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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약 여호수아 07:06-13/ 내일을 위하여 거룩하게 하라 [주일낮]
  • 조회 수: 235, 2013.11.19 19:24:33
  •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예프스키는 28세 때에 국가내란음모 혐의로 구속되어 사형선고를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영하 50도나 되는 추운 겨울날, 그는 사형받기 위하여 기둥에 묶여 있었습니다. 사형집행 시각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시계를 쳐다보니 사형집행까지는 5분이 남았습니다. 그는 이 천금같은 5분을 어떻게 보낼까 생각했습니다. 결국 그는 5분 가운데 2분은 자신을 찾아준 귀중한 친구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데에 쓰고, 2분은 자신이 살아온 28년 동안의 생을 한번 되돌아보는 시간으로 쓰고, 마지막 남은 1분은 이 아름다운 세상, 이 대자연을 휘둘러보는 데에 쓰기로 결심했습니다. 계획한대로 2분 동안 친구들과 간단하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3분이 남았습니다. 이제 그는 지나온 생을 회고합니다. 돌이켜보니 지난 28년의 생이 후회스럽고 뉘우쳐지는 일들로 가득하기만 합니다. 그 순간 자신을 사형시키기 위해 총에 탄환을 장전하는 소리가 철커덕하고 들려옵니다. 그러자 불현듯 죽음에 대한 공포가 밀려오면서 온몸이 가눌 수 없게 떨립니다. 바로 그 순간, 한 병사가 흰 수건을 흔들며 형장으로 달려 들어왔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에게 총살형 대신 시베리아 유형을 보내라는 황제의 칙령이 내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시베리아로 가 유형생활을 하면서 비로소 인생의 문제를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마지막으로 주어졌던 5분간을 생각함으로 시간을 금 쪽 같이 아끼는 삶을 살게 되었고, 그 때의 경험으로 훌륭한 작품도 많이 남길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 이후 후계자 여호수아의 인도로 몽매에도 잊지 못하는 그런 가나안 땅을 건너서 큰 성 여리고를 쉽게 점령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감사했습니다, 만족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감격으로 충만했습니다. 이제 기세를 몰아서 다음에 있는 조그마한 성, 아이성을 공격하게 되는데 너무 작은 성이라서 이 많은 군사가 갈 필요가 없다 해서 이삼천 명만 보냈더니 전쟁에 패전을 했습니다. 그리고 서른여섯 명이 죽고 3000명의 군대가 그대로 벌벌 떨면서 후퇴하고 말았습니다. 전쟁이란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는 겁니다. 어찌 늘 승전만 있겠습니까마는 이 전쟁은 이야기가 다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얻게 되는 거룩한 전쟁이란 말입니다. 이 전쟁에는 패전이란 있을 수가 없는 것이에요. 이스라엘이 군사력이 강해서 훈련된 군사가 많아서 승전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백성이라는 그 사실 때문에 가나안 칠 족속은 벌벌 떨면서 자기들의 땅을 내 놓을 수밖에 없었어요. 바로 이러한 전쟁인데 패전이 있다는 이야기는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일까요? 

      적이 강해서서 아니고, 정세가 잘못된 것도 아니고, 전략이 잘못된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원인은 너희 속에 있다. 내적인 문제다. 성결의 문제요, 도덕성이요, 진실의 문제다. 신앙적 문제라고 하나님은 지적하고 계십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전쟁은 하나님이 이루시는 거룩한 전쟁입니다. 성전(聖戰)입니다. 그런데 이 전쟁을 아간 한 사람이 강도질하는 전쟁으로 의미를 바꾸어 놓았단 말이에요. 탈취물을 위한 전쟁으로, 도적질하는 전쟁으로 만들었거든요. 하나님이 가나안 땅을 심판하시고 심판의 기구로 이스라엘 백성을 사용하시는 것뿐이에요. 오직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하나님의 거룩한 심판을 집행하고 있는 것이고 하나님이 주시는 약속의 땅을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이 소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거룩한 역사에 웬 도둑질입니까? 웬 강도질입니까? 이러한 불순한 일이 존재할 수가 없다 하는 것이지요.

       일이 이렇게 된 것입니다.  이런 아간의 죄로 인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은 그야말로 위기 중에 위기입니다. 너무 답답하고 괴로워서 성경에 보는 대로 여호수아가 옷을 찢고 장로들과 함께 하루종일 하나님의 법궤 앞에 엎드려서 웁니다. 통곡을 합니다. '어찌하여 이런 일이 있는 겁니까?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습니까?' 하고 목 놓아 울고 있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대답을 하십니다. "어찌하여 이렇게 엎드렸느냐?" 엎드렸다고 해결이 되냐? 운다고 해결이 되냐? 통곡한다고 문제가 해결이 될 것이냐구요. 어찌하여 여기서 엎드려 울고 있느냐, 말씀하시고 또 하나는 '패전의 원인은 너의 자신들에게 있느니라. 망한 이유가 바로 너희들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이렇게 원인 규명을 촉구하십니다. 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아이성 전투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3가지 교훈을 생각하게 합니다. 

      첫째, 하나님은 실패와 좌절을 통해 우리들을 탄식하게 하십니다. 이 탄식이 바로 ‘경건한 근심’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후 7:10절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 하면서 11절에서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증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근심할 만큼 근심해야 합니다. 울 만큼 울고, 탄식할 만큼 탄식하고, 고민할 만큼 고민해야 합니다. 그래야 새롭게 출발할 수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실패와 좌절을 통해 실패의 원인을 찾게 하십니다. 실패의 원인을 찾고 고쳐야 다시 실패하지 않습니다. 임시방편으로 처리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더 큰 실패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런데 실패하면 인간은 문제의 원인을 살필 생각은 하지 않고 원망부터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여호수아도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하나님께 대들었습니다. 사실 거의 모든 문제의 원인은 자신에게 있습니다. 그러므로 실패했을 때 겸손하게 서서 반성해야 합니다. 실패의 원인을 찾아 고쳐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은 우리가 실패와 좌절을 통해 거룩하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실패와 좌절을 통해 성결케 되기를 원하십니다. 버려야 될 줄 알면서도 버리지 못하는 것을 실패와 좌절, 고난과 역경을 통해 끊어버리게 하십니다. 교만한 사람, 욕심 많은 사람, 명예욕이 강한 사람, 이기적인 사람, 이러한 사람들이 실패와 좌절을 통해 온유해지고 겸손해지도록 만드십니다. 이것이 바로 자녀에게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사실 우리가 실패와 좌절을 경험하기 전에 이미 하나님은 여러 번 사인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미련해서 그 하나님의 사인을 알아채지 못했을 뿐입니다. 아니 알아채고도 고집을 부리고 내 방법으로 해결하고 발버둥쳤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실패하고서야 비로소 정신을 차리는 것뿐입니다. 

      실패에 대해서 말씀하신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이제 내일을 위하여 거룩하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너는 일어나서 백성을 거룩하게 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일을 위하여 스스로 거룩하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표준 새 번역 성경은 “일어나서 백성을 성결하게 하여라. 너는 그들에게 말하여라. 너희는 스스로 성결하게 하여, 내일을 맞이할 준비를 하여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우리는 내일을 맞이하기 위해 거룩하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내일은 우리에게 승리를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는 어제의 패배 때문에 내일을 잃어버리고 있었습니다. 내일은 없다고 절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일을 위하여 거룩하게 하고 내일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내일은 내 손에 있다, 내가 내일을 줄 터이니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만 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내일을 맞는 하나님의 백성이 거룩하기를 원하십니다. 거룩해야 하나님께서 쓰시고, 거룩해야 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자기 할 일을 다 하고 하늘의 명을 기다린다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도는 내일을 위하여 자신을 거룩하게 하여야 합니다. 자신을 성결케 하고 하나님이 주는 내일을 기다려야 합니다. 실패의 원인을 제거하지 않은 내일은 실패한 오늘과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지난날의 실패한 원인을 깨끗이 청산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또 다른 내일을 기다려야 합니다. 

      위기 관리능력을 상실한 여호수아는 지금 절망합니다. 소망 없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구제불능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내일을 줄 것이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거룩하게 하고 내일을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또 지겨운 하루의 반복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또 빤한 하루, 의미 없는 하루가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오늘은 실패했지만 오늘의 실패를 거울삼아 정신 차리고, 회개하고.... 뉘우치고 하나님과 함께 시작하면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놀라운 축복이 있게 될 것입니다.

    **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잘되기만 바랬고 잘 살기만 바랬습니다. 서둘러 번영만을 기다렸습니다. 주여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우리에게는 투명성도 없고 진실도 없고 정직함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잘되기만 바래왔습니다. 주여 불쌍히 여겨주시고 스스로 성결케 하고 주님이 주시고자 기다리시는 그 내일을 우리가 받을 수 있고 소유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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