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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약 히브리서 04:12-13/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 [수요]
  • 조회 수: 360, 2013.11.17 21:28:31
  •   오늘 본문 12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히브리서 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언급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안식에 대한 약속과 그 약속을 이루는 모든 일이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1. 무엇이 하나님의 말씀인가?

      우리는 무엇이 하나님의 말씀인가에 대하여 알아야 할 것입니다. 히1:1절에서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들에게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한 가지는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서 조상들에게 하신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구약이라고 부릅니다. 구약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에게 주신 말씀을 이스라엘 조상들에게 전하게 하신 말씀입니다.  다음에 다른 하나는 이 모든 날 마지막 날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다고 했는데 이 말씀이 오늘날 신약이라고 불려지는 성경입니다. 그 아들이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삼위 되시는 분 중에 한 분이시며 하나님의 본체를 이루고 계시는 절대적인 분이심으로 그의 말씀은 곧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리고 사도들이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한 서신서 등은 아들을 증거하시는 아들의 영으로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말씀은 그 아들의 말씀 가운데 포함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은 말씀으로 무엇을 하셨나?

      하나님은 그의 말씀으로 무엇을 하셨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입의 말씀이시기 때문에 모든 것이 그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권능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창조 사역을 그의 말씀으로 하셨다고 했습니다. 히11:3절 말씀에는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안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으로 창조하신 일이 창1:1절에 나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의 역사를 에스겔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에스겔이 하나님의 권능에 의해 깊은 골짜기로 옮기심을 받았을 때, 그의 눈앞에는 죽은 사람의 뼈만이 가득차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앙상한 뼈를 바라보는 에스겔에게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는가’고 물으셨습니다. 에스겔은 이 때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뼈들을 향하여 명령했습니다. 그랬더니 에스겔이 대언한 하나님의 말씀대로 뼈들이 움직이더니 살아 있는 여호와의 큰 군대를 이루었습니다. 하나님이 선포하시는 말씀은 그 말씀이 곧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그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일은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는 인류의 역사가 단 한치의 오차도 없이 온전히 하나님이 세우신 계획대로 이뤄진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한 번 말씀으로 약속하신 하나님의 안식도 이 같은 맥락에서 확실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금부터 몇 천년 전에 어느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셨다해도 그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질 때까지 이 땅에서 소멸됨이 없이 계속 살아 움직여 역사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다’고 했습니다. 운동력이 있다는 말은 살아서 역사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이 살았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의 말씀 속에는 그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심판의 기준이 됩니다. 성경에는 우리를 심판하시는 분명한 기준이 있습니다. 그 기준이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장차 인류를 심판하시는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 이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되어 낱낱이 심문을 받으며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12장에서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하실 이가 있으니 곧 나의 말이 마지막 날에 심판하리라’고 하셨습니다. 모든 인류는 한사람의 예외자도 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그 사람의 어떤 공력에 의하여 용서를 받거나 그 사람의 덕행이나 선행을 통하여 구원받는 경우는 절대로 없습니다. 사함 받는 일이나 구원받는 일이나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가령 하나님이 누구를 심판하시느냐는 문제에 대하여 알려면 이 문제에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은 어떻게 말씀해 주고 있느냐를 살펴보면 간단히 알 수 있습니다. 요3:18절 말씀을 보면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함으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고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가 분명한 해답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느냐 믿지 아니하느냐는 문제에만 관계되었다는 사실을 밝혀 주고 있는 것입니다. 

      3.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뜻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의 말씀

      다음에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뜻은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숨길 것이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마음의 생각과 뜻까지라도 감찰하시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모든 것이 드러난다고 하신 것입니다. 감찰하신다는 말은 ‘세심한 것까지라도 자세히 보아 살핀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감찰하시는 자 앞에서는 아무 것도 숨길 것이 없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인격적 존재로 나타낸 말입니다. 그리고 그 같은 일을 하시는 분은 바로 성령이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그 말씀 앞에 숨길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의 책망을 들을 때, ‘우리가 어찌 할꼬’하는 심정으로 마음을 찢는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죄를 지적 받았을 때 아무리 그 말씀을 무시하려고 해도 드러난 죄에 대한 처리는 불가피한 것입니다. 회개하고 그 죄를 버리던가. 아니면 말씀의 책망을 들으면서 그대로 죄 가운데 살아가던가 입니다. 후자일 경우, 물론 하나님의 후속조치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마음에 빛으로 들어옵니다. 이 빛 앞에 우리 마음속에 있는 것 중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는 우리의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까지 찔러 쪼개어 내어 어떤 죄라도 드러내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들에게 들어오면 이 말씀을 통해서 역사 하시는 성령에 의해 그런 권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 앞에는 마치 벌거벗은 자 같이 그 수치를 감출 곳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회개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드러난 우리의 죄를 하나님 앞에 자복하고 통회한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의 죄가 그리스도의 피로써 정결케 되며 죄 사함의 은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의 양심 앞에는 숨겨진 죄들이 너무나도 많은 것입니다. 양심이 모르는 죄는 사람들이 회개할 길이 없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가장 귀한 문제인 영생과 구원에 있어서 하나님의 사랑을 거역했던 일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은 것이 가장 무서운 인간의 죄인데도 양심은 그런 것들에 대하여 전혀 감각이 없는 것입니다. 이런 일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가능한 것입니다. 

      또 다른 한 가지는 교회에 나와서 말씀을 듣기는 해도 회개치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 그런 것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자신의 죄를 고의적으로 숨기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징계를 통해서 언제인가는 그 죄를 스스로 인정하여 회개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이 강퍅하거나 마음이 죄로 멍들어 있거나 그 마음에 성령의 역사가 없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의 죄를 드러내어 책망하며 회개케 하는 능력이 나올 수 없습니다. 

      결론 :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드리고 그 말씀을 믿을 때 그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기적이 나타나기 때문에 우리의 생활에는 이 말씀의 무기가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이 같은 성령의 검을 가지고 믿음으로 전진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믿고 말씀 위에 굳게 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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