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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약 갈라디아서 1:11-24/ 복음의 출처 [새벽]
  • 조회 수: 671, 2013.10.05 21:59:52
  • 앞에서도 살펴본 바와 마찬가지로 거짓 선지자들은 사도 바울이 전하는 복음이 바울 개인에게서 나왔지 하나님께로부터,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고 반박하므로 사도 바울이 전하는 복음과 그의 사도적 권위를 떨어뜨리려고 하였읍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러한 자신의 공격자들의 공격에 대하여 갈라디아 교회 앞에서 자신과 복음을 변호하는 글을 쓰고 있읍니다. 

    사실 사도 바울은 다른 사도들보다 사도의 권위적인 면에서 객관적으로 볼때 약한 것이 사실입니다. 사도라는 직분은 교회 역사로 볼때 특별한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사도라는 직분을 인정하지 않읍니다. 왜냐하면 사도직은 초대교회에만 한정되었던 직분이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단회적이라는 말입니다. 사도라 불려졌던 인물들은 예수님의 행적을 목격하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직접 눈으로 목격한 사람들이었읍니다. 그래서 신약 사도행전 이하에서 나타나는 사도직을 받은 사람은 예수님의 열한 제자들과 그 외에 배신자 가룟 유다를 대신하여 사도행전 1장 후반부에 사도 베드로가 말한 바대로 “요한이 세례를 베불 때부터 예수님이 하늘로 올리워 가시기까지의 기간을 예수님과 늘 접했던 사람 중에 맛디아와, 예수님의 동생 중에 하나인 야고보를 포함합니다. 그리고 그 외에 또 다른 한 사람이 있으니 그가 사도 바울입니다. 그런데 바울을 제외한 모든 사도들은 직접 눈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전체 생애를 목격한 사람입니다. 바울 혼자만 예수님을 목격하지 못한 사람에 속합니다. 그러니 자연히 바울의 사도적 직분은 객관적으로 볼때 흠이 있을 수도 있고 정통성의 시비를 받을 수도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도 바울의 약점을 이용하여 갈라디아 교회를 미혹하는 거짓 선생들은 사도 바울의 사도직과 그가 전하는 복음에 대해 정통성 시비를 그치지 않았읍니다. 

    이러한 거짓 선생들의 시비에 사도 바울은 자신이 전하는 복음의 진실성을 변호했읍니다. 먼저 그는 그가 전하는 복음은 그가 만들어냈거나 다른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것이라고 변호합니다. 사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영접하고 그때 주님에게서  참된 복음을 받은 것입니다. 오히려 그 이전에야말로 사람이 만든 유전을 따르고 섬겼지만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이후로는 그의 인간적인 모든 배경은 사라져버렸읍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도, 세상적으로 볼때는 선망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그의 막대한 학문적 배경과 사회적 신분을 복음을 위해 무시하려고 했읍니다. 그는 이 모든 것들을 베설물로 여겼읍니다. 이전에는 유대교적 유전과 율법에 열심이 득심하였고, 또 그로 말미암아 복음을 전하는 교회를 적극적으로 핍박하였지만 그가 예수님을 만난 이후로는 그가 핍박한 이 복음을 자랑하고 즐겁게 전했읍니다. 그를 음해하는 거짓 선생들도 이것을 잘 알것입니다. 그가 경험한 다메섹 도상의 사건은 그를 사도로 만들기에 충분한 것이었읍니다. 그는 예수님의 생애 전체를 목격하지 못했지만 다메섹 도상의 그 한 순간에 영광스러운 주님을 그의 눈과 귀로 접한 것, 이것이 그를 사도로 만들었읍니다. 그리고 이를 전체 사도들이 인정했읍니다. 

    그렇다고 바울이 그 순간에 바로 사도라 칭함을 받지는 않았읍니다. 그는 성급하고 조급하게 굴지 않았읍니다. 그는 다메섹 도상의 사건이 있고난 뒤에 어떤 사람도 만나지 않고 혼자 아라비아 사막으로 가서 경건의 훈련과 사색을 통하여 깊이 있게 그의 사역을 준비하였읍니다. 그 후에 다른 사도들을 만나고 그의 사도직도 인정을 받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깨닫게 되는 것은, 첫째, 복음은 아무나 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중생되지 못하고, 예수님의 부르심이 없으면 누구도 복음을 전하지 못합니다. 복음의 주인은 우리 주님이십니다. 우리 주님이 허락하실 때에야만 비로소 복음의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할때 꼭 기도하시고 전도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자기의 체험적 간증이 필수적이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경험하지 못하고, 자기가 확신하지 못한 것을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전할 수 있겠읍니까? “복음의 능력을 알기 위해서는 나를 보십시요”라는 자기 간증이 필요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하고 있읍니다. 복음을 전할때 그는 간간히 그의 과거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을 보여주며 변화된 자기의 모습을 통해 간증하며 복음을 전합니다. 여러분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자신이 복음을 경험한 간증거리를 가지고 계십니까? “내가 복음을 접한 후 이런 달라진 삶을 살아가고 있읍니다”라고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하겠읍니다.  
      
    셋째, 복음전파는 깊이 있는 훈련과 깊이 있는 사색을 동반해야 합니다. 이것을 경건의 훈련과 말씀 묵상으로 표현해도 되겠읍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접한 후에 곧 바로 자기의 동역자를 찾지 않았읍니다. 그는 처음부터 분주한 삶을 살지 않았읍니다. 대신에 홀로 떨어져서 훈련을 받았읍니다. 훈련이 없는 신앙, 사색이 없는 신앙은 위험합니다. 끓는 냄비처럼 빨리 달아오르지만 또 금방 식어져버리는 신앙, 곧 냄비신앙으로 표현되는 이러한 신앙은 깊이 있는 경건 훈련과 사색이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새벽기도를 통하여 이 경건의 훈련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자주 건전한 기도원에도 가셔서 기도의 훈련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또  틈틈히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십시요. 이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당신의 사역자로 만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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