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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약 요나서 1:1-17/ 하나님의 추적 [새벽]
  • 조회 수: 276, 2013.11.28 11:38:11
  •   오늘 새벽부터는 요나서를 가지고 말씀을 묵상할 것입니다. 요나서에는 이 땅에 숨어있는 영혼들을 찾아가는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 있는 책입니다. 우리는 요나서를 통해 이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가 무엇인지 분명히 깨달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요나서를 보는 이유는 영적으로 굶주림과 고통 가운데 죽어가는 불신자들에게 무관심한 교회에 주시는 메시지를 듣기 위해서입니다. 요나서에는 질책의 메시지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요나서에는 하나님의 기가 막힌 사랑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도망가는 요나를 추적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이 있습니다.

     

    성경은 오늘의 주인공 요나를 소개합니다. 그의 아버지는 ‘아밋대’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습니다. ‘아밋대’는 ‘아멘’이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아멘’이라는 뜻은 “하나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실합니다”입니다. 그러므로 ‘아밋대’라는 이름을 가진 이 사람은 평생을 하나님 앞에서 ‘아멘’으로 살았을 것입니다. 자기의 모든 것을 잃어버릴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오직 ‘예’와 ‘아멘’으로 살기 원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보다도 아들이 하나님께 더 순종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들의 이름을 ‘요나’라고 지었습니다. 요나는 ‘비둘기’라는 뜻입니다. 비둘기는 좋은 소식을 전하는 길조입니다. 아버지의 열망대로 소망대로 요나는 순결한 삶을 살았고 하나님의 소식을 이 땅에 전하는 선지자로 성장했습니다. 그는 이름값을 한 것입니다. 요나가 이 요나서라는 책 때문에 부정적으로 보이지만 이 분도 참 훌륭한 선지자입니다. 왕하 14장에 보면 이스라엘을 격려하면서 승리의 예언을 하고, 그 예언대로 되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이 쓰신 선지자입니다. 그런데 이 요나에게 새로운 하나님의 말씀이 임합니다.


    1. 하나님은 그냥 찾아오시지 않고 말씀으로 찾아오십니다. 그것도 한 사람을 지목하여 구체적으로 찾아오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이 우주를 지으신 광대하신 분이지만 항상 한 사람 한 사람에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이 세상의 사람들은 여러분을 지나칠지라도, 여러분의 부모가 여러분을 인정하지 않고, 직장의 상사가 여러분을 무시할지라도 하나님은 결코 여러분을 무시하거나 업신여기지 않습니다. 저는 성경에 이름이 나올 때마다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제 이름도 하나님께서 부르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이름을 기억하시는 하나님을 기뻐하십시오.

     

    2. 그런데 그의 메시지가 무엇입니까? “일어나라, 가라, 외치라” 요나는 성공한 사람입니다. 그는 이제 편안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시 요나에게 말씀하십니다. “너의 편안함에 안주하지 말라. 나의 거룩한 목적을 위해 일어나라. 가라.” 사랑하는 여러분, 아는 것이 능력이 아닙니다. 아는 것이 순종이 아닙니다. 행동하는 것이 순종이요 행동하는 것이 힘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 가운데로 나아가야 합니다. 잃어버린 한 영혼을 위해 하나님께서 찾아오신 것처럼 내가 주님의 대사로서 찾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가서 외쳐야 합니다. 내 생각을 외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외쳐야 할 것은 나의 생각, 철학, 논리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위해 우리를 부르셨고 준비시키셨습니다.

     

    2. 불순종... 그러나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안절부절못합니다. 가야 할 곳이 니느웨이기 때문입니다. 니느웨는 요나의 고향으로부터 8백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앗수르의 수도입니다. 거리가 멀기 때문에 힘들어한 것은 아닙니다. 요나는 니느웨보다 다섯 배 정도 먼 다시스로 가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요나는 니느웨로 가기 싫었던 것입니다. 왜 가기 싫었을까요? 니느웨는 적국의 수도요 악과 음란이 가득한 철천지 원수의 나라였기 때문입니다. 니느웨가 잘 된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패망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요나는 니느웨로 보내시는 하나님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번 더 생각해 봐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 요나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요나가 원하지 않는 내용이었습니다.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도 이와 같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하기 싫은 일, 죽어도 못하는 일, 정말 하고 싶지 않은 말을 주님께서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이 귀에 거슬리고 동의할 수 없을지라도 억지로라도 순종하려고 해야 옳았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자기의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쓰시기에 가장 어려운 사람은 요나와 같이 자기의 편견을 따라 고집대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께서 함께 일하시기 원하는 사람은 자신의 생각보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요나는 어떻게 반응합니까? 요나는 니느웨로 가라는 하나님의 분명한 말씀에도 불구하고 다시스로 가기 위해 욥바로 내려갑니다. 문자 그대로 바로 그 길은 ‘내려가는’ 길이었습니다. 주님 앞에서 멀어지는 길은 항상 내려가는 길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위로 올라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길은 처음에 좋아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은 하나님을 떠나는 길이었기에 좋은 길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욥바로 내려가고, 배 밑창까지 내려가고 결국 물고기 뱃속까지 내려갑니다. 내려가는 길은 죽음의 길입니다.

     

    3. 사랑의 추적자.... 이렇게 하나님은 요나를 찾아왔지만 요나는 모든 것을 버리고 다시스로 도망갑니다. 만약 여러분의 동역자가 여러분을 버리고 도망간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 동역자를 버리시겠습니까? 만약 하나님께서 요나를 포기하셨다면 요나서는 여기서 끝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요나를 포기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추적하셨습니다. 4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대풍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 폭풍이 대작하여 배가 거의 깨어지게 된지라” 요나도 고집이 세지만 하나님도 고집이 셉니다. 요나가 불순종했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시고 추적해 가십니다. 요나의 불순종으로 인해 하나님의 의지가 좌절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목적을 위해 특별한 방법으로 요나를 붙잡아 가셨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나에게서 찾을 것을 다른 사람에게 찾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추적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대풍으로 찾아오십니다. 생명을 위협해서 요나를 일깨웁니다. 요나를 하나님이 포기 하지 않습니다. 흔들어 깨웁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포기하고 도망가는 요나에게 기회를 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도망가지 마십시오. 여러분을 부르시고, 여러분의 존재를 물으시고, 여러분을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께 여러분의 모든 것을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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