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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약 사무엘하 6:1-11/ 누구를 위함입니까? [새벽]
  • 조회 수: 591, 2013.10.07 07:24:53
  • 우리 속담에 돈은 뭐같이 벌어도 쓰기는 정승같이 하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결과만 좋으면 그만이라고 하는 생활철학에서 기인된 것입니다. 그러나 과정이 선하지 못한데 결과가 좋을리는 만무합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과정을 무시하고 결과만 중요시하는 풍토 때문에 사회 전반이 병들어가고 있습니다. 정치가들이 과정을 중요시합니까? 정권만 잡으면 된다 이겁니다. 금뺏지만 달면 그만이다 이겁니다. 우리나라에 경제의 철학이 있습니까? 돈만 벌면 그만이다 이겁니다. 그러니 경제를 선도해 나가야 할 대기업들이 기술투자는 안하고 무식한 졸부들처럼 부동산투기나 하여 돈을 모으고, 호화사치의 대상이 되는 수입품이나 취급하여 돈을 긁어 모웁니다. 가치의 부재가 이 시대의 특징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 모든 것은 결과만 중요시하는 우리 사회의 병리현상입니다. 사람이 살다보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이 것 저 것 다 해보아야 하는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인들은 과정을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오늘 저는 이러한 관점에 대해서 다윗의 경우를 통해서 조명해보고자 합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을 정치적으로 통일하고 안정을 꾀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나라 안을 정돈하고 백성의 마음을 하나로 묶는 것이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앙을 바로 세워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신앙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한 가지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법궤입니다. 이 법궤는 이스라엘이 불레셋과의 전투에서 빼앗긴 후 제자리에 모셔지지 못한채 80년 가까이 기럇 여아림이라고 하는 사람의 집에 있었습니다. 사울은 이 하나님의 법궤에 대한 생각이 미치지 못한채 그대로 방치를 해 두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의 법궤가 자신의 곁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잘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측근들과 상의해서 하나님의 법궤를 모셔오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궤를 모셔오는 동안에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하여 그 법궤를 모시는데 실패했습니다. 법궤를 실은 마차가 나곤의 타작마당에 이르자 소가 갑자기 요동하였습니다. 이것을 보고 마부 웃사가 법궤가 땅에 떨어질까봐 걱적하여 그것을 붙잡았더니 하나님께서 그를 쳐서 죽였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법궤를 생각한 것도 기특한 일이었고, 웃사가 법궤를 염려하여 붙잡은 것도 잘한 일인데 왜 하나님께서는 이런 식으로 다윗에게 대했습니까? 여기에는 두가지 이유에서 다윗이 잘못했기 때문입니다. 

    첫째, 다윗은 이 문제에 대하여 하나님께 의논한 것이 아니라 자기 측근들과 의논했습니다. 하나님의 법궤는 사람이 좌지우지 할 것이 못됩니다. 블레셋과의 전쟁을 비롯하여 여러 전쟁에서는 하나님과 상의하여 전쟁들을 이겼는데 정작 하나님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법궤의 문제는 하나님과 상의한 것이 아니라 인간들과 상의를 했습니다. 전쟁 때마다 승리를 하다보니 다윗이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잊어버렸을까요? 이 법궤를 블레셋 전투에서 잃은 이유는 이스라엘이 이것을 인간적으로 이용할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올바른 동기로 하나님의 법궤를 제자리에 옮기는 것일까요? 그도 역시 인간적인 동기로 하나님의 법궤를 이용할려고 하는 생각은 없었는지요. 그렇지 않다면 당연히 하나님에게 물어야 했겠지요. 

    둘째,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한데 있습니다. 다윗은 당연히 레위 사람들을 뽑아서 그들을 정결케 하여 그들의 어깨에 법궤를 메고 오도록 명령해야 했습니다(민 3:27-31, 4:15 참조). 그러나 다윗은 그렇게 하는 대신 블레셋 이방 사람들이 하듯 편리에 따라 소가 끄는 수레에 법궤를 실어오게 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하나님에게 무성의한 것으로 비춰졌을 뿐만 아니라 또한 다른 사람을 범죄하도록 만들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편리대로 섬겨야 할 분이 아닙니다. 레위인이 몸을 정결하게 하고 어깨에 법궤를 메야 하듯 성실히 섬겨야 합니다.

    오늘날 인간의 편리대로만 신앙생활을 할려고 하면 끝이 없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편리에 따른 신앙생활은 우리를 또 다른 죄의 길로 이끌어 갑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인간의 능력이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성실성이 인정을 받습니다. 그런데 왜 이 사회와 교회는 성실한 사람들이 외면을 당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신앙이 병들고 이 사회가 병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 병을 누가 치유해야 합니까? 교회입니다. 교회가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회가 세상에서 회복하고 하나님을 성실히 섬기는 법부터 배워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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