 아름답게 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수고로 담겨진 것들은 영원하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들어오면 우리의 육체뿐만 아니라 우리의 영혼까지 존귀하게 됩니다. 존귀할 뿐만 아니라 능력의 존재가 됩니다. 우리가 할 수 없는 문제를 우리 속에 계시는 주님의 능력으로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있습니다.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내 속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가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사실 세상적으로 볼 때 대단한 타이틀을 가진 존재입니다. 신분은 로마의 시민권을 가졌습니다. 학벌은 가말리엘을 스승을 모셨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미국의 시민권과 하버드 대학을 졸업한 사람과도 같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그것이 자신을 존귀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을 존귀하게 하는 것임을 발견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생애를 다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전도자가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예수 그리스도가 소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교회 청소년 자녀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자신을 보는 눈이 달라지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청소년들이 이런 말씀을 자주 들어야 합니다. 예수가 그 인생에 없으니 어깨가 축 처지고, 그냥 기가 죽어서 사는 것이 아닙니까? 저는 우리 아이들이 기가 죽어 있는 것을 보면 가슴이 아파요. 우리 교역자들, 우리 교사들이 그들에게 너는 하나님의 존귀한 자녀다. 하나님의 공주와 왕자들이다. 그것을 너희가 분명하게, 그리고 확실하게 알게 되기를 바란다고 가르치고, 외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존귀한 존재가 되는 것은 세상의 부귀나 명예가 아닙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질그릇과 같은 우리를 보배로운 존재가 되게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는 우리의 인생을 새롭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내 속에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내 삶의 능력이요 힘의 근원이 됩니다. 주님으로 말미암아 진정 평안과 행복을 누리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따라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보배를 가졌기에 어떤 환경에서도 좌절하지 않음을 가르쳐줍니다. 질그릇에 담긴 보배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내 삶의 중심에 모시는 존재입니다. 종이 한 장은 힘이 없습니다. 바람이 불면 날아가고, 바늘이나 못으로도 쉽게 구멍이 뚫립니다. 그러나 그 종이 한 장도 단단한 바위에 붙어있으면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못으로 구멍을 뚫어도 뚫리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비결은 종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위에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아침에는 웃다가도 점심에는 사소에 일에도 화를 내는 것이 사람입니다. 누군가에 의해 조그마한 상처를 입어도 그것 때문에 낙심하는 것이 사람입니다. 그러나 연약한 우리에게도 예수 그리스도가 들어와 주인이 되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환경을 초월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기독교의 역사를 고난의 역사라고 합니다. 고난 뒤에는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고난을 견디는 것도 능력입니다. 고난이 없는 신앙은 검증되지 않는 신앙입니다. 기독교의 부흥은 고난이라는 길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진짜 신앙과 가짜 신앙의 차이는 고난에 따라 구분됩니다. 가짜 신앙인은 고난을 견디지 못하지만, 진짜 신앙인은 고난가운데서 주님을 찬양합니다. 마치 어두움 속에 불빛이 더욱 빛나는 것처럼, 진짜 신앙인은 어두울수록 더욱 밝아집니다. 8-10절에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충신은 나라가 위태로울 때에 나타납니다. 주님 안에서 진정한 능력은 고난을 통해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을 당할 때 고난만 바라보지 말아야 합니다. 고난 뒤에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집어던지면 깨질 수밖에 없는 질그릇과 같이 미천한 우리가 대통령도 할 수 없고, 3백명 가까운 이 나라의 국회의원들도 할 수 없는 이 시대의 국가와 국제평화와 영원한 영적인 문제를 논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이름이라는 보배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겉 사람은 좀 늙어가고 약해도 내적인 힘이 있어 어떤 상황에도 마음에 흔들림이 없으니 이보다 더한 능력이 어디 있겠습니까? 잠깐뿐인 육적인 것보다 영원한 영적인 것의 가치를 깨닫는 영안을 떴으니 이보다 큰 기쁨이 또 있겠습니까? 어떤 일이 있어도 낙심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없으면 굶으면 되고, 계속 굶으면 죽으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자녀를 죽게 내버려두시겠습니까? 만일 죽는다 해도 그 후에는 더 큰 응답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살면 되는 것입니다.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기꺼이 그 분의 종 된 것을 전파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질그릇과 같이 무가치한 우리 인생에 예수님을 만나게 하시고, 예수님으로 인해 존귀한 인생, 축복 받는 인생으로 변화된 것을 감사합니다. 자신 보며 실망치 않게 하시고 내 안에 계신 주님으로 인해 풍성한 삶을 살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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