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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약 마태복음 11:2-14/ 그가 당신입니까? [수요]
  • 조회 수: 417, 2013.10.30 11:50:41
  •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신앙이 왔다갔다 합니다. 어떤 때는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신앙으로 감격하여 모든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기뻐하며 찬양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건을 만나면 하나님이 계신가 안 계신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가 아니면 나를 버리셨는가 하며 믿음을 저버리며 원망을 합니다. 꼭 종이장을 뒤집듯이 변덕이 심합니다. 왜 이렇게 시원찮은, 휘청거리는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에서 이 해답을 얻었으면 합니다. 본문에 세례 요한이 나타납니다. 그는 성경에서 대단히 중요한 인물입니다. 예수님보다 6개월 먼저 이 세상에 왔고, 들에서 자랐으며, 양떼 털옷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고 광야에서 주로 살았습니다. 광야에서 회개하라고 외쳤기에 별명이「광야의 소리」입니다. 광야에서 정의와 회개를 외치며 산 사람입니다. 그의 메시지의 핵심은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리스도의 길을 준비하기 위해서 그는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와서 세례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세례 요한이 예수를 만나게 됩니다. 요한복음 1장 32절 이하에 보면, "요한이 증거하여 가로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같이 하늘에서 내려와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에게든지 머무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 인 줄 알라 하셨기에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였노라." 사도 요한이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였다고 말합니다. 그는 예수님의 얼굴을 보았거나 명패를 본 것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휘황찬란한 빛을 가진 비둘기 모양의 성령이 그 분의 머리에 임하는 것을 보고 그 분이 메시아인 하나님의 아들임을 믿고 이제 알고 증거했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 1:29) 이렇게 증거하고, 심지어는 요한과 안드레를 비롯해서 자기 제자 서너 명을 예수님께 양보까지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흥하여야 하고 나는 망하여야 하겠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세례 요한의 믿음이 흔들립니다. 그는 예수를 직접 만나 보았고 하나님의 아들 된 증거를 눈으로 똑똑히 보고 믿었던 사람입니다. 이토록 분명하게 보았는데도 불구하고 그의 믿음이 흔들리는 장면이 본문에 있습니다. 헤롯의 일로 인해서 요한이 감옥에 갇혔습니다. 헤롯 안티파스가 동생 아내와 불륜을 행한 일을 고발하다가 그렇게 되었죠. 전설에 의하면 왕의 궁전 지하실에 돌로 된 감옥에 갇혀 캄캄한 곳에서 심한 고생을 하였다고 합니다. 기약도 없이 모순되고 부조리한 비참한 죽음을 죽어 가게 됩니다.

     

    이 때 그에게 흔들림이 왔습니다. 메시아가 오셨는데 세상이 왜 이렇게 되느냐 말입니다. 그는 한편으로 기대를 했는지도 모릅니다. 의를 위해서 수고하는 자기에게 최소한 한 번쯤은 메시아가 방문하리라고 말입니다. 그뿐 아니라 기적을 나타내시어 옥문을 열고 세례 요한을 끌어안으며 위로해 주실 것을 믿었는지 모릅니다. 메시아가 오셨으면 뭔가가 달라져야 메시아의 나라가 아니겠느냐... 바로 이런 기대가 세례 요한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종내 무소식이라 참다못해 그는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어 질문을 하게 됩니다. 기가 막힌 내용입니다.

     

    "예수께 여짜오되 오실 그 이가 당신이오니까? 다른 이를 기다리이까?" 정말 섭섭한 질문입니다. "오실 이가 당신입니까?" 라고 묻는 것은 그래도 이해가 됩니다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니까?" 라고 묻는 것은 도대체 지금까지 사도 요한이 무엇을 외치고 다녔는지 묻고 싶을 정도입니다.

     

    이 질문에 대해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나로 인하여 실족하지 않는 자가 복이 있다." 세례 요한에게 직선적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지금 네가 나로 인하여 실족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 실족하는 자는 불행하다고 책망조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어떤 일을 당하든 어떤 형편에 처하든 예수님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사람, 예수님의 사랑에 대하여 흔들림이 없는 사람, 즉 신앙에 흔들림이 없는 사람, 그 사람에게 복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세례 요한은 어찌해야 옳았습니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만족하여야 했습니다. 그는 예수를 만나보았고, 메시아가 오신 것을 분명히 보았으면, 그것으로서 만족하여야 했습니다. 나의 처지에 상관없이 말입니다. 가난하든, 부하든, 현재에 내가 어떻게 살든 간에 메시아가 오셨고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런 줄 알았으면 이것만 가지고 그는 만족하여야 했습니다. 메시아의 나라를 본 사람입니다. 들었습니다. 증거 했습니다. 그런데 왜 흔들리는 것입니까?

     

    다른 이의 삶에는 메시아를 통하여 역사가 일어나는데 나의 삶에는 메시아를 통한 역사가 없다.... 여기서 흔들리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 우리가 신앙이 좋은 사람을 모셔다가 간증을 하는데 별로 신통치가 않습니다. 그 사람에게 일어나는 일은 관심이 없다, 내 삶에 뭔가가 일어나야지.... 이런 사고방식이 있는 것 같습니다. 누가 복음 2:29 이하에 보면 시몬이라는 나이 많은 선지자가 오래 동안 메시아를 기다리다가 드디어 메시아를 보게 됩니다. 그는 아기 예수를 품에 안고 하나님께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주시는 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라고 찬송을 합니다. 그는 아기 예수를 보았고 품에 안았던 것으로 만족합니다. 그래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신다 즉,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기뻐 찬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고 들었으면 그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나의 처지가 감옥이냐 아니냐는 잊어야 했습니다.

     

    이렇게 질문하는 세례 요한에게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너희가 가서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면,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마 11:5) 무슨 뜻입니까? 세례 요한이 이 소식을 듣고, 알고, 그리고 만족하라는 것입니다. 네가 감옥에 있는 것이 중요한 일이 아니라, 오늘 여기서 메시아의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으니 이것을 듣고 기뻐하라는 말씀입니다. 이적은 있었지만 세례 요한에게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기적이 저쪽에서 있었지만 감옥에는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에겐 다 있는데 나에게는 없단 말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축복이 있는데 내게는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겐 은혜가 있는데 내겐 없습니다. 왜입니까? 이것을 극복해야 합니다. 요한은 옥문이 열리는 기적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대로 목 베임을 당해서 죽어갔습니다. 그가 이미 고백한 대로 그는 흥해야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겠다고 한 문자 그대로 썩어지는 밀알이 되는 이 시간을 기쁘고 즐겁게 받아들였어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신앙은 어떠합니까? 내가 잘 되면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안 되면 하나님은 안 계시는 것입니까? 내 소원이 이루어지면 하나님은 날 사랑하는 것이고, 이루어지지 않으면 하나님이 날 버리신 것입니까?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사실 생각해 보면, 모든 사람이 다 유황불로 죽는다고 해도 세례 요한만은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메시아의 나라는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세례 요한에게 이렇게 부조리한 죽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응답은 늦어지기도 하고 내 생각과 내 방법과는 다를 때도 있습니다.

     

    여러분... 정말 내가 믿음으로 살고 진실과 정의를 사랑하며 산다면.... 내 현실 지금 이대로가 주의 축복이 실현되어 있음을 믿는 신앙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지금... 이 삶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가장 적합한 선물이라는 것을 받아드리는 신앙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숙한 신앙은 어떤 상황 속에서나 감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 정욕, 나를 중심으로 하는 생각이 있으면 이런 신앙은 받아드릴 수가 없습니다. 이런 생활은 절대로 말씀도 믿을 수 없고, 간증이 없고, 감사가 없습니다.

     

    이런 잘못된 신앙은 부활과 내세에 대한 확실한 소망이 없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 잠시 스쳐 지나가고 우리가 들어가는 내세의 세상.... 그 곳이 우리의 본격적인 삶의 처소이다... 이 땅은 잠시 파견 나온 곳이다, 그냥 짐 가방 하나 들고 돌아다니다가 본국에서 오라 하면 미련 없이 가야 하는 곳이다... 이렇게 살면 모든 것이 다 즐겁고, 감사한 일이고, 어떤 상황에서나 신이 나고 즐거운 것입니다. 

     

    우리가 모든 일에 넉넉히 이기며 감사하기 위해서는 미션을 행하는 자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미션을 주셨죠. 우리가 받은 미션을 행할 때 고난도 있고, 어려움도 있으나 주님이 우리를 지지해주십니다. 이 주님은 고난이 있는 곳마다 이길 방편들을 미리 준비해두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마치 영화 미션 임파서블에 나오는 그런 주인공처럼 우리를 그런 영웅으로 만들어주실 준비를 하고 계시는 주님이시죠. 그러니 주님을 믿으면 우리는 언제나 감사하고 우리의 인생을 즐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좋은 조건에서만 주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찬양하지 말고 고난 속에서도 부활의 저편에 계신 주님을 바라보며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아버지 하나님, 믿는다고 하면서도 흔들리고 있으며 하나님의 축복을 감사하다가도 때로는 주를 원망하는 어리석고 우둔한 저희들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기도하오니 우리에게 놀랍고 위대한 신앙을 주시사 고난의 메시아 그 뒤에 있는 영광의 메시아를 바라보며, 십자가와 그 뒤에 있는 부활의 아침을 바라보면서 항상 오늘 현재 내 생활 속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귀한 축복과 그 역사를 보고, 믿고 간증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게 해 주심을 간구하옵나이다. 날마다 믿음을 새롭게 해 주시옵소서. 나의 고난을 통해서 이루시는 하나님의 축복과 그 영광의 뜻을 바라보며 기도할 수 있는 그 같은 믿음을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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