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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약 요한복음 11:28-37/ 나사로의 죽음을 슬퍼하시는 예수님 [새벽]
  • 조회 수: 644, 2013.11.17 20:59:30
  • 마르다와 대면한 예수님은 이제 마리아를 찾으십니다. 28절에 보니 예수님께서 마리아를 찾으셨다고 마르다가 전합니다. 예수님은 나사로의 죽음 앞에 슬퍼하는 자매 한 사람 한 사람을 위로하고 싶으셨나 봅니다. 예수님은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십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이 찾으신다는 소리에 급히 일어나 나아갔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마리아와 같은 믿음의 응답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부르십니다. 구원의 자리로 부르시고, 사명의 자리로 부리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얼마나 굼뜹니까? 마리아처럼 즉시 일어나 나아가는 순종이 필요합니다. 

    마리아는 왜 예수님이 부르실 때 급히 일어나 나아갔을까요? 마리아는 예수님이 오는 곳에는 항상 은혜가 있고, 역사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믿었습니다. 언제나 예수님이 계신 곳에서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인간만 모인 곳에는 갈등이 있고, 시기가 있고... 그래서 늘 긴장이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계시면 은혜가 넘칩니다. 신나는 일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모인 곳에는 사람만 있는 자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언제나 예수님이 계셔야 사랑, 축복, 은혜가 넘칩니다. 누가 그랬습니다. 기관실에서 어떤 교인을 신랄하게 비난했는데 그 소리가 그 교인에게 들어갔습니다. 그러니까 기분이 나빠서 교회에 나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주님이 없으니까 이런 일이 생깁니다. 우리 가정에도, 기관실에도 주님을 모셔야 합니다. 그래야 행복해지고, 사랑하게 되고, 죽은 자가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예수님이 여기 계셨더라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을 것이라는 마리아의 말에 예수님은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나사로의 무덤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 예수님의 눈물은 어떤 눈물일까요? 단순히 나사로의 죽음 때문에 슬퍼하였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실 것이기 때문에 단순히 죽음 때문에 슬퍼서 눈물을 흘리신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나사로의 죽음 속에서 인류의 문제를 보십니다. 그것은 바로 죄의 문제입니다. 이 죄가 인생을 쥐고 흔드니까 병들고, 죽고, 나중에는 지옥불에 던져지게 되는 것입니다. 나사로는 다시 살아난다고 하더라도 언젠가는 다시 죽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죄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고는 우리 인생에는 항상 고통과 눈물뿐인 것입니다. 나사로의 죽음을 통해 다시 한 번 예수님은 그가 지고 가야할 죄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하고 뼈저린 것인지를 다시 한 번 깨닫고 눈물을 흘린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눈물을 예사로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3년의 공생애 사역 가운데서 눈물을 흘리신 것은 멸망할 예루살렘을 바라보면서, 또 죽은 나사로를 보면서 눈물을 흘렸습니다. 다 죄로 말미암아 멸망당하게 될 인류의 문제였습니다. 우리도 사실 눈물을 흘릴 일이 별로 없습니다. 뭔가 우리 인생을 뒤흔들만큼 슬픈 일이 일어날 때 눈물을 흘리지 않습니까? 그런데 주님이 눈물을 흘렸다는 사실은 대단히 심각한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의 상태가 심각하다는 뜻이겠지요. 

    마지막으로 유대인들의 비아냥거림입니다.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보며 눈물을 흘리자 어떤 이는 나사로를 정말 사랑하였나 보다... 라고 말하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맹인의 눈을 뜨게 한 자가 나사로를 죽지 않게 할 수는 없었더냐 라고 비아냥거립니다. 예수님의 기적을 경험한 자들이 예수님을 비난할 자격이 있습니까? 사실 이러한 비난도 조금 있으면 입이 쑥 들어가겠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비난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도 이렇게 예수님처럼 비난을 당하게 됩니다. 믿음으로 산다고 양보하고, 희생하고, 참고.... 그러다가도 뭔가가 부족해 보이면 예수쟁이가 이렇게 할 수는 없었느냐..... 이렇게 비난합니다. 비판, 비난은 사실 한계라는 것이 없습니다. 비난하려고 작정하면 예수님인들 비난 받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비난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세상 사람들은 자기들은 아무 것도 안 하면서 예수 믿는 사람들, 교회에는 높은 수준의 도덕과 능력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하루도  세상의 비판, 비난을 두려워하지 말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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