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베소서 6:01-9/ 믿는 부모와 자녀
  • 조회 수: 214, 2013.10.31 07:13:53
  • 오늘 부모님 주일을 맞이하여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믿는 부모와 자녀에 대해서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 축복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본문에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 6 : 1 - 3) 하였습니다.

    효도는 모든 사회 도덕의 기초가 됩니다.

    흔히 믿지 않는 사람들 중에서 기독교를 잘 몰라서 기독교는 윤리적인 종교가 아니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오해입니다. 사실 기독교 이상 윤리적인 종교가 없습니다. 기독교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 그리고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를 정상화하는 일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도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에서 찾으려고 하고 있습니다. 윤리를 떠난 기독교는 생각도 할 수 없습니다. 다른 말로 윤리를 떠난 기독교는 기독교가 아니라 사교입니다.

    가령 우리 기독교의 강령이라고 볼 수 있는 십계명을 보세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나타낸 계명이 먼저 4계명까지이고 그 다음은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를 나타낸 것인데 그 첫째가 무엇입니까?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께서 네게 주신 땅에서 네가 오래 살리라” 한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인간이 인간에게 행해야 할 계명 중에 첫째 계명입니다. 약속있는 첫 계명이라고 본문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합니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합니다. 인심도 변합니다. 생활양식도 달라집니다. 풍속도 변합니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자연법칙은 변하지 아니합니다. 마찬가지로 도덕의 법칙도 변하지 아니합니다. 말하자면 부모에게 자녀가 순종하고 자녀가 부모를 공경하라 하는 것은 도덕법칙 가운데 제1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이 세상에 나서 제일 먼저 맺는 관계가 부모와 자녀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나면 형제를 만나기 전에, 자매를 만나기 전에 제일 먼저 만나는 분이 부모입니다.

    그러므로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옳게 가져야 형제와 이웃, 나아가서는 나라와의 관계도 옳게 가질 수 있습니다. 옛말에 충신을 찾으려면 효자의 문에서 찾으라고 했는데 옳은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부모 잘 섬길 줄 아는 사람이라야 나라 사랑할 줄도 알 것입니다.

    우리 동양의 도덕을 간추려 말하면 삼강오륜입니다. 요즘은 별로 사용하지 않는 말이기 때문에 어느 대학에서 입학시험에 삼강오륜이 무엇인가? 고 물었더니 수많은 학생들이 삼강은 압록강, 한강, 낙동강이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이런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삼강에는 제일 먼저가 부위자강(父爲子綱)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말했습니다. 오륜에도 제일 먼저가 부자유친(父子有親)입니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친함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모든 도덕이 효도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효도를 말하지 아니하고 도덕을 말하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7장에 보면 예수님이 이런 말씀으로 그 당시의 부도덕한 사람들을 책망하셨습니다.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가로되 사람이 아비에게나 어미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제 아비나 어미에게 다시 아무 것이라도 하여 드리기를 허하지 아니하여 너희의 전한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였느니라” 했습니다.

    성경에 주 너의 하나님을 먼저 사랑하라고 했으니까 하나님께만 드리면 된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보이는 부모를 섬기지 못하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가령 우리가 매달 월급을 받는 생활을 한다면 월급받는 날 제일 먼저 십일조를 떼어놓고 부모님께 드릴 용돈 갈라놓고 그리고 저금하고 그리고 애들 학비 쓰고 다른 것들 써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 공경은 사회 질서의 기초가 됩니다.

    다시 말하면 이 말씀에는 부모 뿐만 아니라 윗사람을 공경하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5장 1 - 2절에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비에게 하듯 하며 ... 늙은 여자를 어미에게 하듯 하며...” 했습니다. 그래서 요리문답에서도 제5계명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제5계명에 명하는 것은 각 사람에 속한 지위와 인륜관계 즉 상하와 평등을 따라 높일 자를 높이고 행할 일을 행하라는 뜻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야 사회 질서가 유지됩니다. 이것이 없을 때 사회 질서는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가정에서 자녀가 부모를 존경하고 부모에게 순복할 때 가정의 질서가 섭니다. 학교에서 학생들이 선생님의 말씀을 순복하고 선생님을 존경할 때 그 학교의 질서가 섭니다. 어느 기관이나 단체에서 책임자를 존경하고 그 지시에 따를 때 그 기관과 단체의 질서가 섭니다.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국민이 국법을 존중히 여기고 그 법에 순종할 때 국가의 안녕 질서가 확립되는 것입니다.

    더구나 효도는 신앙의 열매입니다.

    참 신앙이 있다는 것은 부모를 공경하는데서 나타납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이 부모 공경하는 일에 있어서 믿지 않는 사람보다 나아야지, 못하면 부끄러운 일입니다. 성경에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를 기쁘게 하거니와 미련한 아들은 어미의 근심이니라” 하였습니다. 어떤 아버지 어머니는 얼굴이 몹시 상해서 왜 그런가고 이유를 알아보면 그 아들 때문에 너무 속이 상해서 저렇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습니다.

    청년 여러분, 자녀된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내가 내 아버지와 어머니를 기쁘시게는 못해드릴 망정 속을 썩혀 드리지는 않았습니까? 나 때문에 아버지, 어머니가 나 몰래 눈물 흘리게 하지는 않았습니까? 물론 이 자리에는 그런 분이 한 분도 안계시리라 믿습니다. 또 그런 분이 없어야 되겠습니다.

    잠언 23장 15절에 보면 “내 아들아 만일 네 마음이 지혜로우면 나 곧 내 마음이 즐겁겠고 만일 네 입술이 정직을 말하면 내 속이 유쾌하리라” 하였습니다. 지혜로운 아들은 부모의 기쁨입니다. 어떤 아들이 지혜로운 아들입니까? 믿음으로 사는 자녀입니다. 요한 3서 3절에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거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 했습니다. 믿는 부모의 기쁨은 자녀들이 돈 많이 벌었다는 것보다, 세상에서 출세했다는 것보다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영혼의 아버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길도 믿음입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언제나 “주님이 기뻐하실까?” 하는 것을 생각하면서 일하라고 권면했습니다. 어떤 계획을 하나, 무슨 일을 하나, 이것을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생각하면서 하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것을 내가 믿음으로 하나? 그렇지 않으면 이것을 내 생각대로 하나? 하는 것을 살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따라 살라고 하십니다.

    우리 주님도 친히 말씀하시기를 우리 믿는 사람들을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고 하시면서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이 착한 행실을 통해서 이 세상을 비취게 하면 결국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와 반대로 우리가 빛된 생활을 하지 못하고 부끄러운 일을 행하게 되면 결국 하나님께는 영광 대신 욕이 돌아갑니다.

    하나님께 영광돌리기 위해서 어떻데 해야 됩니까?

    예수님은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인데 주님이 우리 안에, 우리가 주님 안에 있을 때, 다시 말하면 믿음으로 살 때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주님의 말씀을 순종해서 그대로 살면 열매를 많이 맺을 것이고 우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학교 당국에서 부모님을 뵙기 원하는 때가 두 가지 경우입니다. 하나는 학생이 공부를 잘 하고 생활이 단정해서 다른 사람에게 모범이 될 때 선생님이 이 학생의 부모님은 어떤 분이시기에 이렇게 훌륭한 자녀를 두셨나? 해서 격려하고 치하하기 위해서 부모님을 뵙자고 하는 때입니다. 이런 때는 학교에 찾아가는 부모의 가슴이 쭉 펴지고 발걸음에 힘이 있습니다. 선생님 만나는 것이 버젓합니다. 혹시 누가 좀 봐주지 않나? 하는 기대를 가지고 학교에 찾아갑니다. 이런 때 이 자녀는 부모의 영광이요 면류관입니다.

    그런데 다른 한 가지 경우는 학생이 공부는 낙제 점수만 맞고 게다가 품행이 좋지 않아 학교에서 문제만 일으키는 경우 어떻게 해야 좋을까? 하고 고심하던 선생님이 부모님과 만나서 서로 의논하고 싶어서 좀 뵙자고 연락을 합니다. 이런 부모님은 어떻습니까? 학교에 찾아가기가 부끄럽습니다. 발걸음에 힘이 없습니다. 혹시 누가 아는 사람이라도 있다가 만나서 ‘어떻게 오셨어요?’ 물을까봐 누가 볼새라 몸을 숨겨가며 학교에 갑니다. 학교에 가서 교무실에 들어서면 선생님 만나기가 왜 그렇게 부끄럽고 죄송한지 경찰관 앞에 선 범인 같습니다. 이런 때 이 자녀는 부모의 수치입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의 자녀들은 모두 부모의 영광이요 자랑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더구나 우리 온 성도들은 하나님 아버지의 기쁨이요 자랑이요 면류관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말씀합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예수님도 순종하는 자녀 노릇을 했습니다. 지금도 순종하는 아들로 사시며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부모에게 순종하는 자녀는 행복한 자녀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자녀들아, 너희 부모가 옳을 때 순종하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비록 “너희 부모가 그릇되더라도 주 안에서 부모를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고 말씀했습니다. 부모의 그릇된 명령이라도 순종하는 자녀는 여전히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빛 가운데 거할 것입니다. 부모에게 반항하는 것보다는 순종하는 편이 가정의 화평과 부자간에 신의와 애정을 심어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물론 부모는 자녀들을 정당하고 올바르게 그리고 아주 온유한 사랑으로 대하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부모는 인간이며 따라서 잘못을 저지르기 쉽습니다. 더구나 저들은 대부분 정신적으로 충분히 성장하기 전에 부모가 됩니다. 지혜도 부족한 상태에서 자녀를 양육합니다. 그러므로 부모의 판단과 결정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결정의 책임은 부모에게 있습니다. 그리고 자녀의 책임은 부모에게 순종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주셨습니다. 만일에 이 계명이 다른 계명과 모순된다면 하나님은 돌파구를 마련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믿는 부모라고 하더라도 그릇된 결정을 하거나 잘못된 명령을 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이 사실을 깨닫게 될 때마다 부모는 그 잘못을 고백하고 시정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부모된 사람들은 이로 인해서 부모의 권위가 손상되고 하락될 것을 우려하는 가운데 고집 부리지 말고 자녀에게 진정으로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구하는 일에 주저하지 말아야 합니다.

    부모의 권위란 완전한 것을 보여주는 부모에게서 생기는 것이 아니고 그러한 권위를 받아들이는 우리 자녀에게서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모든 진정한 권위는 우리 뒤에서 그것을 지지해 주는 사람에 의해서 생기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부모의 권위는 자녀에게 저들을 권위로 세워주신 하나님에게 의존합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잘못을 저지를 때 “내가 만일 이것을 시인하면 아이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하지 말고 “내가 만일 이것을 숨기고 이것을 속이려 한다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실까?” 하고 자문하십시오. 하나님은 언제나 자녀와 부모에게서 정직하고 솔직한 회개를 좋게 여기십니다. 자녀에게 잘못을 시인한다는 것은 부모의 신분과 권위를 상실할 것이라는 두려움은 마귀의 속임수입니다. 사실은 부모의 권위란 우리 자신 뿐 아니라 하나님에게 정직하고 솔직할 때 굳게 강화됩니다.

    부모의 권위는 저들 자신의 권위가 아니라 하나님이 저들에게 주신 권위입니다.

    덴마크의 철학자 키엘케골은 “믿기가 어려운 것은 이해하기가 어렵기 때문이 아니라 순종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고 했습니다. 부모는 자녀들이 순수하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어야 합니다. 그것은 저들에게 순종을 가르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탁상 공론하는 이론가에게 나타나시지 않습니다. 주님은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친히 함께 하십니다.

    자녀된 여러분, 우리 부모에게 순종하십시다. 이것이 우리 자녀된 사람들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부모에게 순종할 때 여러분은 곧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됩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여러분의 생활 가운데서 예수님의 임재와 축복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믿는 부모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 4절에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믿는 부모들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을 세 가지 기본 명령, 다시 말해서 “사랑, 훈계, 가르침”으로 요약하고 있습니다. 잠언 22장 6절에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였습니다.

    우리 부모된 사람은 모든 자녀가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쳐야 합니다.

    부모들은 자신의 어떤 욕망과 야심을 자녀에게 씌우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어떤 부모는 자기 자녀의 생활을 통해서 자신이 의도한 생활의 일면을 드러내려고 애를 씁니다. 이것은 바른 가르침이 아닙니다. 그것은 어떤 때 자녀에게 막대한 고통과 좌절의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는 “내가 내 자녀를 바로 가르치고 있는가?” 되풀이해서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내 가르침이 이 아이에게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치는 일에 도움이 되고 있을까?” 생각하곤 하세요.

    여러분, 자녀는 부모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부모는 하나님으로부터 자녀를 낳도록 위임 받았으며 일정 기간 동안 교육을 시키고 양육할 책임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들은 자신들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저들의 자녀에게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칠” 의무가 있는 것입니다.

    자녀를 잘 지도하십시오.

    우리 자녀에 대한 가르침은 철저한 교육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밥상에서 밥먹는 몸가짐에서부터 시작해서 작은 일 큰 일을 다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고 자녀를 훈계하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부모에게 자녀를 훈계할 책임이 있다고 보십니다. 만일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자녀를 훈계하면서 키운다면 여러분은 주님의 허락하심과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에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경우 부모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제사장 엘리는 그의 아들들을 훈계하지 못했다는 이유 때문에 그의 집에 징벌을 내리셨습니다. 사무엘상 3장 13-14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그 집을 영영토록 심판하겠다고 그에게 이른 것은 그의 아는 죄악을 인함이니 이는 그가 자기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하되 금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그러므로 내가 엘리의 집에 대하여 맹세하기를 엘리 집의 죄악은 제물이나 예물로나 영영히 속함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노라” 하였습니다. 부모의 책임이 이렇게 큽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는 훈계를 바로 합니다. 잠언에도 “초달을 차마 못하는 자는 그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한다”고 했습니다. “채찍과 꾸지람이 지혜를 주거늘 임의로 하게 버려두면 그 자식은 어미를 욕되게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자식을 징계하라. 그리하면 그가 너를 평안하게 하겠고 또 네 마음에 기쁨을 주리라” 하였습니다.

    따라서 자녀를 사랑해야 합니다.

    요한 웨슬레의 어머니 수산나 웨슬리는 19명의 자녀를 키웠습니다. 이 어머니는 일주일에 한 시간씩 한 아이와 같이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아이들을 한 사람씩 번갈아 가며 특별히 돌본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자녀에게 사랑을 표시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시간임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많은 돈을 쓰지 않고도 우리 자녀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을 바치지 않고는 우리의 사랑을 표시할 수 없습니다. 오늘의 부모가 저희 주머니를 털어 가면서 자녀에게 물질의 사랑은 보여주면서도 진지하게 눈과 입과 귀로 느끼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의 사랑에는 외면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내일이면 자녀에게 사랑을 표현할 기회가 없어집니다. 오늘 자녀에게 사랑을 베풀어 그가 장성하여 아름다운 인생을 살게 하십시오. 아버지들은 그들의 돈이 아니라 시간을 자녀들에게 바쳐야 합니다. 여러분, 부모가 된다는 것은 두려운 책임입니다. 왜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 일의 수행을 도우라고 분명히 지시하셨기 때문입니다.

    부모님 여러분, 자녀를 가르치고 훈계하시고 사랑하십시오. 그리하면 여러분은 여러분의 자녀에게 축복을 안겨다 줄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의 자녀는 자라서 다른 사람에게 축복이 되고 주님에게 영광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축복이 여러 부모님과 자녀에게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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