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페이지
  • 신약 누가복음 20:09-19/ 좋은 포도원의 절망하기 [주일낮]
  • 조회 수: 610, 2013.11.19 20:02:47
  • 「인간의 굴레」라는 소설을 썼던 서머셋 모옴이라는 작가를 아실 것입니다. 그 사람의 자서전에 보면, 그는 어릴 때부터 한쪽 다리를 쓰지 못하는 장애인으로 태어나서 젊은 시절을 보냅니다. 어머니도 일찍 여의게 됩니다. 어머니는 세상을 뜨시면서 그에게 ‘너는 앞으로 세상을 살 때, 어떤 힘든 일과 어려운 일을 당하더라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살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머니의 부탁으로 한동안 신앙생활을 합니다. 교회도 다니고, 습관적으로 기도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대단히 형식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는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 정말 주님이 나의 기도를 들으신다면, 내 다리도 고쳐주지 않겠는가?’ 그래서 하룻밤 그는 정말 진지하게 기도했습니다. 정말 그는 모처럼 진지하게 기도했습니다. 자신의 다리를 고쳐달라고 기도를 하고 그는 기대감에 부풀어 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아침에 눈을 뜨면서 기대했습니다. 정말 내 다리가 나았을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의 다리는 그 전과 똑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사건 이후로 예수님을 믿지 않게 되었습니다. ‘내 다리 하나도 치유하지 못하는 신이 어떻게 신일 수 있겠느냐?’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몰랐던 것은 주님은 다리도 고치지 못하는 능력 없는 분이 아니라, 주님은 우리의 한 다리보다도 우리의 영혼을 더 사랑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다리 하나를 고치는 것보다, 우리의 잘못된 영혼을 고치는 것에 더 큰 관심을 두고 계시다는 사실을 그는 알지 못한 것입니다. 그는 다리만 멀쩡하면 모든 인생을 순조롭게 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의 다리보다 그의 영혼이 먼저 구원받아야 한 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멀쩡한 다리 가지고서 저주 받은 영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오늘 비유는 이렇습니다. 포도원을 소작 주었습니다. 처음에는 분명히 소작료를 주겠다고 계약을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소작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이 땅이 너무 좋은 땅이라는 데에 있었습니다. 너무 괜찮은 포도원이었습니다. 많은 소출을 이루었습니다. 그래서 소작료를 내야 할 때가 다가왔을 때, 주인이 심부름꾼을 보내었으나 소작인들은 그 심부름꾼에게 소작료를 주지 않고 오히려 그를 내쫓았습니다. 그들은 포도원을 빌려 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소유하고 싶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24절에 보니까 “그래서 유산이 우리 차지가 되게 하자”라고 쓰여 있습니다. 우리 것이 되게 하자는 것이지요. 이름 없는 한 포도원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많은 포도들이 주렁주렁 열렸습니다. 풍성한 수확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이 비유의 결론은 무엇입니까? 포도원에 수확이 많이 되었으면 기쁨과 감사와 나눔이 있어야 합니다. 웃음소리와 노래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포도원에는 욕심과 거짓과 폭력과 살인이 난무했습니다. 포도원에 포도는 많이 열렸는데 포도원의 사람들은 상처만 입었습니다. 열심히 일해서 많은 소출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소출을 갖기는커녕 죽고 말았습니다. 이전 것과 다르다고, 더 많이 가졌다고 더 좋은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그것을 내가 얼마나 잘 관리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과학자들과 철학자들과 모든 문학가들은 보다 나은 세계, 보다 발전된 세계를 지향하면서 그런 글들을 쓰고, 그런 제도들을 만들고, 많은 프로그램들을 만듭니다. 기계화, 과학화, 자동화……. 더 발달된 문명의 이기를 우리에게 가져다주지만, 그것을 가진 우리들은 더 나아지기는커녕 점점 더 몰락해 갑니다. 여러분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왜 좋은 법률이 많이 생기고 모든 법률가들이 법을 연구하는데도 불구하고 범죄는 더 많아지는 거냐는 말입니다. 생각이 더 발달하고 인간의 인간성이 더 발달하고 있다는데 왜 더 흉흉한 일들은 많아지는 것입니까? 왜 우리는 많은 변화를 겪으면서도 몰락하고 있습니까? 왜 우리는 많은 것들을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몰락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포도원에는 희망이 없습니까? 

    이 포도원의 비유를 한 번 보십시오. 이 포도원은 도덕적으로라도, 윤리적으로라도 소작료를 주어야 하는 입장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소작료를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네가 관리인이니까 달라는 것입니다. 내가 주인이니까 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우리가 스스로를 다스리고 우리가 스스로를 순종시켜야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것이 도덕적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탁한 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일이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만든 도덕은 인간이 얼마든지 폐기할 수 있습니다. 오늘, 주인은 이 소작인에게 도덕 때문에 소작료를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관리인이기 때문에 소작료를 내라는 것입니다. 오늘 몰락한 포도원, 충분한 소출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충분한 열매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열심히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몰락해 버린 포도원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좋은 제도가 없어서, 좋은 법이 없어서, 좋은 도구가 없어서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이 포도원에는 얼마나 좋은 울타리도 쳐지고, 좋은 묘목이 심어졌습니까. 9절에 보니까 어떤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서,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오랫동안 멀리 떠나 있었다. 다 만들어 준 것입니다. 그리고 이 관리인은 그냥 가서 농사만 지었어요. 포도원은 농사를 짓기에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미 주인이 모든 시설을 다 만들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부족한 것이 있다면 그 포도원을 관리하던 소작인의 인격이 부족했습니다. 몰락한 포도원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사람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제도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반대로 모든 것이 부족해도 사람이 바로 서면 희망이 있다는 말입니다. 사람이 희망입니다. 오늘 우리의 가정은, 우리의 교회는, 우리의 학교는, 우리의 지역은 무엇이 문제일까요? 다른 데에 있지 않습니다. 답은 하나입니다. 16절에 보니까, “그는 와서 그 농부들을 죽이고 포도원을 다른 농부들에게 줄 것이다. 사람들이 이 말씀을 듣고서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열심히 공부하고 성공하고 집도 마련하고 했는데, 마지막에 이렇게 몰락하기를 원하십니까? 아무도 이것을 원하는 사람은 없지만 문제는 지금 이렇게 되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 실패를 원하며, 누가 몰락을 원하며, 누가 추락하기를 원하겠습니까? 문제는 지금 그렇게 되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우리는 몰락을 원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몰락하고 있습니까? 몰락하지 않기를 생각하지만, 몰락하는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국민일보」 기사 중에 이런 것이 있었습니다. 가수 이수만 씨가 오늘날 유명한 HOT라고 하는 그룹을 어떻게 키웠는가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가수 이수만 씨가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1년 동안 이들을 훈련시켰답니다. 자기가 생각하기에 모든 청소년들이 제일 하고 싶은 것이 춤이라고 생각을 하고, 댄스 그룹을 만들어야 되겠다고 결심한 후에 그는 1년 전부터 춤을 잘 추는 아이들을 모아서 훈련을 시켰다고 합니다. 얼마나 훈련을 시켰느냐 하면 새벽에 화장실을 가다가도 음악을 틀어놓으면 춤을 출 수 있을 때까지 훈련을 시켰다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보시기에 그들은 그냥 헐렁한 옷을 입고 나와서 되는 대로 춤을 추는 것 같아 보일지 몰라도 그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4분의 1 박자만 틀려도 머리를 바닥에 박고 훈련을 받았다고 합니다. 멤버 중의 하나인 강타가 이렇게 말합니다. 방학 중에는 오전 10시에 나와서 새벽 4시까지 춤과 노래를 연습했고, 학기 중에는 하루 두 시간밖에 자지 못할 정도로 열심히 했다고. 새벽에 오줌을 누러 가다가도 음악만 들으면 춤을 출 수 있는 상태라고 합니다. 의식과 무의식이 하나 된 사람들입니다. 방법과 하는 일은 다르지만은 저는 이런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자기를 성장시켜 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봅니다. 단순히 무대에 오르는 춤꾼으로서가 아니라 진정한 스타로서 자기를 성장시켜 가는 사람들은 이렇게 자기를 극복하는 사람들입니다. 잠을 이겨야 하고, 자기 육신을 끊임없이 의식으로 지배해 가야 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내면의 성숙입니다. 자기가 스스로 자기의 성장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연히 받은 점수, 우연히 찾아온 행운으로 무엇을 하고 싶으십니까? 그건 다만 짐일 뿐입니다. 당당하게 자기가 자기를 극복하고 이룬 축복이라야만 진정한 기쁨이요 자랑일 수가 있습니다. 돈을 많이 버는 것, 출세를 하는 것이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잘 관리하는 인격을 갖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이러한 성숙과 변화가 넘쳐나기를 주님의 이름을 축원합니다.

댓글 0 ...

번호  분류  제목  조회
notice 공지사항 94372
69 주일낮 442
68 주일낮 589
67 주일낮 741
66 주일낮 344
주일낮 610
64 주일낮 439
63 주일낮 961
62 주일낮 151
61 주일낮 703
60 주일낮 733
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