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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약 에베소서 5:15~5:18/ 세월을 아끼라 [주일낮]
  • 조회 수: 312, 2013.11.17 20:26:35
  •   교회 집사님 한 분이 호주 출신의 '닉 부이치치'의 책을 선물로 주셔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는 선천적으로 양팔과 두 다리가 없이 태어났습니다. '늘 홀로 있음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고 고백하면서도 자신은 '한계가 없는 삶'을 살아왔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책의 이름이 ‘한계를 껴안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저나 여러분도 어떤 난관 속에서도 '절대 포기하지 말아야 할 것'을 당부하는 메시지가 그 책에 들어 있습니다. 그는 두 팔과 다리가 없기에 인생을 잘 살려면 몇 배나 더 반복하고, 노력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바꾸어 생각해 보면 두 팔과 다리가 멀쩡한 사람보다 몇 배의 시간을 누렸다.... 이렇게 말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생이란 이렇게 각기 다른 조건과 환경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그러나 인생의 성공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가능성입니다. 그 성공의 문을 열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공평하게 나누어주신 시간을 잘 관리하여 자신의 숨겨진 달란트와 천부의 권한을 개발하는 일입니다. 

      특별히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시간을 아껴야 합니다. 주님은 사역을 위해 하루 24시간이 모자라는 삶을 사셨다고 했습니다. 막 3:20에 “집에 들어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이므로 식사할 겨를도 없는지라” 주님께서도 바쁘게, 바쁘게 사셨는데 우리가 어찌 굼뱅이처럼 살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훌륭한 교회 지도자들을 보면 숨이 가쁠 정도로 바쁘게 바쁘게 사는 것을 봅니다. 지난 화요일에 온누리교회 하용조 목사님이 소천하셨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이 분도 참 바쁘게 살아오셨습니다. 선교를 위해 지금까지 이 분이 비행기로 날아다닌 시간이 150만 km라고 합니다. 이 분은 학교에 다닐 때부터 몸이 허약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언제 죽을지 모르기에 항상 죽음을 생각하며 바쁘게 뛰어다녔다고 합니다. 지난 10년 간 간암 수술을 7번이나 받으셨는데 죽음이 언제나 눈앞에 있었기에 조금이라도 쉴 수가 없었다고 고백하는 것을 설교를 통해서 듣고 눈물이 났습니다. 이 분이 돌아가시기 하루 전에 자신의 트위트에 이런 글을 올려놓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바쁘지만 흥분되고 즐겁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바쁘게 사십시오.” 이처럼 주님의 신실한 제자들은 바쁘게 바쁘게 살다가 주님 앞에 갔습니다. 저도, 여러분도 좀 바쁘게 움직이며 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왜 사도바울은 시간을 아끼라고 했습니까?

       1. 시대가 악하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는 예전보다도 우리의 관심을 끌고 흥미를 돋우는 실속 없는 눈요기나 심심풀이가 엄청나게 많아졌습니다. 방심하면 그런 것들에 시간을 다 빼앗겨 버립니다. 표면적으로 보면 옛날에 비해서 시간을 많이 절약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옛날에는 보름에 갈 수 있는 거리를 서너 시간 만에 갈 수 있습니다. 또 소식을 전해주기 위해서는 사람을 찾아가야 했지만 지금은 전화가 생기고, 더 나아가서 휴대폰이 생기므로 시간을 많이 절약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편리함이 시간을 절약하게 해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악한 일에 시간을 낭비하도록 부추키는 주범이 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바쁘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바쁨이 무엇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까? 우리는 게으른 자들처럼 바빠서는 안 되겠습니다. 게으른 자들도 나름 바쁩니다. 드라마 다 봐야 하지요. 휴대폰 붙들고 문자 봐야지요. 또 문자 보내야지요. 놀러 갈 때도 많지요. 인터넷 붙들고 여기저기 뒤져야 하지요. 이게 다 게으른 자들의 바쁨이고, 이 시대에 시간 낭비의 전형적 모델입니다. 이처럼 이 시대가 위험천만한 세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되는대로 살아서는 안 되고 긴장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바울 선생이 에베소교회에 편지하면서 "시간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하였을 것입니다. 
       
       2. 시간은 멈출 수가 없기에 시간을 아끼라고 하는 것입니다. 지나가는 택시를 향해 손을 들면 섭니다.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고속버스도 서는 곳이 있습니다. 하늘을 나르는 비행기도 내려와 쉬는 곳이 있습니다. 흐르는 물은 쉬지 않을 것 같지만 댐을 막아 세워두기도 합니다. 그러나 시간은 멈출 수 없습니다. 댐을 쌓아도 안 되고, 콘크리트로 장벽을 쌓아도 막을 수 없습니다. 과학을 동원해도 시간은 멈추지 않습니다. 선율이 아름다운 음악을 듣다보면 다시 듣고 싶은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면 멈추기도 하고 되돌려서 다시 듣기도 합니다. 그러나 시간은 멈출 수도 없고 되돌려 다시 들을 수도 없습니다. 기회도 흘러가고 젊음도 흘러갑니다. 시력도 흘러가고 체력도 흘러갑니다. 돈을 아끼지 않는 사람은 주머니가 비는 것처럼 시간을 아끼지 않는 사람은 인생이 비게 됩니다. 그러기에 시간은 귀한 것이고 이 시간을 우리가 아껴야 합니다. 시간은 아끼는 만큼 우리에게 보답해 줍니다. 시간을 수표처럼 쓰지 말고 동전처럼 쓰시기 바랍니다. 마치 동전이 구르듯 행복도 굴러올 것입니다.

    3. 시간도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달란트이기에 언젠가는 시간에 대하여 하나님 앞에서 셈 할 날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에 대해서 하나님의 종들입니다. 돈, 자녀, 재능, 시간..... 이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청지기로서 맡기신 것들입니다.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여러분이 5만원권 지폐를 하찮은 것이라 하여 휴지통에 던져 버리면 그것을 보는 사람은 여러분이 제 정신인가 하고 이상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돈보다 더 귀중한 시간들이 많은 사람들에 의하여 그렇게 쓰레기통으로 내던져지고 있음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일생을 최고의 시계를 만드는 데 바친 시계 명장이 아들의 성인식 날 손수 시계를 만들어 선물로 주었습니다. 그 시계의 시침은 동, 분침은 은, 초침은 금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아들은 시계를 받아들고 아쉬워서 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아버지, 시침이 가장 크니까 금으로 장식하고 가장 가는 초침은 동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나요?” 하니 “아니다. 초침이야말로 금으로 만들어야 한다. 초를 잃는 것이야말로 세상의 모든 시간을 잃는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이야.” 그는 아들의 손목에 시계를 채워주며 말을 덧붙였습니다. “초를 아끼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시와 분을 아낄 수 있겠니? 세상의 흐름은 초에 의해 결정되는 것을 명심하고 너도 성인이 되는 만큼 1초의 시간에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해라.” 라고 말해 주었답니다. 1초를 소홀히 하는 사람은 하루를 잃고 일생을 잃습니다. 얼마 전 발생한 칠레 지진으로 인해 하루가 1.26 마이크로초 짧아졌다고 미국 항공우주국의 한 과학자가 주장했습니다. 1마이크로초는 100만분의 1초다. 1초도 별 것 아닌데 백만분의 1초는 참 가소롭습니다. 저런 것 까지 발표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법도 합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볼 때 이런 미세한 시간의 변화가 지구의 엄청난 기후변화까지 초래한다고 합니다. 1초 차이로 하루가 지나가 보험금을 못 받았다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또 육상경기나 수영에선 0.01초 단위에서 승부가 갈립니다. 200미터 수영시합에서 박태환선수와 미국의 수영천제 펠프스와의 시간 차이는 몇 분의 1초를 가지고 타툽니다. 이런 것을 볼 때 1분, 1초가 우리에게는 너무 소중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시간은 금이라는 말도 있지만 사실은 금이 아니라 그것과 비교할 수 없는 생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시인은 ‘당신이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어간 이가 그토록 살고 싶어 했던 내일’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 가지 금을 주셨다고 합니다. 먼저 일상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소금’을 우리에게 주셨고, 둘째로는 어디에 두어도 영원히 변치 않는 ‘황금’을 주셨으며 마지막 세 번째로는 ‘지금’이라는 시간을 주셨습니다. 이 3가지 중에서 사람들은 황금을 최고로 여기고, 그 다음에는 소금, 그리고 가장 무가치하게 여기는 것이 지금이라고 하니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날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책임을 묻는 것 중에 가장 무겁게 책임을 묻는 것은 황금, 소금.... 이런 것이 아니라 지금이라는 이 시간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일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시간을 아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습니다. 월드컵은 나이 많은 스타들의 쓸쓸한 무덤이 되고 새롭게 떠오르는 스타들의 화려한 등용문이 된다고 합니다. 작년 월드컵에서도 동일하게 이름값을 못한 유명 스타들과 감독들의 은퇴와 향후 거취문제와 또 떠오르는 별들에 대하여 소개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세월을 이기는 장사 없다고 하는데 이 월드컵에서 그러한 교훈을 얻습니다. 물건은 잃은 후에도 다시 찾을 수 있지만 시간은 한번 가면 다시 찾을 수 없습니다. 사용되지 않으면, 그것은 우리 뒤로 지나가 버리고  죽음이 오면 모든 시간들은 끝나게 됩니다. 이미 우리는 많은 것을 잃어왔고 우리의 모레 시계 속에는 몇 개의 모레 알갱이만 남아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태양이 저물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시간을 활용해 왔습니까? 모세가 시편 90편에서 기도한대로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우리도 이렇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시간을 소중하게 보내는 지혜를 얻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때를 따라 필요한 것으로 공급해 주시는 아버지 하나님, 참 감사합니다. 종들을 만나 주시어서 성령의 사람으로 사용하여 주셨으니 때가 악한 이 때에 자신을 잘 관리하고 시간을 잘 사용하게 하시어서 세월을 아끼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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