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페이지
  • 신약 마태복음 12:23-37/ 성령을 훼방하는 죄 [주일낮]
  • 조회 수: 826, 2013.10.06 17:48:57
  • 세상을 살다가 보면 원치 않는 병이 들 때가 있습니다. 그 병이 감기와 같이 시간이 지나면 회복이 되는 병이면 그래도 좀 안심을 합니다. 그러나 암이나 불치의 병에 걸려서 회복될 가능성이 없는 병에 걸렸다면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평소에 건강을 위해서 운동도 하고 음식조절도 해야 합니다. 특별히 회복이 되지 않는 질병에 걸리지 않도록 노력을 하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습관이나 정신적인 면에 있어서도 가끔 나쁜 짓을 하다가도 스스로 정상적인 사람으로 회복 될 수 있는 것은 다행한 일입니다. 그러나 회복이 되지 않는 것들도 많이 있습니다. 마약은 한번 손을 대면 폐인이 되어야 그만 한답니다. 죽는 날 까지 마약을 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도박을 하는 것... 경마나 경륜 같은 데 빠지는 것, 이런 것도 중복이 되면 재산 다 날리고 처자식까지 팔아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거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설명하기 위해서 이런 예를 들어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회복되지 않는 것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죄라는 것도 우리가 이 세상을 살다가 보면 어쩔 수 없이 짓는 죄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다 용서를 해 주시기 때문에 이렇게 우리가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용서받을 수 없는 죄가 있다는 것입니다.

     

    죄에는 용서 받을 수 있는 죄와 용서받을 수 없는 죄,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루, 일흔 번에 일곱 번씩 죄를 지어도 회개하면 용서하라(마18:21~22절) 하시던 예수님께서도 이 세상이 바뀌어 새롭게 된 후에라도 용서받을 수 없는 죄가 있다 하셨는데 그것은 성령을 거역하고 훼방하는 죄입니다.(마12:31~32) 성령을 거역하고 훼방하는 죄는 진리를 거역하고 훼방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이 기록한 편지에서는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나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요일5:16)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나무도 좋고 열매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열매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그 열매로 그 나무를 아느니라.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던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유대인들은 주님의 사역을 사단의 힘을 빌려서 행한 것이라고 비난하는 어리석은 주장을 하였습니다. 이 주장은 정말 가공스러운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말씀입니다. 주님의 말씀 가운데 이보다 더 두려운 말씀은 없습니다. 사람이 한번 빠져 들어가면 영원히 구원 받을 수 없는 타락의 부분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무한하신 사랑으로 인간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은 인간이 어떤 죄를 범하더라도 그 사람이 회개하기만 한다면 용서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죄, 곧 “성령을 훼방하는 죄”는 결코 용서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 경고의 선포는 우리가 읽을 때마다 두려움을 갖게 합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의 사역의 궁극의 목표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는 것이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절망적이라고 포기해 버린 자들을 구원하여 새롭게 고쳐주실 수도 있으시고, 그렇게 하시겠다고 선포하시기도 하셨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그 주님께서 절대로 구원받을 수 없는 영혼의 상태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주님의 경고를 살펴봅시다. 이 말씀은 경고이지 판결은 아닙니다. 주님은 이 말씀에서 바리새인들과 유대인 지도자들을 용서 받지 못할 죄를 이미 범한 사람으로 인정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같은 죄를 범할 만큼 가까이 와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본문의 이 비통스러운 말씀에서 그들이 거의 그 선을 넘으려는 위치에 있다는 사실을 밝히신 것입니다. 귀신들려 보지 못하고 말도 못하는 사람에게서 주님은 귀신을 쫓아내심으로 귀신들린 사람이 보고 듣게 하셨습니다. 그 모습을 본 많은 유대인들이 주님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하려 합니다. 유대의 전통에 따르면 이런 불치의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일은 하나님의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과 유대인 지도자들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루어진 일 자체를 부인할 수 없기 때문에 주님의 일을 억지로 귀신의 왕인 바알세불을 힘입어 한다고 왜곡합니다. 이에 대한 주님의 결론적 경고가 이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에 대한 모든 죄와 모독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모독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서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우리는 이 말씀을 잘 이해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삼위일체 하나님,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그리고 성령 하나님은 어느 위격도 우월하거나 열등하시지 않습니다. 본문을 오해하면 성자 예수님을 반대하는 것은 용서를 받고 성령 하나님을 반대하는 것은 사하심을 받을 수 없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 라고 했을 때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을 모두 믿는 것이지 어느 분을 고르거나 어느 분은 불허하는 그런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본문에서 주님은 ‘나를 거역하는 것은 사함을 얻고 성령을 거역하는 것은 사함을 받지 못한다.’ 라고 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말씀하셨습니까? 주님은 자신의 사역을 바알세불을 힘입어 행한다고 반대하는 자들에게 ‘너희가 지금 나에게 반대하는 것은 어떤 것이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느냐?’ 책망하시며 ‘너희가 나만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훨씬 더 중요한 것을 반대하고 있다는 것을 아느냐?’ 하시며 28절에서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너희가 나를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고 편견과 오해로 나를 적대하는 것은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다. 그러나 성령을 거스르고 훼방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중요한 사역은 (1)죄인들이 죄를 깨닫고 회개하게 하고, (2)거듭나게 하며, (3)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게 하며, (4)빛과 진리로 인도 합니다. 다른 말로 바꾸면 성령께서는 창조와 구속을 완성시키는 일을 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1)인간의 심령에 오셔서 회개하게 하시는 성령의 활동을 적극적이고 의지적으로 배척하고 비난하며 방해하는 것, (2)오늘 본문의 바리새인들처럼 성령의 역사가 분명함에도 그것을 고의적으로 사탄의 일로 단죄하는 것, (3)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말씀의 능력을 가졌고 기사와 이적을 행함으로써 오히려 구원의 제반 사역을 방해하고 핍박하는 것, (4)성령의 역사를 사칭하여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렇게 고의로 성령의 구속 사역을 방해하는 사악한 심령은 참회와 중생의 기회를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영원한 심판의 자리에 떨어지고 말 것입니다.

     

      이 문제는 오늘의 성도들에게도 매우 중요한 경고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를 소망하며 그 백성이 된 자들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믿는 이 믿음대로 현실을 사는 사람은 매우 적습니다. 그래서 우리들도 성령을 훼방하는 자리에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우리가 자원하여 하나님의 나라의 시민이 되는 것이고, 그러므로 마땅히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를 지켜야 합니다. 예수를 믿고 신자가 된다는 것은 말로 하거나 지식으로 아는 것이 아닙니다. 바뀌는 것이고,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이제 내가 가게 될 천국의 시민으로 세상을 사는 것입니다. 죄와 사망에서 벗어난 의와 진리의 사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이런 신자가 되기를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그저 이 세상이 우리가 물려받아야할 목표인 것처럼 세상을 목적으로 하나님께 떼를 씁니다. 세상에서 잘되고, 세상의 것을 달라고! 이런 모습들이 우리를 신자의 위치를 지키지 못하게 만들고 우리의 삶을 하나님을 위하여 바치지 못하게 합니다. 그리고 늘 불평과 불만이 가득합니다. 나에게는 기회나 조건을 주시지 아니하셨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무엇이 부족하고 불만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요. 돈이 없고, 지위가 낮고, 건강을 안 주셔서 신자답게 살 수 없습니까? 이런 것들은 신앙생활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상 앞에 존재하며, 승리하는 데에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필요할 뿐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정말 필요하고 또 부족한 것입니다.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나님의 사람으로 사는데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덜 주신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나라를 넓히는 일을 위하여 부름을 받았고 이미 그 일꾼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할 일을 안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령 훼방 죄에 해당할지도 모릅니다. 이제 분발합시다.

     

댓글 0 ...

번호  분류  제목  조회
notice 공지사항 93594
2058 주일낮 565
주일낮 826
2056 주일낮 89
2055 주일낮 664
2054 주일낮 101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