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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약 열왕기상 19:01-08/ 창조적 휴식 [주일낮]
  • 조회 수: 257, 2013.11.16 22:00:19
  • 현대인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거의 피곤해 합니다. 때로는 피로가 누적되어 과로사로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도 있지요. 이것은 불행한 일로서 성경에서 하나님께서 명하신 안식의 법을 준수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는 낮에 열심히 일하고 밤에는 쉬도록 하셨고 일주일에 하루를 안식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기독교 문화가 뿌리를 내린 서양은 안식의 문화도 발전해 있습니다. 화장실도 restroom이라고 합니다. 식당도 restaurant이라고 하죠? 다 앞에 휴식을 뜻하는 ‘rest'라는 말이 붙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화장실도, 식당도 rest라는 말과는 상관없죠. 얼마나 급하게 볼 일을 보고 나가는지.... 남자 화장실 변기에는 이런 문구가 붙어 있습니다. ’남자가 흘려서는 안 되는 게 눈물뿐이 아니죠.‘ 

    어느 나라의 왕과 왕비가 한 박람회에서 일을 부지런히 하는 요정이 들어있는 상자를 사 왔습니다. 이 상자 속에는 요정이 들어 있는데, 이 요정은 무슨 일을 시켜도 단 일초 만에 해치우는 놀라운 능력을 가졌습니다. “우리는 큰 왕국을 가지고 있는데, 만약 이런 물건을 가진다면 대단한 행운이 될 것 같군요.” 그래서 왕과 왕비는 요정이 든 그 상자를 아주 많은 돈을 주고 샀던 것입니다. 왕궁으로 돌아온 왕과 왕비는 즉시 상자를 열고 요정에게 일을 시켰는데 요정은 그들이 시키는 일을 눈 깜박할 사이에 해치웠습니다. 그리고는 말하기를  “내게 할 일을 더 줘요. 그렇지 않으면 당신들을 먹어 버리겠어요.” 라고까지 말하는 것입니다. 좋자고 데리고 온 이 요정이 골칫거리가 되어버렸습니다. 심지어는 일을 달라고 협박하는 데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일을 주면 단숨에 끝낸 다음 즉시 일을 더 달라고 졸랐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일을 주지 않으면 당신들을 잡아먹고 말테요“라는 무시무시한 말을 덧붙이는 데에는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왕은 마침내 그 나라의 현자를 찾아갔는데 얘기를 다 듣고 난 현자가 왕과 왕비를 안심시킨 후에 좋은 비방을 하나 가르쳐 주었습니다. 왕과 왕비는 기뻐하며 왕궁으로 되돌아서 요정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가서 온 숲 속을 다 뒤져서 가장 큰 대나무를 가져오너라.” 요정은 일초 안에 가장 큰 대나무를 가지고 나타났습니다. 왕이 요정에게 명령했죠. “너는 땅을 깊이 파고 이 대나무를 묻어라. 그리고 이 대나무 장대를 계속 오르내리도록 하여라.” 이렇게 하여 요정은 지금도 쉬지 않고 그 대나무를 오르내리고 있다고 합니다. 왕과 왕비는 비로소 끊임없이 일을 시켜야 하는 위험에서 구출되었죠. 

      일상의 삶이 우리를 짓누를 때, 우리가 대나무 줄기를 오르내리고 있는 요정과 닮지 않았는지 비교해 보아야 합니다. 일은 주인을 닮는다고 합니다. 일상이 끝내야 할 과제이며, 끊임없이 반복되는 품삯에 불과할 때, 우리의 일상은 지루한 대나무 타기와 다를 바 없습니다. 반면 우리의 일상이 즐거움의 원천이 되기 위해서는 일을 시키는 사람, 회사를 만족 시키려고 하지 말고, 고객을 만족시키려고 해야 합니다. 일을 시킨 사람, 즉 우리의 회사가 그 일의 유일한 고객이 될 때 일은 끝내야 할 과제이며 그 일 자체가 죽은 일이 되 버립니다. 모든 일에는 고객이 있죠. 회사를 쳐다보고 일하고, 회사가 모든 일의 기준일 때, 그 조직은 삼류에 불과합니다. 잭 웰치는 이런 조직을 ‘해바라기처럼 자신의 보스만을 쳐다보고, 고객에게는 엉덩이를 돌려 댄 조직’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므로 가장 1차적인 휴가의 의미를 찾으라고 한다면 반복적으로 대나무를 오르내리는 요정과 같이 오직 회사만 바라보고, 회사만 만족시키는데서 노동의 의미를 찾는 이 기계적 반복에서 벗어나 일 그 자체 속에서 보람과 즐거움을 가지는 것입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죄로 말미암아 노동이 저주가 되었지만 하나님 안에서 노동은 기쁨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휴식을 이야기 할 때 세 가지의 종류의 휴식을 생각하게 됩니다. 가장 원초적인 휴식은 일 그 자체에서 기쁨, 보람을 누리는 것입니다. 이 원초적이고도 일차적인 휴식을 누리기 위해서는 우리가 노동의 저주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를 모시는 일터가 되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11장 28-30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우리의 일터에 주님이 오심으로 우리는 일 가운데서 보람과 즐거움을 누릴 수 있을 줄 믿습니다.

     두 번째 휴식은 일과 일 사이의 쉼이라고 할 수 있겠죠. 이것은 다시 일하기 위해서 몸과 정신의 피로를 덜어 주는 휴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느 대통령 후보가 대선 슬로건으로 ‘휴식이 있는 저녁’을 정했습니다. 휴식이 있는 저녁.... 참 멋진 말이죠. 하나님은 사람의 휴식을 위해서 밤을 주셨고, 엿새 일하고 하루 쉬는 안식일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 휴식을 깨뜨리죠. 밤에 잠 안자는 사람이 건강한 내일을 맞이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안식일을 하나님이 주신 축복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계속 일을 하는 사람은 새롭고 건강한 주간을 맞이할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제가 뉴질랜드에서 살 때 보니까 뉴질랜드는 오전 10시부터 30분, 오후 3시부터 30분은 전국민적인 브레이크 타임입니다. 이 시간에는 학교도, 상점도, 공공기관도 차나 커피를 마시는 시간입니다. 고객이 찾아오면 그 고객도 함께 차를 마시고 쉬어야 합니다. 나는 바쁘니까 빨리 해 주세요... 이게 안 통합니다. 그리고 나면 점심시간까지, 일과가 마칠 때까지 열심히 일하죠. 확실히 쉬고, 확실히 일하는 거죠. 이 세상에 그 어떤 일도 잠을 안 재우는 일은 저주 받은 일입니다. 이 세상에 그 어떤 일도 안식일을 못 쉬게 만드는 일도 축복된 일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 모두 밤에는 잠자는 사람... 주일은 반드시 쉬는 사람들이 됩시다. 

    그 다음 단계의 휴식은 여가시간을 갖는 건데 요즘의 여름휴가 같은 거죠. 일을 떠나 삶의 다른 부분을 즐기기 위한 시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삶을 일로 가득 채우고 여가를 내지 못하면 오르내리는 장대만이 내가 만난 세상의 전부가 됩니다. 즉 일터라는 감옥에 몸도 정신도 갇히게 되는데 이런 사람들을 ‘직장의 수인(囚人)’이라고 부릅니다. 여가는 가족과 즐기게 하고, 여행을 떠나게 하고, 취미 생활을 하도록 도와줍니다. 이 휴식은 때로는 우리가 일상의 수준을 도약시키도록 도와주기도 합니다. 즉 나를 변화시키기 위해 투자된 시간이라 말할 수 있는데 이 창조적 휴식을 통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수용하고, 새로운 정신으로 거듭나고, 새로운 시도와 모색을 시도함으로서 이윽고 다른 삶의 질로 건너뛸 수 있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생계형 월급쟁이에서 통찰력 있는 전문가’로 거듭나게 해 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원래 휴식이라는 단어는 영어로 ‘recreation'인데 재창조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쉬는 것은 재창조를 위한 에너지를 충전하는 시간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곧 창조적 휴식입니다. 창조적 휴식을 하면 휴식 후에 에너지가 충전되어 더욱 활력 있게 일을 하게 되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지혜와 힘이 넘쳐나게 됩니다. 데까르트가 자신의 행위를 좌우할 예언적 꿈을 꾼 것도 이를테면 무위도식 상태여서 였고, 뉴턴은 나무 밑에서, 아르키메데스는 목욕탕 안에 각각 드러누운 상태에서 꾼 꿈을 꾸었습니다. 그리고 플라톤이 아카데모스 정원에서 벗들과 더불어 사색을 한일도 우리 시대가 말하는 이를바 맹렬한 생활 따위는 결코 아니었죠.

    오늘 본문에서 엘리야는 아합과 이세벨과 상대한다고 너무나도 지친 나머지 하나님이 차라리 나를 죽여주시면 좋겠다고 까지 하소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먹고, 마시라고 하며 휴식을 권하셨습니다. 몇 일간의 휴식이 있은 후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나타나죠. 엘리야는 창조적 휴식의 결과 영과 혼과 육이 회복되고 영적으로 더 깊어져서 하나님의 명령대로 하사엘을 아람 왕으로 세우고, 님시의 아들 예후를 북 이스라엘 왕으로 세우고, 시밧의 아들 엘리사를 자신의 후계자로 세움으로 더 큰 사명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여름철에 휴가를 통하여 재충전되고 더 발전되고 전문화된 모습으로 거듭나야 창조적 휴가를 보내었노라고 자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입니다. 가족들과 함께 편안하고 여유 있는 휴가를 보내면서 지친 심신을 달래고 새로운 활력을 재충전할 때입니다. 잘 쉬고 잘 노는 것도 경쟁력입니다. 휴식이 없는 사람은 숨이 차서 멀리 가지 못합니다. 마디가 있어야 대나무가 성장하듯 사람도 쉬어야 강하고 곧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 잠시 멈춰 서서 자신을 내려놓고 쉬게 할 때, 내면의 찌꺼기는 가라앉고 마음의 평온은 시작됩니다. 멈춤 속에 평온이 있고 멈춰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휴식은 결코 중단이 아니고 더 멀리 뛰기 위한 움츠림이며,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선물인 것입니다. 휴식은 창조적인 상상력의 근원이며 생산성의 원천이기도 합니다. 휴식이 주는 창조성과 집중력, 평온함을 통해 자신감과 용기를 회복할 수 있다면 그것은 곧 창조적 휴식이 될 것입니다. 좋은 여름휴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성도들이 보내는 이번 여름휴가는 한적한 곳으로 들어가 쉼의 시간을 가지셨던 주님처럼 게으름의 쉼이 아닌 창조적인 쉼의 시간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휴식 공간이 어느 곳이든지, 함께하는 이들이 누구든지, 여유로운 휴가길이 되게 하시고 쓸데없는 욕심을 버리게 하셔서 환한 미소와 서로 돕고 양보하는 마음에서 기쁨과 평화가 가득하게 하소서. 자연과의 만남을 통해 새로운 아름다움에 눈뜨게 하시고, 이웃과의 만남을 통해 삶의 다양성을 이해하게 하시며, 주님과의 만남을 통해 우울하고 메마른 저희 마음의 사막에 기쁨의 샘물이 솟아나게 하여 주옵소서. 넓디넓은 바다에서는 끝없이 용서하는 기쁨을 배우고 깊고 그윽한 산에서는 한결같이 인내하는 겸손을 배우며 각자의 자리에서 성숙하게 하소서. 늘 곁에 있어 귀한 줄 몰랐던 가족, 친지, 이웃의 존재를 더없이 고마워하며 사랑을 확인하는 은혜로운 휴가가 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휴가의 순례 길에서 저희가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 전에 좀 더 고요하고 슬기로운 사람으로 새로워질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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