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무리를 부추겨서 예수님을 빌라도 앞으로 끌고갑니다. 예수님의 죄목은 세 가지입니다. ‘백성을 미혹하게 한 것, 세금 바치는 것을 금한 것,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 부른 것’이 그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죄목은 합당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백성들을 긍휼히 여기셨고, 그 아픔을 위로하고 어루만지셨으며, 미혹하지 않으셨습니다. 세금을 바치는 것을 금했다는 것도 터무니없는 모함이었습니다. 그분을 유대인의 왕으로 부른 것은 오히려 백성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오히려 당신을 왕으로 삼으려는 사람들을 피해 혼자 기도하러 올라가신 분이었습니다.
이런 예수를 빌라도에게 데려왔습니다. 그는 예수님에게 아무런 죄가 없음을 선포했습니다. “내가 보니 이 사람에게 죄가 없도다(4절).” 그러자 무리는 더 큰 소리로 소동합니다. 이에 두려움을 느낀 빌라도는 결국 불의와 결탁합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헤롯에게로 보냈고,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헤롯에게 예수님을 고소합니다(10절). 헤롯은 예수님을 모욕하고 희롱한 후, 빌라도에게 다시 넘겨줍니다. 예수님을 죽이려는 음모에 가담하면서도 그 책임은 지려 하지 않는 아이러니한 모습입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죄가 없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옳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신분과 처지를 유지하기 위해 정직하지 못하게 반응했고, 백성들의 눈치를 보며 결국은 잘못된 결정을 합니다. 이제 빌라도에 대해서 좀 알아보고자 합니다.
1. 빌라도의 이름
빌라도라는 이름의 뜻은 '창을 가짐' 또는 '창으로 무장한' 이라는 의미입니다. 본디오 빌라도라고도 부르며 로마인으로 주후 26년에 디베료 황제에 의해 유대지역 총독으로 임명되었습니다.
2. 시대적 배경
A.D. 26- 36년까지 제 5 대 총독으로 유대, 사마리아 이두매 지역을 통치한 인물. 빌라도는 헤롯 대왕의 아들 아켈라오가 이 지역을 통치하는 데 실패하자 로마가 직접 통치하기 위해 파견한 인물입니다. 때문에 빌라도는 총독으로 부임하자마자 유대인들을 강하게 억압하는 정책을 폄과 동시에 로마에 대해 강하게 적대감을 표명하는 열심당원을 색출, 처형하기도 하였습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예수님과 함께 판결을 받은 죄수 바라바도 이런 열심당원 중에 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결국 그러한 자신의 과격함 때문에 A.D.36년 로마로 소환되었습니다.
3. 성품
(1) 예수님이 무죄임을 알면서도 민란을 두려워하여 십자가에 못박히게 내어 준 것으로 보아 나약하고 비겁한 자입니다.
(2) 예수님을 사형토록 허락하고도 자신에게는 죄가 없음을 나타내기 위해 손을 씻은 것으로 보아 약삭빠르고 직무에 무책임한 자입니다.
(3) 아내의 지혜로운 조언을 무시하고 자신의 이해 관계에 따라 행동한 것으로 보아 어리석고 이기적인 자입니다.
(4) 폭동을 일으킨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제물에 섞은 것으로 보아 잔 학하고 반유대적 성향을 지닌 자입니다.
4. 불의에 굴복한 빌라도의 잘못에서 얻는 교훈
성도 여러분, 요한복음 19장에 나타난 빌라도의 모습을 보십시오. 비록 그가 예수님을 가혹하게 채찍질하고, 군병들을 시켜 가시 면류관을 씌우는 등 예수님을 몹시 핍박하며 경멸한듯 보이지만 예수님을 석방시켜 주기 위해 얼마나 애썼습니까? 그는 세 차례에 걸쳐 예수님의 무죄성을 증거했습니다. 하지만 보십시오 결국 그는 유대인들의 강력한 요청에 못이겨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도록 허락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빌라도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장본인으로 영원히 낙인 찍히고만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무죄성을 알고 놓아 주려고 애썼던 빌라도가 오히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장본인으로 낙인 찍히고만 이 어처구니 없는 일이 왜 일어났습니까? 과연 이러한 사실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1) 악의 세력을 두려워해서는 안됩니다.
누가는 빌라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히게 내어준 사실을 유대 군중이 "큰 소리로 재촉하여 십자가에 못박기를 구하니 저희의 소리가 이기는 지라"(눅23:23)고 했고, 마태는 유다 군중이 민란을 일으킬까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마27: 24) 또 마가는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기 위해 할 수 없이 그렇게 했다고 기록했습니다.(막15: 15) 성도 여러분, 여기에서 공통적인 사실은 무엇입니까? 곧 빌라도가 예수님의 무죄가 확실함에도 불구하고 사악한 유대 군중들의 집단적인 요청이 두려워 굴복했다는 점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선한 생각을 갖고 있고 올바른 판단력을 갖고 있다해도, 우리에게 사악한 세력의 위협을 이겨 낼 힘이 없다면 우리 역시 이와 유사한 죄를 범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강하게 합시다. 지극히 담대히 합시다. 그리고 그러한 자세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갑시다.(수1:7,8)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와 평생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으셨습니까?
(2) 권력이나 명예에 연연해서는 안됩니다.
성도 여러분, 빌라도가 자신의 명예와 권력 등을 포기하고 예수님의 무죄를 끝까지 변호했다면, 그는 영원한 심판의 늪에 빠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총독이라는 높은 자리에 연연하여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엄청난 죄를 범했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권력이나 명예 등 소위 영광이 된다고 하는 것들은 들의 풀과 같이 언젠가는 시들고 말 헛된 것들이며(시49: 17), 더욱이 세상 사람들은 번성할수록 하나님께 범죄하으로써 결국 그 영화는 욕이 되고 맙니다.(호4:7)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그렇듯 범죄와 수치를 초래하는 세상 높은 자리의 영광만을 바라보는 어리석음을 결코 범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3) 책임을 전가해서도 안 됩니다.
성도 여러분, 빌라도는 예수님을 내어주기 전에 최종적으로 어떠한 태도를 취했습니까? 그는 유대 군중 앞에서 물을 떠서 손을 씻으며 이렇게 외쳤습니다. "이 사람의 죄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마27:24) 이 얼마나 가증스런 책임 회피입니까? 하지만 그의 책임이 없어졌습니까? 천만에 말씀입니다. 이천 년이 지난 오늘에도 우리는 사도신경을 통해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고난당하셨음을 확인하고 있지 않습니까? 성도 여러분, 이처럼 우리가 져야 할 책임은 아무리 교활한 방법으로 남에게 떠넘긴다고 해도 결코 떠넘겨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아담과 하와에게서도 발견하지 않습니까?(창3:12- 19)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우리는 결코 자신이 의당 져야할 책임을 남에게 교묘히 떠넘기는 자들이 되지 맙시다. 그러한 유혹을 과감히 물리치고 자신의 책임에 따라 일을 옳고 바르게 처리합시다. 또 만일 자신이 진정 잘못을 범했으면 잘못을 솔직히 시인하고 주님 앞에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는 우리가 됩시다.
성도 여러분! 빌라도는 예수님의 무죄를 알고 예수님을 풀어 주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는 예수님을 못박는 주인공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사실 속에서 우리는 어떠한 교훈을 얻습니까? 첫째 결코 사악한 세력을 두려워해서는 안되며, 둘째 권력이나 명예에 연연해 불의와 타협해서도 안됨을 교훈 받습니다. 그리고 셋째 남에게 자신의 책임을 전가시키는 일이 소용없는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빌라도가 범한 잘못을 통해 바로 이러한 사실을 배웁시다. 그래서 항상 불의에 굴하지 않는 강하고 담대한 믿음을 가지고 자신이 져야 할 책임을 의당 지는 성도가 됩시다.
* 예화(1): 빌라도의 선택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수시로 선택의 순간에 직면하게 됩니다. 배우자 선택, 직업 선택, 친구 선택, 물건 구입 선택 등등 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수많은 크리스천들은 신앙생활에서 해야만 하는 선택은 하지 않고 빌라도처럼 예수님 편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그들은 진정 삶 속에서 예수님을 선택하지 않고 그 선택을 대치시킬 어떤 것을 찾고 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헤롯에게 넘겨줌으로써 선택을 피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헤롯은 예수님을 다시 빌라도에게 보냅니다. 이제 빌라도는 또 다시 피하기 위해서 백성에게 떠넘깁니다. "너희가 친히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박으라 나는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노라"(요19:6)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러기를 원치 않고 빌라도에게 결정해 줄 것을 요구합니다. 빌라도는 주저하다가 결국 잘못된 선택을 하고 맙니다. 빌라도는 인류역사상 가장 중요한 순간에 가장 중요한 선택을 잘못하고 만 것입니다. 우리도 미온적이고 나태한 신앙을 버리고 뜨거운 충성된 신앙생활을 선택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살면서 믿음과 세상을 동시에 다 충족시킬 순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중립은 곧 저주를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계3:16)" 우리도 이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진정한 주님이요 만왕의 왕으로 고백하는 자들입니다. 그럼에도 종종, 하나님께서 주신 답을 선택하지 못하고 옳은 결정을 옆으로 치워둡니다. 손해볼까 봐, 어려움 당할까 봐, 다른 사람에게 밀려날까 봐 눈치를 봅니다. 눈치보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하지만 불의와 연합하지 않는 것, 오직 하나님과 연합하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마음 속에서 예수님을 멀리하려는 연약함을 포기해야 합니다. 잠시의 이익을 위해 예수님을 포기하려는 욕망, 편리를 위해 예수님을 버리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뻐하고 하나님을 즐거워할 수 있는 마음이 우리 가운데 넘쳐나길 기원합니다.
♥ 기도 ♥
사랑과 은혜가 충만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믿음에 대해 분명하게 선포하고 싶습니다. 불의와 연합하지 않고 하나님과 연합하는 것에 마음을 드리기 원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이루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터키의 성소피아성당 안에는 빌라도의 편지라는 것이 있는데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이 아무 죄도 없던 예수님을 죽이라는 문제에 대하여 빌라도가 로마황제에게 보낸 편지랍니다. 내용인 즉은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끌려오시기 전에 빌라도는 예수님을 이미 본적이 있었답니다. 그가 본 예수님은 "이 사람은 정말 유대인의 왕이며 가이사 시저 역시 이 사람을 함부로 할 수 없고 시저 마저 멸망시킬 인물"이었다는 겁니다. 그러나 지금 자기에게는 100명이 채 안되는 군사가 있었고 너무나 많은 유대인들이 그를 죽이지 않을 시에 반란을 일으킬 위험이 있는 상황에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갈등의 시간에 보낸 서신이랍니다. 그 서신의 일부를 읽어드리면 다음과 같습니다.
어느날 저는 예수에게 어떤 불행한 일이 닥치게 될 지도 모른다는 정보를 입수하였습니다.「예루살렘」에서는 선지자로 불리우는 자들에게 돌을 던지는 일이 처음 있는 일은 아니었으며, 예수에 대한 진정서가 「가이사」에게 제출되기도 하였습니다. 잘못하면 그로 인해 폭동이 일어날 것 같은 불안감까지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폭동을 진압하기에는 우리의 군사력이 너무도 허약한 고로, 저는 힘없이 물러섬으로써 총독청의 체면을 손상시키는 것보다는 차라리 조용히 성의 평온을 되찾는 방안을 강구하기로 하였습니다. 저는 예수에게 글을 써 보내어 총독청에서 한번 만날 것을 청하였습니다. 예수가 왔습니다. 황제께서는 제가 「로마」인의 피에 서반아의 피가 섞여 흐르는 혈통을 지닌 사람으로서, 두려움 따위의 유약한 감정은 모르는 사람임을 잘 아실 것입니다. 그 「나자렛」사람이 모습을 나타냈을 때 저는 저의 접견실에서 거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제 다리는 쇳덩이로 된 손으로 대리석 바닥에 붙여놓은 것처럼 꼼짝할 수가 없었으며, 그 나사렛 젊은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조용히 서 있는데도 저는 마치 형사범처럼 사지를 떨고 있었던 것입니다. 비록 그는 한 마디의 말도 하지 않았으나 제 앞에까지 다가와 서는 것만으로도 "내가 여기 왔나이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한참 동안 저는 이 비범한 사람을 존경과 두려움으로 응시하였습니다.
"예수여," 하고 드디어 저는 말문을 열었습니다. "「나사렛」예수여, 지난 3년 동안 나는 그대에게 연설할 수 있는 자유를 허락하였소. 이 일에 대하여 나는 조금도 후회가 없소. 그대의 말은 현인의 말이오. 내가 알기에는 그대의 설교는 다른 철학자들의 그것을 능가하며 단순하고도 장엄한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황제께서도 알고 계시며, 그를 허락한 것을 스스로도 기쁘게 생각하고 있소. 그러나 나는 그대의 설교가 강력하고도 원한 깊은 적대자를 만들고 있음을 알려 주어야겠소. 그대의 설교가 그들에게 매우 가혹하다는 것과, 내가 그대에게 자유를 허락한 것으로 그들이 나를 반대한다는 것 때문에 설상가상으로 시끄러워지고 있소. 내가 그대에게 지금 말하려고 하는 것은 명령이 아니라 부탁으로서, 이제부터는 그대가 설교할 때에 좀 더 신중하고 온화한 말로 하며, 그들을 고려하여 대적의 자존심을 상하게 함으로써 그들이 어리석은 군중들을 충동질하여 그대를 대적하지 않도록 하고 또 나로 하여금 법의 도구 노릇을 하지 않도록 해 달라는 것이오."
그 「나사렛」사람은 조용히 입을 열었습니다. "땅의 군주여, 그대의 말은 참된 지식에서 나온 말이 아닙니다. 격류를 명하여 산골짜기에 머물러 있으라고 말해 보십시오. 그러면 계곡의 나무들은 뿌리째 뽑혀 버릴 것입니다. 그 급류는 자연과 창조주의 법칙에 순종한다고 그대에게 답변할 것입니다. 하느님 한 분만이 그 급류가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고 계십니다. 진실로 그대에게 이르노니 「사론」의 장미가 피기 전에 정의의 피가 엎질러질 것입니다."
"빌라도가 아무 효험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가로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 하니 너희가 당하라 (마2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