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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약 마태복음 25장/ 재림풍경 [수요]
  • 조회 수: 834, 2013.11.17 20:41:37
  • 마태복음 24장에 이어지서 심판에 대한 개념들이 25장에 나타나고 있다. 24장과 25장에 걸쳐서 4가지 비유가 나타나고 있는데 다 하나 같이 주님재림 시의 풍경이라고 할 수 있다. 무화과 나무 비유는 주님이 오실 때를 분별하며 살아라는 가르침이 있다. 가지가 연하여 지고 잎을 내면 여름이 가까이 온 것을 아는 것처럼 주님이 오실 때에도 징조가 있으니 그것을 보며 때를 분별하며 살아라는 것이다. 그리고 지혜로운 다섯 처녀들과 미련한 처녀들, 달란트 비유 등은 외적으로 나타나는 교회가 어떤 모습으로 주님을 맞이할 것인가에 대한 그림이 그려져 있고, 양과 염소 비유는 백 보좌 앞에선 만국심판이 묘사되어 있다. 우리는 이 장에서 마지막을 향해 치닫고 있는 이 세계 속에 살면서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될 것을 교훈 받고 있다. 25장에 나타나는 종말의 모습을 그려보면서 항상 준비하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하겠다.

    1. 지혜로운 처녀와 미련한 처녀들(1-13절)
    이 열처녀 비유는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관한 비유이다. 성경에는 분명히 교회는 신부이고 예수 그리스도는 신랑으로 그려져 있다. 그런데 묘하게도 유대인들의 전통적 결혼풍습은 예수님의 재림의 모습과 비슷한 점이 많아 예수님께서는 이 결혼풍습을 예수님 재림의 예화로 사용하셨다. 이 예화를 통해서 예수님께서 교회를 향해 주시는 교훈은 신랑이 한 밤에 언제 오실지 모르니 항상 지혜로운 다섯 처녀처럼 깨어 있고 준비하는 자세를 갖추고 살아라 는 것이다. 참된 교회는 예수님이 오실 때 신랑을 맞아 혼인잔치에 참여하겠지만 외적인 이 세상 교회가 다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마태복음 13장에 나타나는 가라지 비유처럼  아마도 지혜로운 다섯 처녀는 참된 교회를 의미하며 어리석은 다섯 처녀는 참된 교회에 포함되지 않는 외적인 교회일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돌아오시겠다고 약속한 이래로 거의 2천년이 흐르고 있으며 이 기간 동안에 교회는 잠에 빠져 지내고 있다. 이제 그리스도 재림을 바라보며 깨어 있어야 할 시기가 바로 지금인 것이다. 

    열 처녀는 모두 등과 기름을 갖고 신랑을 맞으러 나가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이 처녀들은 일반적으로 신부의 친구들로서 신부에게 불빛을 비춰 주었다. 신랑이 순식간에 와서 신부를 데려갈 때 혼인 예식에 신부와 함께 참석할 자들이였다. 그들은 신랑 신부의 가족친지와 가까운 친구들과 함께 혼인잔치의 참석 명단에 포함된 자들이였다. 어리석은 다섯 처녀들은 더디 오는 신랑을 맞이할 여분의 기름을 갖고 오지 않았다. 그러나 지혜로운 다섯 처녀는 유대인의 결혼식에서 흔히 일어나듯이 긴 한밤중에 늦게 도착할 신랑을 예상하고 여분의 기름을 준비했다. 이 비유의 주된 의미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깨어서 한 밤중동안 등불을 밝힐 필요성을 진지하게 권고하심이다.

     당시 유대인들의 예식에는 세 가지의 절차가 있었다. 먼저 양가 아버지들에 의한 공식적 혼인약속, 계약의 단계가 있고, 두 번째는 결혼 당사자들에 의한 쌍방간 약속, 그리고 세 번째로는 신랑이 될 남자가 사전약속 없이 신부될 처녀를 방문하여 혼인잔치를 치르는 것이다. 이 비유에 의하면, 첫 번째와 두 번째 절차는 이미 이루어졌다. 이제는 신랑이 밤에 나타나는 본격적인 결혼식이다. 신랑 될 남자를 기다리는 파티가 이루어지는 시간이며, 이 시간이 바로 지금인 것이다. 이를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A. 예수님께서는 여분의 기름을 갖고 사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기를 권고하셨다.
    B. 기름을 마지막 순간에 살 수 없음을 강조하셨다. 우리의 믿음은 나누어 줄 수 없습니다. 나의 믿음은 내 부모나 형제, 그리고 친구의 몫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오직 나만의 것입니다. 우리는 나의 믿음을 타인에게 나누어 줄 수 없습니다. 오직 내 것은 나만을 유익하게 할 수 있습니다. 주를 맞이하는 믿음과 신앙은 오직 자신에게만 달려 있는 것입니다. 주의 재림 때에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나의 믿음을 꾸어 줄 수 없으며, 나의 공력을 나눌 수 없다는 것이 오늘 본문의 가르침입니다. 성도는 타인의 기름을 의지할 수 없음을 가르치셨다.

    D. 예수님께서는 한 밤중에 신랑의 더디옴을 예상하고 있어야 함을 암시하셨다. 
    E. 신랑이 문을 닫으면 열 수가 없습니다. 닫힌 문은 열리지 않습니다. 
     
    1)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입니다. 지금은 구원의 문이 열려 있는 때입니다. 지금은 누구나 그 문을 드나들 수 있습니다. 지금은 누구나 그 문을 열 수 있고 그리스도에게로 들어 갈 수 있습니다. 말씀을 듣고자 하면 언제든지 들을 수 있으며, 기도하고 싶을 때 언제든지 기도할 수 있고,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싶을 때 언제든지 그리스도에게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지금은 그리스도와 막힌 담이 없으며,지금은 그리스도께 나아가려는 우리를 붙잡는 자도, 그리고 가로막는 방해물도 없습니다. 그리스도는 언제나 우리 앞에 계시며,우리를 맞을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지금은 구원의 때요 은혜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6:2). 

    2)구원의 문이 닫힐 날이 있습니다. 지금은 은혜의 때이며 지금은 구원의 문이 활짝 열려 있는 때입니다. 그러나 그 문은 언제까지나 열려 있지 않습니다. 그 문은 때가 되면 닫힙니다 . 그 때는 구원의 때가 아닙니다. 그때는 심판의 때입니다. 구원의 문이 닫히는 날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은 차단되고 구원으로 향하는 길에는 넘지 못할 절망의 벽이 생깁니다. 마치 구원의 때가 되면 반드시 닫힙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명하신 대로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그를 닫아 넣으시니라'(창7:16).그러나 '그때'는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그러나 '그때'는 언젠가는 꼭 올 것입니다. 

    3)한 번 닫힌 문은 열리지 않습니다. 한 번 닫힌 구원의 문은 두 번 다시 열리지 아니합니다. 그 문은 어느 누구도 열 수 없습니다. 문이 닫힌 후에는 그 문을 아무리 두드려도 소용이 없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희 열리지 않는 그 문을 하나님께서는 두 번 다시 여시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때는 하나님께서 구원의 문을 열어 두고 있을 그때 뿐입니다. 지나간 버스뒤에서 손을 흔드는 것이 아무 소용없듯이 구원의 문이 닫힌 후의 울부짖음은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2.심판주로 오시는 주님께는 긍휼이 없습니다. 

    1)그리스도의 초림은 구원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그리스도의 초림은 구원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의 오심은 죄인을 위한 것이었고,죄인의 회개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때문에 그에게는 긍휼과 사랑만이 충만했으며,모든 죄인이 그에게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마9:13). 

    2)그리스도의 재림은 심판을 위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초림이 구원과 회개의 선포를 의한 것이다면 그리스도의 재림은 심판과 멸망의 선언을 위한 것입니다.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마3:12;눅3:17).그리스도의 재림은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는 심판의 재림입니다. 때문에 재림하시는 그리스도에게는 긍휼이 없습니다. 그에게는 오로지 공의로운 심판과 엄위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때에 죄인들은 그에게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죄인을 그분은 더 이상 용납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때에는 한 편의 즐거움과 환희의 찬송,그리고 또 다른 한 편의 회한과 눈물로 갈리우는 두 종류의 구분이 있을 뿐입니다. 

    결론

      우리 속사람의 영적인 용량이 더 증가되어서 성령님의 기름 부으심으로 충만해져야 한다. 그 어떠한 사람도 내면에 성령이 깃들지 않고서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 로마서 8장9절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다”고 했다. 즉, 이 비유에서는 외면적으로는 준비가 되어 보이는 듯한 처녀들이라 할지라도, 그 내면에는 아주 중요한 요소를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진정으로 준비가 되었다고 할 수 없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우리는 어린양의 혼인잔치가 가까이 올수록 더욱 어두어지는 세상에서 방심하지 않는 기도와 매일 성령충만한 삶을 살아야 한다. 인내함과 깨어 있음으로 예수님의 재림 전에 어두운 밤중을 켜서 비취는 등불이 될 수 있다(약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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