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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도_신약 누가복음 10:17-20/ 전도의 참된 기쁨 [절기]
  • 조회 수: 610, 2013.11.02 16:41:16
  • 다음 주일은 우리교회가 정한 전도주일입니다. 이 전도주일을 위해 열심히 전도하고 계시는 분들에 대한 이야기를 제가 들었습니다. 교회에서 준비하여드리는 전도선물 보다도 훨씬 더 값 비싼 선물과 정성을 쏟으면서 전도하시는 분들도 있다는 소문도 들었습니다. 참으로 귀한 일입니다. 이렇게 전도를 해서 전도초청주일에 많은 전도의 열매를 맺으면 얼마나 큰 기쁨과 보람이 있겠습니까? 거기다가 교회에 정착하여 믿음이 쑥쑥 자라 어엿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정말 그런 보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의사인 장로님 부부가 계시는데 울산 무거동에 보면 이태희 신경정신과 간판이 걸린 큰 건물이 보입니다. 이 병원 원장님이시죠. 이 장로님 부부는 그렇게 전도에 열심을 냅니다. 울산 다운동에 교회가 새로 새워지고 난 후 교회가 어려움을 겪었어요. 교회건물은 천 오백석 규모 정도로 지었는데 교인은 한 500여명도 되지 않았습니다. 거기다가 교회 빛이 한 40억... 이렇게 되니까 교인들도 막 떨어지고... 그런 가운데 이 장로님이 울산에 이사를 오셔서 이 교회에 들어오시게 되었습니다. 이 장로님은 이렇게 교회가 어려울 때 전도를 해야 하겠다는 생각에 교회에서 차로 한 30분 정도 되는 외곽에 세워진 쌍용 하나빌리지에 전세를 받아서 그 곳에 살면서 전도를 합니다. 그 곳에 들어가서 2년 동안 구역을 무려 14개를 만들고 난 후 전도를 위해 다른 아파트로 이사를 하셨어요. 이런 식으로 참 전도를 많이 했습니다. 이렇게 하기까지 얼마나 돈도 많이 쓰고, 시간도 많이 드는지 몰라요. 그래도 이 부부는 이 쌍용 하나빌리지에서 나오는 교인들을 보면 흐믓해 하시면서 우리가 낳은 영적 자녀들이라고 하면서 그렇게 싫다는 표정 없이 이들을 신앙적으로 도와주는 일을 해요. 이 14개 구역이 제가 맡은 교구에 속했었는데 이곳에 사는 성도들은 그 장로님 부부를 마치 아버지, 어머니 받들 듯이 합니다. 이런 게 바로 전도를 통해서 얻는 보람이죠.


    그런데 전도주일이 되면 실망하는 일도 많이 생깁니다. 그렇게 정성을 드려 전도를 했는데 전도초청주일에 오지 않는 분들이 계십니다. 하여튼 뻔한 말로 변명을 합니다. 뭐 갑작스런 일이 생겼다든지, 배가 아팠다든지... 이런 이유들을 대면서 안 나온 것에 대해서 변명을 하는데 그러면 참 섭섭합니다. 사실 정성을 드려 전도를 했는데 몇 년 동안 계속 이런저런 핑개를 대면서 여전히 전도에 응하지 않으면 사람이 정말 밉상스러워 보일 수가 있습니다. 흔히 안 믿는 사람들이 그래요. 웬만하면 부탁 한 번 들어줘라. 죽은 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산 사람 소원 한 번 못 들어주나... 그러는데 정말 그렇게 정성을 드려서 눈치보고, 선물공세에 애교까지 부리며 교회 나와 달라고 부탁 부탁을 했는데 몇 년을 한결같이 이런저런 핑개를 대며 초청을 거절하면 기운이 빠지고 더 이상 전도하기 싫습니다. 이런 분들에게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전도주일에 많은 불신 이웃들이 예배당을 꽉 채워 예배를 드리는 일도 참 좋고 중요한 일입니다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은 이 전두주일을 앞두고 저나 성도 여러분들이 힘써 기도하며 전도하는 이 사실이 더없이 중요하며 귀하다는 것입니다. 전도한 그 자체가 더 없이 우리에게 소중한 것이며 주님께서는 이것을 더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우리 주님도 같은 뜻으로 우리를 격려하심을 보게 됩니다.


    누가복음 10장에서는 예수님께서 70인의 전도대를 세워서 파송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1절에 보니 친히 가시려는 각 동네나 지역으로 보내셨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필요한 곳이 한 두 곳이 아닌데 그 모든 곳을 예수님이 다 가실 수가 없으니 이 70인을 예수님을 대신해서 보내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대신해서 보내니까 귀신을 쫓아내는 권세, 병을 고치는 권세로 무장해서 보냅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이 70인들이 전도를 한 후에 예수님께 돌아와서 보고를 합니다. 이 부분을 우리가 오늘 읽었습니다. 17절에 보니까 이들이 신이 나서 보고를 하는데 “주여 주의 이름이면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을 하더이다.” 이 장면을 우리가 한 번 상상해 보면 이들이 얼마나 신이 나서 주님께 보고를 했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분들도 처음에는 우리처럼 얼마나 귀신을 무서워했을까요? 또 병자들이 자기를 위해 기도해달라고 요청할 때 처음에는 얼마나 주저했겠습니까? 그런데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니까 귀신이 두려워 물러가고, 병자들이 고침 받고... 이런 일들이 자신들 앞에서 막 일어나니까 얼떨떨하기도 하고, 자기들이 뭔가 된 것 같기도 하고.... 이래서 엄청 신이 난 상태에서 주님 앞에 와서 보고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주님께서도 격려를 해 주시는 것을 봅니다. 18절에 보니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그래... 나도 너희가 하는 말이 거짓말이 아닌 줄 안다. 내가 다 보았다.... 이렇게 인정해주시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일들은 전도하면서 항시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전도를 하지 않으니 이런 기적들을 우리가 체험하지 않는데 전도를 하다보면 이런 일들을 우리가 경험합니다. 다 전도의 열매죠. 전도하는 자에게는 주님께서 이런 능력을 주십니다. 그래서 19절에 보니까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능을 주었으니 너희를 해칠 자가 결코 없으리라...” 이게 바로 전도자에게 주시는 주님의 권능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말씀을 주님께서 하셨는데 바로 20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하시니라.”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뜻이 어디 있겠습니까? 귀신이 나갔다고.... 병자를 고쳤다고... 자랑할 거 없다. 왜요? 그 후속 문제를 한번 생각해 봅시다. 우스운 이야기입니다마는 오스카 와일드의 단편소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고, 병 고친 사람들이 장차 어떻게 됐을까? 이런 상상 속에서 지어진 좀 우스꽝스러운 소설인데 그 내용이 이런 것입니다.


    어느 날 예수님이 보니까 알콜 중독자가 있더래요. 술이 만취돼가지고 돌아다녀요. "너는 왜 어떻게 어디서 본 거 같은데 알콜중독자가 됐냐?" 그러니깐 "내가 본래 절름발이였는데 예수님이 병을 고쳐주었습니다. 절름발이 때 내가 거지로 살았는데 하도 오랫동안 거지생활을 해서 뭘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야지요. 기술도 없고 아무것도 없고 직업이 없어서 내가 그만 자포자기해서 알콜중독자가 됐습니다." 또 가다보니까 창녀가 하나 있더래요. "너는 어떻게 창녀가 됐냐?" 그랬더니 "예수님이 나를 귀신 내쫓아서 맑은 정신을 만들어준 건 사실인데 귀신들렸던 사람이라고 누가 거들떠보질 않아서 아 그만 먹고 살아야 하겠으니까 창녀가 됐습니다." 아, 또 그런가 하면 한 사람은 조폭이 됐어요. "넌 어떻게 조폭이 됐냐?" 하고 물었더니 "저는 본래 시각장애자였는데 주님께서 눈을 뜨게 했습니다. 그건 좋았는데 눈감을 때는 몰랐는데 뜨고 보니까 보기 싫은 게 너무 많아요. 세상에 못 볼게 많더라고요. 그래 화가 나서 조폭이 됐습니다." 가만히 생각하니까 말이 되잖아요.


    여러분 가끔 이런 말 들으시죠? 물에 빠진 사람 건져주었더니 보따리 달라 그런다고.... 사실이죠, 보따리 있어야 살잖아요? 물에서 건져주는 것만 가지고 삽니까? 몸은 살았는데 보따리가 없으니까 차라리 죽도록 내버려두지, 왜 살렸느냐, 이제 어떻게 사느냐... 이런 원망을 들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자, 예수님이 많은 병자를 고쳤어요. 그러나 병을 고침 받아 그 결과가 다 좋기만 했겠습니까? 제가 어릴 때부터 교회에서 자라다 보니까 병 고침 받고 교회를 떠난 사람도 보았습니다. 부자가 되게 해 달라 기도했는데 부자가 되니까 교회를 떠나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주의 사랑으로 구제를 많이 해야 한다고 하는데 교회로부터 평생 도움을 받고서도 예수 안 믿고 천국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가 그러지 않습니까? 백성들이 먹고 사는 문제는 나라님도 책임을 못 진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교회가 어떻게 사람이 만족할만한 구제를 할 수 있겠습니까?


    한 때 북한과 잘 통하던 시절 큰 교회들이 북한을 돕겠다고 참 많이들 나섰습니다. 제가 울산에서 교회를 섬길 때 그 교회도 평양의 육아원 한 곳을 책임졌습니다. 어린이들이 한 300명 정도 되는데 그들의 먹는 것, 입는 것, 학용품.... 다 책임졌어요. 그런데 도와도, 도와도 끝이 없어요. 사실 남한에서는 교회 대 한 기관일 뿐인데 북한에서는 한 교회 대 국가 간의 문제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자꾸 더 무얼 요구하는데 국가를 상대하기로는 교회가 아무리 크다 한들 버거운 것입니다. 그러면서 점차점차 지쳐가다가 그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니까 그냥 모든 게 다 끊어져버린 것입니다. 


    그러니 20절에서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종합해 보면 우리 이웃들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전도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영역으로 주셨습니다. 그 과정에서 귀신이 물러가고, 병이 고침을 받는다든지 하는 것들은 다 전도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일회성의 부수적인 일들입니다. 그런 것들이 귀하고, 은혜가 되고, 신도 나는 일이지만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베드로처럼, 바울처럼 전도하면서 각 종 역사가 일어날 수도 있지만 스데반처럼 신비한 역사는 고사하고 전도하다가 돌에 맞아 순교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이렇게 전도하는 일로 내가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데 참여했다는 것이고, 이렇게 전도함으로 내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왜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합니까? 하늘에 그 이름이 기록된 것은 대단한 것이 예견되기 때문입니다. 이미 구원 받아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된 것은 사실이고... 그렇다면 하늘에 기록된다는 것은 우리의 전도 선행이 낫낫이 하늘에 기록되어 반드시 그에 의해서 상을 받을 날이 오게 될 거란 뜻이죠.


    우리가 심판자 주님 앞에 설 때 주님 앞에는 두 가지 책이 놓여 집니다. 하나는 생명책... 이 책에 이름이 올라와 있어야 천국 쪽으로 줄을 설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름이 없으면 안 됩니다. 그 생명책에 자신의 이름이 기록되었는가, 아닌가.... 자기 양심에 물어보면 한 80%는 알아요. 왜냐하면 주님이 우리를 가장 잘 알고요, 그 다음에는 자기 양심이 자기를 제일 잘 알죠. 고후13:5에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왜 이 말씀을 하셨겠어요? 무엇보다도 자기 양심이 자기를 잘 알기 때문입니다. 내가 구원받았는지, 내가 하나님의 자녀인지.... 자기 양심이 증언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님 앞에 놓여 질 또 다른 책은 우리 신앙의 행위들입니다. 구원받고 천국 가는 것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공로입니다. 우리의 행위로 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의 행위에 따라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받을 상이 있는데 자신의 선행에 따라 하나님께서 상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믿음으로 하는 선행들 가운데서 전도선행 많큼 큰 상이 없다고 합니다. 사실 그래요. 구제한다고 해 봐야 우리가 얼마나 하겠어요. 그 사람이 하나님 믿고 하나님께 구하면 하나님께 받을 수 있는 것.... 이것 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미미한 것에 불과합니다. 어떤 사람이 물질적으로 어려워서 한 백만원 정도 도와준다고 해 봅시다. 그러나 그 보다 더 큰 도움은 평생에 그 이상 벌 수 있는 직장을 구해주는 게 더 낫잖아요? 그러니까 이런 이치로 보면 그 어떤 선행보다 전도의 선행이야말로 가장 큰 선행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전도를 하니까 열매가 있든, 없든 전도는 그 자체가 귀한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전도의 선행이 하늘의 책에 기록된 이걸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전도만 많이 하면 됩니다. 전도초청 주일에 몇 명 오느냐..., 그건 눈으로 보는 즐거움입니다. 이건 상 받기 전의 잠간의 즐거움입니다. 그러나 하늘에 그 이름이 기록된다는 것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기쁨입니다. 그 기쁨을 상상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 주일이 오기까지 이번 주 한 주간은 전도를 우리 삶의 최우선순위로 두고 열심히 전도하여 우리 모두의 이름이 하늘에 다 기록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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