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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역대기는 다른 역사서 사무엘상하 및 열왕기상하와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기술한 것 다 아시죠. 바벨론에서 포로귀환한 사람들이 성전중심으로 새롭게 신앙을 갱신하기 위하여 쓰여졌습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 성전과 관련이 있는 남유다왕국을 중심으로 쓰여 졌지요. 여로보암 이후 북이스라엘은 이미 우상숭배에 빠져 불신앙의 길을 갔기 때문에 그들의 이야기를 전혀 포함시키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남 왕조의 열왕 이야기라 하더라도 신앙에 도움이 되지 않는 나쁜 이야기는 되도록 제외시켰는데 예를 들자면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와 간음한 사건 등은 기술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런 특징들이 역대기서에 있습니다. 그러면서 9장까지 족보 이야기가 나온 후 10장부터 유다왕국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여러분, 제가 처음에 말씀드렸죠? 역대기서는 성전신앙을 증진시키기 위해서....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선택받은 자가 누구이고, 누가 버림받았는가 하는 것을 처음부터 보여주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두 주인공이 바로 사울과 다윗입니다. 한 마디로 표현하면 사울 왕은 하나님의 버림을 받았고, 다윗은 선택받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10장에는 버림받은 사울의 말로가 기록되고 있습니다. 참 비참하죠. 우리가 사울처럼 이렇게 비참하게 인생을 끝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아무리 시작이 좋으면 뭘 하겠습니까?
여러분, 시작은 누구나가 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잘 가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안 됩니다. 인생은 마라톤이기에 처음 1등이 끝까지 1등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천국을 바라보는 인생길을 달려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삶을 어떻게 마무리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울 왕의 인생 여정을 보면 그는 무척이나 화려한 출발을 하였습니다. 사울은 명문 지파, 명문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외모 역시 출중했습니다. 성경 사무엘상 9장 2절에 보면 사울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기스에게 아들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사울이요 준수한 소년이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만큼 더 컸더라.” 사울이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되었을 때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크게 기뻐하면서 그가 선한 왕으로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것을 기대하였습니다. 사울은 집권 초반에는 아주 이상적으로 나라를 잘 통치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하나님의 뜻과는 상반되게 생활했습니다. 그리하여 가장 뛰어난 하나님의 은총을 입고도 이를 유지하지 못한 채 말년이 불신의 허물로 막을 내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면 무엇이 그로 하여금 부름 받을 당시의 믿음은 간곳없이 사라지고 얼룩진 비극의 삶을 살게 하였는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사울 왕은 하나님께 불순종했습니다. 오늘 성경 역대상 10장 13-14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사울이 죽은 것은 여호와께 범죄하였기 때문이라 그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또 신접한 자에게 가르치기를 청하고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시고 그 나라를 이새의 아들 다윗에게 넘겨 주셨더라.” 성경은 사울 왕의 범죄가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않는 것이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사무엘상 13장에 보면 사울이 왕으로 등극하지 2년쯤 되었을 때에 블레셋과 이스라엘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전쟁의 상황이 이스라엘에 극도로 불리하게 진행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도우심이 절실히 필요했던 사울 왕은 라마에 있는 사무엘 선지자에게 연락을 하여 속히 와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 이스라엘이 승리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사무엘 선지자는 일주일 안에 가겠다는 회신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 정해진 시간이 다해 갈 무렵이 되어도 사무엘은 오지 않았습니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서서히 사울의 휘하에서부터 흩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자 다급해진 사울은 어려움을 이겨 보자는 궁여지책으로 제사장만이 드릴 수 있는 제사를 자기가 드리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는 일을 범하게 됩니다. 바로 사울 왕이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아말렉을 쳐서 멸하되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을 남김없이 죽이고 제산은 불태우라고 말씀하셨는데 사울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사울 왕이 보기에 좋은 것들은 챙겨 두고, 가치 없고, 좋지 않은 것들만 진멸하였습니다.(삼상 15:9) 사울 왕의 이러한 행동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사울을 왕 삼은 것을 후회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둘째, 사울 왕은 신접한 자에게 물었습니다. 신접한 자는 점을 치기 위하여 악귀를 불러내거나 악귀를 부리는 자를 말합니다. 이들은 오늘날로 보면 무당인데 하나님을 대적하여 사단의 뜻에 따르고 공연히 터무니없는 낭설을 퍼뜨려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들에 대한 추종을 엄히 금하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사울 왕이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시는 신접한 자를 만나러 갔다는 것은 이해가 안 됩니다. 사울 왕이 왜 신접한 자를 찾게 되었을까요? 사울 왕이 다윗을 시기함으로 나라 조정이 나누어지고, 거기다가 사무엘 선지자가 죽었다는 소문이 들리자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침략해 왔습니다. 사울은 과거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거의 패한 일이 없었지만 이번 전쟁은 두려웠습니다. 왜냐하면 전쟁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더 이상 자신과 함께 하시지 않는다는 느낌을 그가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며 전쟁에 대하여 물어보는 신앙의 자세를 유지했습니다. 그런데 이건 엄밀히 말하면 신앙이 아니죠. 그저 답답하니까 하나님을 찾는 것이죠. 염치없는 신앙이죠, 이런 것은..... 통하지 않는 줄 알면서도 한 번 기도해 보는 것입니다. 이런 기도에서 무슨 능력이 나가겠습니까? 무엇보다도 기도하는 사람이 잘 알죠. 내 기도가 진실한 기도인지, 그냥 답답해서 스스로 위로 받기 위해 하는 기도인지......
당연히 하나님이 응답해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이제는 어떻게 합니까? 무당한테 쫓아갑니다. 그의 신하들이 엔돌에 신접한 여인이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이에 사울이 다른 옷을 입어 변장하고 그 여인에게 이르러서는 신접한 술법으로 사무엘을 불러올리라고 명합니다. 이것은 사울이 얼마나 막 가고 있는가 하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신앙인들도 이렇게 막 가는 분들이 계십니다. 예수 믿는 분들 가운데서 사울 왕과 같은 사람들이 많다고 점쟁이한테 들은 적이 있습니다. 좋을 때는 믿음, 신앙으로 살지만 감정이나 환경이 극단적으로 흐르게 됨으로 신앙이 통하지 않으면 마치 막장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불신앙으로 대처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주먹을 쓰고, 어떤 사람은 불법을 행하고, 어떤 사람들은 사울 왕처럼 무당을 찾고...... 여러분, 사울 왕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게 되면 악한 영의 지배를 받아 하나님이 없는 삶을 살게 되고 이렇게 막장 드라마 같은 처참한 인생을 연출하게 됩니다. 나뭇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어야 좋은 열매를 맺듯이 우리도 하나님께 붙어서 그 말씀에 순종하여 좋은 열매를 맺으며 살아야 합니다.
사울의 죽음은 얼마나 끔찍하고 비극적입니까? 그러나 가장 큰 이 비극은, 애초에 이렇게 될 필요가 없었다는 점입니다. 사울 왕이 이렇게 죽을 이유가 없었는데 문제는 스스로가 그 길을 택했다는 것입니다. 조금씩 조금씩, 매일 타협과 불순종을 선택했고 마치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처럼 그저 원하는 대로 살다가 이렇게 되었습니다. 자신에게 은혜를 주신 하나님의 얼굴에 침을 뱉었고, 그렇게 육신적인 길로 나아간 결과인 것입니다. 여러분... 잘못된 길을 선택한 사람이라고 해서 다 망하는 것은 아닙니다. 잘못된 것은 바로잡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렵습니다. 악은 행하면 파멸로 달려가는데 거기서 돌이키는 것은 평상시 보다 10배는 더 어렵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첫째, 악을 처음부터 피하는 것이 악을 이기는 방법입니다. 그러나 악한 길로 간다고 하더라도 깨달을 때 이를 악 물고 악에서 돌이키십시오. 어렵지만 그렇게 해야 그것이 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의 길을 간다고 해서 사울처럼 막장까지 다 가서야 되겠습니까? 아무쪼록 악과 싸우는 우리 믿음의 길에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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