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시작에 있어서 마가 요한의 다락방은 참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지상생활이 마가 요한의 다락방에서 결론을 맺고 그리고 성찬식도 바로 이 다락방에서 시작되었고, 무엇보다도 교회가 바로 이 다락방에서 시작 된 것입니다.
사도행전 1:6에 보면 제자들은 예수님께 한 가지 질문을 했습니다.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 다른 말로 바꾸면 주께서 이 나라를 회복하시는 때가 바로 지금입니까... 하고 물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너희가 내 증인이 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은 하나님께서 이 나라에 복을 주실 때가 언제입니까 묻는데, 예수님의 대답은 "그것 너희가 알 바 아니요 너희가 내 증인이 되어야 하리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다락방은 이 문제의 해답의 장소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느냐는 것이 아니고 그러한 질문이 바꾸어져서 내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이렇게 관심의 방향이 돌려지게 된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에게 무남독녀가 있었다고 합니다. 사랑스런 딸 단 하나를 슬하에 두고 사니까 너무 지나치게 사랑했던 것 같습니다. 심방을 가면 교인들이 그 귀한 딸을 위해 어떤 때는 사탕이나 과자를 싸주며 귀한 딸에게 갖다 주라고 합니다. 그럴 때마다 그것을 받아 가지고 와서 그 어린이에게 주면 그 아이는 좋다고 받아먹곤 하는 중에 그만 좋지 못한 버릇이 생겨서 아버지가 들어오시면 아버지 얼굴은 쳐다보지도 않고 "아빠" 하고는 가방부터 뒤집니다. 그리고 무엇이 나와야지 만일 안 나오면 "으앙" 하고 울어버립니다. 목사님은 딸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 과자를 못 얻어 가지고 들어가는 날은 사 가지고 들어갔습니다. 이 아이는 항상 과자를 받아먹는 재미로 아버지를 맞이했는데, 그 버릇이 시집갈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딸이지만 내내 데리고 있을 수 없어서 시집을 보냈는데, 보내고 나니 그 아버지가 딸이 보고 싶어 못 견디겠기에 얼마 후에 딸네 집에 갔습니다. 딸이 좋아하는 쵸코렛과 캔디를 한 가방 사 가지고 갔습니다. 초인종을 누르니까 딸이 반갑다고 맞이하면서 가방을 받아 들고 들어갑니다. 아버지는 뒤따라가면서 "저놈이 저 가방을 열어보면 깜짝 놀랄 것이다" 하고 기뻐하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따라 들어갔는데, 딸은 가방을 응접실에 놓고는 부엌에 들어가서 음식을 만드느라 지지고 볶고 바쁘단 말입니다. 아버지는 섭섭했습니다. "저놈이 왜 저 가방을 안 열어 볼까? 저걸 열어봐야 되는데." 참다못해서 아버지는 딸을 불렀습니다. "이리 오너라. 너 왜 저 가방을 안 열어 보느냐?" 그 말에 "제가 이제 그럴 나이가 지났잖아요. 고생한 아버지를 제가 정성껏 모셔야지요"하고 대답하였습니다. 바로 이것이 철이 났다는 것입니다. 마가의 다락방이라고 하는 것은 이런 의미가 있습니다. 받고자 하는 마음이 여기서 변해서 드리고자 하는 마음으로 바꾸어집니다. 이것이 마가 요한의 다락방입니다.
흩어졌던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모여서 비로소 하나님의 큰 뜻을 이루게 됩니다. 예수께서 부활했다는 소식은 들었으나 희미하고 그리고 핍박이 있을 듯해서 엠마오로 피해갔던 제자도 이제 새 용기를 가지고 예루살렘에 모였습니다. 예수를 세 번이나 모른다고 했던 베드로도 모였습니다. 갈릴리로 물고기 잡으러 다시 가 버렸던 일곱 제자도 이제 그물을 내버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모여들었습니다. 비록 그리스도는 이 자리에 안 계시지만,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계시던 곳에 모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던 곳에 모였습니다. 열두 제자가 아닌 120명이 모였습니다.
부활하신 예수가 다시 이 자리에 나타나기를 바라서가 아닙니다. 역사적으로 세상에 계시던 그 예수가 또 다시 나타나서 초자연적 능력을 행사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오천 명을 먹이던 기적을 이들 가운데서 나타내 주기를 바랐던 것도 아닙니다. 다만 그리스도께서 명령하신 대로 그 명령을 준행하기 위해서 다락방에 모였습니다. 그들은 믿음으로 모여 기도했습니다. 그 옛날 일을 기억합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해서 광야로 나올 때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모세를 바라보면서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를 건너 광야로 나왔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과 함께 하며 계시를 받는 시간을 참지 못해서 모세가 보이지 않을 때에 이들은 낙심하게 되고 절망하게 되고 소란을 피우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마침내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섬겼습니다. 모세가 잠깐 보이지 않는다고 금송아지를 만들었던 이스라엘입니다.
제자들은 그들과 같지 않았습니다. 예수를 부활 승천하셔서 그들의 눈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여서 주님의 말씀을 준행했습니다. 그 말씀은 이러합니다. 사도행전 1:4에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누가복음 24장에 보면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올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떠나지 말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이제 두려움도 잊었습니다. 죄 없는 예수 그리스도를 잔악하게 십자가에 못 박는 그 사람들이 제자들을 그저 둘 리가 없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다고 하는 것은 위험하기도 하고 두렵기도 합니다. 이제는 먹고살아야 되기도 합니다. 가정 문제도 있습니다. 문제는 많았습니다. 그래도 모여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렸습니다. 위로부터 오는 능력, 위로부터 들려오는 하나님의 말씀, 그 지혜와 용기를 기다렸습니다. 성령의 임함을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예수의 어머니와 예수의 아우들도 함께 모였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생생하게 마음에 기억하며 마음을 같이 하여 기도에 힘썼습니다. 그 응답으로서 성령을 받았습니다. 성령 받고 큰 용기와 담력을 얻어서 종말론적 신앙을 가지게 됩니다. 이제 핍박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 동안에 소원했던 이스라엘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는 일, 이 복음의 역사를 위해서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들은 이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다락방의 역사입니다.
우리의 다락방은 어디입니까? 우리의 다락방은 이 항도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 이곳에 항도교회를 두신 것은 함께 모여 기도하고, 성령 받고, 예수의 증인 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 다락방이 처음에는 다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의심 많은 도마는 이 다락방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신앙의 회의감에 방황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는 주님의 죽으심에 낙담하여 포기한 생업터를 향하여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디베랴의 7 제자들도 주님과 함께 하던 길에서 그들의 일터로 돌아갔습니다. 이렇게 뿔뿔이 흩어져 있는 제자들을 주님께서는 40일 동안 다시 하나로 모으는 일을 하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120명의 성도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 항도교회도 다시 모으는 일을 해야 합니다. 실망한 형제들, 시험에 빠진 형제들, 믿음에서 떨어져나간 형제들.... 도마 같고, 엠마오의 두 제자 같은 잃어버린 자들을 함께 모으는 이 일이 중요합니다. 함께 모아서 간절히 기도하면 우리 항도교회도 마가 요한의 다락방 같은 역사가 일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간혹 흩어지는 교회라는 말을 듣습니다. 그러나 모이지 않는 교회가 언제 흩어집니까? 한갓 흩어짐이 흩어짐으로 끝나면 세속화합니다. 모이는 교회에서 얻은 성령의 역사가 있고서 흩어져야 선교하고, 전도하는 교회가 됩니다. 여러분, 다락방에 모여야 합니다. 이 다락방을 거쳐서 문제의 해결을 얻고, 여기에서 하나님과 나와 함께 하는 체험을 얻고, 여기에서 하나님이 나를 쓰시고, 나를 고용하시고, 하나님의 선교 전략을 따라서 나를 인도하심을 따라 갈 때에 비로소 하나님의 역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성령 받아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시선으로, 그리스도의 길에 서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 나라의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다려야 합니다. 성령이 내게 믿음을 주시고, 용기를 주실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성령체험 없이 부리는 용기는 한낱 혈기에 불과합니다. 그리스도께 주시는 말씀이 아니라면 우리가 말하는 것이 어리석을 따름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내게 뜨거운 사랑을 주시기 전에는 내가 누구를 만나고, 사랑한다고 하는 것이 다 갈등만 조장하는 것이 됩니다. 성령의 불이 나를 태우기까지 우리를 그의 기도의 제물로 바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제자들은 성령을 받고 보니 이제 아무 소원도 없어졌습니다. 그 전에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언제 하나님의 선민이 악한 원수들을 물리치고 승리를 외칠 수 있을까..... 이런 것에 빠져 있으나 이제는 오직 그리스도의 마음, 그리스도의 뜻, 그 말씀을 위해서 사는 것, 그리고 그를 위하여 핍박을 당하는 것을 오히려 영광으로 알고, 순교를 가장 큰 기쁨으로 맞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이 같은 썩어지는 밀알을 통해서 하나님의 교회는 세워졌고 하나님의 역사는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오늘 바로 우리가 예배드리는 이 자리가 우리의 다락방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 은혜로우신 아버지 하나님, 주께서 다락방에서 역사 하신 그 역사를 우리가 믿습니다. 원컨대 이 자리가 120명 문도가 모였던 그 다락방이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그 다락방에 있었던 변화가 우리에게도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그 온전하시고 크신 뜻이 이루어지는 귀한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지난날의 모든 생을 여기에 시작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 말씀과 그 용기와 그 약속 안에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