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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약 사도행전 05:33-42/ 부활의 능력 [주일낮]
  • 조회 수: 556, 2013.11.19 19:40:39
  •  한 사람의 인간됨은 그 사람의 행복의 가치에 따라 평가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일단의 사회과학자들이 연구해서 발표한 논문 가운데 사람이 공통적으로 어떤 것을 기뻐하며 사느냐에 대하여 통계적으로 써 놓은 것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젖먹이 어린아이일 때에는 어머니의 젖가슴만 기뻐한다고 합니다. 조금 더 자라면 장난감을 좋아하고, 또 좀 더 자라면 같이 노는 또래를 좋아하여 어머니가 불러도 오지 않고 제 또래와 어울려 노는 데만 마음이 팔린다고 합니다. 거기서 더 자라나면 이성과의 교제에 열을 올려 좋아하는 이성과의 교제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30대가 되면 사업을 좋아 하여 무엇이건 일을 해야 행복을 느낀다고 합니다. 40대가 되면 성취욕이 있어서 무엇을 이루어야 행복을 느끼고, 50대는 공통적으로 명예를 탐하여 남이 보기에는 변변치도 않은 명예를 위하여 엄청난 댓가를 지불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60이 넘으면 주로 먹는 것을 좋아 한답니다 뭘 가져 봐도 그렇고, 이루어 봐도 그렇고, 뭘 걸쳐 봐도 시원치 않으니 오직 먹는 것이 제일 낙이 된다고 합니다.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니나 보편적으로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떤 것을 기뻐하고 살아가십니까? 무엇에 행복을 느끼고 살아가십니까?

       얼핏 생각하면 오늘의 본문에 나타난 사도들은 참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세상에 욕먹는 것, 매 맞는 것을 기뻐할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런데 오늘의 본문에 나타난 사도들은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였다고 합니다. 그들은 특별한 사람입니까? 우리하고는 생리학적으로 좀 차원이 다른 사람들입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지식이 많은 사람이 아니고, 명예가 높은 사람도 아니고, 수양이 잘 된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도덕적으로 온전한 사람도 아닙니다. 우리와 성정이 다를 바 없는 보통 사람들입니다. 

    이 사도들은 본래 비겁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갈릴리 촌마을의 한낱 어부에 지나지 않았고, 성격도 각각이요, 인간성도 각각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교훈을 잘 깨달아 알아들었던 특별한 사람들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배반하고, 고난이 다가올 때 도망을 가기도 하고, 수제자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맹세하며 저주할 만큼 참으로 비겁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오늘 본문에 설명하는 것처럼 그렇게 달라질 수가 있습니까? 

       첫째, 부활신앙이 제자들에게 삶의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부활신앙은 과거는 죽고 현재가 새롭게 살아나는 역사입니다. 여러분.... 자연은 썩고 변화되는 데서 축복이 있습니다. 각 쓰레기들이 썩는데 걸리는 시간을 알아보았습니다. 우유팩 5년, 비닐봉지 50년, 알미늄 캔 100년, 합성비닐로 된 1회용 귀저기 200년...  참 쓰레기가 썩는데 참으로 오래 걸린다는 생각이 들면서 문득 창 3:19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지니라” 라는 말씀이 생각납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것은 썩습니다. 인간은 생기가 빠져 나가면 며칠이 못되어 썩고 맙니다. 그러나 썩는 것이야 말로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인간이 썩지 않고, 흙으로 돌아가지 않고 그냥 남아있다면 땅이 썩고 대기가 오염되었어도 몇 십번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만든 것은 잘 썩지 않습니다. 이게 앞으로 지구 환경의 큰 문젯거리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것은 빨리 썩고 썩어진 곳에서 새로운 생명체가 탄생하는데 사람이 만든 것은 썩지도 않고.... 도리어 생명체를 죽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삶의 부활도 일어나야 합니다. 과거는 썩어 없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거기에서 새로운 영적 생명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이 만든 썩지 않는 온갖 폐기물들로 인하여 앞으로 이 지구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지금으로서는 답이 없습니다. 그러나 더 문제는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도 달라지지 않는 내 자신이 더 문제입니다. 과거 풍습, 과거 습관.... 버리지를 못하니 거기서 영적 생명이 살아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연에게도 썩는 것이 축복인 것처럼 주님의 부활 안에서 죄 된 삶이 죽고 영적으로 새롭게 사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부활의 신앙이 제자들에게 능력으로 나타났습니다. 사람들에게는 죽음이 한계입니다. 생각하는 것도 거기까지요, 가능성도 거기까지요, 지혜도 거기까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이 목격하게 된 것은 부활케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이 부활의 능력을 목격하고 나니 죽는 것도 유익하고, 살아있는 것도 유익하고, 죽은 다음에도 하나님의 역사는 얼마든지 크게 역사되고 있다는 것을... 죽음까지도 극복하는, 부활케 하시는 하나님의 신비로운 능력을 구체적으로 보게 된 것입니다.
                     
       언제나 기쁨으로 얼굴이 빛나는 꽃장수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늘 그것을 궁금해 하던 한 단골손님이 어느 날 할머니에게 물었습니다. 손님: 할머니는 걱정 근심이 전혀 없으신가봐요. 할머니: 천만에요. 사람에게 걱정 근심이 없을 수가 있나요.내게도 역경과 고통이 있답니다. 손님: 그런데 어떻게 그리도 매일 기쁘게 사실 수가 있어요?  할머니: ‘3일의 비밀’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기 때문이랍니다. 손님: ‘3일의 비밀’이라니요?  할머니: ‘3일의 비밀’이란 걱정거리가 생길 때마다 하나님께 기회를 드리고 3일을 기다리는 것인데, 이는 무덤에서 3일 만에 부활하신 주님을 믿는 것입니다. 때론 숫자대로 3일이 아닐 수도 있지만 주님의 부활 원리는 늘 동일하답니다. 그래서 나에게는 어떤 암흑 같은 고난일지라도 광명의 열매로 끝난답니다. 

       제자들은 부활을 목격하고, 주님의 부활을 믿음으로 받아드리니 그들에게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그 겁쟁이들이 전도하니 수천 명씩 주님께로 돌아오고, 질병이 낫고, 귀신이 떠나가고.... 참 굉장했습니다. 그러니 맞는 것이 대수롭지가 않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주님의 능력에 한 번 접하면 삶이 달라질 줄 믿습니다. 제가 신학대학원 1학년 때를 잊지 못합니다. 그 때에는 참 가난했습니다. 하루에 호주머니에 가지고 있는 것이 버스 회수권 2 장에 점심 때 칼국수 사먹을 돈 5백원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그 때가 가장 당당했습니다. 배짱도 있었습니다. 왜 그랬느냐 하면.... 하나님께서 제가 선지학교 입문한다고 하니까 막 성령의 기름부음을 주셨습니다. 기도의 역사도 있었고... 지금 저의 목회도 그 시절에 하나님께서 주셨던 은혜의 힘으로 하제가 생각해도 그 때에는 굉장했습니다. 여러분.... 근본적인 변화는 내 의지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해야 합니다. 금식을 하든... 소나무 뿌리를 뽑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해야 합니다. 그래야 제자들처럼 변합니다.

       셋째, 부활신앙이 제자들의 삶의 가치관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능력은 초월적이며 하나님의 엄청난 구원역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이루어졌습니다. 수천 년에 걸쳐 예언되어 오던 십자가의 역사가 내 대에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구원의 역사에 제자들이 가담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내가 쓰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죄인인데, 허물이 많은데... 그런데도 내가 주님의 일에 쓰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난날에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며 핍박했던 과오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다만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주님의 손에 들리어 소중하게 쓰이고, 심지어는 받는 고난조차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쓰인다고 생각하니 이처럼 합당하게 여김 받는 것에 하도 감격해서 기뻐하며,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에는 신령한 기쁨이 있고 속된 기쁨이 있습니다. 정신적인 기쁨이 있고 육체적인 기쁨이 있습니다. 먹기를 즐기는 사람이 있고, 듣고 보기를 즐기는 삶이 있습니다. 놀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책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받아서 기쁜 사람이 있고 주어서 기쁜 사람이 있습니다. 또 돈을 버는 재미로 사는 사람이 있고 쓰는 재미로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여러분... 어떤 기쁨으로 살아가십니까? 무슨 낙으로 살아가십니까? 세상적인 것은 썩습니다. 없어집니다.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기쁨만이 영원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영적인 기쁨이 충만해야 합니다. 이것은 믿음에 근거한 기쁨이요, 참 기쁨을 아는 자의 기쁨인 동시에 절대적인 행복을 가져다 줌을 믿습니다. 이 기쁨으로 인해서 생산적인 역사가 나타나고 창조적인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우리 모두가 이러한 기쁨으로 살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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