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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활_신약 고린도전서 15:50-58/ 부활의 능력 [절기]
  • 조회 수: 661, 2013.10.23 16:37:49
  • 가장 무서운 사람은 죽음이 모든 문제의 해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죽으면 그만이다" 소위 완전 범죄를 꿈꾸며 죽여서 문제의 해결을 보겠다는 사람은 얼마나 무서운 사람입니까? 그런가하면 나 죽으면 그만이라는 사람도 또한 무서운 사람입니다. 죽음이 끝인 것처럼, 죽음이 모든 문제의 해결인 것처럼 생각하는 것으로 참으로 위험한 사람입니다. 죽음은 끝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5장 32절에 보면 '죽은 자가 다시 살지 못할 것이며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죽음을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있을 수 있는 생의 철학입니다.

     

    내일이 있다고 믿는 사람과 내일이 없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즉 소망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는 엄청난 것입니다. 이것은 어떤 이론이나 철학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당장 오늘 이 한 시간의 생활 자세도 바로 여기에 기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무서운 원수가 있습니다. 바로 허무주의입니다. 이 허무주의는 인생을 병들게 합니다. 술에 빠지게 하고, 마약에 빠지게 합니다. 연예인들, 예술가들.... 왜 뒷끝이 그래 안 좋은지 압니까? 예술, 철학, 사상 등 여러 가지로 말한다만 다 묶어보면 허무주의입니다. 어렵게 오랫동안 한 예술, 활동..... 이 끝의 결론이 허무주의로 끝나고 있으니까 술에 취하고, 마약에 취하고, 도박에 빠지고, 또 자살하기까지 합니다. 그 끝이 다 죽음으로 귀결되지요. 그래서 오늘 본문에 보니까 이것을 사망의 쏘는 것....이라 표현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태어나서 살아가는 그 자체가 죽음을 안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비교적 어려서 죽고, 어떤 이는 좀 건강하여 오래 살기도하지만 태어나서 살아가는 그 자체가 죽음을 안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폴 틸릭이란 신학자는 죽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죽음이란, 단순히 우리의 생명의 실낱을 끊는 가위만은 아닙니다. 죽음은 우리 인생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짜 넣어진 천과도 같은 것이어서 우리의 육체와 영혼의 전존재를 시시각각으로 조형하여 가는 세력입니다. 모든 사람의 얼굴은 그의 생명에 죽음이 현존하고 있다는 자국을, 즉 죽음에 대 한 공포, 죽음에 대한 용기, 그리고 죽음에 대한 체념의 자국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죽음은 우리 인생의 마지막 때에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우리의 삶 속에 짜 넣어진 것이어서 우리의 삶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죽음의 세력 아래서 태어나서 평생 죽음에 의해 지배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것이 바로 아담이 범죄 함으로 받은 형벌이라고 말합니다.

     

    아담의 범죄로 찾아온 죽음은 하나님과의 단절을 의미합니다. "죽음은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것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으로부터 돌이켜 멀어지신 것입니다. 죽음은 육체적 생명의 정지일 뿐만 아니라 또한 영적인 생명의 종말입니다. 생명의 근원이고 생명을 가능하게 하는 근거이고, 생명을 유지시키는 생명의 주님이신 하나님이 인간을 버리심으로써 죽음이 오는 것입니다." 아담이 범죄 하기 전에는 죽음의 공포가 인간을 지배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생명을 주신 하나님이 그들을 돌보셨기 때문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이 범죄한 이후 하나님이 그들을 떠나셨고 그들을 만나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런 다음부터 죽음은 인간을 지배하기 시작하였고, 죽음의 공포와 불안이 인간을 좀먹기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절망적 인간들을 죽음의 세력에서 건져내시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인간을 죽음의 세계로 떨어트린 사탄의 세력을 꺾고 그 죽음의 철창문을 여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인류에게 죽음이 찾아왔는데 예수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 즉 과거의 죄, 현재의 죄, 미래의 죄뿐 아니라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이어받은 원죄까지도 주님께서 다 그 빚을 짊어지시고 죽음의 감옥에 들어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의 감옥에 들어가신 것은 당신의 죄 값으로 들어가신 것이 아니라 여러분과 나와 같은 죄인의 빚을 갚기 위해서 들어가신 것입니다. 이 때문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모든 죄가 눈 녹듯이 녹아 버리고 맙니다. 누구든지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못났음에도 불구하고 버림을 받아야 마땅함에도 불구하고, 죄지은 그대로 못난 그대로 빈손 든 그대로 예수님 앞에 나오면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값없이 죄 용서를 받고 의롭다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에게 죄의 채무를 벗어 버리고 의로움의 의복을 받아 입고 하나님의 앞에 부끄럼 없이 설 수 있는 확실한 은혜를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우리를 죽음의 어두움 속으로 몰아넣던 사망의 문이 활짝 열리고, 하나님께로부터 쏟아져 내리는 생명의 빛이 우리에게 환히 비치는 순간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루신 구원의 역사의 마지막 단계로서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의 전 과정으로서 회개를 믿고, 중생을 믿고, 그리스도의 성화를 믿는 것처럼 우리 몸과 인격의 완전한 영화를 한 순간에 성취하는 이 부활의 믿음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 부활의 믿음이 없으면 회개도, 중생도, 성화도 아무런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만약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으면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들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실컷 수고한 뒤에 열매를 보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어디에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존재입니다. 인간은 모두 다 회의에 꽉 들어차서 삽니다. 자기의 부모나 형제, 가까운 친지가 죽을 때마다 인간은 인생의 덧없음을 절실하게 깨닫습니다. 아무리 부귀영화, 공명이 많다 하더라도 죽어 버리고 난 다음에는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바람처럼 왔다가 안개같이 사라져 버리고 마는 것이 인간입니다. 생자필명이요 회자정리라는 말처럼 살아 있는 사람은 다 죽고, 만나는 사람은 다 뿔뿔이 헤어지고 맙니다. 도대체 인간이 사는 의미가 무엇이며 가치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는 다함께 모여서 웃고, 울고, 손을 잡고 가는 것 가지만 실제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지극히 고독한 존재입니다. 태어날 때 혼자 울면서 태어나고, 죽을 때 혼자 맥없이 두 손을 풀고 죽습니다. 우리는 언제까지나 혼자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이 허무, 이 죽음을 영원히 격파한 것을 증명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 사실을 보고 뭐라고 했습니까?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린도전서 15;55). 죽음을 보고 사도 바울은 비웃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다시 살 수 있을까요? 이것은 인류 태고 때부터의 질문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그 누구도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육신으로 오셔서 사람을 대표해서 죽었다가 부활하심으로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 때문에 예수님께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망을 영원히 정복했기 때문에 영원한 생명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이

    제 부활절을 지낸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쏟아지는 생명의 빛을 향하여 얼굴을 듭시다. 하나님으로부터 훈훈하게 불어오는 부활의 기운을 호흡합시다. 그래서 우리 속에 아직 남아 있는 죽음의 잔재, 불안, 걱정, 근심들을 모두 다 쫓아냅시다. 이제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맙시다. 이제는 죽음의 위협 앞에 굴복하지 맙시다. 우리는 부활하였고, 영생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결코 죽지 않을 것입니다.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이제 우리는 영원히 죽지 않을 것입니다. 이 믿음 이 소망을 가지고 흔들리지 말고 주님 나라를 위해 충성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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