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페이지
  • 신약 갈라디아서 3:1-5/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새벽]
  • 조회 수: 851, 2013.10.05 22:10:32
  • 잘못된 과거를 깨닫고 그것을 청산한 사람이 다시 잘못된 과거로 돌아간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갈라디아 교회 교인들은 과거를 청산하고 이제 성령으로 막 시작하여 자라가고 있는데 열매도 제대로 맺지 못한채 잘못된 과거로 다시 돌아갈려고 하고 있읍니다.

    어떤 사람이 지나간 과거를 깨끝이 청산하고 새 사람이 되어 이제껏 과거의 자아를  지배하던 악한 사탄을 쫒아내 버렸읍니다.  그리고 신자로서의 생활을 충실히 했는데 그만 어쩌다가 보니 다시금 과거의 생활로 돌아가게 되었읍니다. 그런데 갈곳을 잃고 찾지 못하던 사탄이 옛 고향을 그리워하여 찾아와 보니 자기가 있었던 곳이 이전보다 더 깨끝이 청소가 되 있거든요. 그것을 보고서는 너무 너무 기뻐서 자기들의 친한 일곱 귀신까지 데리고 돌아오는 지경에 이르게 되는 것, 처음 형편 보다 나중 형편이 더 나빠진것, 이것은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신 것으로서, 모든 것을 말끔히  청산했다가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사람의 비참한 모습입니다.

    갈라디아 교인들은 어렵게, 어렵게 그들의 과거를 청산했읍니다. 4절에 보면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너희가 이같이 많은 괴로움을 헛되이 받았느냐? 고 반문하고 있읍니다. 정말 과거를 청산하는데는 많은 괴로움이 따릅니다. 살을 도려내는 것 같은 아픔이 뒤따를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모태 신앙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중간에 모든 과거를 결단하고 신실하게 믿음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진심으로 존경합니다. 이때까지 내가 붙들고 온 기반들을 헌번만에 몽땅 허물고 새롭게 새우기가 어디 그렇게 쉬운 일입니까?

    그런데 갈라디아 교인들은 그것을 해냈읍니다. 그것을 하는데 정말 많은 괴로움이 따랐으나  그들은 그들의 기반을 모두 허물고 이제는 전적으로 성령님의 도우심을 의지하고 간구했읍니다.  성령은 그들을 역사하기 시작했읍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들은 어리석게도 성령을 물리치려고 합니다. 그들 스스로도 뭔가를 이룰 수 있다고 속삭이는 교묘한 율법의 꼬임에 넘어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뭔가 된다고 하는 교만함이 그들의 마음속에 서서히 깃들기 시작해서일까요? 그들의 교만함이 깃들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사탄이 율법의 매력으로 그들을 넘어뜨리기 시작하는 것은 아닙니까? 그러면 율법의 어떤 면이 그렇게 그들에게 매력을 주는 요소가 됩니까? 율법의 독소가 뭔데 그렇게도 많은 사람을 악에 넘어가게 하는 것입니까?

    율법의 특징은 단적으로 말해서 인간의 능력을 부추깁니다. 인간이 마음을 다잡고 노력하면 뭣이고 못이룰게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적 신앙은 내 능력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한번 흡족하게 해 보겠다는 것입니다. 성화과정은 내가 성령의 도우심으로 거룩하게 되가는 과정을 말하는데, 성화 과정도 내힘으로 한번 해 보겠다는 것입니다. 40일 금식도 하고 매일 철야 기도도 하고 해서 내가 하나님의 영화의 단계까지 한번 나아가 보겠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못할게 없다는 식입니다.

    불교의 신앙이 그렇읍니다. 인간 세상에 사는 모든 중생들이라고 할찌라도 속세의 모든 것에서 해탈하여 도를 닥고, 수련을 쌓아 열반의 경지에 이르면 부처가 된다는 것입니다. 제 노력으로 하나님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불교 신앙은 인간 쪽에서 볼때는 매우 호감이 가는 내용을 담고 있읍니다. 내가 신이 될 수 있다고 하는 데에야 주저할게 뭐가 있겠읍니까? 나를 추켜세워주는데에야 누가 마다하겠읍니까? 그런데 영광을 홀로 받기 원하시는 하나님 편에서 볼때에 이 불교적 신앙 보다도 더 불쾌한게 어디 있겠읍니까? 인간들이  하나님, 조금만 기다리십시요. 제가 곧 하나님과 같이 되어서 당신의 영광에 동참하겠읍니다. 라고 하는데 하나님이 어찌 불쾌하지 않겠읍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런 자들의 행위에 대해서는 한치도 봐주는 것이 없이 율법의 자로 재보실 것이고 조금이라도 거기에 부족한 것이 있을 것 같으면 가차 없이 쳐버리실 것입니다.

    율법적 신앙의 독소가 바로 여기에 있읍니다. 외적으로 볼때는 한없이 인간을 드높히고 영광스럽게 하는것 같지만, 우리의 구원에 있어서는 결코 따라 잡을 수 없는 생명줄을 내려 놓고 그것을 붙잡으라는 식입니다. 그런데 항상 외모에 신경을 쓰는 인간들이 제 형편도 모르고 외적인 영광만 붙잡을려고 하다 보니 도리어 저주의 자리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면에서 사탄은 신자를 넘어뜨리는데 율법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돼지의 아랫 배가죽을 살살 간질면 제 죽는지 모르고 앳따, 모르겠다 하고 발랑 나자빠져서 좋다고 네 발을 발발발 떠는 것입니다. 그저 겉으로 추켜 세우고 뒤에서 등치는지도 모르고 좋다고 해해 거리며 속는 인간이 얼마나 많읍니까? 율법을 이용하여 속이는 사탄의 꾀에 빠지는 갈라디아 교인들이야말로 이 꼴이 아니고 뭐겠읍니까? 그래서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을 향하여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라고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교훈을 얻읍시다. 우리가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는데, 교만함이 깃든다면, 남보다 기도를 많이 한다고, 남보다 성경적 지식이 많다고, 남보다 교회일을 많이 한다고, 남보다 교회의 중직을 받았다고 해서 알지 못하는 교만이 생기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백번을 반복해서 이야기해도 사탄의 유혹입니다. 그러므로 경성하시고, 교만 잠에서 깨어나시기 바랍니다. 교만의 선봉이요, 속임수의 아비인 사탄은 늘 우리를 살펴서 틈만 나면 우리를 넘어뜨리려 혈안이 되어 있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시작해서 육체로 마치려느냐고 외치는 사도 바울의 사랑의 절규를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갈라디아 교인들의 가능성이 바로 우리의 가능성도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고 늘 겸손하게 깨어서 기도하시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 0 ...

번호  분류  제목  조회
notice 공지사항 94055
1973 요약 신구약 새벽설교 465
1972 요약 신구약 새벽설교 71
1971 요약 신구약 새벽설교 161
1970 요약 신구약 새벽설교 502
1969 요약 신구약 새벽설교 192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