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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약 고린도후서 12:07-10/ 내게 충분한 은혜 [주일낮]
  • 조회 수: 829, 2013.11.19 19:23:33
  •  사도바울에게는 고통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 어려운 고통을 제거해 달라고 하나님 앞에 나가 세 번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이 세 번이라는 말은 그저 어떻게 세 번했다는 뜻으로 해석되지는 않습니다. 모름지기 특별한 기간을 두고 금식을 했는지 철야를 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특별 기간을 이 문제를 놓고 세 차례 기도했는데 이에 대한 응답이 없었습니다. 이 문제의 해결은 없었습니다. 한 번 생각해보십시다. 바울은 하나님 앞에 전적으로 생을 위탁한 사람입니다. 온 생을, 온 운명을 하나님 앞에 깨끗하게 바쳐서 헌신하는 충실한 주의 종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복을 많이 주어야 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에게는 넘치도록 축복하셔야 되는 게 아닙니까? 그런데 이 상식이 통하지 않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할 때... 그가 받은 복이 뭡니까? 부귀는 없다 하더라도 건강은 주셔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그 건강마저 없었습니다. 가정은 없다 하더라도 명예는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 명예조차 없었습니다. 만사형통하는 일은 없다 하더라도 마음에 기쁨만은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것도 늘 그랬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고통이 있었습니다. 당연히 복을 받아야 할 것 같은데, 일반적 상식으로 말하는 그러한 복은 바울에게 없었습니다. 가정도 없고 건강도 없었습니다. 칭찬 대신에 많은 비난을 받아야 했습니다. 동족의 오해와 친구들의 오해와 많은 사람들의 비난 속에서, 그 오해 속에서 그리고 능욕 속에서 복음을 변증해야 했습니다.

    여기에 보태어 결정적인 고민이 또 있습니다. 그것은 육체의 가시, 사탄의 사자가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육체의 가시, 사탄의 사자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우선 사탄의 사자라고 하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이것은 모름지기 이 일이, 이 사건이 하나님의 사업을 방해하기 때문에 사탄의 사자라고 부르게 된 줄로 압니다. 하나님의 일에 손해가 가기 때문입니다. 여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는 이 일은 꼭 해결되어야 하고 이 아픔은 없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는 하나님 앞에 나가 기도했습니다. 이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미루어 생각해 본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안질이라고도 합니다. 그는 눈이 좋지 않아서 편지를 쓸 때마다 대필을 시켰습니다. 어떤 사람은 간질이라고 단정짓습니다. 왜냐하면, 간질을 옛날부터 이것은 사탄이 주는 병이다. 이것은 마귀가 주는 병이라고 이해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탄의 사자라고 부릅니다. 이것을 증명할 수 있는 하나의 요절이 있는데 갈라디아서 4:14에 보면 "너희 믿음을 시험할 만한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나를 업신여기지 않았다" 고 그는 감사해 하고 있습니다. 믿음을 시험할 만한 것이 무엇입니까? 눈이 나쁘다고 믿음이 시험될 것이 없습니다. 다리가 아프다고 해서 믿음에 손해 볼 것까지는 없습니다. 그러나 간질은 다릅니다. 이것을 한 번 이렇게 연결해 보십시다. 갈라디아 교회에서 설교하다 말고 발작을 해서 그만 간질로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고 합시다. 이것은 결정적으로 피해가 됩니다. 남의 병을 다 고치는 큰 역사를 이루는 하나님의 종이 저게 무슨 꼴입니까. 이 꼴을 보고 누가 예수를 믿겠습니까? 이것은 믿음에 크게 손해나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을 그리스도의 종으로 천사같이 영접해 준 데 대해서 그는 너무너무 고마워서 갈라디아 교회의 편지에 이 말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너희 믿음을 시험할 만한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나를 업신여기지 않은 것이 고맙다." 이렇게 미루어본다면 간질병이라고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모르겠습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왜 이런 일이 있어야 하느냐 말입니다. 이건 꼭 없어야만 될 일이기에 그는 이 뜻을 몰라서 하나님 앞에 세 번이나 간절히 구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병을 고쳐 주시지 아니하시고 그에게 응답을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말씀하십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My grace is sufficient for you) 매우 귀중한 말씀입니다. 내 은혜, 네게 준 내 은혜가 만족하다, 원문대로는 충분하다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 사실을 알았습니다. 또 믿었습니다. 납득이 안 가는 부분은 믿었습니다. 충분한 것으로 믿었습니다. 이제 기뻐하고 하나님의 큰 역사를 이루게 되었습니다. 이 충분한 은혜란 무엇입니까? 은혜를 더 많이 받을수록 가져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복을 많이 받을수록 그리고 은사를 많이 받을수록 우리가 가져야 할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은혜를 많이 받고 복을 많이 받으면 교만해집니다. 자기 자랑하기 쉽습니다. 진실하기 어렵습니다. 은혜는 반드시 사명을 낳아야 하고 아름다운 역사를 이루어야 하건만 은혜를 나 자신을 위한 것으로 돌려버리기 쉽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에게는 이 어려운 가시가 꼭 필요했습니다. 은혜 되게 하기 위하여, 받은 은혜가 사명으로 귀한 열매를 맺도록 하기 위해서 이같은 일은 있어야 하는 것이라고 바울은 받아들였습니다.

    고린도전서 9:27에 보면 "내가 나를 쳐서 복종케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내가 남에게 복음을 전한 다음에 나는 오히려 버림이 될까 두렵다, 실격자가 될까 두렵다고 말합니다. 그런고로 나는 내 몸을 쳐서 복종케 한다는 것입니다. 그 "쳐서 복종케 한다"는 원문의 뜻은 "종으로 다스린다"는 말입니다. 종처럼 가혹하게 자기를 다스린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기를 알고 있습니다. 내 약점, 세상으로 기울어지는 마음, 게으른 마음, 허영심, 교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내가 나를 다스림에 있어서, 내 육체를 다스림에 있어서, 이 정욕적인 인간을 다스림에 있어서 그는 가혹하게 다스렸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알고 있습니다. 겸손하기가 얼마나 어렵다는 것을 말입니다. 사람은 간사합니다. 변변치 않은 것을 가지고 교만합니다. 아무 것도 아닌 사람이 교만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사람은 겸손할 수밖에 없어야 겸손합니다. 그저 교만할 만한 그루터기가 조금이라도 있으면 아주 달라집니다. 이것이 사람입니다. 그래서 내가 겸손하기 위해서는 이 가시가 필요한 것이요, 이것도 없이 겸손할 수 없는 자신이라고 하는 것을 그는 인정했습니다. 이것이 그의 위대한 신앙입니다.

    또한 그는 약할 때에 강한 비결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되어서 약해지고, 또 눈물 흘리고, 또 한 번 자복하고, 또 한 번 낮아질 때에 비로소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와 함께 하고,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고, 그리스도의 의가 나를 지배하고, 그리스도의 그 엄청난 사랑 안에 자기가 살아가고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감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미래를 모릅니다. 장차 무엇이 필요한지를 모릅니다. 우리의 운명도 어떠할지 모릅니다. 우리가 장차 나의 나 됨을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내가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나는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아십니다. 그가 나를 잘 아십니다. 시편 139편에 보면 그가 나를 아는 것이 너무 신묘막측 합니다. 내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그는 나를 잘 아십니다. 그러기에 그가 나에게 주는 것은 다 필요한 것이요, 충분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좀 더 높은 신앙을 가져 봅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기를 그것이 네게 필요하다 하면 필요한 줄 알지 무슨 말이 많습니까? 과거에 몰랐듯이 미래도 모르면서 무슨 말이 그렇게 많습니까? 이제는 주신 말씀을 따라서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내게 필요한 은혜, 내게 꼭 있어야 할 은혜, 만족하지는 않지만 충분한 은혜, 구원받기에 충분하고, 진실하기에 충분하고, 겸손하기에 충분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에 충분한 은혜를 지금 내게 주셨고, 또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납득하면 이대로 감사하고, 모르면 믿고 감사하십시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이 충분한 은혜에 감사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할 것입니다.

    기도 : 납득할 수 없는 고통, 나만이 당하는 억울함, 모든 부조리와 불안에 시달리는 저희들을 오늘도 불러 주심을 감사합니다. 주여, 이 모순을 극복할 수 있는 믿음을 주시옵소서. 주의 주신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지혜와 겸손을 주시옵소서. 내게 주신 은혜가 내게 족한 것임을 알고 믿고 감사하고 그리고 헌신할 수 있는 저희들의 생활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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