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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약 갈라디아서 5:1-6/ 성령으로... [새벽]
  • 조회 수: 762, 2013.10.06 21:44:51
  •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두가지 면에서 자유케 하셨읍니다. 첫째는 율법으로 표현되는 종교적인 무거운 멍애로부터 우리를 자유케 하신 것이고, 둘째는, 감당할 수 없는 죄의 멍애에서부터 우리를 자유케 하셨읍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5장 1절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해방시켜 자유의 몸이 되게 하셨으니 여러분은 굳게 서서 다시는 종노릇 하지 마십시요 라고 갈라디아 교회에게 부탁하고 있읍니다. 다시 종노릇 한다는 것은 율법에 종노릇 한다는 것이요, 죄에 종노릇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때때로 율법에서 자유해야 한다고 하니까 어떤 사람은 율법으로부터의 자유가 방종을 부채질 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고 분개합니다. 만약 우리에게 고도의 종교적 표준이 없다면 어떻게 참된 종교인의 모습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하는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신 것은 율법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죄에서부터도 우리를 자유케 하신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율법에서 자유함을 누릴 뿐만 아니라  죄에서부터도 자유함을 누린다는 것은 율법으로 부터의 자유가 결코 방종으로 나타나지 않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성경은 율법이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완전하게 지켜지도록 하기 위하여 주어진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하여 가르치기 위해 사람들에게 주어졌다고  말씀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율법을 몽학 선생으로도 표현하고 있읍니다. 그러므로 율법 하에 있는 사람들은 그 자신이 얼마나 죄인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는 예외입니다. 율법의 모든 조항은 예수님에 의하여 지켜졌고, 완성되어졌읍니다. 예수님은 인류의 대표로서 이 율법의 모든 조항에 응했읍니다. 어떤 의미에서 이 율법의 준수라는 것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만을 위해 주어진 것과도 같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율법에 응하심으로 믿는 모든 사람이 율법에 응한 것이나 마찬가지 효과를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무리 죄인일찌라도 예수만 믿게 되면 우리는 완전히 율법을 지킨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현재 드러나는 의인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현재 그리스도와 같이 율법의 모든 요구에 응한 완전한 의인은 아니지만,  장차 하나님 앞에서 완전한 의인이 될 것이라는 믿음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율법 대신 우리가 바라보고 닮아가야 할 표상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셨읍니다.  율법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신 이 예수 그리스도는 앞으로 우리가 닮아가야 할 표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율법은 없고 오직 율법의 완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만 있는 것입니다. 율법은 이때까지 하나님 앞에서 인간을 죄인이라고 호소했지만,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완전한 의인이라고 외칩니다. 우리는 이 분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를 완전히 닮을 때, 우리의 구원은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이 구원을 이루어 가는 것, 이것을 나의 힘으로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만약 나의 힘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면  이것 역시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나 별 다를 바가 없읍니다.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는 셈이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우리의 절대적 표상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갑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닮아가야 할 표상으로서 율법의 완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셨고, 또한 우리가 능히 그분을 닮아가도록 하기 위해 성령을 보내어 주셨읍니다. 이 성령은 우리의 영과, 우리의 정신과, 우리의 육체를 적극적으로 도움으로 우리로 하여금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쫒아갈 수 있도록 합니다. 이 성령은 우리의 인격을 완성시키시고, 우리의 영혼을 날마다 새롭게 하십니다. 우리의 육신도, 정신도 그 성령의 도우심을 받게 될 때, 강건해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부족한 부분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보충될 수 있읍니다. 그렇게 됨으로서 우리는 장차 예수님처럼 완전한 자들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늘 도우시는 성령에 의지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읍니다.

    사실 우리의 생활 현장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증거들이 구체적으로 나타나는 곳입니다. 대화 속에서도 하나님의 구원의 흔적이 나타나고, 우리의 행실 속에서도 하나님의 구원의 흔적이 연연히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그 삶의 현장, 그 삶의 모습 그대로가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흔적이라는 것입니다. 불평이 감사함으로 변하고, 슬픔이 기쁨으로 변하고, 눈물이 웃음으로, 분쟁이  화합으로, 탄식이 찬양으로 변하는 이 구원의 현장은 성령이 주관하시는 구체적인 장소입니다. 사실, 우리가 성령을 의지하기만 하면 우리의 이 생활 현장에서 만큼 성령의 역사가 강력하게 나타나는 장소가 어디 있읍니까? 그러므로 생각하고, 계흭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삶의 모든 현장에서 성령을 의지합시다. 그래서 우리의 선한 삶이 악한 사람을 부끄럽게 하고, 인간의 능력을 자랑하는 불신자들에게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드러내는 삶이 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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