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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요한계시록도 종반으로 가고 있습니다. 계시록 22장 중 오늘이 19장입니다. 올해 내에 이 계시록을 마치면 합니다. 이 계시록은 좀 우리에게 스트레스를 주지만 우리가 무겁게 받아드려야 할 부분입니다. 이 세상 역사의 마지막을 위하여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예언은 너무나 확실합니다. 벧후 1:19에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라고 한 것과 같이 우리는 어두운 세상에서 환한 등불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요한계시록의 예언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해석이야 조금씩 다를 수 있습니다만 결국은 종말을 말하는 것 아닙니까? 우리가 요한계시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롯의 사위들처럼 헛소리라고 떠들어 됩니다만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헛소리로 간주하는 사람은 롯의 사위들처럼 되는 겁니다. 여러분.... 미국 쌍둥이 빌딩이 테러리스트들에 공격당하여 무너졌는데 그냥 무너진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여러 가지 징후들이 있었고 그걸 정부기관에 보고도 했지만 뭐.... 장난 비스므리 한 것으로 받아드렸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천안함이 폭파당했는데 그 3일 전부터 북한의 동향이 심상치 않고 이런 사실들을 보고해 올렸다고 합니다만 정보를 다루는 분들이 그걸 소홀히 다루었다는 것입니다. 사건이 터지고 난 후에 뭐 이런 저런 징후들이 있었다.... 그런 소리들이 나오는데 뒤 늦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와 마찬가지로 성경의 예언을 우습게 받아드려서는 안 됩니다. 살전 5:3,4에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이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우리는 예언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예언을 존중하면 어두움에 있지 않을 것입니다. 빛의 자녀들에게는 예수님의 재림이 갑작스러운 것이 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지요. 자 이제 19장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1. 허다한 무리의 찬양 하나님의 심판이 끝나고 하나님의 참된 교회의 백성들이 누구인지가 드러나고 그들을 팝박하던 짐승의 세력 즉, 바벨론이 멸망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와 진리를 핍박하던 자들과 그 단체가 드디어 심판 받은 것입니다. 은혜의 시간이 끝났고 이제는 더 이상 회개할 기회가 없고, 마지막 7재앙이 내리는데 하나님과 그 분의 진리에 순종하지 않고 짐승과 바벨론의 세력을 따르던 자들, 즉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에게 재앙이 내리고 모든 것은 파국으로 치닫습니다. 그 후에 하늘에서 드디어 하나님의 심판이 정당하고 의롭다라고 하는 찬송이 울려 퍼지는 것입니다. 계시록 19장의 내용이 대략 이런 줄거리입니다. 여기 보면, 천사들과 허다한 무리들과 이십 사 장로와 네 생물이 모두 하나님을 찬송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노래의 가사 중에 특별히 하나님의 심판의 의로움과 음녀의 심판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자비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하나님이 얼마나 참으셨습니까? 그런데 악인들은 기만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잔인하시다, 용서가 없으시다... 자기 소행은 살펴보지 않고 하나님을 무자비하다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성도들도 그럴 수 있습니다. 성도들이 얼마나 착한지 그렇게 핍박을 받다가도 악인들이 비참하게 심판을 받으면 “하나님... 저들을 꼭 저렇게 심판해야 하나요? 너무 잔혹합니다!!” 이게 성도들입니다. 악인들은 심판에 대해 하나님께 딴지를 걸고, 착하고 순진한 성도들은 악인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 그들을 동정하고.... 그러니 악인의 심판을 선량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세상의 악인들을 감당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 최후의 심판은 하나님의 몫입니다. 잠시 옆으로 빠집니다만.... 자신이 의롭다고 생각하시는 분들, 자신이 착하다고 하시는 분들은 악한 사람들을 절대로 상대해서는 안 됩니다. 악인을 선량한 성도들이 감당할 수가 없어요. 악인들은 선량한 사람들의 인격을 볼모로 삼고 있어요. 나는 이왕 이 지경이 됐으니 한 번 해 보자. 너의 인격을 완전히 똥이 되도록 밟아주겠다.... 이러는 사람을 어떻게 상대하겠습니까? 그러니까 싸워봐야 나만 똥 되니까 피하고 보아야 합니다. 원수 갚는 것이 하나님께 있으니 하나님께 맡기라고 말씀하셨으니까 여러분들의 원통함, 억울함.... 다 하나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개인적으로도 심판하시고, 마지막 날에는 확실하게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이 심판에는 불쌍히 여김도 없습니다. 하늘의 24장로, 천국천사들이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노래하고 찬양하는 심판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의롭다!!” 이런 내용이 6절까지에 걸쳐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다음에 어린양의 혼인잔치가 나타납니다. 2. 어린 양의 신부가 준비됨 계 19:7,8,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 여기서 신부는 하나님의 교회를 상징합니다. 물론 개인들이 그 속에 포함되죠. 계시록 2장 1,2,9,10절에도 보면, 교회가, 새 예루살렘으로 상징된 교회가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게 되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에 보면 주님과 교회의 관계를 신랑과 신부의 관계로 비유한 곳이 여러 곳 됩니다. 대표적으로 에베소서 5장 22절 이하에 보면 주님이 교회의 머리인 것처럼 신랑은 신부의 머리이기 때문에 순종하야 한다고 하셨고, 또 주님께서 교회를 위해 자기 몸을 주신 것처럼.... 주님이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목숨을 버리신 것을 뜻하죠. 이런 것처럼 신랑은 신부를 그렇게 사랑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7절에 보니까 어린 양의 혼인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라는 의미심장한 말씀이 나옵니다. 이 말씀을 이해하려면 우리가 유대인들의 결혼풍습을 잘 알아야 합니다. 유대인들은 약 1년 전에 약혼을 합니다. 이 약혼을 한 것만으로도 법적으로 구속이 됩니다. 부부효력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같이 살지는 않습니다. 약혼을 하고 나면 남자는 앞으로 결혼하여 살 집을 장만해야 합니다. 이 기간에 예비신부는 스스로를 잘 가꾸어 아름답게 만들고 지참금도 준비하는 기간으로 삼습니다. 이런 그림은 너무나도 교회와 주님과의 관계를 흡사하게 보여줍니다. 요한복음 14장에 주님이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다시 와서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신랑이 신부를 위해 집을 장만하러 가는 모습과 너무나도 흡사하지 않습니까? 이 기간에 성도는 물과 성령으로 씻음 받고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어서 신앙 안에서 자신을 잘 가꾸면서 천국 집에 가지고 갈 결혼지참금을 준비해야 하는데 이는 희생과 봉사, 헌신이라는 것입니다. 8절에 보면 신부가 입는 것은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하는데 이 세마포 옷을 무엇이라 했습니까? 성도들의 옳은 행실....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성도들이 100% 무결점으로 깨끗한 것은 아닙니다. 성도들도 연약한 육체와 죄 된 본성을 제대로 재어하지 못하므로 죄를 짓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도는 하나님의 성령과 진리로 성화된 자들이며 하나님의 성품을 가진 자들이죠. 이 말이 무슨 말이냐 하면 성도에게는 어느 정도 죄를 제어하는 힘이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하나님이 주신 신의 성품 중에 가장 탁월한 기능은 양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양심이 제대로 작동하면 죄 짓고 못삽니다. 기어코라도 회개해야 고통이 사라집니다. 이 양심은 성도들로 하여금 어느 정도 선을 지키게 합니다. 성도라고 하면서 그냥 막가파 인생들이 있는데 저는 그런 사람은 진짜 성도라고 보지 않습니다. 어떤 유명 의사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따라 할까요? “세상에 불치병은 없다. 오직 구제불능의 사람만 있을 뿐이다.” 이 구제불능의 사람이란 어떤 사람을 말하느냐 하면 의사 말을 무시하는 사람, 그리고 병이 와도 자기를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 예를 들어 간경화가 왔는데 술을 끊지 못하는 사람.... 이런 사람을 지칭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용서받지 못할 죄란 없습니다. 용서받지 못해서 망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가 구제불능이기 때문에 지옥으로 미끄러져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앙적으로 이 구제불능인 사람은 신앙의 양심이 죽어 있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혼인잔치가 어느 시점에 이루어지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물론 해석이 각양각색이며 의견이 분분합니다. 저는 7년 대환란 직전 주님의 공중재림에 교회가 들림을 받아 천국에서 어린양의 혼인잔치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해석하는 것을 좋게 봅니다. 그 이유를 들자면 몇 가지 됩니다. 첫째, 원래 교회가 주님의 신부이거든요. 그런데 신약시대의 교회는 구약시대의 이스라엘과 확연히 구분됩니다. 이스라엘은 사실 고난을 통하면서 참된 하나님의 교회로 거듭난다는 사실을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제가 몇 번 설명을 드렸습니다. 그러니까 교회가 고난을 통과한다면 이건 이스라엘과 섞여버리는 결과가 됩니다. 그러니까 주님의 신부로서 교회는 신약에 시작된 교회를 의미하며 이는 아주 독보적입니다. 둘째, 마태복음 25장 1-13절은 지혜로운 다섯 처녀와 어리석은 다섯 처녀 비유가 나옵니다. 이건 어린양의 혼인잔치 비유를 주님이 드신 것입니다. 주님의 가르침이야말로 정말 중요하죠. 이 비유에는 무엇보다도 잠자고 있는 처녀들과 깨어있는 처녀들이 섞여 있습니다. 신랑이 더디 오니까 다 잠에 빠져 있습니다. 이런 때는 대환란의 때라고 볼 수 없습니다. 이러한 때는 시기와 때를 정확하게 짐작할 수 없는 때입니다. 그러니까 교회가 잠자죠. 그런데 잠을 잘 땐 자더라도 준비하면서 자야 합니다. 대환란 때에는 모든 성도들이 정신을 차리겠죠. 이런 때 누가 잠을 잡니까? 아무리 잠이 많은 사람이라도 걱정이 있어보세요. 잠이 오지 않습니다. 걱정이 없으니 잠을 자죠. 지금은 다 잠 잘 때입니다. 집 좋고, 차 있고, 은행 잔고가 있고... 그러니 걱정할 게 없어서 잡니다. 누구나 다 잡니다. 그러다 주님이 오신다... 하는 소리가 들리면 다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차이라면 준비하며 졸았던 신부, 준비하며 퍼져 잔 신부... 그 차이입니다. 자 그 준비가 무엇입니까? 기름이죠. 10처녀 다 등불이 준비되어 있는데 다섯 처녀는 등불을 밝힐 기름이 준비되어 있으나 어리석은 다른 다섯 처녀는 등에 기름이 없습니다. 여기서 등이란 신앙의 도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뭐 기도도 되겠고, 성경말씀도 되겠죠. 흔히 등불을 말씀에 비유합니다. 다윗은 시편 119편 105절에서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이니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다 말씀이 있고, 기도가 있지만 그 말씀과 기도가 기름으로 말미암아 환히 밝혀지고 팔팔 타는 경우도 있지만 기름이 없어서 빛을 내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기름이 무엇일까요? 바로 성령을 상징합니다. 이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말씀이 말씀 되고, 기도가 기도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성경을 읽어도, 아무리 말씀을 들어도 그 심령 안에 성령이 역사하지 않으니까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등불이 타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의 등불이 훨훨 타오르도록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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