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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약 갈라디아서 3:1-5/ 삼위일체 하나님(1) [새벽]
  • 조회 수: 848, 2013.10.05 22:11:52
  • 어제에 이어서 오늘도 3장 1절부터 5절까지를 다시 한 번 살피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 그래서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십니다. 삼위라고 하는 말은 주체적으로 느끼고, 알고, 판단해서 행동하는  각각의 세 인격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정의할 수 있고, 일체라는 말은 이러한 각기 다른 주체적인 세개의 인격이 하나의 통일된 모습을 나타내는 양상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래서 삼위일체 하나님이라고 하면 말 그대로 각각의 삼위, 곧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각각 주체적으로 느끼고, 알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고유의 모습 속에서 모든 것들이 일치하고 통일된 모습으로 나타나는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 있겠읍니다. 그렇지만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하여 제가 설명하는 것도 정확하게 맞는지는 모르겠읍니다. 왜냐하면 삼위일체 하나님은 우리에게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신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하여 오늘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하는 이유는, 본문에 나타난 바와 같이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의 교인들을 역사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1절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이 여러분의 눈 앞에 생생한데..... 라고 표현함으로써 갈라디아 교인들이 그들을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들을 뚜렷하게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 성자 하나님은 부족한 우리들을 위해 무엇을 하셨는가를 아는 것이 우리에게 중요한 일입니다. 왜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까? 그것은 감히 우리의 육체와 영혼, 전 인격이 하나님 앞에 내세울 만한 가치가 전혀 없음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누더기와도 같은 우리 인격을 하나님 앞에 감히 내세울 수 없기 때문에 거룩하고, 성결하셔서 능히 하나님 앞에 우리를 대신해서 내세우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성자 하나님, 곧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무슨 자격으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갑니까? 그것은 그분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과 약속,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 하신 일 때문에 그렇읍니다. 그분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잃어버린 양과 같은 죄많은 우리 인간들을 위해 이 세상에 오셨읍니다. 그분이 이 세상에서 진정으로 느끼신 것은 우리들을 향한 측은함, 안타까움입니다. 우리를 진심으로 불쌍히 여기셨던 것입니다. 돈 있고 능력있는 사람이 어떤 거렁뱅이를 불쌍히 여긴다는 것은, 그 자체가 그 거렁뱅이에게 큰 축복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권능이 있고, 능히 모든 것에서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는 주님,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 많은 인간을 불쌍히 여긴다는 것은 그 자체가 벌써 우리 인류에게 축복이 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부족한 우리의 부분을 그분이 대신해서 채우셨기 때문입니다. 율법이 많은 것들을 우리에게 요구하였지만 우리는 그것을 채울 수 없어서 멸망할 수 밖에 없었읍니다. 율법의 요구를  완전히 채우지 못한다는 것은 그것이 모두 불결한 죄임을 말합니다. 죄는 우리의 운명에 대해 치명적입니다. 죄는 거룩한 하나님의 성품과 반대되는 것입니다. 빛 앞에서 어두움이 견딜 수 없듯이, 죄 많은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견딜 수 없는 것입니다. 거룩한 모세였지만 하나님은 그의 면전을 대하는  모세를 향하여 얼굴을 가리우라고 말씀하셨읍니다. 왜냐하면 모세라고 할찌라도 죄 있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얼굴을 대하는 그 순간 그는 죽을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모세 뿐만 아니라 구약의 이사야도, 다니엘도, 신약의 사도 요한도 하나님을 뵙는 순간 사색이 되어 그 얼굴을 가리우고 부들부들 떠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죄는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인간을 두려워 떨게 하고, 결국은 멸망하게 만드는, 말하자면 우리 운명에 있어서 너무나도 우리를 치명적인 상태에 빠뜨립니다. 이러한 우리의 부족한 부분을 우리 주님께서 채워 주셨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다 채우지 못한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켜 주셨읍니다.

    또 그분은 우리가 채우지 못하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대신해서 만족시켜 주셨읍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어떤 것입니까? 하나님의 공의란 쉽게 이야기 해서 잘한 사람에게 상주시는 것과 잘못한 사람에게 벌을 내리시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속성을 가지고 있읍니다. 잘한 사람에게는 영광의 상으로, 못된 행실을 하는 사람에게는 엄한 벌을 내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읍니까? 우리는 저마다 먹고 마시는 죄가 있읍니다. 이 죄의 열매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성경은 죄의 삯은 사망, 곧 멸망이라고 말씀하고 있읍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우리의 죄에게  나타난다면 그 결과는 멸망과 죽음입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려고 한다면 우리는 죽고, 멸망당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읍니다. 이 공의는 꼭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은 신실한 하나님이 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뭔가를 변동시키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 분의 공의는 가부간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 하나님의 공의가 우리에게 이루어진다는 것, 이것은 곧 우리에게 죽음과 멸망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멸망하실 수 없읍니다. 그분에게 또 하나의 속성은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우리를 사망과 멸망의 자리에 쉽게 넘겨줄 수 없도록 만듭니다. 우리가 비록 죄가 많다고 하나, 하나님이  또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하는 이 사실은  어떻게 보면 하나님에게 있어서 곤란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말 하나님 앞에서 곤란한 존재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에 대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읍니다. 그저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고개만 숙이고 있어야 할 존재입니다. 우리 자신을 향하여 한없이 답답해 하시는 하나님의 이 답답함을 우리는 속 시원하게 해결해 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누가 이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한목에 다 채워줄 수가 있겠읍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 성자 하나님께서 이 일을 해 내셨읍니다. 그분이 우리를 대신해서 율법의 요구를 다 채워주셨고, 우리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저주와 멸망의 자리에 서심으로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의  목마름을 대신해서 채우셨읍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만 받으면 다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사실이 갈라디아 교회를 향해서 성자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입니다.

    이 주님을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 성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일을 바르게 알아야 우리는 바른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가 믿음에서 흔들리는 것은 옳바로 주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며 그분이 우리를 위해서 하신 일의 결과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잘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 교회가 성령으로 시작해서 육체로 마치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것은 이와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위해서 하신 일들을 정확히 바로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올 뿐만 아니라 지식과 깨달음을 통해서 견고하게 서게 된다는 사실을 깨닫는 이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너희가 성령으로 시작해서 잘 깨닫지 못함으로 육체로 돌아가려느냐? 라는 사도 바울의 외침이 오늘 이 새벽에도 우리의 가슴에 계속해서 메아리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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