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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약 마태복음 05:05/ 온유한 자의 복 [수요]
  • 조회 수: 517, 2013.11.19 19:53:40
  •  창세기를 보면 이삭의 별명이 있다. ‘우물 파기 명수’란 별명이다. 그는 파는 곳마다 고대의 최대 재산인 우물이 펑펑 터졌고, 또한 창세기 26장을 보면 블레셋 사람들의 땅에서 농사해서 백배의 소출을 얻고 마침내 거부가 된다(12-13절). 그가 얻은 축복의 최대 원천은 무엇이었는가? 바로 ‘온유함’이었다. 이삭이 블레셋 땅에서 거부가 되자 블레셋 사람들은 이삭의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다(15절). 게다가 블레셋 왕 아비멜렉은 이삭에게 “우리를 떠나가라!”고 했다(16절). 그것은 “당신 땅을 내놓으라!”는 말이다. 그러면 대개 사람들은 사생결단을 하지만 이삭은 조용히 그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로 갔다. 힘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당시 아베멜렉은 이삭에게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하니까 우리를 떠나라!”고 했다. 그 말은 이삭이 무력을 사용하면 그랄 땅을 점령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삭은 그냥 떠났다. 그것이 이삭의 위대한 점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삭을 좇아가며 축복하셨다.

    산상팔복은 대개 하늘의 영적인 축복인데 그 중에서 유일하게 땅의 축복을 내포한 복이 바로 산상팔복의 셋째 복인 온유함의 복이다. 본문 말씀을 보라.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그 말은 온유함이 물질세계 정복에 가장 필수적인 요소라는 뜻이다. 성공하려면 자본과 지식도 필요하고 인맥과 학력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온유함이다. 그러면 온유함이 무엇인가? 많은 사람이 온유함을 오해한다. 그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 먼저 온유함이 아닌 것부터 알 필요가 있다. 

    첫째, 온유함은 마냥 부드러운 것이 아니다. 온유함이란 주관도 없고 연체동물처럼 흐느적거리며 사는 것이 아다. 온유함이란 외유내강을 말한다. 속으로는 뚜렷한 주관을 가지고 있지만 겉으로는 부드럽게 남을 감싸 안는 것이 온유함이다. 

    둘째, 온유함이란 마냥 느긋한 것이 아니다. 온유한 사람은 겉으로는 부드럽지만 어떤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마음을 잘 다스리기에 느긋함을 잃지 않는다. 진짜 온유한 사람은 여유가 있으면서도 때로는 박력과 추진력도 있고 책임감도 탁월한 사람이다. 

    셋째, 온유함이란 마냥 참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지만 끝까지 참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거룩한 분노도 필요하다. 민수기 12장을 보면 모세가 이방인 구스 여인을 취할 때 모세의 누이 미리암이 그 일을 비방하다가 문둥병에 걸렸다. 그때 모세는 전혀 분노하지 않고 오히려 그녀의 치유를 위해 기도했다. 그 모습에 대해 성경은 “모세의 온유함이 지상 최고였다!”고 표현한다(민 12:3). 그처럼 온유한 모세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춤추고 절할 때는 십계명의 두 돌 판을 내던지며 분노했다. 

    < 온유함이란 무엇인가? > 

    첫째, 극단에 치우치지 않는 것이다. 성경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고 했다. 그것이 바로 온유함이다. 우리가 큰 믿음을 구하되 극단적으로 가는 것을 피해야 한다. 절제가 없으면 대개 실패한다. 너무 모자라도 안 되지만 너무 지나쳐도 안 된다.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하다. ‘과(過)’ 자가 들어간 말에 좋은 말은 거의 없다. 고린도전서 9장 25절에서도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한다.”고 했다. 하나님은 절제할 줄 아는 온유한 사람을 축복한다. 

    둘째, 생각과 언행이 겸손한 것이다. 온유와 겸손은 짝꿍이다(엡 4:2). 주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했다. 온유한 사람은 겸손하고 겸손한 사람은 온유하다. ‘겸손’이란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님을 인정하는 것이다. 

    셋째, 말씀에 길들여진 것이다. 온유란 헬라어로 ‘프라우스’라고 한다. ‘프라우스’란 말은 짐승이 잘 길들여진 상태를 뜻한다. 야생마가 길들여져서 주인의 말을 순종할 때 헬라 사람들은 ‘프라우스’란 단어를 썼다. 그처럼 온유란 하나님의 말씀에 잘 길들여진 것이다. 제가 아는 의사 부인이 있는데 박희숙 집사님은 아니고 좀 나이가 많은 분입니다. 이 분은 전도, 선교도 열심히 하고, 구제도 열심입니다. 불쌍한 사람 보면 그냥 못 있고, 어떤 집에 가서 더우면 자기 집에 있는 에어콘까지 떼서 달아주는 사람입니다. 얼마나 훌륭한 분입니까? 그런데 이 분이 제 마음대로가 문제입니다. 자기 직성에 안 맞으면 화를 내고, 난리입니다. 말씀에 길들여져야 하는데 자기 마음에 안 맞으면 누구도 그를 통제할 수가 없습니다. 온유함의 덕목이 없습니다. 모든 것에 잘 해도 마지막에 이 온유함이 없으면 사람들이 다 떠납니다. 온유하면 다음과 같은 복을 받습니다.

    1. 번성의 축복
    오늘날 사람들은 “힘이 있어야 번성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온유해야 번성한다. 동물세계를 보면 힘 있는 동물들이 자연세계를 지배할 것 같지만 힘 있는 호랑이나 사자나 이리 같은 동물들은 점차 없어진다. 그래서 국가나 동물보호단체가 특별히 보호해도 번식이 잘 안되고 숫자가 점점 줄어든다. 반면에 보호하지 않고 되는대로 놔두는 약한 동물들은 오히려 번식이 잘된다. 순하고 온유하기 때문이다. 사람도 똑같다. 성격이 강하면 다칠까봐 곁에 가질 않아서 영적인 번식력이 없지만 성격이 온유하면 사람들이 몰려들어서 영적인 번식력이 있다. 그래서 온유하면 번성의 축복이 따른다. 가끔 참기 힘든 일이 생겨도 “온유하면 번성한다!”는 축복을 생각하며 참으라. 인내의 때가 끝나면 축복의 때가 시작된다. 그때는 믿음 때문에 손해 봤던 것들, 교회를 사랑하기에 참았던 것들, 가슴에 큰 상처를 받고도 쏟아내지 않고 주님 앞에 울며 승리했던 것들에 대해서 손해 봤던 것보다 훨씬 더 큰 보상이 주어진다. 

    본문에서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말은 “땅을 유산으로 얻는다.”는 말이다. 땅을 얻으려면 총칼로 땅을 빼앗을 필요가 없고 부동산 투기를 할 필요도 없다. 온유하게 살면 손해 보고 다 빼앗기는 것 같지만 오히려 땅을 얻고 영향력도 커진다. 특히 본문에서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말은 물질적인 축복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그러므로 물질적인 축복을 원하면 반드시 온유해야 한다. 요즘 각 기업마다 왜 친절 교육에 열심을 내는가? 그래야 돈을 벌기 때문이다. 그처럼 가식적인 친절도 돈을 벌게 하는데 인격 자체가 말씀에 붙잡혀 온유해지면 얼마나 큰 축복을 받겠는가? 그러므로 물질적인 축복을 받고 선교의 큰손이 되기를 원하면 무엇보다 온유한 성품을 훈련하라. 

    2. 마음의 평안
    시편 37편 11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다.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 하나님은 온유한 자에게는 물질적인 축복과 함께 넘치는 평안도 준다. 힘은 외적인 평화(peace)는 주지만 내적인 샬롬(shalom)은 주지 못한다. 그러나 말씀에 길들여진 온유한 사람에게는 내적인 샬롬이 주어진다. 원래 피스(peace)란 말은 팍스(pax)란 말에서 유래했다. 예수님 당시 시대를 흔히 ‘로마의 힘에 의해 이루어진 평화 시대’란 뜻으로 ‘팍스 로마나 시대’라고 한다. 그때 힘에 의한 일시적인 평화는 있었지만 역사가들은 오히려 그때가 가장 짙은 암흑기였다고 한다. 힘에 의한 평화는 진짜 평화가 아니다. 

    돈과 권력은 외적인 피스(peace)는 줄 수 있어도 내적인 샬롬(shalom)은 주지 못한다. 샬롬은 십자가의 헌신으로 주어진다. 외적인 피스(peace)는 환경과 기분에 따라 주어지지만 내적인 샬롬(shalom)은 말씀 안에 길들여져 있을 때 주어진다. 미국에서 제일 살기 좋은 환경을 가졌다는 시애틀에는 우울증 환자도 제일 많다고 한다. 그처럼 세상에 완벽하게 좋은 곳은 한 군데도 없다. 오직 말씀 안에 있으면서 온유한 마음을 가질 때 깊은 내적인 샬롬을 얻는다. 

    3. 승리
    결국 온유한 자가 이긴다. 온유해야 승리하고, 큰일을 하고, 축복도 받고, 하나님과 사람의 사랑도 받는다. 어떤 분야든지 원숙한 정상급 단계에 이르면 온유해진다. 골프도 초보자는 힘을 주지만 고수는 힘을 빼고 부드럽게 쳐서 멀리 날린다. 그처럼 온유한 사람에게 승리가 온다. 사회의 각 분야에서 높게 된 사람들을 보면 대개 온유한 사람들이다. 간혹 강성인사가 높은 자리를 차지해서 강하게 발언하면 오래 그 자리에 못 있고 자신이 한 말이 올무가 되어 결국 그 자리에서 떠나게 된다. 순한 사람은 나중에 정권이 바뀌어도 괜찮은데 강한 사람은 거의 대부분 크게 다친다. 

    매년 봄에 산불이 많이 난다. 날씨가 건조하니까 조금만 마찰이 있어도 불이 확 붙어서 산을 다 태운다. 그러나 비가 와서 촉촉해지면 산불이 나지 않는다. 왜 예배를 드리는가? 마음이 은혜로 촉촉하게 젖기 위해 드리는 것이다. 그처럼 말씀으로 은혜를 받고 마음이 촉촉하게 은혜로 젖으면 강퍅한 마음이 사라지고 항의하고 반항하고 저항하고 비판하는 마음이 약해진다. 그것이 바로 은혜 받은 증거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주님의 보혈에 진심으로 감사하면 마음이 온유해지고 삶도 화합하는 삶이 된다. 사람은 천사가 아니다. 다 부족한 존재이다. 그러므로 서로 이해해주고 용서해주는 온유한 성품으로 복된 날을 예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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