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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약 출애굽기 18:13-27/ 재덕을 겸비한 중직자 [주일낮]
  • 조회 수: 454, 2013.11.19 20:03:46
  • 지난주일 설교는 중직을 받을 자가 마땅히 취해야 할 태도에 대한 것이었고 오늘 설교부터는 중직자의 자격에 대한 것을 다루고자 합니다. 대한 예수교 장로회 교회헌법 35조 교회직원의 투표법에 의하면 “선거 투표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비밀히 할 것이며 교회에서나 어떤 회에서든지 특정한 사람의 성명을 기록하여 돌리거나 방문하여 권유하거나 문서로나 집회를 이용하여 선거 운동하는 일은 일절 금한다. 이를 어겼을 경우, 그 치리회는 적절히 시벌한다.”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피택 하기 전에 개인적으로 선거운동을 해서도 안 되며, 누구누구를 찍어라고 해서도 안 된다고 명시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는 평소에 말씀, 기도, 봉사, 헌신을 통한 신앙과 덕을 쌓아 교회로부터 칭송과 존경을 받아온 사람이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연스럽게 세워져야 하기 때문인데 오늘날 교회 중직을 피택하는데 있어서 이런 원칙을 어기는 상당히 불미스러운 일들로 인해 피택을 해 놓고도 공정성 시비와 자격의 문제로 중직의 권위가 상실되어 가고 있는 교회들이 적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는 이런 시비가 없어야 되겠습니다. 누가 나서서 자기를 지지해달라고 하면서 전화를 걸고, 한 턱 내고, 선물공세를 하는 등등의 선거운동을 해서도 안 되며, 누구를 찍으라고 공공연히 특정인물을 지지하는 일이 있어서도 안 됩니다. 교회로서는 선거 전에 이런 일이 증거가 분명하여 교회에 고발이 들어올 경우에는 피택하는 일 자체를 취소하는 등의 엄정한 조취를 취해야 합니다. 따라서 성도 여러분께서는 앞으로 몇 번 있게 될 중직자의 조건, 자격 이런 부분에 대한 설교를 잘 들으시고... 이런 분이 교회의 중직자로 세워지는 일에 협조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오늘은 출애굽기 18장에 나타난 중직자상을 한 번 살펴보고자 합니다. 출18장에 나타난 모세의 장인 이드로에 의해 제안되는 행정조직 재편 방안은 평화시에는 행정과 재판 관련 사무를 관장했지만 전쟁이나 국가의 위기 시에는 군사 체제로 전환 될 수 있는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을 세워 10진법에 의한 피라미드 형태의 관리체계를 통해 힘을 합쳐 나가도록 했는데 이것은 이 땅의 죄악과 어둠의 세력을 물리치고 하나님 나라를 건설해가는 교회 조직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드로는 일단 온 백성들 가운데 능력이 있는 자를 뽑으라고 조언했는데... 이 능력이 있다는 말을 개역성경, 즉 우리가 이전에 사용한 성경에는 “재덕이 겸전한 자”로 해석을 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실력이 있고 덕이 있는 사람을 재덕을 겸비한 사람이라고 부르는데 이런 말로 해석하게 되는 히브리어 ‘아느쉐 하일’은 ‘능력의 사람’이라고 직역할 수 있다. 특별히 ‘능력’을 의미하는 ‘하일’ 이라는 단어는 ‘힘, 능력, 권세, 재산’으로 번역되는 단어로서 세상적으로나 영적으로 다른 사람보다 월등한 힘과 권력을 가지고 있는 자를 의미합니다. 그러면서 21절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역사에 참여할 이 능력 있는 선한 일꾼의 3가지 조건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말한다.

    첫 번째,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입니다. 세상적으로 힘이 있고 권세 있는 자라도 하나님 두려운 줄 모른다면 그는 선한 일꾼이 될 수 없다. 여기서 ‘두려워한다’는 히브리 단어는 능동 분사형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분사형으로 나타난 것은 단회적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경외하는 습관이 몸에 밴 체질이 된 자를 의미한다. 따라서 어쩌다가 겁이 나서 벌벌 떨고 공포감이 생기는 그런 비굴한 두려움이 아니라 평소에 하나님을 경외하고 공경함이 아예 체질이 된 그런 사람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자면 평소에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체질화된 사람은 세상 유혹이 오고, 죄를 짓게 되는 순간이 오면 하나님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죄를 짓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평소에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 의식 없이 죄를 짓지만 죄를 짓고 난 후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할만한 사건이나 일이 있으면 그때야 ‘내가 죄를 지어서 벌을 받는구나...’ 이러면서 하나님을 무서워하고 두려워합니다. 이런 경우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번에 중직자로 세워야 할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실력도 있고, 학력도 있고, 돈이 있어도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일을 자기의 고집대로 방자히 행하므로 중직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탁월한 사람은 고집이 있습니다. 자기주장이 있는 법입니다. 이런 걸 흠이라고 할 수는 없지요. 그러나 자기의 주장, 고집이 있더라도 하나님이 두려워서 하나님 앞에서는 그 고집을 거둘 수 있는 사람이 중직자가 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 진실한 능력의 사람이라고 말씀합니다. ‘진실한 자’는 히브리어로  ‘아느쉐 에메트’로서 ‘진실한 자들’이라고 번역되지만 실질적으로는 ‘진리의 사람들’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진리’를 나타내는 히브리 단어 ‘에메트’ 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나타내는 엘로힘의 첫 자음 ‘에’와 ‘임금, 왕, 다스리는 자, 통치자’라는 뜻의 ‘멜레크’의 첫 자음 ‘메’, 그리고 ‘영원, 늘, 항상’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타미드’의 첫 자음 ‘트’의 합성어로서 ‘에메트’ 라는 합성단어가 생겼습니다. 이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항상 왕이 되셔서 다스리시고, 통지하신다는 뜻으로 마귀의 통치가 물러가고 하나님의 다스림, 하나님의 왕국이 회복되는 것을 나타냅니다. 결국 진실한 자란 무엇을 말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세계를 움직이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회가 서는 것을 철저하게 믿는 자라는 뜻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중직자는 말씀을 잘 알아야 한고, 말씀에 훈련을 잘 받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목사가 어느 한 사람을 지명해서 이 사람이 좋은 사람이니 이 사람을 뽑으라.... 이렇게는 말씀드릴 수 없으나 중직자는 반드시 말씀으로 잘 훈련 받은 사람이어야 한다고 저는 믿습니다. 말씀으로 훈련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말씀훈련에 대한 갈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니면 ‘이미 나는 다 알기 때문에 필요가 없다, 혹은 생각은 있으나 시간이 없기 때문에....’ 이런 이유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중직자여야 할 사람들은 이런 이유로 말씀 훈련을 받지 않으면 중직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고요? 말씀이 그 인생의 중심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그 인생의 중심이 아닌 사람은 세상적인 것으로 교회를 이끌어갈려고 합니다. 교만합니다. 아무리 바쁘다고 하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일은 어쨌든 하잖아요. 중직자는 말씀으로 훈련 받아야 합니다. 말씀이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한다는 잠언의 말씀도 있지 않습니까? 우리 항도교회 중직자는 말씀으로 훈련받은 분들로 세워져야 합니다.  

    세 번째로는 불의한 이(利)를 미워하는 능력의 사람을 말합니다. ‘불의한 이(利)’로 번역된 ‘바차’ 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정당한 노력과 방법으로 얻은 재산이 아니라 잘못된 방법으로 모은 재산을 의미합니다. 즉 강제로 빼앗은 재산이라든지, 뇌물로 받은 제산이라든지.... 하여튼 떳떳하지 못한 재산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정당한 수입만으로 사는 것도 능력 중 능력이기에 성경은 출23:8을 통해 “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고 기록함으로써 시대를 살리는 선한 일꾼의 조건에 포함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 당시의 천부장, 백부장...등의 관직은 평소에는 제정을 집행하고, 또 백성의 일을 판단하는 위치에 있는데 흔히 사람들은 자신을 이롭게 하도록 하기 위해 뇌물로 판단을 흐리게 하는 경향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런 자리에 설 사람들은 불의한 이를 미워하는 덕을 가져야 합니다. 요즘 대통령이 정부의 장관 자리에 사람을 추천하면 청문회를 열어서 제물형성과정을 현미경처럼 살피는데 지난 주 감사원장 후보로 나섰던 정동기씨 같은 경우는 변호사를 하면서 한 달에 1억원 정도의 수익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이 대한민국에 그런 정도의 사람은 당연히 그런 수입구조를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고, 법적으로는 하자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조건이 그를 낙마시켰습니다. 세속의 지도력에도 불의한 이가 개입되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교회에서 성스러운 지도력을 발휘해야 할 중직자로서는 돈 문제에 있어서 털끝만큼의 의심이 가서는 안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일을 잘하는 것은 기술이지만 많은 사람을 이해하고 그들과 함께 가는 것은 능력에 해당됩니다. 그래서 진리를 아는 능력의 사람은 많은 사람을 배려하고 생각하고 기도하고 같이 가는 자를 의미하며 더 중요한 것은 같이 가는 사람들과 그 능력 속에는 사단이 절대로 공격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를 살리기 위해 ‘하나님의 군대’ 조직의 지휘자가 되어야 할 중직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능력의 사람이어야 되고 복음만이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한다는 분명한 믿음을 지닌 사람이어야 한다. 이러한 중직자들의 조직이 힘차게 움직일 때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세계복음화가 완벽하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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