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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약 이사야 01:10-20/ 헛된 제물 [주일낮]
  • 조회 수: 494, 2013.11.19 20:15:42
  • 구우주 라고 하는 어느 어머니가 모처럼의 특권을 얻어서 평생 바라던 영국 여왕을 방문하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일생 중 처음이자 마지막 되는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그는 여왕을 뵈러 가면서 사랑하는 고양이를 데리고 갔답니다. 고양이는 궁전에 들어서자마자 쥐 냄새를 맡고 쥐 잡느라고 정신없이 돌아다녔습니다. 고양이에게는 쥐 생각밖에는 없었으니까요. 고양이는 한 번도 여왕의 얼굴을 쳐다보지 않고 궁전을 다녀오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올 때 무엇을 위해서 나왔는지 무슨 목적으로 나왔는지 생각해보아야겠습니다. 때로는 한 번도 하나님의 얼굴을 쳐다보지 않고, 내 걱정 근심에 그대로 매여서 쥐를 쫓아다니는 고양이처럼 세상에 속한 생각으로 맴돌다가 예배를 끝내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오는 자의 생각도 가지각색입니다. 목적도 각각입니다. 그 자세도 나름대로 다 다릅니다.

    성경에 보면 "오라"하고 만인을 향하여 초청하는 말씀이 곳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희는 하나님께 나오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라"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하는 말씀이 곳곳에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내 앞에 다시는 오지 말라." 오지 말라. 내 앞에 다시는 나타나지 말라고 하는 그러한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출애굽기 23장이나 24장을 보면 "너희는 하나님 앞에 나올 때에 빈손으로 나오지 말라. 거룩히 구별한 예물을 가지고 나오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제물을 가져오지 말라. 다시는 가져오지 말라. 그것이 내게 무슨 유익한 것이냐. 다시는 내 앞에 재물을 가지고 오지 말라" 고 말씀하십니다. 또 성경에 보면 기도하라는 말씀이 곳곳에 많습니다. "기도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또 "항상 기도하라" 했는가 하면, "구하라 주실 것이다" 하시면서 기도하라는 말씀이 수없이 많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말씀하시기를 "많이 기도할지라도 안 듣겠다. 기도하지도 말라 하셨습니다. 자, 이 이율배반적인 두 말씀을 우리는 다 함께 들어야겠습니다. 

    어떤 때 우리는 누구에게 심부름을 시킬 수도 있습니다. "가라" 했지만 그 가는 자세가 영 좋지 않아서 짜증내고 원망하고 불평하고 하면 "얘, 그만둬라" 그리지 않습니까? 가라고 했든 오라고 했든 문제는 그 속에 어떤 의미가 있느냐, 무슨 의도로 말씀하시느냐, 좀 더 깊은 차원에서 말을 알아들을 줄 알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오죽 답답하시면 이렇게 말씀하시겠습니까? 

    로마 사람들의 옛날 기록에 의하면 유월절이 되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제사를 드리는데, 무려 십팔만 육천 마리의 양을 하루에 드렸다고 하는 기록이 있습니다. 역사가 요세푸스는 이 장면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피가 강과 같이 흘렀다." 이는 결코 과장이 아닐 것입니다. 한 자리에서 십팔만 육천 마리의 양과 소를 죽였고, 피를 흘렸다면 이것이 강과 같이 흘렀다는 말은 문자 그대로 사실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마치 도살장이었을 것입니다.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도살장이 되어 버렸단 말입니다. 그들은 제사를 많이 드려야 구원받을 것으로 생각해서 자꾸만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렇게 많이 드림으로써 문제를 해결하고 의롭다 함을 얻으려고 하는 것은 또 한 번 하나님 앞에 죄짓는 일입니다. 우리가 의롭다 함을 받는 그 길은 결코 긴 기도나. 많은 제물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성경 말씀에 보면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수 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다시는 내 앞에 그런 제물은 가지고 오지 말라" 하십니다. 제사 드리는 그 양이나 형식, 또는 장엄한 의식을 통해서 의롭다 함을 얻을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로마서 11:35에 말씀하십니다. "누가 주께 먼저 드려 갚으심을 받겠느뇨." 누가 먼저 주께 드려서 갚음을 받을 만큼 아름답고 또 많은 제물을 드릴 수 있겠습니까? 사실은 드린다는 자체가 얼마나 어리석은 것입니까? 왜냐하면,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니까 말입니다. "내 것을 하나님께 드렸다"는 말은 처음부터 잘못된 생각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돌리는 것인데, 이것을 통해서 어찌 이를 이루어 보겠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첫째,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형식적인 것을 싫어하십니다. 외식적인 것을 미워하십니다. 마음 없는 선물은 뇌물입니다. 마음 없는 순종은 욕입니다. 모독입니다. 정성 없는 예배는 언제나 가증한 것입니다. 마음을 드려야 합니다. 그 중심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마음을 드린다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통회하는 마음을 드려야 합니다. 시편 51편, 다윗의 참회록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주는 제사를 즐겨 하시지 아니하시나니 그러지 않았으면 내가 드렸을 것이나 주는 번제를 기뻐하시지 아니하시나이다. 하나님이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통회하는 마음, 이것은 매우 귀중한 것입니다. 그런고로 선지자들은 외쳤습니다. "옷을 찢지 말고 네 마음을 찢으라." 언제나 우리는 통회하는 마음, 회개하는 마음, 겸손한 마음, 그리고 이 처지 이대로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마음, 이 진실과 이 충성된 마음을 가지고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형식이 아닌 붉은 중심을 주님 앞에 내놓는 제사가 참된 제사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내 뜻을 하나님 앞에 내놓기 위해 나오기보다는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이것을 알기 위하여 우리는 계속적으로 말씀을 상고합니다. 계속적으로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 이것을 하나님은 언제나 기뻐하십니다. 제사라는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뇌물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런 피비린내와 혹은 고기 불태우는 냄새를 좋아하실 하나님이 아닙니다. 왜 제물을 바치라 하셨느냐? 신학적인 의미로 말하면 이것은 의로운 하나님이 우리 죄인을 사랑하실 때에 하나님 스스로 지불하시는 희생의 대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하기 위해서 이렇게 희생하고 있다는 하나님의 희생적 사랑, 그 공의로운 사랑의 계시가 제물 위에 나타난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제물을 드리는 사람들은 또 하나의 제물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갈 때마다 죽어지는 것입니다. 계속적으로 희생되는 것입니다. 완전히 찢어지고 깨지고 부서지는 그런 죽어진 상태로 하나님 앞에서 나가는 것입니다. 그런고로 제사는 하나님의 사랑의 계시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어떤 상태에 있음을 보여 주는 계시입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의 마음, 상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합니다. 그리고 계속 알아 나가려고 합니다. 이것이 예배입니다. 
    셋째,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예배입니다. 미가서 6:8에 보면 하나님이 구하시는 것은 오직 공의와 사랑과 겸손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공의와 진실과 사랑과 선행과 긍휼을 원하시고 나아가서 화목을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친히 말씀하시기를 "제물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에 누가 너를 원망하는 것이 생각나거든 제물을 놓아두고 다시 가서 화목하고 그 다음에 제물을 바치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화목이기 때문입니다. 예배는 행동적인 것입니다. 윤리적 성격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함이 다만 감상이 아닙니다. 성전 안에서의 예식만이 아닙니다. 참된 예배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뜻을 내 생활 속에서 행하는 것입니다. 실천하는 것이 예배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로마서 12:1에 '그런고로 너희 몸으로 산제사를 드리라. 이것은 합리적 예배니라' 했습니다. 우리의 행위 자체가 예배요 제사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선행은 공로가 아닙니다. 아름다운 제물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하고, 그 사랑의 고백에서 이루어지는 행동이, 그 선행과 그 희생 자체가 하나의 제물이 되어 주님 앞에 들려질 때 하나님께서 그 제물을 받으시고, 그를 기뻐하시고, 그를 만나 주시고, 그에게 다함이 없는 은총을 날마다 더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예배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참된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지는 예배,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을 향해 나아가는 것.... 이것이 참된 예배인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들은 우리 모두는 참된 예배자들이 되어 예배가 그저 드려지고, 억지로 드려지는 예배가 아니라 자발적이고, 감사함으로, 감사함으로, 감동함으로 드려지는 예배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 아버지 하나님, 어리석고 미련한 저희들에게 예배의 처소를 주시고, 예배의 시간을 주시고, 또 예배할 수 있게 하신 놀라운 은혜를 감사합니다. 주여, 헛된 발걸음이 되지도 않게 하시고, 헛된 예배가 되지 않게 하시며, 헛된 제물을 가지고 나오는 사람들이 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나옴을 주께서 기뻐하시며, 우리의 기도가 주께 상달되며, 우리의 제사가 진정 하나님께 영광되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하나님 앞에는 영광이 되고, 우리는 주께 바쳐진 제물로서의 가장 복된 생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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