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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약 누가복음 24:13-27/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 [주일낮]
  • 조회 수: 476, 2013.11.16 21:39:19
  • 엠마오를 향해 두 사람이 지는 해를 따라 서쪽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엠마오는 예루살렘 서쪽 12km 쯤 되는 곳으로 그들의 고향이요, 가족과 일터가 있는 곳입니다. 누구라도 지는 해를 따뜻하게 얼굴에 맞으며 고향을 바라보며 걷노라면 가족을 만날 기대감에 기분이 좋아지는 법입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의 어깨는 축 쳐져 있었고 낙담과 한숨으로 발걸음은 더디고, 고단해 보였습니다. 이들은 바로 3년 전에 고향을 등지고 예수님을 쫓아 따르던 제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이 고향도 저버리고 3년 동안 예수를 믿고 따랐는데 그만 예수님이 로마 군병들에 의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으니 실망과 낙담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그들에게 부활하신 주님께서 나타나셔서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면서 찬찬히 성경을 풀어 주었습니다.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로부터 시작해서 전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 계획,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의 의미를 계속 설명해 주시자자 두 제자는 의심했던 마음이 다 사라지고 믿음에 대해 새로운 세계가 열렸습니다. 세 사람이 음식을 먹을 때, 그제서야 비로소 두 제자는 그 낯선 동행자가 부활하신 예수님이신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에게 있었던 일입니다. 

    복음서에는 이 두 제자들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12제자도, 마리아를 비롯한 예수님을 가까이에서 모신 여인들도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하시기 전 얼마나 자주 부활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습니까?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을 듣고도 그들은 믿지 못했습니다. 왜 믿지 못했을까요? 그들은 예수님의 죽음을 현실로 받아드렸지만 부활은 그저 예수님이 한 번 해 보는 소리인 줄로만 알아들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따랐지요. 따르다 보니까 좋은 분이고, 정도 들고.... 그런데 그만 빌라도의 재판을 받고 십자가의 형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입니다. 메시아인줄 알았는데 메시아는 아니었구나.... 참 불쌍하신 분이다. 좋은 분이었고, 옳은 일을 많이 했는데 높은 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시기해서 그만 그를 죽이는구나..... 불쌍해서 이를 어째.... 그냥 억울하게 죽으니까 남아 있는 우리들이 실망할까 봐 3일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이렇게 해 보는 소리일거야. 

    오늘날 우리도 다분히 부활에 대해 이런 태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교회에서 부활절을 지키고, 부활절 설교를 하니까 부활이라는 소리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지만 뭐 그리 중요하게 듣는 것은 아니고 그냥 교회에서, 성경에서 하는 소리이니까 그런가 보다.... 이렇게 부활을 생각하는 게 아닌가..... 초기에 제자들처럼, 여인들처럼, 그리고 이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들처럼...... 예수의 부활을 믿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 번 의심해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이 역사적 사실이고 그것은 부인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이다는 것은 새삼 강조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역시 부활은 믿고 받아드리기에는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것은 마치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가 평소에 예수님이 그렇게도 부활할 것을 말씀했건만 그저 해 보는 소리거니.... 라는 식으로만 받아드린 것과 비슷한 맥락인 것입니다. 그래서 가끔씩 이런 분들에게 부활이 믿어질 수 있도록 분명하게 성경이 말씀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성경은 언제나 당당합니다. 뭔가 꺼림직한 게 있어서 말씀 앞에 설명을 붙이거나 또는 뒤에 사족을 다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창세기 1:1은 처음 성경을 여는 말씀인데도 밑도 끝도 없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부활에 관해서도 그런 태도는 똑같습니다. 한 마디로 복음서 기자들은 이 부활 이야기를 도무지 변증하려는 태도로 기록하질 않았습니다. 후세 사람들이 그렇게 걸고넘어질 것을 예견했다면 앞뒤를 좀 더 잘 꿰맞췄어야 했을 것 같은데, 어디를 봐도 그런 기색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이유가 뭐겠습니까? 자신감 때문입니다.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밝히는 것 외에 무슨 증명이 더 필요하겠냐는 것이지요. 부활은 더 이상의 증명이나 사실 확인도 필요 없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사실을 받아들이든 말든 그것은 독자 자신의 문제요, 단순히 믿음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우리가 어떻게 하면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받아드릴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부활의 주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오늘 말씀 32절에 그 답이 나와 있습니다.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그렇습니다! 말씀을 읽고, 들으므로 우리는 부활을 믿을 수 있습니다. 지금 내 앞에 예수는 보이지 않지만, 말씀이 내 가슴을 때리고 그 말씀이 내 영혼을 뜨겁게 달굽니다. 지금은 계시의 시대도 아니고 바다가 갈라지는 것 같은 그런 기적의 시대도 아닙니다. 지금 같은 문명 시대에서는 더 이상의 기적이 필요치 않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만나고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말씀을 통한 것이 유일한 방법입니다. 말씀으로 만나는 것보다 더 든든한 것은 없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영혼이 메말라 있다면,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말씀이 없어서입니다. 말씀을 사랑할 때 주님은 자신을 우리에게 보이실 것이고, 말씀을 들을 때 우리는 엠마오 도상의 제자처럼 부활하신 주님을 만날 것입니다. 

    오늘 두 제자가 아쉬워했던 것은 어떤 점이었을까요? 눈이 밝아져서 비로소 예수님을 알아 본 순간 예수님은 보이지 않으셨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늘 갖고 있는 의문도 바로 그것입니다. 왜 부활하신 주님은 좀 더 우리와 함께 오랫동안 계셔주시지 않는 걸까요? 왜 그 분은 나에게 자신의 임재를 좀 더 확실히 느끼도록 증표를 보여주시지 않는 걸까요? 좀 더 적극적으로 사람들에게 부활의 모습을 보여주셨으면 좋을 뻔 했는데,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볼라치면 홀연히 사라지시는 것입니다. 맘 같아서는 일진광풍을 몰고 산헤드린이나 빌라도 앞에 떡 나타나셨으면 속 시원했을 텐데, 그들에게는 아예 보여주기조차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은 도마에게 하신 말씀이 그 답이었습니다.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않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요20:29)
    예수님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 분이 돌아가신 것은 아닙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다시 나타나시지 않는다고 해서 그분의 부활이 부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육체로 보이는 것은 잠깐이지만 마음에 모시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그 부활하신 주님은 우리들 각자의 마음속에 와 계십니다. 누구십니까?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과 성령님은 다른 분이 아닙니다. 그 분은 오늘도 우리와 함께 계시고, 앞으로도 영원히 함께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부활의 증거를 기적적으로, 역사적으로 갖다 댄다 하더라도 내 마음에 있는 부활의 증거가 더욱 더 확실한 것입니다. 왜 예수님은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부활의 증거를 확실히 했습니까? 그들은 부활증거의 기초입니다. 그 기초를 튼튼히 하기 위해 예수님은 의심 많은 도마에게 조차도 부활의 증거들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렇게 하시지 않습니다. 내가 안 믿어진다고 해도 주님은 도마에게처럼 나타나셔서 못 자국을 보여주시고 그러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말씀을 듣고, 배우고, 기도하다보면 어느새 부활신앙이 확실한 나의 신앙으로 자리 잡게 되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죽음을 불사하며 믿음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하고, 그 부활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도 복음이 들어왔을 때 수많은 성도들이 죽음으로 믿음을 지켜냈던 것은 초대교회 성도들의 부활증언을 그대로 믿고 받아드렸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부활이 믿어지니까 그 좋은 세상명예 다 버리고 오지의 선교사로 기꺼이 나가는 분들이 계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부활신앙을 믿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놀라운 축복이 임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그 어떤 기적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주님의 부활이 우리 마음에 믿어지니 참으로 감사합니다. 우리 주님이 부활하신 일과 성경의 말씀은 그 어떤 인격자, 그 어떤 권위자 보다 더욱 더 믿을만한 진리요, 역사적 사실인 줄로 고백합니다. 바라옵기는 더 많은 이들이 믿어 고난을 이기고 주의 영광을 바라볼 수 있도록 저희들이 부활의 증인 되게 사용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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