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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약 마가복음 05:11-20/ 우리를 떠나소서! [주일낮]
  • 조회 수: 620, 2013.11.17 21:02:42
  •  한 미국행 비행기가 인천공항을 이륙한 후에 급히 회항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유는 비행기에 탄 한 어린이가 고열로 인해 대단히 위중했기 때문입니다. 비행기에 탑승했던 한 의사가 급히 병원에 가지 않으면 매우 위험하다고 진단을 내렸습니다. 그 비행기의 기장은 인천공항으로 회항하기로 결단을 하지요. 그런데 회항하게 되면 비행기의 기름을 모두 바다에 버려야 됩니다. 그래야 가벼워진 상태에서 동체가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행기는 잘 돌아왔고 그 아이는 무사히 생명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한 번 생각해 보시지요. 그 버린 기름 값이 얼마며, 미국에 다시 가려면 또 기름을 채워 넣어야 되는데 그 값은 또 얼마겠습니까? 그리고 승객들의 스케쥴이 어긋나서 생기는 일도 다는 아니더라도 일부 항공사가 책임져야 될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니 아이 하나 살리자고 항공사가 본 물질적 손해는 돼지 2000마리 값보다 더 되면 됐지 덜 하지 않았을 겁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사람 하나 고치려고 돼지 2000마리를 희생시킨 것은 아주 이해 못 할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귀신들린 사람이 고침 받고 나서였습니다. 돼지 치는 사람들이 놀라지 않았겠어요? 동네에 들어가서 이 소식을 알리니까 다들 현장으로 나왔습니다. 정말 귀신들렸던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해져서 앉아 있는 거예요. 이것을 보고 불쌍한 우리 동네 사람 하나를 고쳐주셨군요. 정말 당신은 우리들의 은인입니다. 고맙습니다” 이렇게 인사해야 할텐데 16-17절에 보니까 “이에 귀신 들렸던 자가 당한 것과 돼지의 일을 본 자들이 그들에게 알리매 그들이 예수께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예수님께 감사는커녕 그 마을을 떠나달라는 거예요. 
     
    복음서에 나와 있는 예수님의 사역을 보면 적게는 절반이, 많게는 3/4이 병자들과 귀신들린 자들을 고쳐주신 일입니다. 그 얘기는, 그 당시에는 어딜 가도 병자들과 귀신들린 자들이 넘쳐났다는 얘기겠지요. 지금부터 2000년 전 얘기인데 사실 그때 무슨 의료체계가 잘 되어 있었겠습니까, 아니면 변변한 의약품이 있었겠습니까? 지금으로 보면 약 한 알 먹으면 나을 병도 그 당시에는 그냥 속수무책으로 죽어가는 사람이 많았을 거라는 겁니다. 그러니 이런 귀신들린 사람을 고칠 권세가 있는 분이라면, 더더욱 동네에 모셔 놓고 오히려 떠나려고 하면 강제로라도 붙들고 싶어 해야 되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동네 사람들의 반응은 떠나달라는 겁니다. 왜 떠나라고 했을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예수님 때문에 자기들의 일상이 뒤집혀졌다는 겁니다. 별 탈 없이 나름대로 유지되던 생활에 일대 혼란이 왔다는 거지요. 아마도 사람들이 어느 정도 먹고 살게 되면 그때로부터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욕구는 평온한 분위기일 겁니다. 남북통일에 대한 국민들의 의식을 진단해 보니 통일을 원하는 사람보다도 통일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입으로는 통일통일 하지만 그 통일이 삶에 가지고 올 불편한 현실을 생각해 보면 원치 않는다는 말입니다. 사실 국제 사회에서 중요한 이쓔가 생길 때마다 우리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게 분단이라는 문제인데, 실상 그 문제가 어찌 어찌 해결의 기미가 보인다 해도 우리의 정서는 반갑기보다는 오히려 무거워지는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꽤 많은 사람들이 통일이 안 되도 좋으니까 그냥 이대로 살자, 우리의 일상을 방해 받는 일 없이 그냥 이렇게 살자 하는 생각이 많습니다. 받아들여야 될 혼란을 피하고 지금 이대로 불완전하게나마 평온을 유지하면서 살려고 하는 게 인간의 본능일 것입니다. 이런 생각이 바로 이 거라사 지방에 사는 사람들의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님더러 떠나라고 할 다른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지금 이 거라사 지방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어떻게 인식되고 있냐면, 예수라는 사람이 와서 좋은 일을 했지만 한편으로는 평지풍파를 일으킨 겁니다. 다시 말해서 귀신 들린 사람 안 고쳐도 되니까 돼지들 2000마리가 바다로 달려가 자살하는, 그런 일상을 깨는 일은 안 했으면 좋겠다는 겁니다. 오늘날 우리는 일상의 삶을 뒤흔드는 그런 변화는 싫다는 것입니다. 예수도 적당히 믿어 내 삶에 지장이 없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생각해 봅니다. 만약 거라사 사람들이 예수를 믿음으로 받아드렸다면 그들에게 아주 긍정적이고, 행복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겠습니까? 우리는 신앙생활에서 일어나는 변화들을 두려워합니다. 왠지 불편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손해 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 생각한 것입니다. 그 반대로 더 없이 행복한 변화를 맛볼 것임을 확신합니다. 지금 부산대학교 공학과에 손권 교수라는 분이 계십니다. 부인은 처음부터 열심히 교회를 다니고 자신은 미국에 유학을 가서 부인 때문에 마지못해 한인교회에 처음 발을 디뎠습니다. 교회는 다니지만 너무 깊이 신앙에 빠져 지내는 부인을 보며 늘 못마땅하게 생각했는데 부인의 간절한 기도로 이제는 남편이 열심 신자가 되었습니다. 요즘은 대학교 캠퍼스를 누비며 사도 바울의 심정으로 학생들을 전도하는 교수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부인을 보고 못마땅해 한 그가 예수님 때문에 지금은 부인보다도 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지금은 오히려 교수직보다도 목음 전하는 일이 더 행복하다고 말하는 그런 교수가 되었습니다. 이 손권 교수야 말로 주님으로 인해 행복한 변화를 맛본 장본인인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으로 인해 내 삶에 변화가 일어난다면 두려워하지 말고 받아드리십시오. 마귀는 우리에게 오늘도 행복하고, 내일도 행복하고, 지금 이대로가 영원히 행복하다고 속삭입니다. 변하는 것이 문제라고 유혹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눈물을 흘리며 하소연했습니다. 나라의 존망이 바람 앞의 등불처럼 되었는데 거짓 선지자들은 왕과 백성들의 마음을 얻으려 평안하다, 평안하다고 떠들어 되고, 또 백성들은 불편한 진실에는 스스로 눈을 감고 달콤한 거짓 메시지에 혹하여 스스로 만족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현실이 아닌지 우리는 한 번 살펴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추정해 보면 우리가 변화를 싫어하는 이유는 두 가지 정도로 집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변화로 인한 불편함이 싫다.... 이거죠. 그러나 발전이라는 것은 언제나 불편한 현실을 받아드릴 때 오게 됩니다. 우리가 교회의 부흥을 외치지만 사실 교회 부흥은 내가 참고, 내가 사랑하고, 내가 양보하고.... 하는 이런 불편한 현실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모든 게 다 그렇지 않습니까? 수고, 불편함... 이런 것이 없이는 더 나은 세계,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합니다. 둘째, 경제적인 손실 때문입니다. 그 미친 사람 온전케 하는 데 돼지 2천마리를 희생시켰단 말이죠. 그러나 사실 따지고 보면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고 하셨으니 한 영혼 바르게 하는데 돼지 2천 마리면 싸게 잘 한 것이죠. 우리 주님은 그 한 영혼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잖아요. 주님은 우리를 위해 목숨까지 주셨는데 우리는 돼지 2천 마리 손해 보았다고 주님을 떠나라 그래서 되겠습니까? 우리가 물질 때문에 주님을 떠나라고 하는 이런 비극이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필요하다면 오병이어의 기적도 만드시는 주님을 믿고 경제적인 것도 주님께 맡기면 우리의 경제가 복을 받을 줄로 믿습니다. 

    말씀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우리가 2012년 한 해를 더 보람 있게 살아가려면 주님으로 인해 뭔가 우리 삶에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몸은 피곤하지만 좀 아침 일찍 일어나서 새벽기도를 시작해 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읽지 않는 분들은 올해는 꼭 성경읽기를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읽지 않고는 우리가 신앙의 성장, 성숙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다고 했으니 우리가 진실한 마음으로 성경을 읽으면 우리의 심령과 폐부를 찔러 쪼개며 우리를 의미 있는 변화로 이끌어주실 것입니다. 수입이 있어도 아직까지 십일조 하는 일에 주저하시는 분들은 하늘창고의 열쇠를 쥐고 있는 주님을 믿고 과감하게 드려보시기 바랍니다. 미국의 부호 록펠러는 가난할 때부터 수입의 십일조를 드렸고, 후에 부호가 되어서는 십의 육조까지 하나님 앞에 드리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경험했다고 합니다. 새해 새 인생을 열어갈 당신..... 그 길에는 불편함이 있지만 주님을 믿고 과감하게 그 속으로 뛰어들어가는 당신에게 하나님이 축복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기도] 주님 우리도 거라사 사람들처럼 피곤하고 귀찮아서, 때로는 성가시다고 해서, 때로는 물질에서 손해보기 싫어서 주님보고 떠나라고 할까 두렵습니다. 바라옵기는 새해에는 우리 주님으로 인해 우리 안에 일어날 새롭고, 의미있는 변화를 기대하며 열심히 기도하고, 말씀 보고 주의 일에 힘쓰는 저희들 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 모든 것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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