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페이지
  • 신약 갈라디아서 4:16-20/ 바울의 진심어린 책망 [새벽]
  • 조회 수: 356, 2013.10.05 22:23:21
  • 한때 갈라디아 교회는, 우리가 생각할 때 아주 이상적이라 할 수 있는 서로 사랑하고 아끼고 위해주는 모범적인 교회였읍니다. 그런데 이 교회가 이단의 사상에 물들어 바울이 염려하는 교회가 되었읍니다. 갈라디아 교회가  어떻게 새워진 교회입니까? 사도 바울의 피와 땀이 흘려진 그러한 교회가 아닙니까? 이 교회를 세우기 위해 그는 아픈 육신도 마다하지 않았읍니다. 그러기 때문에 이 갈라디아 교회는 더욱 더 사도 바울이 사랑하고 위로를 받는 교회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교회가 잘못된 길로 가니 사도 바울이 얼마나 애가 타겠읍니까? 그래서 그는 이 교회를 향해 신랄하게 책망합니다. 하지만 신랄한 책망이라고 해도 이것이 악의의 감정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정말 사랑하고 안타까운 심정에서 나온 것이기에 우리가 귀하게 받아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바울의 진심어린 책망을 갈라디아 교회가 받아드렸을까는 이 본문이 잘 말해주지 않고 있지만 이를 통해서 오늘 우리는 참되고 진실된 책망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사람들은 보편적으로 자신에 대해 좋게 평가해 주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자신을 추켜세워주면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알면서도 괜히 기분이 좋읍니다. 이같은 이유에서 사람들은 가능한 한 다른 사람 앞에서 칭찬하기를 좋아합니다. 칭찬한다고 해서 돈드는 것도 아니고, 자기 자신이 전혀 손해를 보는게 없으니까 쉽게 칭찬할 수 있지요. 사실 사람들 앞에서 싫은 소리 하기가 그리 싶나요? 용기가 없으면, 그리고 진심으로 사랑함이 없으면 남의 잘못을 지적하고 책망하기가 그렇게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좋은 소리를 하는 사람보다 여러분에게 충고도 하고  싫은 소리를 많이  하는 사람들을 더 가까이 하시기 바랍니다. 진심에서 우러러 나오지 않으면 듣기 싫어하는 소리 아무나 할 수 없읍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를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그들이 멸망의 자리로 넘어가는 것을 볼 수 없었읍니다. 그들이 듣기 싫어한다고 해서 그대로 내버려 둬 보십시요. 어떤 일이 생기겠읍니까?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고 사탄이 지배하는 교회가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이유에서 바울과 같은 심정으로 교회를 책망할 수 있는 목회자를 모시고 있음을 감사해야 합니다. 사람들로부터 인기 얻기를 좋아하는 목회자는 잘못을 보고도 책망하지를 못합니다. 그러나 정말 성도를 사랑하는 목회자는 그들이 잘못된 길로 갈때 마음 속에 큰 고통을 안고 책망을 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과는 달리 이단에 속한 거짓 선생들은 어떠합니까?  갈라디아 교회를 넘어뜨리려는 이단들은 갈라디아 교회를 교묘하게 속이고 듣기 좋아하는 말들로만 포장해서 그들의 마음을 빼앗읍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를 사랑하기에 바로 세울려고 책망하고 있지만, 이단들은 그들의 마음을 빼앗는 것이 목적이므로 그들이 듣기 좋하하는 소리만 늘어 놓는 것입니다. 사실 구약 이스라엘 전체 역사 속에는 진실로 사랑하기에 안타까운 심정을 가지고 책망을 한 선지자는 대접을 받지 못했고 입에 발린 달콤한 말만 즐겨하는 거짓 선지자들은 어디를 가나 환영을 받았읍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어떻읍니까? 그 뒤에는 항상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만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듣기 좋아하는 소리를 한다고 해서 이단들에 넘어가는 갈라디아 교회가 얼마나 안타까운일입니까?

    여러분, 듣기 싫다고 해서 충고하는 사람들을 물리치지 마십시요. 르호보암 왕은 진심에서 우러러 나온 신하들의 충고의 말을 받아드리지 않고 듣기 좋아하는 소리를 경청한 결과 이스라엘 나라를 분리시켜 놓고 말았읍니다. 잠언에서도 충고를 많이 할 수 있는 사람을 가까이 두라고 하고 있읍니다. 듣기 좋은 말을 가까이 하는 자는 멸망의 길에 서지만 많은 책망은 인생에 있어서 양약이 된다고 하였읍니다. 항상 우리의 주위에는 손해를 무릎쓰고 진심어린 책망과 충고를 해 주는 충신과 같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듣기 좋은 말만 하는 간신배와 같은 사람들이 함께 있는 법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여러분에게 좋은 말 하는 사람들보다 충고를 즐겨하는 사람을 많이 가까이에 두십시요. 결국 여러분이 어려울 때 진정으로 여러분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은 여러분에게 않좋은 인상을 받으면서도 용기있게 충고를 할 수 있는 사람인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가 죄를 지어도 괜찮다, 괜찮다 하지만 성령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지을 때마다 가슴을 아프게 하고 양심을 통하여 우리를 책망합니다. 만약 누군가가 우리의 죄를 지적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우리가 죄를 깨닫고 회개할 수 있었을까요?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었을까요? 구원 자체가 죄에 대한 책망과 그 책망을 받아드리는 과정에서 생겨나는 것 아닙니까? 설교 속에 나타난 책망을 달갑지 않게 여긴다면 신앙의 진보를 나타낼 수 없읍니다. 설교 속에서 나타난 교훈과 책망을 나의 것으로 받아 드리고 그것이 그런가 하여 뉘우치고 고치면 그것이 바로 신앙의 진보로 나타나게 해 주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책망을 달갑게 받아드리십시요. 사도 바울과 같이 교회를 사랑하는 교역자의 설교 속에는  사랑의 간절함으로 만들어진 책망이 있기 마련입니다. 아무쪼록 이 사랑의 책망을 받아들이시고 자기의 것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댓글 0 ...

번호  분류  제목  조회
notice 공지사항 93759
679 새벽 1139
새벽 356
677 새벽 403
676 새벽 813
675 새벽 596
674 새벽 653
673 새벽 762
672 새벽 569
671 새벽 791
670 새벽 469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