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믿는 사람의 가정(잠언 3:1-10)
  • 조회 수: 36, 2013.10.31 07:11:10
  • 가정 주간이 시작되는 오늘 성경이 가르치는 믿는 사람의 가정에 대해서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에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가정이 무엇입니까? 가정은 사회의 가장 작은 단위입니다. 가정은 작은 마을이며, 작은 도시이며, 작은 나라입니다. 가정은 작은 왕국입니다. 남편은 왕입니다. 아내는 왕비입니다. 아들은 왕자입니다. 딸은 공주입니다. 그리고 모든 국민이 국가의 원수에게 직결되어 있는 정부입니다. 가정은 모든 식구가 어느 때라도 가장과 접촉할 수 있는 기관입니다. 아버지가 아무리 바빠도 아내나 아이들의 말은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작은 국가로서의 가정은 특수한 외교 사절단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나라 중에도 가장 작은 이 나라에서는 아이에서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이 특사입니다. 가정은 내가 문을 두드릴 때 나를 들어오게 해주며 식구들이 나의 가장 나쁜 점을 듣고 보더라도 덮어주고 사랑하는 집단입니다. 온 세상이 나를 반대하고 내어쫓아 낼 때라도 나를 받아주는 한 집단입니다. 세상에서 누구도 나에게 아무런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때라고 해도 나의 상처 때문에 함께 울어 줄 만큼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나를 위해 염려하여 주는 사람들의 모임이 가정입니다.

    가정이란 한마디로 이렇게 좋은 곳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정을 구원하신다고 했습니다. 노아는 온 집안을 구원하기 위해서 방주를 건조했습니다. 빌립보의 간수는 그의 집안 식구와 더불어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유월절을 위한 지시에서 “식구를 위해 어린양을 취할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가정의 책임을 지고 있는 부모는 이 성경의 표본을 잘 받아들여 집안 식구들을 잘 보살피고 간수해야 합니다.

    성 어거스틴은 그의 어머니 모니카의 간절한 기도 때문에 개심하게 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하나님을 멀리했었습니다. “주님, 나는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습니다. 나는 주님을 섬기고 싶지만 아직 때가 되지 않았습니다”고 말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어머니 모니카는 쉬지 않고 꾸준히 기도했습니다. 그 결과 어거스틴의 단단한 마음이 부드럽게 풀리기 시작했고 마침내 그리스도를 그의 구주로 영접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오늘날까지도 교회를 위한 복의 근원이 된 것입니다.

    부모의 진실한 기도를 통하여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하나님 아버지께 인도되었는지 오직 하나님만이 아실 것입니다. 

    이것이 믿는 사람의 가정 생활을 위한 최초의 요지입니다. 모든 식구는 예수님이 가정이 구주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자녀를 위해 할 일은 자녀에게 믿음을 심어주는 일입니다. 부모는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방법으로 어린이의 일상 생활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인식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믿음은 언제나 경험이 원인이 됩니다. 신약성경의 믿음은 표적을 찾는 믿음이 아니라 표적이 따르는 믿음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들은 믿기 위해서 경험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믿음은 틀림없이 확실한 경험의 원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경험이 없는 신앙은 냉담하고 생명력이 없고 형식적이며 법만 내세우는 신앙이 됩니다.

    우리는 우리 자녀에게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가르칠 뿐만 아니라 성경이 요구하는 가르침을 따르도록 지도해야 하며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경험하도록 부모는 자녀를 도와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우리 아이들과 기도하는 방법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 속에 하나님의 실재를 수없이 만나본 경험을 간직하고 있는 아이는 자기 믿음을 유지하는데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의 믿음이 그를 붙들어 줄 것입니다.

    물론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언제나 우리의 기도를 받아 주신다고 말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아니다’ 또는 ‘기다리라’고 대답하십니다. 이렇게 대답하시는 것은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아니다’하고 대답하셨을 때 그것이 반드시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대답을 함부로 단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했으나 ‘긍정’도 아니고 ‘부정’도 아닌 침묵을 경험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지 않았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기도의 결과에 대해서 참고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응답되지 않는 기도는 성공하지 못한 실험과도 같습니다. 그것은 더 깊은 연구를 하라는 격려요 자극입니다.

    믿음은 우리가 안전하게 앉아 있는 높은 아성이 아닙니다. 믿음은 인생의 사소한 갈등과 시련을 피할 수 있는 피난처가 아닙니다. 믿음은 인생의 싸움에서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무기입니다. 

    우리는 불행과 재난을 당합니다. 실패와 좌절을 경험합니다. 불안과 의심의 심연에 빠져들어 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 싸웁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이 싸움에서 이깁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우리 생활 속으로 모셔와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함께 살게 합니다.

    믿음은 이성과 논쟁으로 세워지지 않습니다. 믿음은 하나님과의 대면으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믿음은 다른 사람들의 증거를 받아들이므로 시작될 수 있지만 그것은 개인적으로 하나님과의 만남에서 이룩되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의 증거를 듣고 예수님을 믿게 된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직접 만남으로서 저들의 믿음이 더욱 왕성해졌던 것입니다. “그 여자에게 말하기를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을 인함이 아니니 이제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니라” (요 4 : 39 - 42)고 하였습니다. 

    오늘 총동원 주일을 맞이해서 가까운 분의 인도를 받아 교회까지 나오신 여러분, 예수님을 분명히 만나시고 여러분의 구주로 영접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우리 가정의 주인으로 모십시다. 응접실이 아니라 안방에 모십시다. 가정에서 의논하고 결정하는 일이 있을 때 예수님을 가정의 주재자로 모십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일에 실패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주권에 순종하지 아니할 때 우리의 가정은 신앙적으로 침체하게 됩니다. 그러나 주님의 지배에 순종할 때 우리는 예수님의 임재 가운데서 가정의 화평과 번영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의 가정에서는 모든 일을 지배하시는 주님의 주권을 인정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두 가지 요소가 있는데 그것은 시간과 돈입니다.

    시간은 매일 가정 예배를 위해 바치는 일정한 시간입니다. 여러분이 가정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시간을 바칠 때 가정의 여러 가지 면에 큰 변화를 가져오는 것을 알고 놀라게 될 것입니다. 가정이 오로지 예수님에게 하루 중에 중요한 시간을 바칠 때 그 가정은 하나님이 주시는 화평과 번영의 은혜로 충만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에게 귀중한 시간을 바칠 때 우리는 주님이 우리 위해 마련해 주신 모든 창조적인 가능성의 문을 하나씩 둘씩 열 수 있는 지혜를 얻게 될 것입니다. 혹 어떤 분은 바쁜 세상에 시간 낭비라고 불평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기 어떤 분이 몸에 이상이 있어서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았더니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 “당신은 매일 한 시간씩 치료를 받아야겠습니다” 했다면, 우리는 아무리 바빠도 내 몸의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 시간을 아깝지 않게 바칠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우리 가정의 행복과 번영은 그만한 가치가 없습니까?

    가령 대통령이 내게 전화를 주었습니다. “내가 우리 정부를 이끌고 가는데 당신의 자문을 좀 받고 싶습니다. 바쁘시겠지만 아침이든 저녁이든 형편 되시는 대로 매일 한 시간씩만 시간을 좀 내주시면 전화로 자문을 받겠습니다.” 이런 경우에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아마 그 시간은 어떤 방해도 받을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대통령과 이야기할 수 있는 가장 영광스러운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우주 만물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은 어떻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더러 “나는 너희 가정과 하루에 한 시간씩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말씀하시는데 그 말씀을 못 들은 척 할 수 있겠습니까? 이처럼 믿는 사람의 가정에서 식구들이 함께 모여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시간은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시간입니다. 아직 가정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가정에서는 꼭 한번 드려 보시기 바랍니다. 전에 깨닫지 못했던 축복을 체험하게 될 줄 믿습니다.

    그리고 주님께 드리는 두 번째 요소는 돈입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진리는 가정 전체 수입 중에 적어도 열의 하나를 주님께 바치라고 말씀합니다. 돈은 어떤 사람의 말대로 땀의 결정체입니다. 한 가정이 수입의 첫 열매 열의 하나를 주님께 바칠 때 그것은 가정의 물질적인 운명을 하나님께 연결시키는 것입니다. 성경은 십일조가 투자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말 3 : 10)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믿는 가정의 십일조를 요구하실 때 두려움과 욕심을 버릴 것을 부탁하시고 하나님께 수입의 첫 십일조를 바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하면 그 보답으로 하나님은 저들에게 물질적으로 축복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이 약속을 믿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가정은 주님께서 우리들의 노력과 일을 축복해 주십니다. 불필요한 지출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를 통하여 우리에게 물질적인 축복을 주시는 하나님은 아울러 안전의 축복까지 주시고 싶어하십니다. 가정의 안전은 물질보다 더욱 중요합니다.

    지난주일 맥크레인 목사님의 설교에서 우리가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똑같이 뜨거운 햇빛이 내리쪼이는데 뿌리가 없는 꽃나무는 말라 버립니다. 그러나 뿌리가 있는 꽃나무는 자라고 잎이 퍼지고 꽃이 아름답게 핍니다. 마찬가지로 믿음이 없는 사람은 세상에서 환난을 당할 때 말라 버리고 말지만 그리스도에게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믿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꽃이 피는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절대 안전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네 재물과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하였습니다. 십일조는 우리가 받은 물질적인 축복과 가정의 안전을 약속받는 보증서입니다.

    그리고 부모는 가정의 제사장 역할을 해야 합니다. 부모는 가정에 있어서 제사장입니다. 서양에서 목사가 설교할 때는 교인들 쪽을 바라보다가 교인들을 대신해서 하나님께 기도할 때는 하나님을 향해 무릎을 꿇고 합니다. 이와 같은 두 자세는 제사장의 기본적인 두 기능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하나는 교인들에게 하나님을 대표하며 또 하나는 하나님에게 교인들을 대표합니다.

    부모로서의 제사장은 이러한 두 기본 자세를 갖추고 있습니다. 부모는 하나님을 그의 자녀에게 소개해야 합니다. 생활의 모범을 통해서, 가르침을 통해서 자녀에게 하나님을 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부모는 그의 자녀를 하나님에게 소개해야 합니다. 구약 신명기 6장 4절 이하에 이스라엘의 모든 부모에게 주신 말씀은 이렇습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날 내게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 하였습니다.

    믿는 사람의 가정에서 다른 것을 다 했다고 해도 자녀에게 하나님을 소개하는 일을 실패했다면 이것은 완전한 실패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믿음의 가정이 어떤 가정입니까? 자녀들이 부모들의 신앙을 물려받아 신앙으로 사는 가정입니다. 사도 바울이 젊은 종이요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청년 디모데의 마음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을 가지게 된 것도 그의 외조모 로이스와 그의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던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신앙이 믿음의 가정을 통해서 계승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가정의 제사장의 역할을 다하려면 자신들이 신앙을 가지고 우리에게 주어진 신성한 가정을 잘 보존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부모는 똑같이 정조를 지킬 줄 알며 가정을 깨끗이 보존해야 하는 것입니다. 가정 파탄의 대부분의 원인이 여기에 기인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시대를 흔히 ‘성적 방황의 시대’ ‘성 개방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혹은 ‘성은 제3혁명의 시대’라고도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시대는 변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도덕의 원리는 변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경고합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기심을 받으시는 하나님이 아니시니, 사람이 심은 것이 무엇이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육신을 좇아 심는 자는 육신으로 말미암아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으로 심는 자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생을 거두리라” 하였습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은 만고불변의 철칙입니다. 그러므로 바로 심어야 합니다. 음란을 심으면 멸망을 거둘 수밖에 없습니다. 순결을 심어야 내 가정, 내 자녀, 내 후손 나아가서 내 민족, 내 국가가 축복을 받습니다. 따라서 내 영혼이 구원을 받습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의 가정에서 몇 가지 조심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 말씀이 “여인을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벌써 마음에 간음하였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마음을 깨끗이 지키라는 것입니다.

    누구나 불결한 생각이 순간적으로 우리 마음을 스치고 지나갈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음욕을 계속 마음 속에 오래 품지 말라는 말입니다. 음욕을 품으면 간음하게 됩니다. 우리 마음을 깨끗이 보존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내가 맡은 책임이 무엇이든지 충실하게 감당해야 합니다. 분주하게 살아야 합니다. 한가한 사람에게 불결한 생각이 찾아 듭니다.

    뿐만 아니라 내 마음 속을 깨끗한 것으로 가득 채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더러운 것이 아예 틈타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남녀 교제를 조심해야 합니다.

    경건한 장소에서 경건하게 교제를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의심나는 곳에서 교제하지 맙시다. 남의 의혹을 사도록 교제하지 맙시다. 깨끗한 교제를 하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더구나 자기 가정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잠언 5장 18절에 보면 “네 샘(말하자면 가정을 의미합니다)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 그는 사랑스러운 암사슴 같고 아름다운 암노루 같으니, 너는 그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며 그 사랑을 항상 연모하라” 하였습니다.

    남편되는 사람은 “세상에 내 아내가 제일이지. 하나님 은혜 감사하지. 어떻게 나 같은 사람에게 저런 귀한 선물을 주셨지!” 하고 아내를 사랑해야 합니다. 다른 여자 넘겨보지 말아야 합니다. 아내되는 사람은 “세상에서 내 남편이 최고지. 어떻게 나 같은 여자가 저런 훌륭한 사람하고 결혼하게 되었지!” 하고 감격해야 합니다. 다른 남자 보고 침흘리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에 여인을 보고 음욕을 품는 자는 간음했다고 했는데 이 말은 자기 남편 아닌 다른 남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여인도 이미 간음한 것입니다.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사회 환경이 바뀐다 해도 가정 생활에 있어서 변하지 않는 것 세 가지가 있습니다. 이것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첫째, 결혼 전에 정조를 지키지 못하는 남녀는 깨끗한 결혼을 할 수 없고, 깨끗한 가정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둘째, 결혼 후에 남녀가 정조를 지키지 못하면 깨끗한 가정을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셋째, 깨끗한 가정에서라야 자녀 교육을 바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할 일이 무엇입니까? 믿음으로 사는 길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그 본성이 타락하면서부터 힘쓰지 아니하면 자동적으로 짐승처럼 타락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힘써야 합니다. 믿음으로 살기 위해서 힘써야 합니다. 왜 성경은 거듭거듭 같은 말을 반복하는지 아십니까? 이것은 이만큼 중요하고, 따라서 힘써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믿는 사람의 가정의 정신적인 기초가 언제나 튼튼해야 합니다. 그 기초가 신앙입니다.

    청년 요셉이 어떻게 강한 유혹 앞에서도 그의 정절을 지키며 깨끗이 살 수 있었습니까? 신앙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내가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이 악한 일을 할 수 있습니까?”고 말했습니다. 요셉은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산다고 하는 사실을 잊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귀합니다. 우리는 혹 세상 사람이 모르게 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모르시게 할 수는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가정이 행복합니까? 사랑과 기쁨과 화평이 충만합니까? 성령이 계실 만한 가정입니까? 우리 가정에 제단이 있습니까? 식구들이 같이 모여 앉아 찬송하고 성경 읽고 기도하십니까? 가정 제단에 불이 켜져 있습니까?

    우리 스스로 생각할 때 마음으로나 혹시 몸으로 하나님 앞에서 음행의 죄를 범하신 분은 안계십니까? 요한복음 8장에 간음한 여인을 예수님이 용서하신 이야기가 있습니다. 참으로 회개하면 우리 주님은 용서하십니다. 

    여러분,

    믿는 사람의 가정은 행복해야 합니다.
    믿는 사람의 가정은 주님을 주인으로 모셔야 합니다.
    믿는 사람의 가정은 시간과 돈을 주님께 드립니다.
    믿는 사람의 가정은 제단입니다.
    믿는 사람의 가정은 깨끗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한없는 축복을 주실 것을 믿습니다.

댓글 0 ...

번호 제목 닉네임 조회  등록일 
15 admin 38 2013.07.19
admin 36 2013.10.31
13 admin 36 2013.09.22
12 admin 36 2013.07.19
11 admin 36 2013.07.19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