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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약 갈라디아서 1:7-10/ 복음의 순수성을 지키자 [새벽]
  • 조회 수: 491, 2013.10.05 21:58:30
  •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를 책망한 것은 그들이 다른 복음을 쫓기 때문이었읍니다. 사도 바울은 일단은 그들이 쫓는 것을 다른 복음이라고 부르고 있읍니다. 하지만 7절에 보면 바울은 그것을 복음이라고 부르는 것을 거절합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말 뜻 그대로 복된 소리, 복된 소식입니다. 들음으로 인해서 복이 되는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복음은 들음으로 복된 것입니다. 들음으로 믿음이 생기고 들음으로 구원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음을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어야 합니다. 복된 소식이기 때문이지요. 바울은 롬10:13에서 복음을 들려주는 것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읍니다.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이와같이 복음은 들을때  귀하고 복이 되는 그런 좋은 소리입니다. 그런데 들어도 전혀 복되지도 않은 소리를 어떻게 복음이라고 부르겠읍니까? 들음으로 인해서 손해가 되고, 들음으로 인해서 망하게 되는 그런 소리는 복음이 아닙니다. 갈라디아 교회를 유혹하는 거짓 선생들이 부르짓는 소리가 그러했읍니다. 그들이 부르짓는 것은 갈라디아 교회를 망하게 하는 길로 인도하기 때문에 어떤 또 하나의 다른 복음도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에서 진일보한 것처럼 보이고 더욱더 경건을 사모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이 정말 원하는 것은 하나님도 아니고 그렇게 율법적인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단지 거짓 선생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복음이 당연히 누려야 될 영광을 가로채려고, 또한 사도 바울이 고난을 통해 갈라디아 교회 내에서 쌓아놓은 존경을 가로채기 위해 바울과 복음을 음해하려고 하는 잡소리에 불과한 것입니다. 복음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사람과 복음의 역사를 시기하고 방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잡소리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단지 사람에게 인기를 끌기 위해서 입에 발린 달콤한 몇 마디가 첨가됐을 뿐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 앞에서 그들을 냉소합니다. 별것 아니다는 식으로 애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중요하면서도 날카로운  말 한마디를 놓치지 아니합니다. 쉬운 말로 표현하자면 “그렇게 천방지축으로 까불지 말라. 너희가 하나님 두려워함도 없이 까불어되는 모양인데, 하나님의 저주를 기억하라”는 식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또 하나의 교훈을 찾을 수 있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복음을 저버리고 엉뚱한 소리를 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용서치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것과 관련하여 바울은 8절과, 9절에 걸쳐서 두번씩이나 하나님의 저주를 선포하고 있읍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접하는 복음전파자들, 특별히 말씀을 전하는 교역자들은 조심을 해야 합니다. 사람이 원한다고 해서 인간적인 소리를 해서는 않되는 것입니다. 때때로 순순한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한다는 것은 전하는 자나 듣는 자들이 한결같이 지루하고 따분할 수도 있읍니다. 그래서 때때로 청중들은 설교시간에 뭔가 새로운 것들을 듣기 원할 때가 있읍니다. 그리고 설교자들도 가능하면 청중들이 원하는 어떤 다른 것들을 이야기하고 싶어질 때가 있읍니다. 그러나 복음은 여러가지로 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단 한가지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10절에 있는 사도 바울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사람을 기쁘게 하랴, 하나님을 기쁘게 하랴”

    이 물음이 늘 말씀을 전하는 자신에게 기억되어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잘못 전하므로 하나님의 저주가 있기 때문입니다.
    또  교회가 어떤 곳입니까? 교회는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시인하고 은혜받은 사람들이 모인 교회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복음을 전하고, 복음을 듣게하고, 복음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개개인은 이 복음으로 은혜를 받읍니다. 복음 그 자체가 우리에게 은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전체의 분위기는 은혜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때때로 교회가 복음에서 떠나고 은혜에서 떠나 있을 때가 있읍니다. 개개인도 받은 은혜를 쏟아버릴 때가 있읍니다. 은혜를 사모하여 받기는 힘들지만 받은 은혜를 쏟아 붙기란 정말 쉬운 일입니다. 갈라디아 교회가 그랬읍니다. 바울이 애써 전한 복음을 저버리고 인간적인 달콤한 말에 넘어가서 은혜를 저버리는 것입니다.    

    주로 이러한 현상은 주의 십자가와 그 피를 무시하는되서 비롯됩니다. 주님의 십자가를 무시하고, 주의 대속의 피를 멸시하므로 은혜가 떠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다른 엉뚱한 것을 추구하려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언제 십자가의 능력을 받아드렸읍니까? 언제 주님의 보혈에 감동을 받고 죄씻음을 받았읍니까? 한 십년쯤 되었읍니까? 한 오년쯤 되었읍니까? 아니면 한 일년쯤 되었읍니까? 그리고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지금 이 주님의 십자가와 그 피가 이룬 구원에 얼마나 감격하고 있는가? 아직도 처음 받은 은혜와 감격을 똑같이 유지하고 있는가?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게 책망합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은혜로 당신들을 부르신 그 하나님의 은혜를 그렇게 쉽게 저버리고 실증을 내다니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읍니다.” 여러분, 이런 책망이 우리에게 해당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만약 사도 바울의 이런 책망이 나에게 해당된다면 멸망의 길에 접어들기 전에, 하나님의 저주가 떨어지기 전에 빨리 회개하고 돌이키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지켜보고 계십니다. 이 세벽에도 주의 은혜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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