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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약 마태복음 13:01-09/ 천국비유 [수요]
  • 조회 수: 897, 2013.11.17 21:18:18
  • 마태복음 13장은 천국비유의 장이다. 여기에서 언급하고 있는 천국은 지상적인 메시야의 왕국에 대한 언급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메시야가 없는 기간 중의 이 땅에서의 왕국을 가리킨다. 이 천국에는 선과 악, 진리와 거짓이 서로 섞여 있다. 사람들은 이 장에 나타나는 천국을 교회라고 하기도 하지만 교회는 아니다. 이러한 것들을 바로 이해하면서 비유들을 하나씩 살펴보자

    1. 하나님 나라의 개인적인 적용
    하나님 나라의 비유를 개인적인 방식으로 적용시킬 수 있는 것은 씨뿌리는 비유이다. 이 장에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데 필요한 믿음을 얻어가는 과정에서 믿음을 얻는데 실패하는 3가지 땅(길가 밭, 돌작 밭, 가시덩쿨 밭)을 언급하고 좋은 밭에 믿음이 뿌려지면 30-100배의 결실을 거둔다고 말씀하고 있다. 여기에 나타나는 밭은 물론 사람의 마음이며 합당한 마음에 믿음의 씨앗이 뿌려질 때 많은 열매를 거둘 수 있음을 교훈해준다.

    2. 하나님 나라의 사회적 적용
    하나님 나라의 사회적 적용은 밭에 뿌려진 가라지 비유로 설명할 수 있다. 농부가 애써 벼를 심었는데, 원수가 그 주인 몰래 논에다 가라지 씨앗을 뿌려 놓았다. 그 뿌려진 가라지를 뽑아내다가는 심어놓은 벼까지 다치겠는지라 다 성장하여 추수하고 타작할 때까지 그 가라지를 그대로 밭에 남겨둔다는 이곳에서 주님이 알곡과 가라지로 비유하신 말씀은 우리의 마음에 자리 잡은 밭을 가리킨 것이 아니라 교회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의 모형으로 이 땅 위에 속해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임입니다. 좋은 씨란 복음으로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주님은 이 같은 씨를 심는 장소로 교회의 터를 닦아 놓으셨습니다. 그런데 그 곳에 알곡과 함께 가라지가 자랐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1. 가라지의 발견 

    우리는 36절 이하에서 이 비유를 설명하신 주님의 말씀에서 좋은 씨를 뿌리는 자는 예수님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며 추수군은 천사들이요 밭은 세상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밭을 세상이라고 하신 것은 복음을 뿌리는 곳을 말한 것이요 좋은 씨가 자라는 곳은 교회입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가라지를 발견한 것입니다. 

    (1) 교회는 가라지도 자라는 곳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만 모이는 곳이기 때문에 알곡만 자라는 곳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쩌다가 가라지가 발견되면 그것을 뽑아 내려고 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시험은 이런데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알곡도 자라고 가라지도 함께 자라는 곳임을 알아야 합니다. 

    (2) 가라지를 덧뿌리는 자는 원수라고 하셨습니다. 이 원수란 바로 마귀라고 39절에서 설명해 줍니다. 마귀는 교회에 가라지를 덧뿌리는 자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가라지는 중동지방에서 자라는 독보리를 말하는데 이 가라지는 줄기나 모양은 보리를 닮았지만 쓸모 없고 해로운 식물로 사람이 이것을 먹으면 구토증과 경련과 설사를 일으키며 사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마귀가 밭에 가라지를 심는 것은 이처럼 하나님의 백성에게 해를 주려는데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3) 이 가라지는 사람들이 잘 때에 곡식 가운데 덧뿌린다고 하셨습니다. 잔다는 말은 영적 표현으로 마귀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심는다는 뜻도 있습니다. 다른 한편 잠을 잘 때란 교회가 기도가 없을 때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교회는 언제나 기도로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마귀가 가라지를 덧뿌립니다. 

    (4) 가라지는 싹이 나고 결실할 때 보였다고 했습니다. 가라지의 판단은 인간의 판단으로 진부를 가리기가 어렵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눈에 가라지로 보이는 것도 가라지가 아닌 경우도 있습니다. 또 우리의 눈에 가라지로 보이지 않은 것도 가라지일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결실할 때란 그 가라지의 정체가 분명히 드러났을 때를 말합니다. 죄악이 관용하여 머리를 쳐들 때입니다. 

    (5) 가라지를 뽑지 말고 그냥 두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되기 때문입니다. 

    2. 가라지의 형태 ...가라지는 마귀가 심은 것으로 마귀의 자녀들이라고 했습니다. 
    (1) 가라지는 거짓 형제의 너울을 쓰고 자랍니다. 거짓 형제란 진리에 대한 신앙고백이 다른 사람을 가리킵니다. 결실할 즈음에 이르러야 그 정체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2) 본문에 나오는 말씀을 보면 가라지의 처리는 하나님이 친히 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추수 때까지 자라게 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교회가 사탄의 가라지들에 짓밟히기까지 그들의 번성을 그대로 방관치 아니하십니다. 시험의 그물에 던져 뽑기도 하시며 말씀으로 인한 환난이나 핍박으로 견딜 수 없게 하심으로 처리하기도 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의 최종적 처리는 장차 주님의 재림의 날에 추수군들에 의해 뽑아 불사르게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을 뽑을까 염려한다고 하신 것은 가라지의 식별이 어려운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가라지는 오랜 기간 교회에서 뿌리를 내리고 자랐기 때문에 그에게 동조하는 무리나 그의 혈육의 친척 중에 있는 알곡이 함께 뽑혀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경고하신 것입니다. 우리들 눈에 혹 천사의 너울을 쓴 가라지로 보여도 우리의 손을 대기에 앞서 하나님께 간구하여 하나님의 손으로 뽑을 수 있도록 지혜를 써야 할 것입니다. 

    결론 : 우리에게는 마귀의 권세를 능히 이길 만한 여러 가지 무기가 있습니다. 성령의 검인 진리의 말씀이 있습니다. 이 검으로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나는 기도가 있습니다.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는 믿음의 방패가 있습니다. 주님은 음부의 권세가 교회를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시기 때문에 종국적 승리는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3. 겨자씨 비유


    예수님은 천국을 겨자씨와 누룩으로 비유해서 말씀 하셨습니다. 겨자씨로 비유하신 것은 천국은 지극히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되지만 가장 놀라운 결실을 맺는다는 것을 의미하신 것입니다. 또 누룩으로 비유하신 것은 천국은 그 번식이 빠른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복음의 능력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1. 천국과 겨자씨 

    여기서 주님이 천국을 겨자씨로 비유하신 말씀은 천국의 발생과 그 놀라운 성장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주님은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다고 하셨습니다. 겨자씨의 특징은 그 씨가 지극히 작은 반면에 그 나무는 씨에 비해 지극히 크다는데 있습니다. 이 겨자씨는 그 길이가 긴 것은 4미터가 넘는 것도 있는데 가을철 그 가지가 견고해 질 때면 새들이 햇빛을 피하는 그들의 안식처로 혹은 폭풍우를 피하는 피난처로 깃드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토록 작은 씨앗이 어떻게 큰 나무를 이룰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 해답은 그 씨앗이 아무리 작아도 그 안에 생명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주님은 이 비유를 통해서 복음 속에 깃들어 있는 생명력은 마치 이 겨자씨와 같은 능력이 있기 때문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다"고 했습니다. 이 생명의 역사는 마치 가장 작은 겨자씨와 같은 존재처럼 보였지만 오늘날에 이를 온 세계를 뒤덮는 큰 겨자나무를 이룬 것입니다. 

    (1) 예수님의 태어나심은 이 겨자씨의 등장이십니다. 아무의 관심도 없는 가운데 베들레헴 어느 농가의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 어린 작은 생명이 세계의 역사를 바꿔 놓았으며 인류의 운명을 변경시켰으며 새로운 인류의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아기 예수에게는 다른 사람이 갖지 아니한 겨자씨의 생명이 있었습니다. 그 분은 바로 생명 그 자체이시며 하나님의 생명이십니다. 

    (2) 이 씨앗은 또한 복음의 능력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의 열 두 제자들은 세계를 움직일 만한 위인들이 못되었던 것입니다. 갈릴리 바다 어부 출신들로 배운 것이 없고 기껏해야 자기 집안에서 한 가장으로나 여생을 마칠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로부터 나간 복음이 온 세계를 정복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들로 사도라고 하는 영광스러운 이름으로 불려졌습니다. 이것은 그 능력이 그들에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복음의 능력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 생명력이 있는 겨자씨는 내 마음속에 떨어질 때 놀라운 결과를 가져옵니다. 

    (1) 하나님의 생명을 받습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하므로 하나님의 생명을 공급받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는 것은 율법이나 양심이 아닙니다. 오직 겨자씨로 떨어진 복음의 씨앗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 씨앗이 주는 놀라운 결실을 바라보지 못한 채 받지만 결과는 엄청난 결실을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2)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지는 신분을 가져다줍니다.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줍니다. 우리의 신분은 죄의 종이었지만 이 지극히 작은 복음의 씨앗으로 인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갖게 된 것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이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4) 이 씨앗은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변화시킵니다. 우리의 마음이 그리스도의 피로써 정결하게 됩니다. 죄에 얽매었던 우리의 마음이 진리로 인하여 자유함을 얻습니다. 

    (5) 이 씨앗은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 나라의 열매를 맺습니다. 이전에는 사망의 열매를 맺었지만 우리 속에 심겨진 이 씨앗으로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맺게 된 것입니다. 


    3. 누룩의 비유 

    주님은 다른 또 하나의 비유로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를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고 하셨습니다. 누룩을 가지고 천국으로 비유하신 것은 복음의 생명력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1) 복음의 누룩은 먼저 온 가정에 퍼집니다. 바울은 빌립보 감옥의 간수에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말했습니다. 이 빌립보 간수는 그 후 "저와 온 집이 하나님을 믿었으므로 크게 기뻐했다"고 했습니다. 

    (2) 복음의 누룩은 우리를 새 사람으로 만듭니다. 아무리 악한 마음이라도 이 누룩이 들어가면 그의 생명력이 그의 인격을 지배하게 됨으로 새 사람으로 변화 받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 속에 있었던 누룩은 그의 발효성이 대단히 컸던 것입니다. 이것은 그의 성령 충만한 생활을 의미합니다. 

    결론 : 복음이 겨자씨와 같이 그 안에 생명력이 있으려면 그 씨앗이 좋은 땅에 심겨져야 합니다. 좋은 땅이란 말씀을 듣고 깨닫는 마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다면 그 말씀의 씨앗이 겨자씨의 놀라운 능력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4. 들어가기 위해 힘써야 할 하나님 나라 비유
    어느 땅에 값진 보화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아는 한 농부가 자기의 있는 재산을 다 팔아 그 땅을 사려고 하는 비유, 또 값진 진주를 구하러 다니는 사람이 마침내 이 세상에서 가장 값진 진주를 만났는지라,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산다는 비유 이야기는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희생과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교훈해주고 있다. 얼마 전에 정읍에서 마늘 밭에 땅을 파서 100억이 넘는 돈을 숨겨놓다가 적발된 사건을 기억하시죠. 옛날에는 이런 일들이 많았나 봐요. 제가 뉴질랜드에 있을 때 중국인들은 집 안에 돈을 많이 숨겨 놓는다고 합니다. 은행에 넣어 놓으면 많은 부분을 세금으로 떼이니까 세금 안내려고 화단에 단지를 땅에 묻어 두고 거기다가 돈을 넣어두는 겁니다. 옛날에는 마땅한 은행도 없으니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지요. 그런데 이런 일을 알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자기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자금력을 동원하여 그 밭을 살려고 하겠죠. 예수를 그렇게 믿어라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것이 복이니까.... 그리고 예수 믿으면 천국에 들어가니까.... 예수가 우선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이런 각오와 결심... 이런 희생비용이 발생하는 겁니다. 

    5. 종말론적 하나님 나라

    주님은 천국을 여러 가지로 비유하시는 중에 본문에서는 물고기를 잡는 그물로 비유하셨습니다. 이것은 천국의 값진 보화를 가진 사람과 그것을 갖지 못한 사람들을 구별하여 심판하실 것을 나타내신 비유입니다. 그물을 친 바다는 이 세상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내가 너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이 그물을 치고 고기를 잡아야 할 어부들입니다. 

    1. 그물에 가득 차야 한다. 
    이 물고기의 비유는 종말적인 면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 비유의 뜻을 살펴보면 인류의 심판을 이루는 종말이 오려면 먼저 고기가 그물에 가득 차야 합니다. 이런 일에 대하여 주님은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 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고 하셨습니다(마24:14). 

    (1) 이 물고기를 가리켜 각종 물고기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복음에는 차별이 없다는 뜻입니다. 어느 특별한 계층의 차별도 없으며 학벌이나 문벌의 차등도 없습니다. 오늘날 교회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평등한 곳이요 가증 민주적인 곳입니다. 오늘날 민주주의가 교회로부터 싹 텄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입니다. 

    (2) 교회는 물고기를 강권하여 채우는 곳입니다. 물고기들이 스스로 그물로 들어오는 경우는 없습니다. 물고기 떼들을 고기 있는 곳으로 몰아야 하고 그물을 물고기 있는 곳에 쳐서 물고기를 그물로 잡아야 합니다. 이런 일에 대하여 주님은 눅14:21절에서 이처럼 말씀하셨습니다.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길과 산울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강권하여 채워진 물고기들은 모두 구원을 얻은 사람들만을 가리킨 것은 아닙니다. 택함을 입은 사람이 있는 반면에 청함만을 입은 사람들도 있는 것입니다. 

    2. 의인 중에서 악인을 골라내는 심판 
    각종 물고기가 그물에 가득히 차면 반드시 고르는 작업이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주님은 "그물에 가득 차매 물가로 끌어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어버리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비유에 대하여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물고기 중에는 좋은 것이 있고 못된 것이 있는 것처럼 교회에 나온 의인 중에도 악인이 섞여 있는 것입니다. 

    (1) 좋은 고기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백성들을 말합니다. 또한 못된 고기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고 오히려 버림받을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주인이 원치 아니하는 들포도 열매를 맺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불법을 행한 자들로 낙인이 찍힌 사람들입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결론 : 마지막 심판 날에 하나님의 심판은 먼저 하나님의 교회로부터 시작이 됩니다. 그리고 그 심판은 좋은 것과 악한 것을 가르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우리는 이 가르는 심판에 좋은 것으로 천국 그릇에 담겨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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