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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약 사무엘상 25:23~33/ 아비가일의 지혜 [주일낮]
  • 조회 수: 635, 2013.11.17 20:38:07
  • 오늘 사건은 다윗이 광야에서 사울 왕에게 쫓기던 와중에 생긴 일입니다. 쫓기는 삶은 사는 게 아니라 그저 하루하루 생존할 뿐인 고단한 순간들인 겁니다. 소망도 뭐 대단한데 있는 게 아니라 그저 한 번만이라도 배불리 먹을 수 있었으면 하는 소박한 것입니다. 그런데 마온이란 곳에서 오랜 만에 먹는 것처럼 먹을 기회가 왔습니다. 거기 양이 삼천 마리나 되고 염소도 천 마리를 갖고 있는 거부 나발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유목민들에게는 가끔씩 축제날이 있었는데, 언제냐 하면 양털을 깎을 때였습니다. 농사짓는 사람들로 말하자면 수확해서 타작하는 날인 거지요. 이때가 되면 오는 손님은 동네 사람이든 외지인이든 다 맞아서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다윗이 자기 일행과 함께 광야에서 그 소식을 들은 거예요. 그래서 자기 수하에 있는 소년들을 미리 보내서 나발에게 부탁을 합니다. 여유가 되는 대로 좀 먹을 것을 나눠 달라 그럽니다. 

    그런데 다윗이 그렇게 한 것은 절대로 공짜로 달라고 한 게 아니라 그럴 만해서 그런 거였습니다. 다윗 일행이 온 유대를 쫓겨 다니다 보니까 좋은 목초지를 따라 다니는 유목민들을 만날 것 아닙니까? 그럴 때마다 그들과 같이 있어줬던 거예요. 그 양치기들은 다윗 일행 때문에 자연히 보호가 된 거지요. 다윗 일행은, 일반인들로서는 보기만 해도 무서운 600명의 장정들입니다. 맘만 먹으면 누구든 힘으로 빼앗을 수 있는 군대 같은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무력을 쓰기는커녕 같이 있어 주면서 그들의 울타리가 되어줬던 겁니다. 그렇지 않았으면 자주 출몰하는 강도들을 만나 어떤 일을 당했을지 모르는 일입니다. 이 정도면 한 번 정도는 먹거리를 요구할 만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결과가 어떻게 됐냐? 일언지하에 거절당합니다. 이 무례한 사람 나발이 뭐라 그럽니까? 다같이 삼상25:10과 11절을 읽어 볼까요? “나발이 다윗의 사환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다윗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냐 요즈음에 각기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이 많도다 내가 어찌 내 떡과 물과 내 양 털 깎는 자를 위하여 잡은 고기를 가져다가 어디서 왔는지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주겠느냐 한지라” 

    여러분! 우리도 살다 보면 거절을 할 때가 있지요? 그런데 거절할 때 정말 잘 해야 됩니다. 정중하고 완곡하게, 그리고 정말 단어 하나도 조심해서 사용해야지 이렇게 나발처럼 거절할 때 상상도 못한 후폭풍이 몰아칩니다. 나발을 보십시오. “다윗이란 작자가 누군지 알게 뭐냐. 주인에게서 도망간 종이 아니냐” 다윗의 자존심에 엄청난 흠집을 낸 겁니다. 다윗이 이 얘기를 전해 듣고 어떻게 하지요? 한 마디로 훽 뒤집어졌어요. 22절에 다음 날 아침까지 나발의 집 남자들은 씨를 말리겠다는 겁니다. 얼마나 화가 났으면 이랬겠어요? 다윗의 전 생애를 통해서 다윗이 여기서보다 더 벼락같이 화를 낸 적은 없습니다. 이제 자기 부하 400명에게 칼을 채워서 나발의 집을 향해 출발합니다. 여태까지 하나님의 사람으로 산 노력도, 또 다음 번 이스라엘 왕 후보자라는 신분도 필요 없었어요. 이제 나발 일족을 모조리 죽이는 일, 그것 하나 밖에는 눈에 보이는 것이 없게 된 것입니다.

    바로 이때, 오늘의 주인공 아비가일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이 벌집 쑤셔 놓은 것 같은 사태를 수습합니다. 그녀는 살기와 광포로 가득 찬 다윗을 길지 않은 시간에 양처럼 순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18, 19절을 읽어 볼까요? “아비가일이 급히 떡 이백 덩이와 포도주 두 가죽부대와 잡아서 요리한 양 다섯 마리와 볶은 곡식 다섯 세아와 건포도 백 송이와 무화과 뭉치 이백 개를 가져다가 나귀들에게 싣고 소년들에게 이르되 나를 앞서 가라 나는 너희 뒤에 가리라 하고 그의 남편 나발에게는 말하지 아니하니라” 남편에게 말 하지 않고 자신이 손 수 모든 일들을 처리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또 24절에서 이렇게 말하지요? “이 죄악을 나에게로 돌리라” 이 말은 쉬운 것 같지만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내면이 튼튼하지 않고서는 결코 할 수 없는 말입니다. 하나님으로 인해 만족되고 하나님으로 인해 치유된 사람이 아니고는 이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다윗을 모욕해서 문제를 일으킨 것은 자기 남편이지 아비가일이 아니었습니다. 다윗이 나발에게 사람을 보냈을 때 그녀는 그 사실을 알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래도 그 죄악은 내 것입니다. 내가 책임을 지겠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그의 아내니까요.” 이게 바로 불평하지 않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원망과 불평은 문제해결의 도구가 아닙니다. 이러한 그녀의 태도는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었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그 동안 그녀는 남편이 이런 황당한 일을 저질렀을 때마다 어떤 조치를 취해 왔다는 얘깁니다. 저는 아비가일이 이런 과정을 통하여 스스로의 내면을 성숙케 하고 기품 있는 모습으로 가꾸었을 것이라 믿습니다. 

    여러분! 불평 불만하지 않는 사람은 내면이 성숙해지고 아름다워집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은 어떻게라도 겉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아비가일의 미모는 그런 책임감과 자신감, 그리고 모든 잘못된 일은 자기의 불찰이라는 희생의 마음, 그 모두의 결정체입니다. 우리 역시 불평해야 할 때 그것을 참고, 오히려 내 스스로 책임자로서 현장에 뛰어들 때, 아비가일에게 드리워진 후광 같은 아름다움이 우리에게도 왕관처럼 씌어질 것이라 믿습니다. 

     아비가일은 또한 신앙도 있는 사람입니다. 그녀는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 섭리를 인정하는 믿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의 모든 일을 주관하심을 믿었다는 겁니다. 다윗이 그런 노래를 하지요?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시편 14:1) 그런데 반대로 잠언 2:6~12 사이를 보면, 하나님께서 그 지혜와 명철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정직하고 선한 길을 보여 주신다 그랬습니다. 즉 하나님을 자각하고 인정하는 자들에겐 하나님께서 친히 그 분의 섭리와 뜻이 뭔지 아는 눈을 주신다는 겁니다. 지금 아비가일을 보십시오. 여러 정황을 볼 때, 그녀는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믿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앞으로 어떻게 일하실지도 보는 총명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녀가 얼른 땅에 엎드려 다윗에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이스라엘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당신을 보호하실 것입니다. 지금 이 기간 동안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왕이 된 다음에 후회할 일을 하지 않는 겁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왕으로 세우셨기 때문에 왕이 된 다음에 후회할 일, 창피당할 일을 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그야말로 하나님의 섭리를 꿰뚫는 통찰이 있었던 겁니다. 

      오늘 만약 이 일이 다윗의 계획대로 됐더라면 어떻게 됐을까요?  다윗은 사울 왕을 죽일 수 있었는데도 두 번이나 살려 준 얘기가 나옵니다. 한 마디로 복수는 나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알아서 할 일이라는 생각이 있어서였습니다. 그때의 다윗의 내면은 아주 아름답고 견고해 보였습니다. 극히 신앙적이었고 왕의 자질이 보였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다윗이 한 사람의 미련함 때문에 모든 것을 잃을 뻔 했습니다. 여러분, 미련함을 지혜로 대처해야지, 미련함을 미련함으로 대하면 그 사람의 미련함이 자기의 것으로 옮겨 붙습니다. 그래서 스스로가 지혜롭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미련한 사람을 잘 대처해야 합니다. 그래야 인생에서 실수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다윗은 지금 미련함에 미련함으로 대처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아비가일이 깨우쳐주는 것입니다. 다윗은 아비가일이 자기에게 한 말 때문에 정신을 번쩍 차렸습니다. 32~33절을 읽겠습니다. “다윗이 아비가일에게 이르되 오늘 너를 보내어 나를 영접하게 하신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또 네 지혜를 칭찬할지며 또 네게 복이 있을지로다. 오늘 내가 피를 흘릴 것과 친히 복수하는 것을 네가 막았느니라” 아멘! 이 일 후에 미련한 나발은 다윗이 죽이러 온다는 말을 듣고 놀라서 심장마비로 죽고, 아비가일은 다윗의 아내가 됩니다.이 모두가 하나님의 섭리일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면서 세 가지로 정리합니다. 미련함에 미련함으로 대처하다가 망할 뻔한 다윗을 기억합시다. 지도자는 미련함을 대처할 줄 아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미련함에 분노하기 보다는 참고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이 처리해 주십니다. 둘째, 나발의 미련함을 기억합시다. 그는 자기 제물, 권력 믿고 미련하게 굴었습니다. 겉모습만 보고 사람을 판단하여 쉽게 천박한 말을 내뱉습니다. 그러나 내면은 한 없이 약하여 소문만 듣고도 두려움에 질려 죽어버린 졸장부에 불과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돼서는 안  되겠습니다. 셋째, 아비가일의 지혜입니다. 그는 말을 아끼는 여자입니다. 미련한 남편에게 미련한 말로 원망불평하여 같이 미련에 빠지기 보다는 스스로가 일을 처리하는 지혜로움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하나님의 길이 무엇인지를 알았기에 적절하게 대처할 줄 아는 안목이 있었습니다. 그는 또한 용기도 있었습니다. 남편은 큰소리만 쳤지 다윗이 쳐들어온다는 소리만 듣고도 나자빠져 죽었지만 그는 다윗 앞에 홀로 설 줄 아는 용기가 있었습니다. 이는 내면의 강건함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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