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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활_신약 고린도전서 15:20-26부활의 첫 열매 [절기]
  • 조회 수: 556, 2013.10.07 07:19:24
  •  영국의 대서사시인인 T. S. Eliot은 4월을 잔인한 달로 표현했습니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4월을 그렇게 표현하게 했을까요? 아마 그에게는 4월을 잔인하게 생각하게끔 하는 그 무엇인가가 있을 것입니다. 그의 연인이 그를 버렸을 수도 있겠지요. 4월에 그의 주변에 큰 변고가 있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진정한 크리스찬이었더라면, 그가 4월에 우리에게 주는 부활의 멧세지를 들었더라면 4월을 잔인한 달로 표현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4월은 소망의 달이요, 축복의 달인 것입니다. 믿습니까? 온 세계의 교회가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3일만에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여 부활주일로 지키는 오늘,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주님의 부활이 주는 소망과 축복이 함께하기를 축원합니다. 

      주님의 죽으심이 우리에게 사죄의 은총이 된다면 주님의 부활하심은 우리에게 소망의 은총이 됩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주님께서 우리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우리가 이를 믿기만 하면 모든 죄를 용서받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죄의 은총을 말합니다. 다윗은 이러한 사죄의 은총을 그의 시편에서 “허물을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노래했습니다. 그러나 사죄의 은총이 이 땅 위에서라면 무엇이 그리 대단합니까? 사죄의 은총을 받았다고해서 크리스찬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오래 삽니까? 재물이 많이 생깁니까? 아니면 더 건강해집니까? 이 땅 위에서만이라면 주님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내 죄의 사하심을 받는다는 것이 그리 복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주님의 죽으심만으로는 우리에게 부족합니다. 사도바울은 이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이 헛것이요,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니라.” 여기에서 진정한 부활의 멧세지가 있습니다. 주님께서 죽으시고 장사지낸바 되었다가 3일만에 부활하심으로 모든 산 자와 죽은 자들의 첫 열매가 되시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주님께서 부활하신 부활의 첫열매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부활에 관한 여러 가지 내용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첫째, 부활이 성경에 이미 예언된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3절에 보면 사도바울과 그를 따르는 모든 자들이 말씀을 통하여 받은 바는 주님께서 성경대로 죽으시고 3일만에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둘째, 주님의 부활에는 충분한 증거가 있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주님의 부활은 5절에 나타나는바대로 먼저 게바, 즉 베드로와 그 후에 열두 제자들, 그리고 5백여 형제들에게 보여주심으로 증거가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들 중 더러는 이미 죽었지만 아직도 많은 많은 사람들이 살아서 사도 바울과 함께 주님의 부활을 증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부활을 의심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의 부활은 많은 증거가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어느 고고학자도 주님의 부활을 부인하지 못합니다. 많은 증거가 있습니다. 많은 목격자들이 있습니다. 주님의 부활을 숨기기 위해 애를 쓴 당시의 고위측 인사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5백여명도 더되는 많은 사람들에 의하여 주님의 부활은 널리 널리 전파되었습니다. 

    셋째, 주님의 부활이 모든 잠자는 자들의 첫열매가 되었다고 말씁합니다. 21-22에서 아담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죽음이 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부활은 둘째 아담인 예수로 말미암아 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담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죽음이 왔다는 것은 아담이 곧 죽음의 첫열매임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아담아게 죽음을 선언했을 때 아마도 아담을 비롯하여 그의 가족은 아직도 죽음이 어떤 것인지, 어떻게 오는 것인지 몰랐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담의 대에서는 누구도 죽음을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담이 죽음으로 아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죽음이 어떤 것인지 깨달았을 것입니다. 아담에게 죽음이 오므로 장차 앞으로 나에게도 죽음이 오겠구나 하고 깨닫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은 누구나가 한 두번쯤은 죽음을 주변에서 경험했을 것입니다. 그 경험으로 말미암아 나에게도, 여러분에게도 죽음이 죽음이 올 것에 대해서 분명히 압니다. 이런 의미에서 아담은 죽음의 첫열매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 나무에서 첫 열매가 달릴 때 우리는 그 첫 열매를 보고 앞으로 그 나무에 계속해서 맺히게 될 열매들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 첫 열매의 색이 빨간 색이면 계속해서 그 나무에 맺힐 열매들은 색깔이 빨간색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주님께서도 부활하심으로 모든 잠자는 자들의 첫열매가 되신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부활에서 모든 산 자와 죽은 자들의 부활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22절에 보면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 말씀합니다. 말하자면 우리가 첫째 아담에게서는 죽음을 물려받았고, 둘째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는 부활을 물려받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죽음이 필연적인 것 같이 부활 또한 필연적인 것으로 믿어야 합니다. 왜 죽음은 믿는데 부활은 믿지 않습니까?             

      넷째, 부활의 순서에 대해서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23-24절에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각기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이 말씀에 의지해서 보면 부활의 순서는 첫 번째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둘째는 예수님이 강림하실 때에 그 분에게 붙은 자입니다. 이 말씀을 푸는데는 교리에 따라 여러 가지로 해석되겠지만 제가 배우고 믿는대로 풀이한다면 계시록에 나타나는대로 종말에 나타날 7년 대환란 직전에 공중에 휴거될 참된 교회일 것입니다. 마태복음 24장과 계시록에는 종말에 있게되어지는 7년 대환란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7년 대환란은 인류에게 있어서 전무후무한 시련의 기간이 될 것입니다. 그 이전에 교회는 공중재림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러 휴거될 것입니다. 이 기간이 예수님 부활 후 두 번째 부활의 때가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먼저 죽은 자들이 부활하고 그 후에 그때까지 살아남은 교인들이 산채로 부활하여 주님을 만나러 휴거될 것입니다. 살전 4장 16에 보면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하고 이 시기에 부활하게 될 교회에 대해서 잘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불신자들이 될 것입니다. 이들은 주님이 백보좌 위에서 심판하시게 되 때 그 앞에 서서 지옥의 형벌을 받기 위하여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은 교회의 부활은 상받기 위한 부활이요, 불신자들의 부활은 벌받기 위한 부활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5장 29절에 보면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 따르면 부활은 믿는 자들에게 끝없는 축복과 행복이 되어서 “이 행복이 끝없이 계속되면 좋을텐데..”하고 걱정할 일이 없어집니다. 왜냐하면 끝없는 평화, 끝없는 사랑, 끝없는 행복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반면에 불신자들에게 있어서 부활은 끝없는 고통, 괴로움 그 자체가 될 것입니다. 그 때에는 자살로도, 그 어떤 것으로도 그 고통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고통도 그 끝이 보인다면 소망이 있을 것입니다. 남자들이 약 3년이라는 세월을 군에서 보내면서 어떻게 그 세월을 이기는지 아십니까? 제대할 날짜를 기대하면서 온갖 고통을 이겨냅니다. 그러나 끝없는 고통뿐이라면 거기에 무슨 소망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불신자들에게 있어서 부활이라고 하는 것은 최후의 끔찍한 심판이 될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이 시대에 교회가 해야 할 일은 두가지입니다. 그 하나는 우리가 이 피역한 시대에서 우리를 깨끝이 보존하여 주님의 강림하시기를 기다리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그 끔찍한 심판의 부활에서 여러분의 가족과 친척, 여러분의 친구와 이웃을 피하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족을 사랑합니까? 여러분의 친척, 여러분의 친구, 여러분의 이웃을 사랑합니까? 그들을 사랑한다면 그들이 받을 심판의 부활을 생명의 부활로, 그들이 받을 고통의 부활을 축복의 부활로 바꾸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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