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홈페이지
  • 구약 호세아 07:01-16/ 이스라엘 백성들의 무지 [새벽]
  • 조회 수: 338, 2013.11.28 11:49:12
  • 7장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향한 인애를 잃어버린 이유가 무지 때문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이스라엘 백성의 무지에 대해서 정확하게 분석해주고 계십니다. 9절에 “저는 이방인에게 그 힘이 삼키웠으나 알지 못하고 백발이 얼룩얼룩 할지라도 깨닫지 못하는도다” 했습니다. 알지 못한다는 것과 깨닫지 못한다는 말을 모두 한자로 바꾸면 무지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의 문제가 무지라는 것이 두 번이나 강조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세 가지에 대해서 무지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무엇을 진실로 원하시는지에 대해서 무지했습니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호 6:6)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제사도 아니고 번제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애를 원하시고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머리로는 알아도 가슴으로 인정하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마치 자식이 부모를 부모로 인정하려 하지 아니하고 학생이 선생님을 선생님으로 인정하려 하지 아니하고 성도가 목사를 목사로 인정하려 하지 않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사실에 대해 무지했습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그들의 악에 대해서 잘 알고 계시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무지했습니다. “내가 그 여러 악을 기억하였음을 저희가 마음에 생각지 아니하거니와 이제 그 행위가 저희를 에워싸고 내 목전에 있도다” 2절이죠?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지식이 없는 존재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지식도 있으시고 의지와 감정도 있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지하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행한 악도 다 알고 계시고 우리가 행한 선도 다 알고 계시며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얼마나 진실로 기도했는가도 다 듣고 계십니다. “말하기를 하나님이 어찌 알랴 지극히 높은 자에게 지식이 있으랴 하도다” (시 73:11) 악인들은 하나님을 무지한 존재로 취급한다는 것입니다.

     

    셋째, “자신들의 실상”이 어떤지에 관하여 무지했습니다. 자신의 현실이 어떤지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이 그들의 재물과 힘을 다 빼앗아 가서 이제는 힘없는 존재가 되었음에도 아직 힘이 왕성한 청년인 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거울을 한 번만 봐도 자신이 힘없는 노인이 되었음을 깨달을 텐데 자기가 청춘인 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목사님께서 대한민국의 유명한 소매치기로 소문난 사람이 병원에서 병들어 죽어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전도하러 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복음을 증거하고 간절히 기도해주었는데 기도하는 중간에 숨이 끊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손에 목사님의 시계가 들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결국, 소매치기는 죽을 때까지도 자기 직업에 충실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은 마치 이 소매치기와 같다는 것입니다. 죽을 때가 다 되었는데 죽을지도 모르고 하나님을 향해 범죄하고 있는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는지도 몰랐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악에 대해서 환희 보고 계시다는 것도 몰랐으며 자신들의 실상을 죽을 때가 다 되었는데도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의 무지를 깨우치시는 하나님의 교육방법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에는 네 가지 중요한 예화가 나오고 있습니다. 네 가지 예화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의 영적인 실상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정확하게 깨우쳐 주고 계십니다.

     

    첫째, 이스라엘 백성은 “뜨거운 화덕”(hot oven)과 같았습니다.(호 7:4-5) 여러분 사람이 아주 차가운 것 보다는 뜨거운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뜨거운 것도 좋은 열정으로 뜨거운 것은 좋은 일이지만 나쁜 열정으로 뜨거운 것은 좋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세 가지 나쁜 열정으로 뜨거웠습니다. 첫 번째는 정욕으로 뜨거웠습니다. “저희는 다 간음하는 자라 빵 만드는 자에게 달궈진 화덕과 같도다” (호 7:4) 두 번째는 술로 뜨거웠습니다. “우리 왕의 날에 방백들이 술의 뜨거움을 인하여 병이 나며” (호 7:5) 좋은 것으로 뜨거우면 되는데 술로 뜨거워지니까 결국 몸에 병이 났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정권을 탈취하려는 야욕으로 뜨거워졌습니다. “저희가 다 화덕 같이 뜨거워져서 그 재판장들을 삼키며 그 왕들을 다 엎드러지게 하며 저희 중에는 내게 부르짖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호 7:7) 옳은 판결을 하는 판사들은 다 죽이고 자기 입맛에 맞는 판결을 하는 판사만 살려준 것입니다. 그리고 왕들은 계속 죽임을 당하여 정권이 계속 혁명과 살인을 통해서 교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역사를 보게 되면 여로보암 2세가 죽고 나서 스가랴가 왕이 되었는데 스가랴는 살룸이 죽입니다. 살룸은 또 므나헴이 죽이고 므나헴의 아들 브가히야는 베가가 죽이고 이렇게 계속 정변이 일어나고 왕들이 죽어서 정치가 혼란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나라,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간음과 술과 정권탈취의 야욕으로 가득했던 것은 그들의 마음이 좋지 않은 열정으로 뜨거운 화덕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마음이 뜨겁되 항상 좋은 일로 뜨거워지시기를 바랍니다.

     

    둘째, 이스라엘은 “뒤집지 않은 전병”(half-baked pancake)과 같았습니다. 여러분 전병은 우리말로 하면 빈대떡입니다. 빈대떡을 부치려면 아래쪽이 다 익으면 주걱을 넣어 뒤집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바깥쪽도 익어서 맛있는 빈대떡이 됩니다. 그런데 한쪽만 익으면 먹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빈대떡은 앞만 익고 뒤는 설익어서 먹을 수도 없고 어떤 곳에도 쓸모가 없는 빈대떡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호세아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의 혼합 종교에 대해서 강력하게 정죄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종교와 이방신을 섬기는 종교를 혼합해서 신앙을 형성했기 때문에 하나님께도 쓸모없고 이방신에게도 쓸모없는 그런 종교를 만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쓸모없고 먹을 수 없는 뒤집지 않는 전병과 같았습니다.

     

    셋째, 이스라엘은 “어리석은 비둘기”(silly dove)와 같았습니다. (호 7:11-12) 비둘기는 원래 어리석지 않습니다. 비둘기는 편지를 전달할 수 있을 정도로 방향성이 뛰어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비둘기는 아주 어리석어서 동쪽으로 날아가라고 하면 서쪽로 가고 남쪽으로 날아가라고 하면 북쪽으로 가는 것입니다. 방향감각이 혼돈되어서 우왕좌왕하다가 앗수르로 날아가다 제물과 나라를 빼앗기고 애굽으로 날아가다가 조롱과 망신을 당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열왕기하 15장 19-20절을 보면 므나헴이라고 하는 왕은 앗수르가 침공하니까 은 50세겔씩 다 거둬서 앗수르 왕에게 조공을 바쳐 일시적으로 침공을 모면합니다. 하지만, 민족자본을 완전히 소모하는 허물을 범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북 왕국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인 호세아는 앗수르에게 바치던 조공을 끊고 애굽에게 바쳤습니다. 그러자 앗수르 사람들이 고약하게 여겨 주전 721년 북 왕국 이스라엘을 멸망시켜버립니다. 그런데 애굽은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이스라엘을 조롱했습니다. 왜 이스라엘이라는 비둘기가 이렇게 되었느냐면 하나님께서 하늘에 그물을 쳐놓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로 날아가면 하나님께서 그물도 치우시고 축복해주시는데 이 어리석은 비둘기는 올바른 방향만 쏙 빼놓고 잘못된 방향으로 날아가더라는 것입니다.

     

    넷째, 이스라엘은 “속이는 활”(deceitful bow)과 같았습니다. (호 7:16) 속이는 활이라는 것은 구부러진 화살입니다. 화살이 구부러지면 아무리 대한민국 최고 금메달 리스트가 쏴도 바로 날아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성경을 통해 올바른 말씀을 가르쳐주셔도 사람의 마음이 구부러지면 말씀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이 구부러진 사람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향해서 거친 말을 합니다.

     

    성도들이 은혜와 축복 가운데 거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의 죄가 얼마나 하나님을 슬프게 하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죄를 지어도 하나님은 모르실 거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쉬운 예화를 들어서 설명하시는 이유는 망하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이끌어 오시려고 하는 것입니다. 당신에게 이끌어 오셔서 치료하고 축복하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께 가까이하면 복이지만 하나님을 멀리하면 고통입니다. 하나님은 엄위하신 무서운 분이시기도 하지만, 인자하신 하나님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엄위에 거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인자에 거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엄위에 거하지 마시고 인자에 거하시기 바랍니다.

댓글 0 ...

번호  분류  제목  조회
notice 공지사항 95166
1858 수요 584
1857 수요 549
1856 수요 470
1855 수요 618
1854 수요 549
태그