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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약 창세기 41:50~52/ 영성의 3단계 [수요]
  • 조회 수: 235, 2013.11.17 20:43:00
  • 오늘 본문에서 요셉이 두 아들의 이름을 짓는 장면을 연상하면서 영성의 3단계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 단계는 비움, 두 번째 단계는 채움, 세 번째 단계는 나눔.... 이렇게 영성의 3단계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영성의 첫 단계는 ‘비움’입니다. 우리가 제대로 된 영성의 소유자가 되려면 우리는 먼저 이렇게 비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오늘 우리가 요셉이 나오는 본문을 읽었는데, 요셉이 바로 왕에게 발탁돼서 총리가 됐습니다. 그리곤 결혼해서 아들 둘을 낳았습니다. 이름을 어떻게 지었다 그랬지요? 첫째는 므낫세라 그랬고, 둘째는 에브라임이라 그랬다 그랬습니다. 므낫세는 잊어버렸다는 뜻이고 에브라임은 창성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무슨 뜻입니까? 어느 정도 안정된 다음에는 과거의 상처는 다 잊고, 이제는 좋은 열매를 위해서 앞만 보고 가겠다는 것입니다. 요셉의 의지를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사실 상처 받은 것으로 말하면 요셉 같은 사람이 다시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 잊어버렸다는 겁니다. 형들이 핍박하고 자기를 팔아먹은 일, 보디발의 집에서 누명 쓰고 감옥에 가서 옥살이 한 것, 또 술장관이 배신했던 것 다 잊어버렸다는 겁니다. 

      우리가 미래로 나갈 때 과거의 짐을 갖고 있으면 앞으로 가기가 어렵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영성의 더 깊은 단계로 나아가려고 할 때 과거의 상처를 잊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겉보기에는 경제적으로도 안정이 되어있어 보이고, 자녀들도 잘 커주고 있고, 교회생활도 잘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얼굴에서는 좀처럼 그늘이 안 지워지는 겁니다. 왜겠습니까? 과거의 상처, 과거의 아픔들을 그대로 갖고 있어서입니다.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므낫세하고 에브라임 해야 합니다. 과거를 잊고 번영을 위해 나아가야 합니다. 

     육적인 것이든 영적인 것이든 비워야 가벼운 인생이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비울 때만 하나님께서 직접 채워주십니다. 즉 먼저 비울 때만 하나님이 그 다음 깊은 단계로 나아가도록 하신다는 겁니다. 여러분! 혹 비우지 못하여 괴롭고, 신앙생활하기도 힘든 것 있으시면 비우시는 용기가 있기를 바랍니다. 비우면 망할 것 같고, 비우면 손해볼 것 같지만 비우면 복이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영성의 둘째 단계는 ‘채움’입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넘치는 복을 주셨다는 감사와 찬송으로 채웠습니다. 이 채움의 단계는 사실 비움의 단계를 잘 거치면 하늘로부터 그냥 떨어지는 복입니다. 그러니까 채움과 비움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비움이 있으면 거기에 자연 채움이 있게 됩니다. 채움은 엄밀히 말하면 우리 영역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우리가 할 몫도 있습니다. 우리에게 채움이란 다른 것 아닙니다. 우선은 계속 비워나가는 게 채움이고, 그 다음엔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하는 게 채움을 위한 우리들 몫입니다. 요셉을 보시면 그것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아시는 대로 요셉은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절대 원망하지 않았고, 그냥 받아들이고 성실을 다했습니다. 성경엔 성공이란 단어가 없습니다. 성공이란 단어 대신에 성공과 가장 가까운 뜻으로 성실이란 단어를 썼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바라는 성공이란, 사실 하나님 측면에서 보면 성실이 그 핵심입니다. 성실의 뜻이 뭔지는 다 아시지요? 진실한 것과 정직한 것과 열심, 그 모두를 합한 게 성실입니다.  우리가 매사 이런 모습으로 나간다면 바로 그것 자체가 채움이라는 겁니다. 요셉은 아들로서나, 종으로서나, 총리로서나 맡겨진 게 뭐든 있는 자리에서 성실을 다 했습니다. 우리 역시 채움에 있어서 우리가 노력할 부분이 있습니다. 물질이나 지혜나 환경이나 사람이나 믿음 이런 것들은, 어떻게 우리 스스로 채우겠습니까? 그러나 감사하고 찬양하는 것은 우리가 할 일입니다. 성실하게 믿음생활하고 일상을 예배처럼 사는 것은 우리가 할 일입니다. 사랑이 안 돼도 사랑하는 것, 그건 우리 몫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채워주시는 것과 우리 스스로 채울 것을 채울 때, 영성은 더 깊어집니다. 잊지 말아야 될 것은, 채움이란 반드시 비움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 또 채움이란 비우는 양과 정비례한다는 것 – 그래서 많이 비울수록 더 많이 채워진다는 것-, 이것을 꼭 기억하시고 비움에서 채움의 단계로 나아가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영성의 마지막 단계는 나눔입니다. 이 나눔 또한 두 번째 단계인 ‘채움’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아무리 우리 영성의 최고봉이 나눔이라 하더라도 우리 속에 뭔가 채워진 게 없으면 나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비움과 채움이 동전의 양면과 같다면, 이 채움과 나눔 또한 동전의 양면입니다. 많이 채워야 많이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비움과 채움이 하나님이 개입하실 부분이 많다면, 나눔은 우리의 의지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채워주신다 해도 나눔은 우리의 뜻과 결단이 많이 작용한다는 겁니다. 또 하나 나눔의 중요한 속성 가운데 하나가 뭐냐 하면, 하나님이 채워주셔서 많이 쌓여 있게 됐는데, 그것을 나누지 않으면 하나님이 그것을 도로 다 거둬가신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채움을 경험하려면 나눠야 하는데, 이 나눔이 생략되면 채움마저 생략된다는 것입니다. 

    요셉이 매사 성실하고, 하나님 뜻에 합당하게 살았더니 그에게는 풍성함과 은혜가 찾아왔습니다. 그러자 형들을 다 불러 올리지요? 자기 가족들을 책임지면서 자기 있는 것들을 나눕니다. 이것은 영성의 마지막 단계일 뿐 아니라 인격의 완성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믿음생활 하면서 가장 올라야 할 경지는 인격의 성숙입니다. 그런데 인격의 성숙이란 대체로 나눔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 나눠 준 후에 일어나는 일을 보면, 다 줘서 고갈될 것 같은데 오히려 더 풍성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셉이 총리로서 국가적으로 벌인 일을 봐도 거기엔 같은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고대 근동이 다 지독한 흉년에 빠졌습니다. 요셉이 있는 애굽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다만 애굽은 7년 흉년에 대비해서 그 전 7년의 풍년 동안 곡식을 충분히 비축해뒀었습니다. 그리고 흉년이 닥치자, 그 근방의 국가들이 애굽으로 애굽으로 몰려듭니다. 그런데 그 주변 나라에 다 나눠주면서, “이제는 애굽에도 돈만 잔뜩 모이고 더 이상 팔아먹을 곡식이 없게 됐더라” 그런 얘기가 나오던가요? 없습니다. 나누고 비게 되니까 다시 채워지게 되더라는 겁니다. 이게 나눔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될 사실들입니다. 즉 우리가 어려서 주일학교 때부터 배워 온 대로 – 찬양도 그런 찬양이 있지요? – 나누면 나눌수록 풍성해진다는 것은 정말 사실입니다. 

    사실 채워져서 나누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 채워지지 않았더라도 나눠야 합니다. 왠지 아십니까? 나눌 게 없는데도 나누게 되면 놀랍게도 하나님이 채워주십니다. 그래서 나눌 수 있도록 하십니다. 이게 성경에 나오는 나눔의 법칙입니다. 없어도 나누려고 할 때 거기엔 놀라운 채움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겁니다. 우리 영성은 이 단계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그런 은혜가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우리는 비움과 채움과 나눔에 관한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비움의 단계에서 채움의 단계로, 채움의 단계에서 나눔의 단계로 나아가자는 말씀의 요지였습니다. 그런데 엄밀히 말씀드리면, 이 세 단계는 계속 순환합니다. 즉 비워야 채워지고, 채워지면 나누고, 나누게 되면 다시 비워질 것 아닙니까? 그러면 하나님이 또 채워 주십니다. 그래서 또 나눌 수 있게 됩니다. 

    오늘 이 시간 여러분 모두에게 부탁드립니다. 비우십시오! 그 단계가 가장 필요합니다. 뭘 비워야 할지는 기도하면서 성령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채우십시오! 말씀과 기도과 찬양과 감사로! 그리고 나누십시오! 나눌 수 있는 것만큼 나누십시오! 그러면 거기엔 채움의 역사가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이런 충만한 복이 우리 생애 내내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있어지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비우지 못하면 채울 수도 없다는 가르침을 얻었습니다. 비우지 못해 머뭇거리는 우리의 연약함을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잊을 건 잊고, 버릴 건 버리면서 하나님이 채워주시는 은혜를 경험하게 하여 주옵소서. 비울 수 있는 영성, 채우고, 또 채우는 영성, 더 나아가서 나누는 영성으로 우리의 삶이 이 가을에 풍성한 열매로 나타나게 하여 주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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