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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약 마태복음 17:01-08/ 변화산의 그리스도 [수요]
  • 조회 수: 529, 2013.11.17 20:11:13
  • 예수님이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세 제자를 데리고 산에 올라 가셨다가 변형된 사건이 있습니다. 흔히들 이 사건을 가리켜 '변화산 사건'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세 제자들과 함께 헬몬산에 올라갔을 때, 예수님의 옷에 광채가 나면서 변화된 것입니다. 예수님에게서 난 이 광채는 주의 재림 시에 보게 될 주님의 모습이었고 이는 곧 천국에서의 주님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이 변화산 사건을 통하여 몇 가지 진리를 배우고자 합니다.

    1. 예수님의 변화
      그리스도의 변화는 그 분의 지상 사역 중 핵심적인 사건의 하나로서, 인간의 육신에 가리워진 그의 영광이 빛을 발한 유일한 경우이다. “변화하다(transform)" 라는 단어는 내면세계의 변화를 의미한다. 이 영광은 외부에서부터 온 빛의 반사가 아니라 내적인 거룩함이 나타난 것이다. 이 단어는 바울의 서신서에서 곳곳에 나타나고 있는데, 이를테면 같은 단어가 로마서 12장 2절(transformed)과 고린도후서 3장 18절(Changed)에서 사용되고 있는데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성장을 가리키는데 쓰여 졌다. 특별히 이러한 예수님의 변화는 주님께서 기도하는 중에 나타나셨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육신 속에 가리워진 아름다운 모습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날마다 하나님께 기도로 나아가는 것이다. 세상에서 그 어떤 치장으로도 나타낼 수 없는 하나님의 자녀의 영광된 모습이 우리 안에 감추어져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2. 변화산의 동참자들
      이 변화산의 사건에 동참한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 야고보, 요한, 모세, 엘리야, 그리고 성부 하나님이시다. 이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다가오는 왕국의 왕으로서, 예수님의 세 제자는 예수님의 구속의 은혜 가운데 구원받은 자들로서 구속받은 이스라엘의 새로운 모습으로,  모세는 약속의 땅을 밟지 못하고 죽었다는 데서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성도들을, 엘리야는 죽지 않고 하늘로 옮기운 자로서 산채로 들림받을 성도들을 대표한다. 또한 예수님이 모세와 엘리야와 주도적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율법과 선지자를 나타내는 구약과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신약의 통합성을 나타내 준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은 장차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일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시고, 부활 승천하신 후 하나님 우편에 앉으실 천국의 모습으로 대화를 나눔으로 신약과 구약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나타내고 있다는 의미도 나타내 준다. 그런데 후에 두 사람은 사라져버리고 예수님이 혼자 남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하나님께서는 먼저 모세의 시대처럼 율법을 통해서 이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시려고 했지만 율법으로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엘리야 같은 예언자들을 보내서 사회 개혁을 하려고 했지만 예언자들을 통해서도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드디어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17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온 것은 율법이나 예언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다. 다만 그것이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것을 완성시키려고 온 것이다. 그런데 그 완성은 어떻게 하면 되겠느냐. 마태복음 5장 43절에서 다시 말씀하십니다. 율법은 내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는 미워하라고 했었으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내가 온 이유는 율법을 넘어서서 원수를 사랑하게 하려는 것이며 너를 박해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도록 만들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의 구별 없이 햇빛도 비도 똑같이 내려주시지 않느냐. 나는 이런 하나님의 사랑으로 예언과 율법을 완성 시키려고 온 것이다.

    3. 예수님의 영광에 도취된 3 제자들
     예수님이 모세, 엘리야와 나누는 대화 가운데서 온 몸에서 광채가 나타나는 것을 보고서는 이 변화산에 머물기를 원하여 예수님과 모세, 엘리야를 위하여 초막 셋을 짓자고 하였다. 그러나 이 변화산의 사건은 영원한 왕국의 도래가 아니라 장차 나타날 왕국의 영광을 잠간 보여준 것뿐으로 고난을 앞둔 예수님과 세 제자들을 격려하기 위한 것이다. 이것을 알지 못하는 세 제자는 그 영광 자체에만 도취되어 그들이 당할 고난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를 받는다. 그런데 그것 자체가 축복인줄 알고 자꾸 거기에만 매달릴려고 한다. 믿음을 포기한 성공, 범법적인 축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세상적인 출세..... 그것은 결코 축복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의 축복은 구원받음이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일에 내가 쓰임 받는 것이다. 그 자체를 축복으로 생각해야 하지..... 잠시 하나님이 주시는 위로에 주저앉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no cross, no glory라고 했다. 고난이 없이는 영광도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실제로  그들이 산을 내려왔을 때에는 현실적으로 그들이 감당해야 할 짐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  었기 때문이다. 

    베드로에게 영광스런 하늘나라의 모습을 잠깐 보여주었을 때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은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베드로는 이곳에 머물러 살자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말을 듣지 않으시고 그곳을 떠나서 고난의 현장으로 가십니다. 고난이 가득한 세상으로 가셔서 결국에는 십자가에서 죽음으로써 그의 뜻을 완성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본문을 통해 알아야 할 것은 이 세상은 모세의 율법이나 엘리야의 예언에 의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 하나님의 사랑을 실현할 때 구원받습니다. 우리는 먼저 변화산 위로 올라가서 변화된 후에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변화산에 관한 성경구절을 읽을 때마다 늘 생각나는 분이 있습니다. 미국의 흑인 해방자 마틴 루터 킹 목사입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흑인과 백인 간의 인종차별을 없애기 위해서 워싱턴 DC에서 20만 명을 모아놓고 백악관으로 행진을 합니다. 그 때 그는 “나는 변화산에 다녀왔다.” 라는 설교제목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변화산에 다녀와서 이 일을 하는 것이다. 모세와 같은 율법이나 엘리야와 같은 예언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난 사랑을 실천하기 위하여 행진을 하는 것이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백인을 향하여서 투쟁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유의 깃발 아래에서 흑인과 백인이 함께 얼싸안고 함께 춤추는 그 날을 향하여 행진했습니다. 사랑으로 흑인과 백인의 관계를 완성하려 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수많은 인종차별 반대 운동가들 중에서도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생일만이 미국의 공휴일로 지정되었습니다. 그만이 사랑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와 같이 변화산에 올라가야 합니다. 그러나 베드로처럼 변화산 위에 장막을 짓고 영적인 생활만 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영적 체험이 없이 사회 정의를 위한 투쟁만 하려고 해서도 안됩니다. 변화산을 거친 후에 예수님과 함께 고난의 현장으로 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있으므로 우리가 산 소망을 가지고 현실을 극복하며 천국을 만들어 갈 수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각자에게 주시는 메시지를 발견하여 어둠을 극복하고 눈부신 하늘나라를 경험하는 살아있는 신앙생활을 하도록 합시다. 참된 안식은 오직 천국에 들어가서 누릴 수 있는 것인 줄 알고 주님이 부르시는 날까지 열심히 수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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